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56화 (256/325)

256화. 실험 (3)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집권을 시작했다.

본래의 역사와 달리 노현우가 아닌, 이창석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이제 이 나라의 하늘은 보수 정권이 밝히게 되었다.

“실험 단계요?”

“예, 정확하게 어느 정도까지 개발이 이루어졌는지 알고 싶군요.”

도널드 제이슨 대령은 나와 부시 대통령을 번갈아 쳐다본 뒤 어깨를 들썩였다.

“음…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긴 합니다. 왜냐하면 이걸 실험하려면 다른 국가에 지진을 일으켜야 한다는 건데, 그러다가 그 나라가 잘못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날씨를 조작하는 일은요?”

“그것도 시간이 좀 걸리긴 합니다. 설사 우리가 날씨를 조작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리스크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리스크요?”

“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자연의 법칙을 강제로 거스르는 일인데, 리스크가 당연히 있지요. 그 후폭풍이 뭔지 몰라 저희도 섣불리 실험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결국 문제는 실험 대상이라는 건가.

나는 제이슨 대령에게 몸을 가까이 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대령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간단한 날씨 조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겁니까?”

“날씨 같은 경우에는 미사일 몇 개를 허공에 쏘아 올려야 해요. 그뿐입니까? 수십 개의 위성도 띄워 보내야 하죠.”

“준비는 했겠죠?”

“회장님이 적극 지원해 주신 덕분에 최대한 박차를 가하긴 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서 주머니 사정이 괜찮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세계의 부를 관장하고 있는 내가 고작 몇 조원이 들어갔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은가.

나는 이 무기 개발을 위해 조 단위의 돈을 서슴없이 써댔다. 물론, 내 돈만 들어간 건 아니다. 천조 원 가까이 되는 돈을 국방비에 쓰고 있는 미국의 돈을 끌어다 썼다. 남의 돈 쓰고 생색낸다는 게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비나 눈이 내리게 할 수 있는 거겠죠?”

“좀만 잘 조작하면 거대 허리케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랬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은 국가 외에도 다른 곳에서 더 큰 허리케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거든요. 나비효과가 바로 이겁니다.”

날씨로 한 국가를 망가뜨리기는 편하지만,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올 수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지진은요?”

“지진은… 좀 더 세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불의 고리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멕시코, 일본, 미국, 아르헨티나 순으로 전 세계가 무너질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인류의 종말이 핵폭탄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일어난다는 거예요.”

엄살을 피우고 있지만, 내게는 돈을 더 내놓으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얼마가 더 필요하십니까? 최대한 지원해 드리죠.”

원하는 바를 얻었는지 도널드 제이슨은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제가 따로 청구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게 좋은 소식 하나를 알려준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랬었죠. 그렇지 않아도 연구를 위해 실험 대상이 필요하지 않았던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 실험 대상을 내어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대령이라는 계급 표를 달고 있지만, 과학자는 역시 과학자인가보다. 그는 흥분으로 가득 찬 눈빛을 띠며 내게 물었다.

“그게 도대체 어디입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일본입니다.”

일본이라는 말에 제이슨 대령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이라… 지진도 많이 나는 곳이라 의심을 피하기에는 아주 좋습니다만…….”

“뭐 다른 의견이라도 있습니까?”

“사실은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을 줄 알았거든요. 이제까지 큰 지진 한 번 없이 잘 살아온 국가가 아닙니까? 한국에 우리 무기가 통한다는 건 세계 어디라도 이 무기를 쓸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래서, 한국을 실험 무대로 삼고 싶다?”

“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이 양반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그냥 눈치가 없는 건가.

“한국은 안 됩니다. 거기에는 손끝 하나 댈 생각하지 마세요. 만일 객기를 부려 나 몰래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제가 잠시 말실수를 했군요. 일본으로 하겠습니다.”

받아들이는 게 참 빠른 남자다.

그는 나를 진정시키며 은근하게 물었다.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조만간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갈등을 먼저 심화시킨 다음, 연락을 드리죠.”

“하하, 감사합니다. 어젯밤 꿈이 좋았던 게 아무래도 이거 때문인 것 같군요.”

코 긴 놈이 꿈 타령하기는.

그래도 약속을 받아냈으면 된 거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먼저 한국 정부에 불씨를 던져주고 그것을 폭탄으로 탈바꿈시켜 일본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놈들이 먼저 발끈하면 게임이 끝나는 것이고,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한다면 그것도 가만히 놔둘 생각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저놈들이 나를 도와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 * *

“여기 오시는 건 처음이죠?”

“예,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감상을 하는 건 처음이군요.”

내가 다음으로 발걸음을 돌린 곳은 베리칩 연구소였다.

이곳에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릴 베리칩이 탄생하게 된다.

“자, 여기가 바로 우리가 곧 상용화시킬 베리칩의 시스템을 잡아줄 본체입니다.”

수백 대의 슈퍼컴퓨터로 만들어진 이곳은 전 인류의 정보가 들어가게 될 것이며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저희들의 걸작입니다. 시스템 명칭은 ‘Beast(짐승)’로 현대 의학을 책임지게 될 것이며 나아가 국가의 치안까지 담당하게 됩니다.”

