257화. 실험 (4)
“진행 상황은?”
“현재까지 총 20만 명이 접종을 맞았습니다.”
“이상 반응을 보이는 사람 수는?”
“20만 명 중에 500명 정도입니다.”
갑자기 몸에 마이크로칩이 들어가는 것이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뭐, 죽을 정도는 아니겠죠?”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사망까지 이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알레르기 반응이 한번 일어나면 목숨이 날아가기도 하는 거라…….”
“상관없습니다. 밀어붙이세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고 해도 반드시 칩을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베리칩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처분은 확실했겠지요?”
“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총살형을 시켰습니다. 거부할 시에는 가차 없이 총살형에 처한다고 위협하니, 알아서 팔을 내밀더군요.”
북한 주민들도 이상할 것이다.
베리칩을 넣어주는 건 북한 사람이 분명한데, 총괄 지휘를 하고 있는 건 미국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미국에 있는 연구진들을 데려와 현재 북한에 베리칩을 퍼뜨리고 있다.
북한은 강제 소집이 떨어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정된 장소에 모여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즉각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모두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들에게는 누군가에게 반기를 들고 싸울 만한 의지가 없다.
이 얼마나 완벽한 나라인가?
지배자에게는 정말 더없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백성들은 반기를 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조건 명령에만 따른다는 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스템 상황을 바로 볼 수 있을까요?”
“예, 일단 임시로 본부를 만들어놓고 현황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여기 스크린을 보시면 바로 창이 나옵니다. 운영 프로그램에 따라 누가 어디에 있는지 모두 볼 수가 있습니다.”
“도청은?”
“물론 가능합니다.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볼 수 있지요.”
베리칩 연구원장이 보여주는 스크린에는 베리칩을 맞아 작동되고 있는 숫자가 나타나 있었고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볼 수가 있었다. 또한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도 생생하게 듣기가 가능했다.
“생각 이상이지 않습니까? 이거야말로 완전한 감시입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을 겁니다.”
연구원장은 자화자찬을 하며 베리칩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모자라 보였다.
“100명.”
“예?”
“이 중에서 랜덤으로 100명의 베리칩을 꺼보세요. 아니, 폭발시키세요.”
침을 튀기며 베리칩에 대해 설명하고 있던 연구원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 옆에서 나와 함께 얘기를 듣고 있던 김정은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회, 회장님. 지금 당장 말입니까? 이제 막 베리칩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터져 버리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베리칩을 받으려 하지 않을 텐데…….”
“그랬다가는 총에 맞고 죽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박사님께서 그토록 자랑하고 계시는 베리칩의 위력을 말입니다. 어차피 프로토타입이 아닙니까? 최대한 많은 것을 이번 기회에 연구하셔야죠.”
내가 원하는 베리칩의 한계는 이 정도가 아니다.
단순히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도 결정지을 수가 있을 정도의 베리칩을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그걸 만들기 위해서라면 북한 주민 절반을 죽인다고 해도 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뭐 하십니까? 얼른 해보라니까요? 혹시, 지금 와서 연민을 느낀다거나 그런 유치한 감정 때문에 흔들리시는 겁니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박사님은 더 이상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실 수 없습니다.”
날카로운 내 지적에 연구원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리고 양옆에 있던 연구원들에게 눈짓을 보내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최대한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베리칩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로만 추려냈습니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딱 100명입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폭발할 겁니다.”
“내가 폭발하는지 안 하는지 화면만 봐서 어떻게 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 베리칩을 뿌리는 장소마다 실시간으로 영상이 중계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보는 앞에서 거기라면 잘 볼 수가 있겠군요. 그쪽으로 해주십시오.”
화면상에만 터졌다는 신호가 오고 실상은 터지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방지를 하려는 것이고.
“아,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랬다가는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큰 혼란이…….”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하세요. 전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똑똑히 볼 수 있게 영상 화면도 띄워주시고요.”
내 명령에 연구원장은 평양에서 베리칩을 삽입시키고 있는 장소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삽입이 끝난 사람들은 하나둘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100명을 골랐습니까?”
“아, 예.”
“이 버튼이라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나는 연구원장이 건넨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다양한 각도로 저곳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콰콰쾅-!
생각보다 신호가 빠르다.
누르면 조금 있다가 터질 줄 알았는데, 누르자마자 카메라 곳곳에서 폭발음을 보내왔다.
길을 가던 남자들의 몸이 순식간에 육편으로 변하며 터지는가 하면 다 늙은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가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사방에 흩어져 버렸다.
100명의 폭탄이 터졌으니 그만큼 폭발음도 굉장했다.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리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도망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게 잘 단속하도록 하세요. 베리칩 없이 지정된 선을 넘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총을 쏴도 된다고 전해주시고요.”
“예, 회장님.”
김정은과 같이 이번 시연회에 참석한 북한군 간부들은 얼른 명령을 하달했다.
어차피 이들은 나의 수족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슬쩍 김정은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화면상에 나타나는 저 참혹한 광경을 바라보며 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와서 인자한 군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100명이 전부 폭발했습니까?”
“예, 전부 폭발했습니다.”
