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36화 (236/325)
  • 236화. 약속의 증표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빈 라덴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라도 저런 반응을 보이긴 할 것이다.

    “말 그대로야. 넌 앞으로도 알카에다의 수장으로, 테러리스트들의 상징으로 남아 계속해서 세력을 이어가게 될 거야. 하지만 겉으로는 알라를 외치며 테러를 일으키겠지만, 이제부터 너는 더 이상 알라의 소유가 아니야. 바로 내 것이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 그러니까 저를 살려주신다는 겁니까?”

    “그래, 알카에다 수장 자리도 그대로 놔둘 거야. 물론, 예전과는 좀 다르겠지.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전부 없애 버리고 내 조직원들로 대신 채울 테니까.”

    조금은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빈 라덴은 멍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 말은 저를 대리인으로 세우겠다는 겁니까?”

    “비슷하지. 하지만 네 뒤에 내가 있다는 건 누구도 알지 못할 거야. 너는 앞으로도 계속 테러 활동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네 이름을 부르며 여길 찾아오겠지. 그렇게 우린 세력을 점차 늘려 그 어느 나라도 타격이 가능한 거대 집단을 만들 생각이다.”

    “알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 테러를 하라는 건 그 뜻이었군요.”

    “그래, 우리 솔직하게 말해보자고. 너도 사실은 알라를 위해 그런 게 아니라 유명세를 떨치고 싶어서 그 짓을 벌인 거잖아.”

    내 말에 빈 라덴은 인상을 찡그리며 반박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로 알라를 위해…….”

    “아아, 시끄러워. 누가 봐도 네 세력을 늘리려고 그따위 짓을 했다는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 한 번만 더 알라를 위해 그런 짓을 벌였다는 얘기를 내 앞에서 꺼낸다면 그땐 혓바닥을 뽑아버릴 거야. 명심해.”

    “…….”

    그냥 구두 위협에도 빈 라덴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운 눈빛을 띠었다.

    그래. 내가 딱 원하는 자세다. 저놈이 항상 나를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지금은 일단 치료에 전념해. 그리고 조만간 알카에다 조직이 새롭게 개편될 거야. 혹시라도 다른 곳에 숨겨놓은 조직원들이 있으면 지금 말하는 게 좋아. 만약 그놈들이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면 그건 곧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네놈은 내가 세상 제일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줄 거야. 내가 결코 허튼 말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꼭 보여주지.”

    “그, 그런 거 없습니다. 이미 미군에 의해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네가 건재하다는 걸 알면 알아서 모여든다는 거겠지? 좋아. 그놈들은 그때 처리하도록 하지.”

    내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빈 라덴이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미군이 저를 찾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계속 뒤지고 있습니다. 여기 있다가는 언제 걸릴지 몰라요.”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그냥 해보는 소리인가.

    “생각보다 돌아가는 머리가 없네.”

    “…예?”

    “내가 움직이는 걸 미국이 정말 몰랐을 거라 생각해?”

    “그, 그 말씀은…….”

    “미국은 너의 위치를 알아도 이제 모른 척할 거고 설사 네가 돌아다니는 걸 봐도 맹인 행세를 할 거야. 왜냐하면 넌 내 소유물이니까. 미국은 걱정하지 마. 내 명령 없이는 그쪽이 절대 움직일 리 없어.”

    내 말에 빈 라덴은 눈을 껌뻑이기만 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내 발언이 신뢰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구태여 이놈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 알카에다에 남아 계속 활동을 이어 가면서 저절로 느끼게 될 테니까.

    내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 * *

    “일어나. 가서 누워.”

    뜬금없이 나타나 은신처를 습격하고 자신을 포로로 잡아온 의문의 남자. 그리고 그가 남긴 말은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빈 라덴은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가며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고 있는 김민재에게 물었다.

    “혹시 저분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게 왜 궁금하지?”

    “미국을 통째로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궁금한 건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서 김민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골든 연합이라고 들어봤나?”

    “골든 연합……? 혹시 메데인 카르텔?”

    “비슷해. 메데인 카르텔부터 시작해 미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에 있는 주요 조직들을 전부 규합해 놓은 곳이니까.”

    “드, 들어봤습니다.”

    “그래. 그거야.”

    “예?”

    “방금 네가 만나 뵌 분이 골든 연합의 수장이시라고.”

    빈 라덴은 기겁하며 입을 쩍 벌렸다.

    골든 연합. 간간이 들어는 보았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거대 조직들을 규합하고 나아가 세계 재벌들까지 모아놓은 연합.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말은 그저 음모론 중 하나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미국은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 믿어도 좋아. 이미 CIA에서도 너한테서는 손을 뗐어.”

    CIA도 손을 털었다는 말에 빈 라덴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 미군이 철군하는 겁니까?”

    “아니, 일단 탈레반 놈들부터 싹 다 조져야지.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너를 쫓고 있으니까 계속 널 쫓는 연기만 할 거야. 그동안 너는 그 몸뚱이부터 회복해서 네가 건재하다는 걸 알려야지. 더 큰 세력을 만들려면.”

    “도, 도대체 왜 저를 살려주는 겁니까?”

    “말씀하셨잖아. 앞으로 너는 알라가 아니라 저분을 위해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의문도 품지 말고 명령에만 따라. 그럼 살 수 있어.”

