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역린 (2)
“미스터 김, 얘기는 들었습니다. 북한이 갑자기 그런 짓을 벌이다니. 혹시 그쪽 지도자와 따로 얘기는 나눴던 일입니까?”
다니엘 로페즈는 이번 사태가 김정일과 내가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쉽지만 그건 아닙니다.”
“그럼, 김정일이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한국을 공격했다고요? 미스터 김이 뻔히 거기 있는 걸 알면서도?”
“예.”
내 대답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미스터 김, 미국 쪽은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손을 써놓겠습니다. 항공모함을 파견하든 미사일을 쏘든 당장이라도 북한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시켜놓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지겠습니다.”
“예, 그런데 그쪽에서 도대체 왜 공격을 한 겁니까?”
“글쎄요. 아직 저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뻔하지 않습니까. 절 건드린 대가가 뭔지 알게 해줘야겠죠.”
내 대답에 다니엘 로페즈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거, 조만간 북한의 지도자가 바뀌었다는 뉴스가 나오겠습니다?”
“하하,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무쪼록 미국 쪽은 잘 부탁드립니다.”
미국 쪽은 얼추 해결이 됐다. 나는 바로 다음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내 물음에 라우팽이 대답했다.
“중국 측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북한은 우발적인 사고라고 우기는 중입니다. 하지만 계획된 공격이라는 게 중국의 판단입니다.”
우발적 공격이라고?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건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북한이 왜 공격한 겁니까?”
“아무래도 세계정세가 전부 미국과 테러리스트에 쏠려 있으니, 관심 좀 가져다 달라는 게 아닐까요? 요즘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북한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애가 칭얼대듯이, 북한도 그렇다는 건가.
하지만 시기도 잘못 골랐고 상대도 잘못 골랐다.
지금과 같이 테러리스트에 민감한 때에 북한이 무력도발을 했다는 건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일단 UN 안보리 측에도 손을 써두었습니다. 미국이 먼저 신호를 보내면 그쪽에서 강력한 경제제재를 시작하게 될 겁니다. 중국에도 그에 동조하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조만간 제가 중국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예. 아무래도 직접 오셔서 해결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황규혁이 죽고 나서 일본은 정식이에게 맡겼다.
어차피 황규혁을 따르던 사람들 중 절반은 내 수족들이 아니던가?
나머지 절반 중 몇몇은 나를 따르기로 했고 그 외 조직원들은 황규혁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내가 정식이를 보낸 것이었다.
알아서, 마음대로 그쪽을 정리하라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일본이 안정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가보려 했더니, 북한이 말썽을 피웠다.
그놈들을 어떻게 요리해 줘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 * *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의 무력도발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시키겠다며 각국에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항상 북한을 감싸고돌았던 중국 정부도 이번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북한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정부도 지금 같은 시기에 북한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며 중국과 뜻을 같이하겠다고 뜻을 나타냈습니다.”
북한의 최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등을 돌렸다. 북한이 한번 칭얼대려다가 잘못 걸린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머무는 나라에 그와 같은 짓을 벌이다니.
만약 내 명령에 의해 움직인 거라면 난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김정일은 내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움직여 한국을 공격했다.
그냥 넘어가 주기에는 장난이 심하지 않은가?
“오셨습니까, 회장님.”
라우팽을 비롯해 중국 고위급 간부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이들의 인사를 대충 받으며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일단 주요 인사들을 전부 불러 모았습니다.”
“리오차오 주석은?”
“다른 일정 때문에 좀 늦을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이쪽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죠.”
중국 정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와 함께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두 알고는 계시겠지만, 북한이 지금 간을 보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폭주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 파견되어 있는 중국 측 간부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까?”
“그게… 그쪽에서 김정일을 만나려고 해도 만나주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는 명령까지 떨어져 지금 분위기가 많이 뒤숭숭합니다.”
핵무기 개발이라.
이것까지는 건드릴 생각이 없다.
어차피 북한은 나의 발밑에 둘 생각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내가 그 무기를 쓸 수 있다는 뜻과 동일하다. 그래서 기술진까지 불러 북한에 붙여준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일이 이것을 개인의 권력을 위해서만 쓰려고 한다면 문제가 된다.
“북한의 행동이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저희와 꼭 상의를 한 다음에 일을 벌였는데, 요즘은 일절 교류가 없습니다. 아예 혼자서 독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아요.”
간부들의 하소연에 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렇게 따지면 이놈들도 웃기는 새끼들이다.
왜 북한이 일일이 중국에 보고를 하며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당연히 북한이 자신들의 것인 줄로만 안다.
“북한이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진 않겠죠?”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비를 하기 위해 병력을 최전방으로 몰아넣긴 했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다 쇼라는 거. 아무래도 이놈들 뭔가 요구 사항이 있어서 무력으로 시위하는 거 같습니다.”
원하는 게 있어서 무력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라.
나도 저 말에 동의한다.
그놈들은 필요한 게 생기면 땡깡을 피워서 가져가지 않던가. 이번에도 그런 수작을 부리는 것이리라.