스크린상으로는 모두 폭발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백 명의 목숨이 버튼 하나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혹시라도 불발된 베리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철저히 확인을 하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나는 전체적인 현황을 다시 살펴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돌아가서 다행이네요. 이번 프로젝트는 베리칩을 시범하기 위한 것이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보다 더 성능이 좋은 베리칩을 만들어내셔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언제든지 다음 프로젝트에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박사들은 모두 몸을 잘게 떨며 대답했다.
“예, 회장님.”
* * *
“주민들이 그런 식으로 죽으니까 기분이 좋지 않은가 보지?”
내 물음에 김정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난 피식 웃으며 그의 앞에 잔을 하나 내려놓았다.
“내가 그래도 네 아버지, 할아버지보다는 나아. 그 양반들이 죽인 주민들 숫자가 몇 명인데. 그러니까 그런 뚱한 표정은 이제 그만 접지?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술잔으로 맞고 싶지 않으면.”
“…….”
그제야 김정은은 억지로라도 미소를 보였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그래? 앞으로도 그러는 게 좋아. 괜히 이상한 짓 했다가 걸리면 서로 껄끄럽지 않겠어? 난 양쪽이 껄끄러운 걸 무척 싫어해. 그래서 껄끄러운 상대는 이제껏 살려둔 적이 없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쓸데없는 분노로 괜한 짓을 했다가 피 보지 말자는 얘기였다.
김정은은 금방 내 말을 알아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이제 네 나이도 20살인데, 생각하는 게 있겠지. 그리고 뭔가를 결정할 때도 혼자 결정하려 들지 마. 어차피 네게 그런 권한도 없을뿐더러 그래봤자 득 되는 것도 없어. 모든 건 어떻게 해야 한다?”
“회, 회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잘 아네. 꼭 내 허락을 받아야 뭔가를 할 수가 있을 거야.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알겠지?”
“예, 회장님.”
자신의 편이 이 땅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김정은이다.
이미 그의 편을 들었던 사람들은 전부 내가 제거해 버렸다. 그렇기에 저리도 고분고분하게 나오는 것이다. 똥통이라도 이승이 났다고 하지 않던가?
“여기서 어느 정도 볼 거도 다 봤고, 나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누군지 알지?”
“이창석입니다.”
“그래, 그 양반이 조만간 한번 만나자고 요청할 건데, 그때 그냥 잘 받아줘. 둘이 그다지 할 얘기도 없겠지만, 한번 평양으로 초대해서 냉면 한 그릇 먹이고 보내.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정확히 어떤 걸…….”
고분고분하게 있어도 궁금한 건 못 참겠다는 건가?
난 관대하게 내 계획을 조금 알려주었다.
“남북한을 잇는 철도를 열어야지. 언제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싸우겠어? 휴전선도 슬슬 없애고 양쪽을 이어주는 통로를 열어줄 거야. 거길 통해서 기업들이 진출을 하는 거고. 그렇게만 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금방 부유하게 살 수 있어.”
북한은 개발할 곳이 참으로 많은 나라다.
철도를 시작으로 지상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급속도로 발전한 새로운 북한이 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이 여전히 나의 적이었다면 그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북한은 나의 소유나 다름이 없다.
베리칩을 가장 먼저 이식받은 나라가 아닌가?
이들만큼 통제가 쉬운 나라는 또 없다. 그리고 각 군부 간부들도 조만간 베리칩을 삽입하게 될 테니, 그들은 앞으로 내 말에 절대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랬다가는 아까 전 죽어간 100명의 주민들처럼 자신들의 몸이 풍선처럼 터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네 할아버지와 아버지랑은 다르게 너는 성군으로 만들어줄게. 전 세계가 인정하는 그런 지도자. 인민의 배고픔을 헤아릴 줄 알고 외교를 할 줄 아는 그런 남자로 이미지메이킹을 시켜준다는 거야. 네가 허수아비이긴 하지만, 그런 명예를 얻는 건 결코 쉽지가 않아.”
북한을 크게 키워주면 김정은이 칭찬이란 칭찬은 전부 받는다는 게 배가 좀 아팠지만, 이제 북한은 완벽한 나의 노예다. 베리칩이 모든 주민들에게 들어가면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내 말에 전적으로 따르게 될 테니까.
이런 나라를 극심한 빈곤에 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앞으로의 세계를 위해서라도 천천히 훈련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 여러 가지 요청을 하게 될 거야. 잘하면 GOP도 전부 철거해 버릴 수도 있지.”
“설마… 통일입니까?”
“통일? 난 그런 거 원하지 않아. 그냥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뿐이야. 각자 다른 체제를 하나로 합칠 순 없잖아. 그건 너무 저항이 강해. 그렇게 희생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같이 손을 잡고 크자는 거지. 관광도 자유롭게 하고. 물론, 몇몇 꼰대들이 그 상황을 불편하게 보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 그러니까 너도 처신 잘해.”
앞으로 북한은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외교 행보를 걷게 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부터 시작해 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도 열리게 될 것이며 핵무기 해결과 그 외 활발한 무역을 통해 북한은 세계적인 시장으로 변하게 되리라.
내가 첫 번째로 키우게 되는 노예들이 힘을 갖는 건 내게도 큰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