    빈 라덴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허튼짓하려는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접는 게 좋아. 회장님은 스스로 한 말은 꼭 지키시거든. 네가 혹시라도 이상한 짓 하다가 걸리면 세상 제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겠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셔.”

    김민재는 비웃음 가득한 입가로 말을 남긴 뒤 천막 밖을 나섰다.

    그제야 빈 라덴도 조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은신처가 공격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미군인 줄 알았는데, 이건 더 지독한 사람에게 붙잡힌 것 같다. 어쩌면 평생을 저 손아귀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며 아등바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빠져나가기에는 이미 글렀다.

    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를 붙잡아놓고 한다는 말이 알라가 아니라 이제 자신을 위해서 테러를 하라고 말하는 미친놈이다. 저렇게 악독하고 미친 사람에게서 과연 빠져나갈 구멍이 있겠는가?

    미국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과시하는, 모든 이들의 정점에 선 저 사람에게?

    빈 라덴은 빠른 포기를 내렸다. 그저 이 명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저 사람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 * *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은 두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완전히 몰아내 버렸다. 그리고 임시 정부를 만들어 안정화를 꾀하면서 전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들이 이렇게 서두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9.11 테러는 신의 뜻이라는 개소리를 늘어놓은 후세인 정권을 벌하기 위함인데,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섞여 있었다.

    이라크에 있는 석유.

    즉, 이라크를 정복하면 그곳에 있는 석유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언제까지 아랍 국가의 눈치만 보며 살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크게 한탕을 해보겠다는 심산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미 사람들을 파견해 무너진 건물을 다시 일으켜 그곳에 에너지 기업을 세울 계획을 짜지 않았던가.

    “직접 가서 보니 어땠습니까?”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느끼고 왔습니다. 참 안타깝더군요. 특히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애들을 보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골든 연합이 만들어갈 세상은 아주 평화로운 세상이 아닙니까? 그 어느 곳에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요. 그걸 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위로, 감사합니다.”

    다니엘 로페즈와 나는 쿵짝을 맞추며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댔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출장을 끝내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곳에 있는 사령부 핵심 인사들에게 신신당부해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사령부 쪽과는 얘기가 잘 끝났습니까?”

    “예, 이라크 원정에 너무 신경을 쏟지 말고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탈레반 잔존 세력을 쫓아 섬멸하는 데에 집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시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즉, 부탁이 아니라 지시이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수고비를 넉넉히 주셔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찢어지도록 채워주고 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그들이 나를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사령부 사람들을 만나 이라크 원정을 늦추라고 지시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훗날 미국 최악의 실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이대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탈레반 정권의 잔존 세력들을 붙잡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면 그 평가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실수는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해 마지막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탈레반 정권의 부활로 이어졌고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여러 아랍 국가들이 미국보다는 탈레반 정권에 항복하는 것으로 흐름이 이어진다. 그것은 또 다른 테러 집단을 양성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그렇게 IS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조직이 만들어진다.

    난 그 불협화음을 막기 위해 사령부를 압박한 것이었다. 탈레반이라는 위험 요소를 지금이라도 완전히 제거를 해야 빈 라덴을 선두로 한 알카에다 조직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테러 조직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놓을 수 있고.

    “돌아오시자마자 이렇게 일 이야기부터 꺼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미스터 김에게는 보고를 해야 할 내용이라서 말이죠.”

    다니엘 로페즈가 혼자 나를 찾아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예. 그럼,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다니엘 로페즈는 작은 상자 하나를 앞에 놓았다.

    그것을 열어보니 안에는 쌀알만 한 크기에 캡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건…….”

    “베리칩입니다. 일단 프로토타입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동물들에게 적용시켜 보니 결과가 꽤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인체 실험으로 돌입하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이게 완성된 베리칩이라는 건가.

    아직 프로토타입이지만, 이 쌀알만 한 크기의 칩이 전 세계의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제가 김아름 씨에게 언질을 준 것이 있습니다.”

    “아, 칩을 꺼버리면 폭발하는 기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가능합니까?”

    “예, 동물 실험에서는 성공을 했는데, 문제는 이게 오작동을 일으켜 자기 마음대로 폭발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아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칩을 박으면 사람의 행동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할 수 있게도 연구를 지속하는 중입니다.”

    단순히 폭발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행동마저 통제가 가능하다니.

    정말 그런 기술력이 발달하면 어마어마할 거 같다.

    “가능한 이야기겠죠?”

    “하하, 전기 자극을 통해 충동적인 행동을 시킬 수도 있고, 그 외에도 호르몬 작용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군요.”

    로페즈의 말대로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통제가 아닌가?

    나는 베리칩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인체 실험이 끝나면 이걸 곧 바로 뿌려야 한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뿌리는 건 안 된다.

    조직 계급에 따라 받는 칩의 종류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제일 먼저 이걸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떠올렸다.

    “베리칩이 완성되면 300인 회의부터 소집하세요. 어차피 그 사람들도 골든 연합의 일원들이 아닙니까. 제일 먼저 이 칩을 맞게 하는 겁니다.”

    “거부하는 사람은 제거하고요?”

    “예, 조직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색출해 내는 거죠.”

    나는 그들에게 절대 권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도 내게 절대 충성을 약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약속의 증표는 바로 이 베리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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