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실험 (1)
“실험 대상을 구하셨다고요?”
“예, 그렇지 않아도 베리칩 인체 실험이 난항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워낙 지원자가 적어서요. 하지만 그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더라도 사람 구할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당장 하루 먹고살 게 필요한 노숙자들을 데려와도 좋고 납치를 해서 데려와도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베리칩이 과연 사람의 행동을 컨트롤하고 원하면 목숨까지 끊을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야 하지 않은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다뤄야 하는 일이니, 지원자를 받는 건 무리가 있다.
“수천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가능할 텐데, 그래도 싫으십니까?”
“수, 수천만 명이요?”
다니엘 로페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껄껄 웃기 시작했다.
“이거, 역시 미스터 김답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저를 또 놀라게 하시다니. 말씀해 주십시오. 그 실험 대상이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북한입니다.”
내 대답에 다니엘 로페즈의 짙은 탄성이 들려왔다.
“그렇군요. 이번에 그쪽 위원장 자리가 바뀐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뭐, 군부도 장악을 다 하셨고 위원장도 미스터 김의 수하인이나 다름이 없으니 북한을 통째로 쓸 수 있겠군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걸요?”
“북한이 남한과 한민족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추후 똑같은 대우를 해줄 거라고…….”
“하하, 똑같은 대우까지는 아니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평화로운 통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그에 대한 희생을 할 것이고, 그 대가를 받게 될 겁니다.”
“그 희생이 바로 베리칩?”
“일부분이죠. 북한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그만한 값을 제가 나중에 치를 거고요.”
북한이 내 나라와 동급으로 취급될 순 없다. 어차피 내가 북한을 통제 중이라고 해도 두 나라가 통일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만들 생각도 없다.
나의 의지는 확고하다.
북한은 우리나라와 한민족이긴 했지만, 지금은 엄연히 다른 나라다. 즉, 미국과 멕시코처럼 경계선을 두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내 보호 아래 지내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을 해준 만큼 내가 그들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김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야 좋지요. 그렇지 않아도 대량 인체 실험이 필요하긴 했습니다. 어떻게 시스템을 접목할지도 말이죠. 또 그에 따른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우리 측에 협력을 하겠다는 곳이 어디입니까?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거기 회장도 우리 사업에 아주 관심이 많더라고요. 흥미로운 거죠. 인간의 행동까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 컴퓨터쟁이로서는 당연히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베리칩 소프트웨어 개발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한다?
빌 게이츠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조금 놀랍다.
불쌍한 애들 돕겠다고 이리저리 기부 활동을 벌이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나는 미국 부자들의 실상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투자로 세계 거부 반열에 올라간 워렌 버핏과 컴퓨터 하나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빌 게이츠.
이 둘의 공통점은 기부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큰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들의 본질을 파헤쳐 보면 절대 박수쳐 줄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이 기부 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100억이란 돈 중에 10억은 기부금으로 들어가지만, 나머지 90억은 비자금 생성에 들어간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직접 재단을 세워 그곳에 천문학적인 돈을 넣어두는데, 그 자금 중 일부분만 기부금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머지는 비자금 창구로 쓰인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들이 열심히 기부를 하는 이유는 철퇴처럼 강한 미국의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뭐, 이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나는 이들의 영리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으니까. 그리고 이들이 재단에 넣어둔 돈들은 골든 연합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연합에 도움이 되는 사람일수록 잘 챙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빌 게이츠에게 따로 감사의 말을 전해주십시오. 그 노고를 잊지 않겠다고요.”
“하하, 오히려 그 사람은 미스터 김에게 감사하다고 할 겁니다. 지루한 삶에 놀거리를 던져주셨으니까요.”
돈은 벌 대로 벌었다고 해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한쪽 분야에 미친 사람일수록 성공은 오히려 더욱 큰 갈증을 주게 마련.
이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거나 섹스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스터 김. 이번에 미 국방부에서 제작 중인 무기가 뭔지 아십니까?”
“무기요?”
“예, 미국이야 워낙 비밀스럽게 만드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아주 획기적인 걸 만들고 있다는군요. 우리 연합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면서 국방부 장관이 정보를 줬습니다.”
미국은 비밀 기지를 세워 그곳에서 많은 무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유명한 51구역이란 곳이 있지 않던가.
나도 처음에는 정말 미국이 외계인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알아봤지만, 아쉽게도 거긴 무기를 만드는 비밀 기지였다. 미국도 외계인의 외자도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어떤 무기인데요?”
“그게 아주 흥미롭습니다. 기상을 조절하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지진을 일으키는 겁니다. 즉, 미국이 원하면 어떤 나라에 엄청난 홍수가 일어나게 할 수도 있고 지진을 일으켜 그 나라를 파괴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거죠.”
기후를 조작하고 지진까지 일으키는 무기?
가히 대단한 무기가 아닌가.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핵폭탄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날씨 조작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거 정말 대단한데요? 근데 그게 가능한 겁니까?”
“저도 이쪽은 문외한이라 솔직히 잘 모릅니다.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문제는 역시 실험 대상이죠. 적절한 국가를 선택해서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만약 이 정보가 밖으로 잘못 유출되면 그 나라에서 강한 항의를 할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제게 적절한 국가를 점지해서 알려달라는 것이군요.”
