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38화 (238/325)
  • 238화. 진정한 정복

    내가 회귀하기 전에, 노현우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보수 정권의 명백한 표적 수사로 인해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많다.

    타살이냐, 아니면 자살이냐.

    그리고 이러한 타살론은 보수 정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진보당 때문에 나왔다.

    노현우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에 보수당과 결탁한 진보당.

    그들은 노현우 대통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노현우 대통령이 사망하자마자 진보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스럽게 가면을 쓰고 나와 노현우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보수당을 공격하면서 표적 수사다, 뭐다로 여론을 움직였다.

    나도 그런 진보당의 더러움을 보고 어쩌면 노현우 대통령의 죽음은 진보당에 의한 타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노현우의 죽음을 이용해 여론 반전에 성공했다는 건 사실이니까.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일 뿐. 결국 그의 죽음은 자살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번 차기 대선의 주인공은 이창석입니다. 보수 정권에게 힘을 실어주도록 하세요.”

    “보수? 이창석 말이냐?”

    “예, 그 양반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빌더군요. 똥통에 굴러도 좋으니 대통령을 하고 싶답니다.”

    “흐흐, 저번 대선에서 다 이긴 게임을 김일중에게 졌잖냐. 자존심에 상처가 크시겠지. 워낙 성공 가도만을 달려왔던 사람이니까.”

    성일환의 말처럼 이창석은 실패를 모르고 질주하던 사나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선에서만큼은 뜻대로 풀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내가 그의 불운을 말끔히 사라지게 할 작정이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은 노현우가 아니라 이창석이 될 것이다.

    “네 뜻은 알겠다. 밑에다 말해놓을게. 알아서 돈도 보내놓고 하라고.”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다. 네 덕분에 보수당 놈들에게 어깨 좀 펴고 살겠는데? 그놈들이 퍼주는 거 마음껏 처먹고 올 생각이다.”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다.

    내년이면 환갑인데 나이를 모르는 건지, 여전히 젊었을 적 뜨거움이 남아 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려. 조만간 한국에서 보자.”

    “예.”

    난 수화기를 내려놓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손님들을 앞에 두고 무례를 저질렀군요.”

    내 말에 백악관 수뇌부들은 모두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장관, CIA국장, 그 외 공화당과 민주당의 핵심 의원들까지 모인 회의.

    이들은 과연 내가 또 무슨 폭탄 발언을 할지 몰라 내심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 제가 왜 여러분을 이곳까지 부른지 아십니까?”

    내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뜬금없이 불러들인 통에 이들도 마침 궁금해하는 참일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했습니다.”

    그 말에 몇몇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별 표정 변화가 없었고, 몇몇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말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그리고 난 오사마 빈 라덴을 이대로 아프가니스탄에 놔둘 생각입니다. 미 정부에는 넘기지 않기로 했어요. CIA에서도 이미 손을 뗐고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민주당 대표가 내게 물었다.

    “회장님, 오사마 빈 라덴은 수천 명의 시민을 죽인 테러리스트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놈의 피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 정부에 넘기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 남기시겠다니요?”

    “불만 있습니까?”

    “그, 그러니까 제 말은…….”

    “오사마 빈 라덴은 꽤 활용 가치가 높은 사람입니다. 차라리 빨리 죽이기보다는 그를 잘 이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활용 가치가 높다고요? 그런 놈을 어디에다 쓴단 말입니까?”

    참 머리가 안 돌아간다.

    저런 놈이 민주당 대표랍시고 앉아 있는 꼴이 우스울 정도다.

    다음에 저놈부터 잘라야겠다.

    “제가 나눠 드린 서류부터 다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얘기를 하도록 합시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주고 나는 이들이 찬찬히 서류를 읽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1시간까지 가지도 않았다. 단 10분 만에 얼어붙은 표정을 보니, 이들도 이제야 내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회, 회장님. 이, 이게 정말입니까?”

    공화당 대표가 목소리까지 떨며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예, 이미 내부 회의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베리칩을 상용화하기 위해 먼저 동물들에게 삽입한 다음, 국민들에게도 강제 적용시켜 삽입시킬 계획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들 계시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국민들이에요.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안 통과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빈 라덴을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겠다는 겁니까?”

    “예, 바로 그겁니다. 9.11 정도의 테러는 아니지만 자잘한 테러들을 계속해서 일으킨다면 국민들은 불안감에 떨겠죠. 워낙 논란이 많아 잠시 법안 통과를 미뤄두었지만, 계속된 테러와 총기 사건으로 인해 국민들은 결국 베리칩을 받아들일 겁니다.”

    “총기 사건이요?”

    “외부의 테러만 테러가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 시민이 일으키는 테러. 그게 바로 총기 사고가 아닙니까?”

    테러만 할 생각은 없다.

    몇몇 미친놈들을 선별해 그들로 하여금 무차별적인 난사로 미국에 참극을 가져다줄 생각이다. 그럼, 시민들은 테러와 총기 사고 위협에 떨며 결국 베리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터.

