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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7화 (247/325)

247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

황규혁의 비통한 심정이 그대로 얼굴에 남아 있다.

난 무릎을 꿇은 채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황규혁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한때 우리는 수많은 꿈을 꾸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우리의 영토가 늘어나고 권력이 생기면서 우린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맞닿았다.

그래도 황규혁 형님만큼은 나를 끝까지 지지할 거라 믿었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던 것일까.

권력 앞에서는 혈육도 보이지 않는 법이거늘.

“태산아.”

“그만, 위로를 하려는 거라면 됐어.”

정식이는 내게 다가오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멈췄다.

난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물었다.

“황규혁 형님을 따르는 놈들은?”

“지금 조직원들이 빌딩 안에서 서로 싸우는 중입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우리도 내려가지.”

“예, 회장님.”

나는 조직원들을 대동한 채 빌딩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긴장감에 고요했던 빌딩 안이 지금은 수많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동료들끼리 서로 찌르고 밟기를 반복하며 혈겁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런 소리를 오래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은 내 손으로 직접 내 형제를 죽인 날이니까.

난 핸드폰을 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나다. 들어와서 정리해.”

“예, 알겠습니다.”

내 신호가 떨이지기 무섭게 내가 한국에서 부리는 조직원들이 삽시간에 빌딩 안을 점령했다. 총을 쓰진 않았지만, 저들이 들고 있는 칼과 도끼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황규혁의 잔당들은 숫자에서부터 밀리고 있었다. 거기다 우리 쪽에서 지원군까지 도착하니 더는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남은 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전부 죽일까요?”

“그래, 전부 없애 버려.”

잔당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그냥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피를 섞은 형제보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명동으로 간다. 운전해.”

“예, 회장님.”

아직 빌딩 안이 다 정리되지 않았지만, 내가 있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가 끝날 것이다.

나는 다음 행선지로 방향을 잡았다.

명동에는 성일환이 있지 않던가.

나는 그가 살고 있는 집으로 출발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차에서 내리니, 이미 성일환 집에는 내 조직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김민재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일환 형님은?”

“무사하십니다.”

정부에서는 단순히 나만 노린 게 아니었다.

황규혁을 이용해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은밀히 제거하려 했고, 성일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저들의 계획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참극을 막을 수가 있었다.

“왔냐?”

성일환은 무거운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것보다… 규혁이는?”

난 잠시 말문을 닫은 채 답을 하지 못했다.

성일환은 마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손으로 끝냈냐?”

“…예.”

“그래도 다른 잡놈 손에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그는 코를 훌쩍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니다, 네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꼴이 났을 텐데 뭐. 물론, 규혁이가 우릴 죽이려 들진 않았겠지만 다른 놈들이 우릴 노렸겠지.”

“저도 황규혁 형님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철저하게 관리하겠습니다.”

성일환은 쓸쓸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고생 많았다, 태산아.”

난 그런 그에게 물었다.

“만약 큰 형님이 살아 계시다면 똑같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을까요?”

“…….”

나는 끝끝내 성일환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 * *

김태산이 붙잡혔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던 김일중 대통령과 그의 일당들.

하지만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에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국정원의 요원들이 죽거나 배신하고 그다음은 장연욱 검사가 붙잡혔다. 이윽고 황규혁의 빌딩까지 완전히 점령을 당하면서 이들은 그제야 실감했다.

폭군을 폐위시키는 작전이 실패했음을.

“김태산이 지금 그의 일당들과 함께 청와대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제 그의 칼끝이 청와대로 향했다.

여당 대표는 목청을 높이며 소리쳤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청와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입구에서 막으면 못 들어올 거 아니야.”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입구가 활짝 열렸습니다. 누구도 김태산의 행렬을 막지 않고 있습니다.”

“겨, 경찰 불러! 아니면 군대라도 불러서 막으라고!”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김일중은 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다.

그는 손을 들어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우리가 믿었던 국정원까지 그 사람의 수족이었습니다. 하물며 경찰과 군대? 우리에게 총을 안 쏘면 다행이겠지요.”

“대, 대통령님.”

“다 끝났습니다. 우리가 벌인 일이니, 책임을 져야겠죠. 기다려 봅시다. 곧 그 사람이 여기까지 올 테니.”

김일중의 말에 모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들은 망연자실하며 그들의 목숨을 결정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벌레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벌써부터 역겨운 마음이 차오른다.

나는 겁에 질린 승냥이처럼 잔뜩 움츠러든 이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한 번은 눈 감고 넘어가겠지만, 두 번은 없다고.”

나의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내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들의 목숨을 거둬 갈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이 청와대에, 그리고 꼴에 대통령이라는 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야.”

나는 조직원들이 가져다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시가에 불을 붙였다.

이들은 시가의 절반 정도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김 대표.”

“아, 예. 회, 회장님.”

“김 대표 아들 두 명이 미국에 있지?”

뭔가 불안한 듯 김창환 민주당 대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슬쩍 미소를 보이며 전화기를 들었다.

“김아름 씨. 미국에 있는 히트맨들에게 알리세요. 보통 의뢰비에 세 배를 줄 테니, 김창환 대표의 아들들을 찾아 죽이라고. 그리고 그놈들이 죽는 장면을 비디오로 녹화해 오면 더 큰돈을 준다고 하십시오.”

