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격차 (3)
아비를 바람구멍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모자라 육편으로 다져놓은 김정은은 무릎을 꿇은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김정일의 후계자를 누구로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에 대해 중국 측 간부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김정남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그는 예전부터 후계 자리에 관심이 없어서 제외가 되었고 결국 김정은으로 뜻이 모아진 것이었다.
“술 한 잔 줄까?”
내 물음에 김정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건네는 술잔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난 그가 감히 내 앞에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가 앉으라고 했어?”
“……?”
주변 눈치를 빠르게 살핀 김정은은 조용히 무릎을 굽혀 공손하게 손을 뻗었다.
이제야 그는 내 앞에서 술을 마실 권리를 얻었다.
난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가 왜 저런 꼴을 당했는지 알겠지? 다른 사람 손에 죽는 것도 아니고 제 아들 손에 죽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너는 그런 최후를 피해야 하지 않겠어? 설마, 부전자전이라고 너까지 나한테 엿 먹이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나도 네가 그런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널 이 나라의 후계자로 뽑은 거야. 이해했지?”
“예.”
김정은의 대답에 힘이 없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저대로 미쳐 버리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저놈이 미치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앞으로 북한의 모든 건 내가 통제하게 될 테니까.
“뭐, 네 나이가 있기도 해서 당장 차기 위원장 자리를 주지 않으려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겠다. 내가 조만간 언론을 통해서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알릴 거야. 그땐 질질 짜면서 장례식에 참가하는 네 모습을 보일 거고.”
나는 이미 앞으로의 계획을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내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내가 회귀 전에 봤었던 그 장면 그대로 똑같이 만들 생각이다.
“언론에서는 네가 차기 위원장이 되어 북한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발표할 거고, 너는 확실한 권력 구도를 위해 무자비하게 친인척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을 처형시켰다고 보도될 거야.”
처형될 친인척이라는 말에 김정은의 얼굴빛이 가라앉았다.
친인척이라 하면 김정일의 편을 든 자들을 뜻하는 것이다. 즉, 김정은과는 한 핏줄이라는 건데, 그가 이들을 직접 처형시켜야 한다.
언론은 그것을 김정은의 권력 욕망이라며 비판할 것이고, 가족조차도 서슴없이 죽이는 김정은의 모습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김정은의 이미지.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군.
그렇게 세계를 공포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김정은은 아주 좋은 인형이 될 것이다. 이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그런 인형 말이다.
“네 아버지에게는 나름 권한을 주었지만, 보다시피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내가 간섭을 하게 될 거야. 억울해도 소용없어. 죽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여자들 끼고 술 퍼시면서 놀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할 거야. 이 땅에서 당장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내 매서운 눈빛에 김정은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북한 땅에서 김정은을 대신해 허수아비 왕 노릇을 할 사람은 넘치고 넘친다.
내가 원하는 김정은의 이미지가 있는 반면, 그가 앞으로 해줬으면 하는 행동이 있다.
그건 바로 타락에 빠진 왕을 행세하는 것이다.
“여자가 좋으면 얼마든지 줄게. 음식도 술도 부족한 것이 없게 채워주지. 그야말로 여기는 너만을 위한 지상낙원이 되는 거야. 하지만 거기까지야. 아무것도 해서는 안 돼.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면 넌 누구도 누려보지 못하는 황제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거다. 알겠지?”
“…예.”
김정은의 눈동자만 봐도 난 알 수 있다.
이놈은 야망이 있다.
어떻게든 이 나라를 다스려 보겠다는 야망.
중국의 그림자. 그리고 나의 그림자에게서 벗어나 보겠다는 야망.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이놈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터.
마치 조조와 헌제의 관계랄까?
삼국지의 조조는 한 황실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황제인 헌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그런 뒤 그에게 경고했다. 절대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고.
그래서 헌제는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조조에게 명령만 받으며 평생을 살았다.
김정은도 똑같다.
왕 같은 삶을 준다고 약속했으니, 그건 문제없이 줄 것이다. 하지만 왕의 권한을 달라고 한다면 나는 놈의 목을 그 자리에서 잘라 버릴 것이다.
놈에게 허락된 것은 하나.
풍족한 왕의 삶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하나를 받으면 둘을 원하게 마련.
과연 김정은이 어떤 방식으로 발버둥을 칠지 솔직히 기대가 되긴 한다. 아니면 자포자기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고.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건 김정은에게 달렸다.
“조만간 어떻게 하라고 하달이 될 거야. 넌 앵무새처럼 말하는 대로만 말하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것만 잘하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난 할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정은은 무릎을 꿇은 채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것이 나와 자신의 격차라는 것을 오늘 김정은이 뼈저리게 깨달았기를 바란다.
* * *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 사망!]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부터 나는 세계 언론사들을 이용해 그가 공식 석상에 몇 달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기사를 뿌렸다. 또한 여러 사망설들을 퍼뜨리기까지 했는데, 이번 연평 해전도 김정일의 사망을 숨기기 위한 군부의 독자적 행동이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렇게 2주일가량이 흐를 때쯤.
나는 기습적으로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세계 각국에 알렸다.