    “불만이 있으면 누구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지만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이건 결정이 된 사안입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승인을 했고요.”

    다른 말이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얘기였다.

    “다들 허락하시는 겁니까?”

    이들 중 대다수가 300인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즉, 이들은 베리칩이 새로운 계급 제도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들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만약 베리칩이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되면 이들은 높은 위치에서 아랫바닥에 있는 하층민들을 다스리게 될 터. 그건 분명히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이들도 누군가의 발아래 놓여 섬겨야 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역행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순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회장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역시, 이들은 미래의 일을 바라보기보다는 당장 앞에 있는 위협을 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결코 이건 이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베리칩을 맞지 않아도 이들은 내 발아래 있으니까. 차라리 베리칩을 상용화시켜 귀족처럼 군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여러분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스피커폰을 눌러 짧게 말했다.

    “데리고 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검은 천으로 얼굴과 목이 가려진 남자 하나가 거칠게 끌려왔다.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나와 정체불명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

    내가 눈짓을 보내자 조직원들이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겼다. 그리고 부통령 딕 체니의 얼굴이 나오면서 모두 기함을 터뜨렸다. 이미 여러 번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어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다.

    “회, 회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저들은 왜 부통령이 저런 몰골로 끌려왔는지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부통령님이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예전에 CIA에서 일을 해서인지 그쪽에 있는 라인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저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그 말에 한 번 더 저들이 경악 어린 기함을 터뜨렸다.

    “미국의 영광을 다시 한번 되찾아 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를 이 나라의 부통령이라는 사람이 상은 주지 못할망정 암살을 꾀하다니.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

    이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딕 체니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만약 딕 체니의 작전이 성공했다면 이들은 만세를 외치며 자유를 쟁취했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뭘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가 죽으면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죽는다. 그리고 미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또한 골든 연합이 붕괴되기 시작하면 무슨 대재앙이 내릴지 아직도 모르는 건가?

    경제가 무너지고 외교가 무너지며 나아가 군사력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골든 연합에서 홧김에 핵이라도 터뜨리는 날에는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터.

    “부통령님, 이게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더는 할 말이 없소.”

    “그렇습니까? 그렇게 믿었던 CIA 요원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프시지요?”

    딕 체니의 실수는 CIA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저 사람이 이용해 봤자 CIA 말고 누굴 이용하겠는가. 하지만 CIA는 이미 내 소유나 다름이 없다. 그들이 날 배신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딕 체니는 과거 자신이 그곳에서 중책을 맡았다는 것으로 CIA를 믿었다. 어리석은 믿음이다.

    CIA는 과거의 유물을 믿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권력과 돈을 믿는다.

    거긴 그런 집단이라는 것이다.

    “제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믿었던 미 정부에 이런 배신을 당하다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겠습니다. 부통령님과 뜻을 같이하신 분이 여기 또 계십니까?”

    모두 강력히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충 예상은 했다.

    이 일은 부통령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부통령님, 저는 부통령님이 저의 든든한 아군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든든한 아군?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를 하수인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이런, 그래서 머슴이 주인을 치려했던 것이군요. 쯧쯧.”

    “긴말하지 말고 얼른 풀어주시오. 그리고 나를 탄핵시키든 감옥에 보내든 알아서 하란 말이오.”

    “제가 왜요? 왜 그런 귀찮을 짓을 합니까. 그냥 깨끗하게 여기서 끝내면 될 것을.”

    난 주머니에 있던 권총을 꺼내 부통령의 이마에 겨누었다.

    “지, 지금 무, 무슨 짓을!”

    “시끄러워. 너 같은 배신자 새끼는 살려둘 가치가 없으니까.”

    탕-!

    총성이 울리면서 어떤 이는 비명을, 또 어떤 이는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총을 앞에 내려놓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배신자는 즉각 처형이라는 것이 골든 연합의 규칙입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회, 회장님. 그 사람은 이 나라의 부대통령인…….”

    “제가 그런 것도 모를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이 되면 부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올 겁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과로가 겹쳐 합병증이 왔다고 둘러대면 되겠지요. 유족들도 알아서 처리할 테니, 당신들은 당신들 일이나 똑바로 하면 됩니다. 똑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 나라의 부대통령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이들로서는 당연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이미 내게 완전히 정복당해 버렸다.

    부대통령의 죽음마저 병사로 위장할 수 있을 만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부통령의 죽음에 관한 건 제가 따로 대통령님을 만나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아마 그분도 적잖게 실망하시겠군요. 제가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

    이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부대통령을 죽인 것처럼 대통령도 똑같은 꼴을 당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대통령님은 무사하실 겁니다. 고작 한 번의 실수로 제가 매몰차게 그분을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니 다들 맡은 소임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집무실 밖을 나섰다. 그러면서 한 번씩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딕 체니에게 유감의 눈빛을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이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위에 있는 놈들은 내가 전부 장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장악해야 할 것은 바로 밑바닥이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들.

    그들 몸에 베리칩을 전부 박는 순간이, 내가 이 나라를 완전히 갖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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