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실험 (2)
“할 만해?”
“그럭저럭.”
“그런데 어디 나가려고 했던 거냐?”
정식이는 날 슬쩍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눈치 하나는 여전히 빠르네. 어떤 새끼들 조지러 가려고 했지.”
“누구를?”
“누구겠어. 우리 조직을 건드린 놈이지. 거기다가 골든 연합을 배신하고 다른 조직에 힘을 실어준 정치인 놈들도 조져야 돼.”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맹수가 따로 없다.
“조사를 많이 한 모양이네.”
“그렇지. 정리를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하니깐.”
맞는 말이다.
정리를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처음부터 설렁설렁 일 처리를 해버리면 또 다른 배신자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먹히니까.
“그래서, 지금 가려고?”
“그러려고 했는데, 네가 왔잖아. 내일로 미루던가 해야지.”
“괜찮아. 하고 싶은 거, 바로 해. 이제 일본은 네 거야.”
네 거라는 말에 정식이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 말은 앞으로도 쭉…….”
“그래, 너만큼 잘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넌… 날 배신하지 않겠지.”
순간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정식이도 설마 황규혁이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황규혁 형님 얘기를 들었을 때, 동욱이. 그 새끼가 생각나더라.”
이진용에게 붙어 나와 정식이를 배신한, 아니, 배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를 속인 놈.
그놈이 내게 남기고 간 흉터는 아직도 그날이 되면 시리게 아파온다.
“그걸 거울삼아서 넌 그러지 않으면 돼. 내 스타일 알지? 먼저 배신하지만 않으면 나도 절대 배신 안 해.”
“잘 알지. 그리고 능력 없는 놈은 쓰지도 않는다는 거.”
“역시, 그것도 잘 아네. 하지만 넌 걱정하지 마. 네가 능력 하나는 출중하다는 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회귀하기 전에는 검사와 범죄자의 눈 맞춤이 지금은 두 명의 친구가 교환하는 우정이 되었다. 정식이는 즐겨 쓰는 칼들이 들어 있는 벨트를 착용한 뒤 내게 물었다.
“같이 갈 거야?”
“좋지.”
이번 기회에 정식이가 일본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잘 봐둘 생각이다.
말은 저렇게 했어도 능력이 없다는 게 판단되면 언제라도 쳐내야 하지 않겠는가?
녀석에게는 친구라는 말을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게는 이제 친구도, 가족도, 형제도 없다.
오직 나 혼자다.
* * *
“어서 오십시오, 쿠미쵸!!”
밖으로 들어서는 정식이의 표정이 일순 달라졌다.
나와 있을 때는 항상 그랬듯 가벼운 표정을 짓더니, 조직원들 앞에서는 카리스마를 한껏 뿜어내며 천천히 길을 걸었다.
“준비는 다 됐나?”
“예, 쿠미쵸.”
“그럼, 모두 출발 준비해. 오늘 한꺼번에 쓸어버린다.”
“예!”
일본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적잖게 노력을 한 것 같다.
나는 흥미롭게 정식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오사카에 있는 관광 구역이었다.
관광객들도 많고 일반 시민들도 많은 곳이라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식이는 아주 당당하게 차에서 내려 거리 한복판을 걸었다.
그 뒤를 조직원들이 줄줄이 따르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알아서 가게 문을 닫고 다른 길로 피해 버렸다.
뭐랄까.
대한민국 쌍팔년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과연 어디를 치려는 것일까.
“쿠미쵸, 이쪽입니다.”
조직원들이 안내하는 곳은 오사카 시내 지하였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예상했던 대로 매춘과 마약이 판을 쳤다.
“누, 누구… 컥-!”
정식이는 입구를 막고 있는 두 명의 남자를 칼로 찔러 순식간에 제압해 버린 뒤, 손을 털었다. 아무래도 버릇처럼 직접 나서려는 게 분명하다.
“다 죽여도 좋아. 손님이건 직원이건 상관하지 말고 전부 시체로 만들어.”
“예, 쿠미쵸!”
깔끔한 명령이다.
반대파 조직원들을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일반 시민을 죽이는 일은 사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황규혁 형님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밑바닥부터 잘 다져놓으셨더라고. 지금 일본은 완전 개판이야. 야쿠자들의 나라라는 말이 딱 맞아. 일반 시민이 야쿠자 손에 죽어도 정부에서는 신경도 안 써. 특히 골든 연합에서 일을 벌였다고 하면 아예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지도 않아.”
황규혁은 수많은 돈을 일본 정부에 뿌리고 그곳에 사람들을 깔아두어 정부를 쥐락펴락했다. 또한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일에도 깊숙이 관련되어 정치권에서는 황규혁만큼 큰손이 없었다. 물론, 황규혁이 죽고 나서부터 삐걱거리는 일이 많긴 했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
지금 정식이가 하고 있는 건 마지막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크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안에서 비명 소리가 한창 들릴 때쯤, 정식이와 나는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정식이가 직접 나서기도 전에 이미 상대편 조직원들이 전부 비명횡사한 상태. 지금은 증인이라고 볼 수 있는 이곳 직원들과 손님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여긴 이 정도면 된 거 같네.”
정식이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돌렸다.
