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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0화 (240/325)

240화. 위대한 대통령 (2)

“부르셨습니까, 총장님.”

“너 또 밤샜냐?”

“어쩌겠습니까. 할 일이 많은데.”

“야 인마! 그런 잡일들은 밑에 애들 시키라고 몇 번 말해?”

장연욱 검사는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은 검찰청에서 쪽잠을 잔다. 그 때문에 일벌레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그 때문에 총장은 매일 잔소리를 해대며 제발 좀 집에 가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한 번도 그 말에 따른 적이 없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어디서 많이 본 양반들이 검찰총장과 함께 티타임을 나누고 있다.

“하하,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뵙네요. 반갑습니다, 검사님. 민주당 대표 김창환이라고 합니다.”

연욱은 안색을 살짝 굳혔다.

이놈들이 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중에 몇 명은 연욱의 조사 대상에 올라와 있기까지 하다.

그는 김창환이 건넨 명함을 받아 드는 척도 하지 않고 총장에게 말했다.

“손님이 있으신 줄 알았으면 이따가 왔을 텐데요, 총장님.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장연욱 검사가 차갑게 몸을 돌리려 하자, 총장이 그를 불렀다.

“와서 앉아라. 이분들, 너 때문에 오신 거다.”

“저 때문에요?”

“그래.”

“저 같은 칼잡이를 왜 이런 높으신 분들이……. 혹시 제가 수사하는 것 중에 관련되어 있으신 거라도 있습니까?”

연욱의 말에 이들은 그저 허허 하고 웃을 뿐이다.

이들도 마냥 장연욱과의 만남이 편치 않았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검사가 아닌가?

다른 검사였으면 진작 윗선에서의 견제로 인해 수사를 하지 못했을 것들을 장연욱은 막힘없이 해낸다. 왜냐하면 그 뒤에 어마어마한 사람이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장연욱이 조사하겠다면 무조건 오케이를 해주는 사람이 하필이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남자다. 당연히 이들은 장연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앞으로 내세운 칼잡이가 바로 장연욱이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국민의 종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을 쓸 순 없지요. 그렇기에 거리낄 것도 없습니다.”

어쭈?

아주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친다. 아니면 그냥 허세일 수도 있다.

연욱은 못 이기는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저 같은 사람을 만나러요?”

“하하, 청렴함의 대표자. 국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유일무이한 검사. 그것이 바로 장 검사님이 아닙니까? 그런 분을 언제까지 검찰청에 놔둘 순 없는 노릇이죠.”

김창환의 말에 연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하는 본새를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제안을 하려는 것 같다.

“우리 민주당은 차기 대선을 거의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차기 정권을 포기한다고?

장연욱도 미래를 알고 있지 않은가.

원래대로라면 미래의 대통령은 노현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차기 대선을 거의 포기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하긴, 아직은 보수 정당에 표가 몰리고 있는 추세니, 민주당이 역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이창석에 대한 언론 공격이 시작되어 마지막에 역전을 허용하게 된다.

“여당에서는 노현우 의원님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노현우 의원은 이번 대선에 불출마할 것 같습니다.”

불출마라고?

아예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것인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지금이야 당선이 유력하지 않지만, 여당은 노현우 말고 내놓을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를 내세우지 않겠다니.

“노현우 의원의 뜻입니까, 아니면 외부적인 압력이 있었던 겁니까?”

직설적인 장연욱의 물음에 김창환 대표는 당황하며 짧게 미소를 지었다.

“검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기는요. 외압에 떠밀려 노현우 의원이 물러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하,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외압이 있긴 했으나, 노현우 의원도 이미 오래전부터 대권에 뜻을 접었어요. 대통령이 되어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노현우가 대통령 되기를 포기했다라.

평생 그 자리만 바라보고 달려온 사람인데, 그게 쉽게 포기가 될까.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말에 뼈가 있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나라는 보수와 진보의 나눔이 크게 차이가 없어요. 국민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대한민국을 다스리고 있는지. 장 검사님도 잘 아시지요?”

연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김창환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장 검사님의 친구분 되시는 김태산 회장님은 차기 대권을 누구에게 줄지 이미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그제야 연욱이 말문을 열었다.

“그게 이창석입니까?”

“예, 차기 정권은 보수에게 주겠다고 말씀을 하신 터라 저희들은 그저 그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그래서 아주 난감할 뻔했습니다. 장 검사님이 아니었더라면.”

김창환의 말에 연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랑 그게 뭔 상관이 있다는 건가?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희는 앞으로 장 검사님을 적극 지지할 생각입니다. 이제 5년 남았습니다. 이창석 의원이 5년간의 임기를 마칠 동안 우리는 철저히 준비를 하면 됩니다.”

“어떤 준비요?”

“장 검사님을 국민들 앞에 내세울 준비 말입니다. 대한민국 최연소 대통령이 되어보셔야죠.”

그 말을 듣고 연욱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 검사님?”

“지금 당신들…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대한민국 최연소 대통령?”

이제 당황하기 시작한 건 김창환과 그의 사람들이었다.

“회, 회장님께 언질을 받지 못하신 겁니까?”

“회장님? 태산이를 말하는 겁니까? 그 새끼는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화가 날 대로 나 보이던 연욱은 씩씩거리며 총장에게 말했다.

“총장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칠게 밖을 나가 버렸다. 덕분에 김창환만 멍한 표정으로 연욱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봐야 했다.

“허허, 이거 미안합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오셨을 텐데, 저놈이 원래 저래요.”

그런 김창환을 달래는 듯한 총장의 말에 그제야 그는 표정을 풀었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서둘렀나 봅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아직 시간이 많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밀기로 작정하셨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요. 연욱이가 좀 꽉 막힌 구석이 있긴 합니다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총장님. 그럼, 저희들도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살펴 가십시오.”

