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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1화 (241/325)

241화. 위대한 대통령 (3)

연욱이는 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들었다.

“이런 미친 새끼! 도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거야!”

난 초연하게 연욱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 가지만 묻자. 도대체 어느 부분을 보고 이렇게 역정을 내는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전부 다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데?”

“뭐, 뭐야?”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 해제. 단임제에서 연임제로 변경. 그리고 최종적으로 국민 보험의 강제성을 이용해 베리칩 의무 의식. 어떤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지?”

연욱이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녀석의 손을 뿌리친 다음, 잔에 술을 채웠다.

“40살이 되지 않아도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있게 미리 나이 제한을 없애 버릴 거야. 그리고 단임제가 아니라 연임제로 바꿔서 한 사람이 최대 3번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할 거고.”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냐?”

“대신, 5년의 임기를 4년으로 낮춰야지. 언론 몰이는 내가 알아서 해. 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넌 진보당의 손을 잡고 화려한 정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거야. 적어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널 건드릴 사람이 없을 걸?”

연욱이의 배경은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좋다.

검찰청 출신에, 재벌들을 때려잡는 검사로 언론에 유명세를 떨쳤다. 또한 청렴한 검사로도 알려져 제법 인기도 높다. 만약 이대로 연욱이가 대선에 나간다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꽤 볼만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이 제한도 없애야 하고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꿔놓아야 한다. 그래야 연욱이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대통령 자리를 지킬 것이 아닌가. 러시아의 푸틴이 그러했듯, 수십 년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다른 건 다 이해한다고 쳐. 그런데 이건 뭐야? 베리칩? 이런 걸 사람 몸에 박는다는 거야, 지금?”

“지금 당장 박자고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 의무화를 시킨다는 거잖아.”

“그래, 미국이 첫 스타트를 끊게 될 거고 차츰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게 될 거야. 만약 이런 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나라가 나온다면 그땐 크게 테러 몇 번 일으켜 주면…….”

“뭐? 테러?”

아차,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붙잡고 알카에다를 복속시켰다는 걸 말하면 연욱이 이놈이 또 얼마나 길길이 날뛸지 상상이 간다.

“똑바로 말해. 테러는 또 무슨 소리야?”

젠장,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

내가 답을 피하려고 하자 연욱이는 끈질기게 나를 추궁했다.

누가 검사 아니랄까 봐, 아주 도끼눈을 뜨고 잡아먹을 듯이 사람을 몰아붙인다.

연욱이한테 붙잡힌 범죄자 놈들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을지 대충 짐작이 갈 정도다.

“잘못 말한 거라니까?”

“웃기지 마, 새끼야. 내가 널 한두 번 보냐? 내가 천 리 밖에서도 네놈 속내를 꿰뚫어 봐요.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 너 설마 그 테러라는 게 9.11을 얘기하는 건 아니지?”

이놈이 눈치 하나는 정말…….

“아니야. 내가 미쳤다고 9.11을 터뜨렸겠어? 알카에다랑 오사마 빈 라덴이 벌인 짓이지.”

“근데 테러 얘기가 왜 나와? 그리고 너 정도 힘이면 9.11 테러는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을 거 아니야. 그건 왜 안 한 거야?”

“한번 막는다고 해서 그놈들이 테러를 포기할까? 내가 9.11 테러를 막았으면 놈들은 더 끔찍한 걸 계획했을 수도 있어. 어차피 일어날 테러, 그냥 방관한 거야. 큰 역사의 줄기를 내가 잘못 끊어놓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니까.”

“변명하지 마. 넌 일부러 안 막은 거야. 네가 정말 마음먹었다면 잘난 조직원들을 이용해서라도 아프가니스탄에 처박혀 있는 알카에다 놈들을 쓸어버렸겠지. 그런데 넌 그러지 않았어. 왜냐하면 넌 이걸 기회로 생각했기 때문이니까. 내 말이 틀려?”

역시, 연욱이는 나란 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천 리 밖에서도 내 속내를 꿰뚫고 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난 잔에 있던 술을 한 번에 털어 넣고 삼켰다.

오늘따라 술이 더 쓰게 느껴진다.

연욱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잔만 꺾었다. 그리고 내가 무겁게 운을 뗐다.

“네 말이 맞아.”

“어떤 게?”

“9.11 테러를 기회로 생각했다는 거. 틀린 말은 아니야. 9.11 사건을 최대한 크게 부풀리고 나아가 앞으로의 테러를 차근차근 계획한다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는 건 시간문제일 거야. 그렇게 되면…….”

“국민들이 거부하던 베리칩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되는 세상이 오겠네.”

“그래, 바로 그거야. 꺼림칙하지만, 옆집에서 폭탄이 터지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잖아. 그래서 베리칩이 필요한 거고.”

“…미친놈.”

연욱이도 베리칩의 용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베리칩을 맞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소유가 된다.

만약 베리칩을 맞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통해 강제로 맞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사형을 집행시킬 수도 있다. 또한 베리칩을 맞은 다음에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언제든지 칩을 조작해서 죽게 할 수도 있다.

완벽한 통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칩.

그것이 베리칩이다.

“넌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새끼야. 가장 친한 친구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해? 그것도 온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일을 나한테 시키려 하다니. 네가 제정신이야?”