“다른 곳으로 가자. 우리한테 돈 받아 처먹고 딴짓하는 놈들 잡으러.”
이제 정치인들을 박살 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려는 것이다.
* * *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이놈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장기 집권을 하게 되는 일본 최고 권력자다. 하지만 황규혁이 일본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놈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황규혁의 협박으로 인해 고이즈미도 강제로 골든 연합에 가입했다. 아마 황규혁의 사망 소식을 누구보다도 좋아했을 터. 그러나 황규혁보다 더 큰 존재가 눈앞에 와 있으니, 식은땀이 절로 흐를 것이다.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군요.”
“아, 예. 그렇군요.”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내가 갑자기 나타난 연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일본에 입국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을 터.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말도 없이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약도 없이 찾아와 미안합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라 발걸음을 하게 됐습니다.”
“예, 무슨 일이신지…….”
“차 한 잔 주지 않는 각박함이라… 제가 너무 불편해서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드리겠습니다.”
흠칫거리는 고이즈미에게 나는 손을 들어 자리에 앉혔다.
“이거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총리님께서는 진정으로 골든 연합에 충성을 다하고 계십니까?”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이신지? 이미 일본의 많은 정치인들이 골든 연합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총리님께서 그따위로 말씀하시면 기강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렇다면 계속 그 자리를 지켜 드릴 수가 없겠군요.”
고이즈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골든 연합을 향한 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골든 연합에 들어와 놓고도 충심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변절한 놈들이 있던데.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바로 그놈들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예?”
나는 준비해 온 서류를 고이즈미 앞에 던져두었다.
“황규혁이 죽었다는 건 들어 알고 있겠지요. 그 사람은 감히 제 명령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제거당했습니다. 그런데 황규혁이 죽자 바짝 엎드려 있던 놈들이 고개를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모두 처리해 버릴 생각입니다.”
고이즈미는 조심스럽게 서류를 들어 안에 쓰여 있는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중에는 여당인 자유민주당 의원들도 다수 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이 많은 사람들을 제거하신다고요?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겁니다.”
난 피식 웃으며 고이즈미에게 말했다.
“이보세요, 총리님. 내가 그 자리를 당신한테 던져준 건, 이런 일을 잘 처리하라고 그런 거야. 그런데 정치적으로 문제가 생겨?”
내가 공격적으로 나오자 고이즈미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그만 말실수를…….”
그래도 제 잘못을 반성하는 건 빠르다. 가식을 떠는 것이 이놈들 종특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이 벌레 같은 놈들이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걸 거울삼아 모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배웠으면 하는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그리고 언론을 문제 삼았던가?”
“아, 예. 그, 그게 아무래도 많은 정치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지면 국민들이…….”
“당신은 멍청한 거야, 아니면 일부러 한심한 척을 하는 거야? 일본 사람들이야말로 정치에 가장 관심 없는 놈들이잖아. 그런데 그것들이 무슨 관심을 드러낸다고 그래?”
일본인들의 특징이 바로 그렇다.
이놈들은 당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죽하면 일본 정치 전문가들이 한국인들의 정치 열기를 부러워할 정도겠는가.
우리나라는 국민이 모두 들고 일어나 정권을 뒤엎어놓지만, 일본은 정치권이 뭔 짓을 해도 크게 상관을 하지 않는다.
“정 문제가 되면 내가 나서지. 일본 언론도 내가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건, 내가 단순히 사건 묻히기만 하지 않는다는 거야. 나를 귀찮게 한 책임을 물어 총리 자리도 단숨에 바꿔 버릴 수도 있어. 명심해.”
“…예, 회장님.”
나는 목에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위안부 문제 해결이랑 독도 문제 해결로 한국 정부에서 요청이 있을 거야. 그때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알지? 한국 정부의 요청은 곧 내 요청이라고 생각해. 만약 딴소리 나오면 내가 일본에 어떤 위해를 가할지는 상상에 맡기지.”
협력을 요청하고자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일방적인 명령을 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항의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쭉 저 자세로 임했다. 하지만 독일을 보라. 그들은 아직도 히틀러 사건에 대해 전 세계에 사과하며 보상을 해주고 있다.
왜 그런가?
이 세계의 부를 유태인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태인들이 별 볼 일 없었다면 독일도 히틀러 사건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태인들의 힘이 강성해지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법칙이다.
약자는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지만, 강자는 절대 약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짓밟으려 든다.
일본도 똑같다.
우리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냥 무시를 하는 것일 뿐.
그러나 세계 판도가 달라졌다.
전 세계의 부를 현재 골든 연합이 장악하고 있으며 나는 그 연합의 수장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일본은 내 나라 내 국민에게 고개를 반드시 숙여야 한다.
“우익들이 극성을 부린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놈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게 그것도 총리가 잘 처리해 주고.”
“예. 물론입니다, 회장님.”
고이즈미의 얼굴을 보니, 수치심으로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힘이 없으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를 던져준 것이었다.
만약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익들이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치게 될 터. 나는 그들이 모여 있는 핵심 지역을 분석해서 미국이 개발 중이라는 무기를 실험해 볼 작정이다.
일본을 완전히 침몰시킬 생각은 없지만, 이제까지 그들이 지은 죗값을 하늘이 물으려 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