의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빠져 나가자 총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장연욱 얼굴만 보면 가시방석이 되는 것 같아 항상 불편했다. 그런데 오늘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장연욱은 검찰청에 썩을 놈이 아니었다. 앞으로 5년 후에 청와대의 주인이 될 사람이었다니!

앞으로 그놈 얼굴을 보는 게 더 고역일 것 같아 벌써부터 총장은 속이 불편했다.

* * *

나는 집무실에 앉아 이런 저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미국, 한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여러 나라에서 시시각각 올라오는 보고서와 기업 현황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을 맡겨도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 지배권이 서서히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사장이 얼굴을 비치지 않는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허튼짓하지 못하게 채찍질도 하고 당근도 주면서 조련을 하는 것이 사장의 덕목이다.

“회장님.”

“무슨 일이야?”

“장연욱 검사님이 오셨습니다.”

대충 그놈 얼굴이 어떨지 상상이 간다.

들어오자마자 내게 주먹을 날리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되고.

“올라오라고 해.”

“예.”

아니나 다를까.

콰앙-!

“김태산-!!”

부서질 것처럼 문을 세게 열던 연욱이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물론, 내 코앞까지 달려오기 전에 경호원들 손에 제지를 당했지만.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반갑게 인사하는 거 아니냐?”

난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아 잔에 술을 채웠다.

“거기 바닥에서 애들이랑 꼴값 떨지 말고 이거나 마셔. 그리고 속 좀 풀어.”

“이, 이거 안 놔!”

“무려 나를 경호하는 애들이야. 웬만한 파이터들보다 싸움도 잘하고 힘도 좋다. 너 혼자 걔네들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애들이 온순하지 않아서 다칠 수도 있으니까.”

“시발, 뭔 놈의 주먹 하나 날리기가 더럽게 힘들어.”

“시간이 많이 지났잖냐. 그러니까 그만 주접떨고 여기 와서 술이나 마셔.”

연욱이는 체념한 듯 자리에 앉아 술잔을 벌컥 들이켰다.

“김창환 대표 만나고 왔냐?”

“이미 다 알고 있었구먼.”

“내가 너 만나라고 보냈으니까. 그래서 어때?”

“뭐가.”

“너 대통령 만들어준다고 줄 타는 놈들이잖아. 그놈들 보니까 어떠냐고. 이제 슬슬 실감이 되나?”

회귀하기 전에는 대통령의 대 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연욱이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넌 빛에서. 난 어둠에서.

그렇게 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있자고 말이다.

나는 이미 어둠의 정점에 거의 올라섰다. 그리고 이 힘으로 연욱이를 빛의 정점으로 올려 둘 차례다.

“김창환 그 양반이 농담하는 거 아니야. 앞으로 5년 동안은 보수가 정권을 잡겠지만, 너는 그때 정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돼.”

“나한테 대통령을 하라고? 진심이냐?”

“이제까지 수백 번은 더 말하지 않았냐? 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그건 네가 일방적으로 정한 거잖아. 내가 언제 하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노현우 의원은 어떻게 된 거야. 그 양반이 왜 갑자기 대권을 포기해?”

“그냥 사람 하나 살렸다고 생각해. 그 사람이 대통령 돼서 좋았던 적이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진보가 필요한 때가 아니야. 보수가 잠깐 나라를 맡아서 좀 흔들어줘야 돼. 그래야 국민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강렬히 소망하지 않겠어?”

연욱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 지도자가 나고?”

“그래, 청렴한 검사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면 다들 좋아하지 않겠어? 언론도 널 공격하지 않을 거고 말이야. 네가 길바닥에서 똥을 싸도 언론에서는 곱게 포장해서 국민들에게 뿌릴 거야. 그럼, 당선되는 건 보나 마나 너지.”

멍석을 깔아주면 연욱이는 거기 앉아서 수저만 들면 된다.

어차피 처음부터 연욱이가 할 일은 없었다. 내가 깔아놓은 꽃길만 걸으며 위대한 대통령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날 허수아비로 내세워 두고 네 사리사욕 챙기겠다는 거잖아.”

“아니지. 저번에도 말했잖아. 난 이 나라를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넌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야. 네 손으로 직접 이 나라를 최고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이야 좋지. 그 대가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텐데, 그걸 방관하라고? 어차피 내 의지로 굴러가지도 않을 정권인데 내가 왜 그 자리에 앉아야 하지?”

“그렇지 않아. 최대한 너의 의견을 수렴할게. 그리고 네가 항상 말했었잖아. 우리나라를 무시한 채 악행을 저지르는 놈들도 깡그리 잡아야 한다고 말이야. 일본과 독도, 위안부 문제부터 시작해 중국도 우리와 외교적으로 문제가 많잖아. 그런 걸 네가 전부 해결할 수 있게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게.”

“근데 네 마음대로 될까? 우리나라는 40대 이상이 되지 않으면 절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가 없어.”

지금 나와 연욱이의 나이가 34살이다. 제17대 선거가 2007년 12월이니, 만 40세가 되어야 하는 현행법상 연욱이에게 2년 정도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거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무시를 당하며 불의를 당할 때마다 이놈이 분통을 터뜨렸던 걸 기억한다. 물론, 이 정도로 연욱이가 넘어오진 않는다. 그리고 나는 더욱 이놈의 분노에 불을 붙이기로 결심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이걸 한번 봐.”

난 서류 하나를 연욱이에게 건넸다. 녀석은 의심쩍은 눈으로 서류를 살펴보더니, 이윽고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급기야 연욱이는 내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이, 이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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