[건재하던 김정일, 왜 사망하였는가?]
[북한 쿠데타?]
[김정일은 오래전부터 문란한 성생활로 병마에 시달렸다?]
가지각색의 기사들이 줄을 이어 발표되었다.
처음에는 지라시에 불과하다며 모두 지켜보자는 입장을 드러냈으나, 미국 정보국과 대한민국 정보국이 차례로 인정을 하면서 코스피 주가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결정타로 북한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면서 김정일의 사망은 사실로 인정됐다.
“위대하신 수령님께서는 오직 인민을 위해 일을 하시다 그만 과로로 쓰러지셨고, 그 영웅적인 자세로 인하여 결국 눈을 감으셨다.”
북한 아나운서가 눈물을 질질 흘리며 김정일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민을 위해 과로를 하다 죽은 것이 사망의 원인.
사실은 김정은의 손에 잔인하게 찔려 죽었다는 건 아직 미국 대통령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도 듣는 귀가 있으니, 조만간 김정일의 진짜 사망 원인을 알게 될 것이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도 제 아들 손에 죽고 마는군요.”
리오차오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김일성에 이어?
“아차, 모르셨습니까? 김일성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갑작스레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원인이 아마 심근경색이었지요?”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김일성은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레 사망해 버렸다. 원인은 심근경색이었으나 그의 죽음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당시 김일성의 몸이 좀 좋지 않았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알아보니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였던 거였습니다. 그것도 독살을 시켜서 말이죠. 그래 놓고 겉으로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 겁니다.”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김정일이 죽인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긴 했었다.
김일성이 머물던 특각에 있던 의료진들을 전부 철수시키고, 굳이 가까운 병원이 아닌 평양에 데려가 치료하려 했던 것과 악천후인데도 헬기를 띄워 수송하려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무섭게 특각을 철거해 버렸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만 저지른 건데, 당연히 김일성 살해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조사에 나선 것이고 결과는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줄곧 김일성의 권력을 탐한 김정일이 제 아비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었다.
어쩌면 김씨 일가의 저주를 시작한 것은 김정일이었을지도.
“김일성이 김정일 손에 죽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제 업보를 고스란히 받은 셈이군요.”
“예, 아마 김정일도 그런 식으로 자신이 최후를 맞이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제 아들의 손에 칼로 수십 번 찔려 죽다니…….”
내 처사가 너무 잔인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누굴 건드리기 전에 상대를 잘 봐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적을 알고 나의 신세를 알아야 백전백승이 아닙니까? 주석님께서도 잘 아시시라 믿습니다.”
“하하. 그, 그럼요.”
리오차오는 목이 타는지 자꾸만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김정일이 그런 방식으로 제거될 줄은 아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중국 주석이라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미 중국도 내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지 않던가. 지금이라도 내가 손을 쓴다면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으며, 제2의 쿠데타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즉, 주석 하나를 갈아치우는 것쯤은 이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리오차오는 눈치를 슬쩍 보다 화제를 바꾸었다.
“김정은이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 자리에 5살짜리 꼬마를 앉혀놔도 문제될 게 전혀 없다.
“어차피 김정은이 할 일은 없습니다. 그냥 얼굴 마담 역할이나 하는 거죠. 그 자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나머지는 저와 주석님이 잘 상의하면 될 겁니다.”
나와 주석이 서로 상의한다는 말에 리오차오는 안색이 밝아졌다.
중국이 원하는 건 북한을 완전히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던가?
물론, 간접적이긴 하지만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적잖은 안정감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북한을 어떻게 만들 생각이십니까?”
“글쎄요, 솔직히 고민이 됩니다. 이대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자금을 투입해 북한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지, 아니면 이대로 굶주리도록 놔둘지. 김정은이 괜히 제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건 좀… 싫군요.”
사람 심보가 이상하긴 하다.
재롱은 내가 피우고 칭찬은 모두 김정은이 받는다는 게 왠지 싫었다. 하지만 계속 북한을 저 상태로 놔둘 순 없지 않은가. 뭔가는 해야 한다.
쓸모 있는 뭔가를 말이다.
그게 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급작스럽게 김정일이 반기를 들고 제거를 당하는 바람에 북한을 향한 계획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리오차오가 내게 아이디어 하나를 던져주었다.
“저번에 말씀하신 베리칩 말입니다.”
“아, 예.”
“테스트가 다 끝난 겁니까?”
“아니요, 한창 진행 중입니다.”
리오차오는 음흉하게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그 실험 대상을 북한으로 삼는 게 어떻습니까? 북한 인민은 어차피 김씨 일가의 노예가 아닙니까. 아주 합당한 실험체가 될 거라 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거야말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인체 실험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베리칩을 통제할 수 있는지 거대한 무대가 필요했는데, 북한이 딱 그 무대에 어울리는 시설을 갖췄다.
“이거, 주석님의 아이디어에 그저 감탄만 합니다.”
오랜만에 영특한 소리를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리오차오는 그게 또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북한을 상대로 하는 대대적인 베리칩 실험이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아주 재밌는 실험이 될 거 같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큰 희생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