지금은 프로토타입에 불과하지만, 인공지능의 기술력이 더욱 발달하게 되면 그땐 인공지능 컴퓨터 하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무문 박사님.”

“하하, 아닙니다. 계속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또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요. 거기다가 아낌없이 제 것을 나눠주는 회장님에게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당장 테스트가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생체 실험도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어요.”

“수백 수천만의 목숨을 가지고 벌이는 테스트인데도?”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정무문 박사의 눈빛이 반짝였다.

“수백 수천만이면 바랄 게 더 없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지가…….”

“가능합니다, 박사님. 왜냐하면 제 손에는 그 어떤 실험자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북한입니다, 박사님. 나는 북한을 베리칩의 실험 대상으로 삼을 거예요. 생각해 보십시오. 수백만 명의 인민들을 조종할 수 있다는 힘이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무문 박사는 예상외의 답을 들었다는 듯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그래서 박사님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그 많은 인파를 데리고 실험할 수 있는 약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서둘러 약을 제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 * *

“빨리빨리들 옮겨!”

김정일이 죽고난지 몇 달이 흘렀다.

해가 바뀌었으니, 김정은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추슬렀을 터.

그는 한 번도 내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일을 벌이지 않았다.

나는 조직원들을 시켜 전세기로 대량 들어온 베리칩들을 비행기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총 몇 개나 들여오신 겁니까?”

“일단은 100만 개 정도?”

김정은은 여전히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은 나를 향한 지독한 원한이 가득 차 있다는 걸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이놈은 절대 내가 제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 손으로 아비를 죽인 놈이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이놈은 그저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바로 내 그늘에서.

하지만 백 년은 이르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낼 테고.

“이, 이게 다 뭡니까?”

“베리칩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본래 이곳 연구소에 있는 컴퓨터들을 전부 바꾼 것입니다.”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는 김정은에게 말했다.

“위원장님께서도 슬슬 움직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걸…….”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일부로 모른 척을 하는 건가.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베리칩을 삽입해야지요. 총동원령을 내리세요. 먼저 통제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는 군인들에게 던져주고 그다음이 일반 시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대답을 하는 김정은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 아비가 느꼈을 모멸감과 무력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테니 그러는 것이리라.

“뭐 하세요? 얼른 부르라니까요?”

“아, 예.”

나는 자리에 앉아 길게 시가를 빨아들였다. 어차피 김정은도 남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아닌가? 조만간 그는 다시 집무실 안으로 돌아올 것이다.

내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을 고른 이유가 있다.

일단 이들은 정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른다. 만약 정부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신에 대한 모독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게 되니까.

실제로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북한이 공포 정치를 하기 위해 제 국민들을 마음껏 죽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북한 시민들은 국가의 부름에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완전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김씨 가문의 특징이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의 호출에 즉각 응하여 소집될 것이고 이 쌀알만큼의 크기로 만들어진 베리칩이 그들 몸에 들어가 내 통제를 받게 될 것이다.

여러 번의 생체 실험을 해보았지만, 지금처럼 대량으로 뿌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를 따라 북한으로 넘어온 기술진도 흥분감에 가득 차 있다. 이들에게는 아주 환상적인 일이니까.

“장 박사님, 여기 계시는 김정은 위원장님께 잘 설명을 해주십시오.”

“아, 평양에 있는 군인들과 민간인을 합해서 총 100만 명. 이들에게 베리칩을 삽입해 먼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겁니다. 그다음은 행동을 통제할 것이고, 나아가 베리칩을 조작해 폭발하는지도 실험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베리칩을 강제로 빼내려 할 경우에는 자동으로 폭발하게 할 것이고요.”

베리칩을 조작해 폭발하게 한다는 말에 김정은의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내 말에 거역하는 놈이 나오면 언제든지 칩을 폭발시켜 그 자리에서 죽게 만들겠다는 내 계획을 간파한 것이리라.

“위원장님. 명심하십시오. 이건 북한 주민 모두가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원장님을 비롯해 조선노동당을 이끌고 있는 간부들까지 전부 베리칩을 삽입해야 합니다. 아! 물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실험을 해보려고 당신들을 막 쓰려는 게 아니니까.”

김정은도 예외는 없다.

이놈도 내게 베리칩을 받고 명령을 거부하면 바로 즉각 처형시킬 것이다. 그리고 300인 회의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각 베리칩에 계급을 넣어 상위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혜택을 줄 예정이다. 그리고 하위 계급에 있는 베리칩 주인들은 상위 계급을 섬기고 그들의 명령을 듣도록 조치도 해놓을 것이다.

완벽한 계급 피라미드와 완벽한 설계. 그리고 완벽한 통제까지.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신세계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 세계에 다가가는 위대한 첫걸음이 지금 이곳 북한에서 시작되려 한다.

이미 평양에는 베리칩을 삽입하기 위한 인원들이 파악되어 있는 상태이며 정각이 되면 투여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백만 개의 베리칩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삽입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백만 개가 전부 채워지면 이제 저 대형 스크린에서 각 사람들의 몸에 들어 있는 베리칩이 반응하게 될 터. 얼른 그 역사적인 순간을 이 눈에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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