“그렇지 않아. 연임제가 통과되고 내가 세계 외교와 언론을 이용해 널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만들 거야. 너도 알잖아. 사람들은 결국 승자만 기억하고 역사도 승자만 기억해. 절대 패배자를 기억하지 않아. 만약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지금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땠을 거 같냐? 모두가 그를 최고의 지도자라고 칭송했을 걸?”

“지금 그걸 말이라고…….”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야. 역사는 항상 승자를 기준으로 쓰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너한테 마지막으로 말할게. 똑바로 생각해.”

연욱이는 더는 들을 게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다, 난 안 하련다.”

매몰차게 등을 돌리며 문 밖을 나서려 하는 연욱이에게 소리쳤다.

“네가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피운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어떻게 할 건데?”

“지금 네가 앉고 있는 자리는 전부 내가 만들어준 거야. 그리고 언제든지 뺏어갈 수 있어. 나락까지 널 끌어내려야 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을 거야. 내가 널 위해 쌓은 탑을 전부 다 부서 버릴 거라고!”

나의 협박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는 듯 연욱이는 딱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김태산, 왜 이렇게 사람이 변했냐? 도대체 왜 그렇게 달라진 거야? 네가 원래 그 자리에 앉으려고 했던 건 이 세상을 더럽히는 악들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함이 아니었어? 지금 너를 봐. 네가 제일 더러운 놈이야. 알아?”

그 말에 나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회귀를 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검사 시절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정의감에 붙잡혀 새로운 계획을 짜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음을 확신한다.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것만큼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이 또 없다.

약한 자의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 강자의 진실은 끝까지 묻히게 된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정의라는 것도 결국 승자의 것이며 대부분의 승자는 악하다.

선한 자는 악한 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는 먹이사슬인 것이다.

난 단지 그것을 깨달았을 뿐이고, 승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이미 늦었어. 내 손으로 수천수만의 사람을 죽였어. 앞으로는 수십, 수백만의 사람을 죽이게 되겠지. 나의 뜻에 반하는 자들을 전부 말이야.”

이미 나는 악마가 되었다.

그것도 악마 중의 악마가 되어 세상을 다스리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통치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안다.

전부 죽이는 것.

집 안에 있는 벌레를 퇴치하며 그 씨를 말리는 것처럼, 내 뜻에 반하는 자들이 나온다면 난 칼과 총으로 그들을 전부 죽일 것이다.

민중의 소리가 높아지면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무너지게 마련.

그 목소리가 커지기 전에 철저히 짓밟고 완전히 이 땅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만들 작정이다.

그럼,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되겠지만, 난 그들을 위해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것이며 내 명령에, 내 통치에 따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한테 마지막으로 말할게. 지금이라도 내 말에 따라. 진보당의 손을 잡고 올라가는 거야, 연욱아.”

연욱이는 피식 웃으며 내 제안을 역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럼 나도 너한테 마지막으로 말할게. 지금이라도 멈춰. 안 그러면 내가 미친개처럼 널 물어뜯으려 할지도 몰라.”

저 말은 검찰청의 힘을 빌려 나를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거 알잖아.”

“부질없는 짓이라도 끝까지 해봐야겠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물면 너도 조금은 아프겠지.”

연욱이는 그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떻게 잘 말하면 설득이 될 거 같았는데, 역시 연욱이는 천생 검사다.

이런 나라에 청렴한 검사는 어울리지 않다.

그 어떤 나라에도 말이다.

난 이제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온 장연욱이란 카드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한 번 더 설득을 해볼 것인가.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술잔만 기울일 거 같다.

* * *

검찰청으로 돌아온 장연욱은 혼자 사무실에 남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술도 마시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오늘은 정말 번뇌가 깊다. 그리고 그는 서류를 만지작거리기를 반복하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신도 알고 있다.

검찰청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봐도 김태산을 향한 조사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검찰총장이 허락한다고 해도 더 윗선에서 막을 게 뻔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미 김태산은 이 나라의 절대자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인가.

결코 이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건만.

고민 끝에 연욱은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꾹 참으며 스스로를 상대에게 밝혔다.

“장연욱 검사입니다. 누군지 아시죠?”

상대는 예상했다는 듯 별로 놀라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사님.”

“혹시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제가 일본에 있다는 건 아시죠?”

“예, 괜찮다면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황 사장님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장연욱의 말에 황규혁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우리가 서로 얼굴 맞대고 만나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군요. 아시다시피 태산이가 의심 하나는 질리도록 많아서요. 아마 장 검사님과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태산의 철저함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렇게 전화로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예, 그런데 태산이는 잘 만나셨습니까?”

사실 장연욱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황규혁이었다.

근래에 들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는 김태산을 막기 위해 연욱에게 태산이를 좀 만나달라며 부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연욱이 황규혁의 번호를 가질 수 있었다.

“황 사장님 말씀대로 많이 변했더군요. 알카에다의 일에 대한 건 황 사장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예, 충격받으실까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저도 느꼈습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만약 태산이의 뜻대로 베리칩이 전 세계에 퍼진다고 해도 놈은 또 다른 짓을 벌일 게 분명해요.”

장연욱와 황규혁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조만간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때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봅시다. 어떻게든 녀석의 폭주를 막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연욱은 황규혁과의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왠지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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