“회, 회장님!”

김창환 대표는 헐레벌떡 달려와 내 앞에 엎드렸다.

“제, 제발 아들들만은 살려주십시오. 차라리 절 죽여주십시오!”

“누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라고 했어?”

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김창환의 얼굴을 세게 차버렸다.

그는 엄살을 피우며 바닥에 쓰러졌다.

“고작 그거 하나 맞았다고 쓰러지나?”

“아, 아닙니다!”

김창환은 울상이 된 얼굴로 다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난 손을 까닥이며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게 가까이 댔다.

“쯧쯧, 주제에 맞지 않는 자리를 받았으면 개처럼 따랐어야지. 이게 무슨 꼴이야?”

“회, 회장님.”

나는 거의 다 피운 시가를 김창환의 오른쪽 눈에 비볐다.

“크아아악-!”

김창환은 발버둥을 치며 내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조직원들이 그걸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몸을 붙잡고 시가의 불이 다 꺼지기 전까지 기다렸다.

“네놈은 이게 딱 어울려.”

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김창환에게 침을 뱉은 다음 다른 놈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이들은 흠칫거리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대통령님.”

“…예, 회장님.”

“이게 다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

“설마 내가 당신들의 잔머리에 걸려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어?”

김일중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앉게 된 건 전부 내 덕이야. 그런데 감히 개새끼가 주인을 물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지?”

난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며 말을 이었다.

“미국 대통령도 나를 건드리지 못해. 그런데 이 작은 나라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너희들 따위가 감히 내게 반기를 들어? 명심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 하나쯤 거덜 내는 건 일도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어차피 이들을 여기서 다 죽일 생각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넘어갈 생각도 없다.

“다들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기대하라고. 날 건드린 대가가 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한강에 뛰어드는 게 덜 괴로울지도 모르지.”

내가 할 말은 끝났다.

만일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으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저들도 김창환 대표를 보고 깨달았을 것이다.

가족 전체가 몰살을 당할 것이며 절대 쉽게 죽이지 않을 터.

항상 그랬듯 세상 제일 고통스럽고 끔찍한 방법으로 죽여줄 것이다.

그래야 그것을 본보기로 다른 반동분자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 * *

“희대의 영웅이라 칭송을 받으며 모든 이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던 장연욱 검사가 엄청난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장연욱 게이트 사건은 청와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와대에서는 장연욱 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이미지메이킹을 해왔으며 여론과 수사 내용을 전부 조작하면서 그를 스타 검사로 만들었습니다,”

“장연욱 검사가 그동안 쌓아왔던 청렴함은 전부 거짓으로 밝혀졌으며 국민들은 크게 분노하여 장연욱 검사에게 사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연욱이에 대한 얘기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연욱 검사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건 사실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든 이미지라는 것이 뉴스의 핵심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일로 억울하게 수사를 받고 있었던 재벌 인사들이 전부 풀려났다. 하지만 여당 대표를 비롯해 몇몇 정부 핵심 인사들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은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연욱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저 사람만큼은 대통령을 해야 한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욱이를 지지했던가.

하지만 지금은 천하의 역적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래서 구치소 밥은 어때? 잘 나오나?”

“…왜 왔어?”

초췌해진 얼굴을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묻고 싶어서.”

“뭘?”

“날 버리고 다른 걸 선택한 대가가 어떤지. 그래도 넌 그게 마음에 드는지. 후회는 하지 않는지 등등.”

“비웃고 싶어서 온 거냐?”

“그런 마음도 적잖게 있고.”

연욱이는 입술을 꾹 깨물며 날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내가 후회하는 거? 난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너 같은 새끼를 내 가장 친한 친구로 삼았다는 게 좆같을 뿐이야. 차라리…….”

“차라리?”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어. 차라리 그날 우리 둘 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어야 했다고! 그랬다면 나라가 이 지경으로 가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놈의 나라 타령은. 한심한 새끼.”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연욱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보자. 나라가 내게 해준 게 뭐야? 나는 충성을 다해서 검사 노릇을 했었어. 그런데 그 나라라는 새끼는 날 지켜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 믿음을 배신했어. 지금 네 꼴을 봐. 네가 정직함을 찾아 떠날 때 정작 나라는 뭘 하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해. 왜냐하면 이 나라를 다스리는 놈들이 죄다 썩었으니까. 너 같은 놈은 그놈들에게 눈엣가시밖에 안 된다는 소리야.”

“그, 그건…….”

“그래서 내가 갖겠다는 거야. 어차피 썩은 새끼들이 가지고 놀 나라라면 차라리 내가 갖겠다고! 내 손으로 모든 걸 이뤄낼 거야. 청렴함과 정의는 필요 없어. 내가 곧 정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욱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널 왜 살려둔 줄 알아?”

“……?”

“감옥에서 썩어가면서 지켜보라고. 내가 어떻게 이 나라를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평생 후회해라. 내 손을 잡지 않은 네 멍청함에. 그럼, 조금은 깨닫는 게 있겠지.”

난 그 말만 남기고 면회실 밖을 나왔다.

이것으로 되었다.

나를 속박해 두고 있던 모든 사슬들을 벗었다.

이제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혈육이라도.

난 항상 그랬듯 멈추지 않고 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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