“예, 국방부 장관도 그런 의도로 제게 그 얘기를 꺼낸 것 같았습니다. 미스터 김의 철저한 통제가 있다면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인류 최고의 발전을 위해 어느 나라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 나라에게는 아주 잔인한 일이 되겠지만,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희생이다. 나는 턱을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날씨 조작이라.
내가 회귀하기 전에 음모론처럼 떠돌던 이야기였다.
미국 국방성에서 일하던 직원이 우연찮게 기밀문서를 보게 되었고, 거기 쓰여 있던 것이 바로 기후를 조작하는 무기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아주 당연하게도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거론되면서 그들이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일어난 지진을 그 무기로 일으켰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프리메이슨은 상류층의 모임이 아니라 일반 사람도 연회비만 내면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는 로터리클럽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사탄을 숭배하는 종교가 굉장히 많다. 그중 일루미나티가 주목을 받은 거긴 한데, 아쉽게도 이들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리고 날씨와 지진을 조작한다?
난 이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류의 과학 기술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 다니엘 로페즈에게 말했다.
“아주 적당한 나라가 생각나긴 합니다만.”
“오, 그렇습니까? 이거, 제가 미스터 김 대신에 국방부 앞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겠군요. 그 나라가 어디입니까?”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일본입니다.”
“일본?”
“예, 원래 지진도 많이 나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큰 지진 몇 번 난다고 해서 의심을 가지지도 않을 겁니다. 설사 그들이 미국 국방부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제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말에 다니엘 로페즈는 조심스러운 어투로 내게 물었다.
“요즘 거긴 어떻습니까? 그… 황 사장이 물러난 후부터 이래저래 어수선하다고 들었는데.”
형제보다 가까웠던 황규혁이 내 손에 죽었다는 건 이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리라. 나도 아직 황규혁만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그만큼 내가 믿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배신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황규혁의 죽음은 쓸모없지가 않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일본으로 떠나려고 준비 중입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국방부에는 제가 말을 잘 전달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측에도 북한에 대한 얘기를 해놓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로페즈와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체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밖에 있는 비서에게 통보했다.
“차 대기시켜. 그리고 바로 일본으로 갈 거야. 전세기도 준비시키고.”
“예, 알겠습니다.”
새로운 무기를 테스트하기 전에, 일본을 한번 방문해 봐야 할 것 같다
황규혁의 빈자리를 최정식이 잘 메꾸고 있는지 확인해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 *
“온다면 온다고 미리 연락을 주지 그랬어.”
“원래는 더 빨리 오려고 했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북한이 그 지랄을 하는 바람에.”
“대충은 들었다. 김정은이가 위원장 하기로 했다며?”
“맞아, 그런데 여긴 좀 어때?”
못 본 사이 전보다 살이 좀 더 빠진 것처럼 보였다.
정식이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말도 마라. 초반에는 하루에 몇 번이나 싸웠는지 몰라. 황규혁 형… 님이 죽고 난 후부터 일본도 크게 흔들렸었지. 조직 내부가 흔들리니까 전체적으로 다 삐걱거리더라고. 그래서 그놈들 처리하느라 시간 좀 걸렸어.”
저건 진짜 약하게 엄살을 피우는 것이다.
내가 일본 사정을 모르고 있었겠는가?
황규혁이 죽었다는 소식에 음지에서 숨어 있던 놈들이 하나둘 나와 일본 거리를 장악하려 했다. 나는 당연히 이 사태를 지켜만 볼 수 없었고, 정식이를 보내 해결에 나섰다.
나는 먼저 황규혁을 따르던 무리들을 제거하고 그다음으로는 나를 따라는 조직원들을 규합해 정식이를 그 위에 세웠다. 내부적으로도 정리를 해야 하고 외부적으로도 싸워야 하니 정식이는 하루에도 네댓 번이 넘게 싸움판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지금에서야 안정을 찾은 것이다.
예전에는 황규혁의 그늘이 커서 정식이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였지만, 워낙 싸움 하나는 타고난 놈이라 지금은 누구도 이 녀석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는…….”
“오랜만이지? 불태워 버릴까 하다가 일단은 그냥 놔뒀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일본에서 황규혁이 쓰던 집무실이다.
이곳은 일본에 올 때마다 내가 방문했던 곳이라 잊을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저 의자를 볼 때면 황규혁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와 술잔을 건넬 것만 같았다.
나는 널찍한 집무실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래도 꽤 시간이 지났건만, 여기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정식이가 말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상태였다.
“잠깐 혼자 있어도 될까?”
“그래, 천천히 보고 내려와.”
정식이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황규혁이 즐겨 앉던 자리에 앉아 시가에 불을 붙인 뒤 술잔을 들었다. 황규혁이 예전에 내게 선물해 주었던 술잔이다.
과연 그는 저 위에서 권용일과 만났을까?
만일 만났다면 권용일은 누구를 질책할까.
형제를 배신한 황규혁일까, 아니면 잔인하게 형제를 살해한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