“거기 필요한 게 뭡니까? 쌀? 아님 기름?”
“둘 다 아니겠습니까? 경제제재가 계속되고 있으니 달러도 부족하고 쌀도 부족할 겁니다. 또 흉년까지 겹쳐서 이래저래 필요한 게 많겠죠.”
화진 그룹을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조금씩 북한으로 들어가는 추세다.
물론, 급진적인 개발을 이루기란 쉽지가 않아 천천히 진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가리다.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군사적인 움직임을 취할 수 있긴 한데, 문제는 북한이 위기감을 느끼고 다 같이 죽자며 자폭이라도 하는 날에는…….”
천하의 중국이 북한을 무서워한다.
아니, 누구라도 무서울 수밖에 없다.
중국은 한창 개발 중에 있지 않은가. 이들은 예전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중국으로 태어나려 한다. 그런 이때에 미친개처럼 날뛰는 북한을 상대한다?
잃을 게 많은 나라일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그에 반해 북한은 잃을 게 없다.
그러니까 미친개처럼 날뛸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에다 비대칭 무기들을 뿌려 버린다면 공들여 키워왔던 베이징과 상하이가 파괴되어 중국은 예전의 영광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현대전은 위험하다. 엄청난 피해를 동반하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군요.”
나는 고민을 마치고 간부들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북한의 지도자를 바꿔야겠습니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자주 찾아와 주시지 그랬습니까?”
리오차오는 예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얼굴이 살아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 영락없는 중국 주석이다.
“바쁘시던 일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까?”
“아, 예. 최대한 빨리 오려고 했는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하하.”
“제가 북한에게 공격을 받은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뭔지 매우 궁금하군요.”
웃고 있던 리오차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내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찬바람이 피부에 닿은 것이다.
그는 갑자기 자세를 바꾸며 내게 말했다.
“회장님,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의도요? 나를 바람맞히고 기다리게 만들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감탄하고 싶었던 겁니까? 그게 바로 그 의도입니까?”
“회, 회장님. 왜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리오차오의 마음을 난 대충 이해한다.
이 사람은 그동안 오롯이 숙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인고의 시간이 끝나 중국 주석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거기다가 내가 옆에 없으니 제대로 왕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나는 시시각각 리오차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며 그가 뭘 하고 있는지 항상 보고를 받는다. 최근에 그가 개인적인 세력을 만들어 중국 정부를 장악하려 든다는 보고를 받았다. 슬슬 발톱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신이 뭘 하든 솔직히 난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내 그림자를 걷어버리겠다는 생각이라면 거기서 그만두세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군부 쪽에 세력을 만들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장쩌민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던데, 그러다 그 양반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옆에서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애써 올라간 그 자리에서 내려가고 싶은 겁니까?”
내 노골적인 협박에 리오차오는 얼굴이 붉게 변해갔다.
확 내지르고 싶은 걸 애써 참는 것처럼 보였다.
성질 잘 다스려야 한다.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김정일보다 저놈이 먼저 교체되는 수가 있다.
“아시겠지만, 난 관대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저도 묵고하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면 말리진 않을 겁니다. 대신, 그 대가가 뭔지는 똑똑히 알려드리죠.”
리오차오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다 이윽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절대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회장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역시, 숙일 땐 숙일 줄 아는 사람이다.
“저도 흥분했군요. 미안합니다. 그나저나 북한의 일부터 정리를 해볼까요?”
“아, 예. 그런데 김정일을 갈아치우겠다는 말. 진심이십니까?”
“진심입니다. 그 사람, 너무 멀리 갔어요.”
“그래도 한 번은 만나봐야 할 거 같은데……. 무작정 북한 지도자를 바꿔 버리면 말들이 많을 겁니다.”
“최대한 은밀하게 해야겠죠. 그리고 언론에는 사고사나 병사였다고 발표하면 될 일입니다.”
리오차오는 짧게 신음을 뱉으며 말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김정일도 이런 일을 대비해 경호를 많이 늘렸거든요.”
“그래서,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북한에 나가 있는 중국 요원들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미 매수해 놓은 북한 측 간부들도 꽤 있고요.”
“하하, 그러셨군요. 저희들도 중국에 충성을 다하는 북한 측 간부들이 좀 있긴 합니다. 그들이 서로 손발을 맞춘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습니다.”
그냥 엄살을 피우는 건가?
북한의 지도자를 바꾸는 일이니, 중국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괜히 북한에 반중 감정만 키워놓을 수도 있고 이 틈을 타서 미국이 움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나 북한 내부 여론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럼, 정해졌군요. 저도 북한에 있는 간부들에게 연락을 넣어놓겠습니다. 중국 정부는 나름대로 준비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리오차오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김정일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그 사람을 만나봐야 할 거 같습니다. 죽이기 전에 왜 그런 미친 짓을 벌였는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은 하겠지만, 그래도 만나는 봐야겠군요. 그 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김정일이 나를 설득할 만한 명분이 있다면 나는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가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