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유일한 방법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한 골든 연합 소속 조직원들 수는 총 1,200명입니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의 위치와 알카에다의 은신처가 어디인지 전부 파악해 두었습니다. 신호만 내리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타격이 가능합니다.”
김민재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민재, 최정식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부터 준비를 해오던 일이라 그런지 나름 체계가 잘 잡혀 있다.
1,200명의 숫자면 빈 라덴을 붙잡기에는 아주 적합할 터.
“미 정부에는 양해를 구했나?”
“예, CIA에게 이미 전달을 했습니다.”
“어떤 걸?”
“빈 라덴은 우리가 데리고 있겠다는 걸요.”
어차피 작전이 시작되면 CIA의 눈을 피하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이었다. 빈 라덴은 내가 먼저 점을 찍었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CIA 국장은 내가 움직였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할 것이다.
“그쪽의 대답은?”
“회장님의 지시라는 것을 밝히니 알겠다는 대답만 했습니다.”
그럼 된 거다.
이로써 CIA는, 미국은 이번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 새로운 배우를 어디 영입해 볼까?
“잠복하고 있는 타격 팀한테 전해. 내일 아침 전까지 빈 라덴을 내 앞에 데려와 무릎 꿇리라고.”
“예, 회장님. 제가 직접 가서 지휘하겠습니다.”
김민재는 대답을 남긴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내가 내일 아침까지라는 데드라인을 주었으니, 그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를 성공시켜 놓으려 할 것이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다.”
“아냐, 그런데 성일환 형님이 내가 너한테 간다고 하니까 말 하나만 좀 전해달래.”
핸드폰이 보급되고 있는 이 시기에 전화로 하면 될 것을.
“뭔데?”
“차기 대통령. 누구로 밀거냐고. 그거 물어보시더라.”
차기 대통령이라.
그러고 보니 이제 김일중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2002년에는 월드컵이라는 대축제가 기다리고 있지 않던가. 국민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며 붉은 악마의 응원가를 부를 동안 나는 어떤 대통령을 세워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진보인지, 아니면 보수인지. 둘 중 하나만 정하라고 하시더라. 그럼,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하시겠다고.”
진보라면 노현우이고, 보수라면 이창석이다.
내 기억으로는 두 사람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 한 끗 차이로 노현우가 당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주먹이랑 칼 쓰는 놈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도 솔직히 노현우 이 양반은 좀 꽉 막힌 구석이 있지 않나? 노련한 이창석에 비해.”
정식이가 말하는 꽉 막힌 구석이란 청렴함을 뜻한다.
남들 다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청렴만을 외치는 행동 말이다.
평생을 때 묻지 않게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유력 후보까지 올랐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남자의 최후를 알고 있지 않던가.
노현우야말로 깨끗한 정치인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스스로의 청렴함만을 챙기다가는 아군에게도 공격받고 적군에게도 공격을 받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깨끗한 인간이 정점에 서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이건 빈 라덴, 그 새끼부터 조지고 다시 얘기해 보자.”
“그려, 천천히 생각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 않냐?”
“뭐가?”
“나랑 네가 이러고 있는 거. 고등학교 연합부터 시작해 지금은 세계를 주무르는 연합이 되었잖아. 너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누구로 시킬지 결정도 할 수 있고.”
고등학교 때라…….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식이 말대로 감회가 새롭긴 하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면서 나에 대한 모든 걸 버리고 전혀 다른 내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억눌러져 있던 욕망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식이 말대로 지금의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누구로 시킬지 정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나는 더 큰 힘을 가질 것이다. 전 세계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령 더럽고 추악한 일이라 할지라도.
수천 명을 살해한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악마를 수하인으로 부린다고 해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새로운 세계를 위한 일이니까.
* * *
작전명 쉐도우.
예전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아서 그런지 작전명까지 붙이고 움직인다.
총 150명의 정예 요원들이 투입된 이번 작전은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리던 탈레반 정권은 거의 박살이 나버렸다. 그리고 미국은 빈 라덴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는데, 나는 9.11 전부터 놈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터라 별 어렵지 않게 은신처까지 알아냈다.
알카에다 조직도 미국의 맹공으로 인해 와해가 되고 있는 상황.
빈 라덴은 지금쯤 은신처에서 벌벌 떨며 언제 올지 모르는 미군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놈을 공격하는 것은 미군이 아니다.
두두두-!
타타탕-!
나는 작전 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도 총성이 들릴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은신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알카에다 조직원 200명뿐.
150명의 정예 요원이면 아마 맥을 못 추고 당할 게 뻔하다.
나는 조용히 사태가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총성이 계속해서 들리다 지금 잠잠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것일까.
“회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전으로 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끝났냐?”
“예, 마무리 단계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생포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저항하다가 팔에 총상을 입어서 급히 치료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이런 삑사리가.
오사마 빈 라덴이 다치면 안 된다.
팔이라고 해서 목숨에 지장이 없을 순 없다. 피를 많이 흘리면 죽을 수도 있고 잘못된 응급 처치로 감염이라도 되면 그때도 목숨이 날아간다.
“최대한 빨리 데리고 와. 이미 의료진들은 준비해 두었어.”
이럴 줄 알고 의료진들을 대기시켜 놓았다. 그저 늦지만 않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우리 쪽 피해는?”
“없습니다.”
과연 정예 중의 정예라는 건가.
이놈들을 전부 데리고 오기 잘한 것 같다.
“정식이도?”
“예, 누구 하나 다친 곳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식이 이놈이 자기도 가겠다며 칼 한 자루 들고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괜한 걱정이었나. 사지 멀쩡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안심이 된다.
“얼른 데리고 오도록.”
“예, 회장님.”
빈 라덴이 금방 잡힐 거라는 내 예상이 맞았다.
만약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 움직였다면 나도 미국처럼 빈 라덴을 놓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은 처음부터 내 손바닥 안에 있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리도 쉽게 천하 악질의 테러리스트를 붙잡을 수 있었다. 다만, 빈 라덴이 엉뚱하게 죽지 않기를 바랄 뿐.
“회장님.”
위스키 반병을 다 마실 때쯤.
알카에다 은신처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치고는 김민재의 얼굴이 쌩쌩해 보였다.
“어떻게 됐어?”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보내주신 의료진 덕분에 응급처치도 완벽합니다. 팔에 있던 총알도 빼냈고요.”
“그놈을 당장 만날 수 있나?”
“마취를 했던 터라 아직 약기운에 취해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만나실 순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은 차렸겠죠.”
나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 기운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된다면 때려서라도 깨울 생각이다. 어차피 악질 중의 악질인 놈이 아닌가.
테러 조직을 규합하는 배우로 쓰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좋은 대우를 해줄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놈이 반항하면 언제든 제거하고 새로운 얼굴 마담을 세우면 될 일이 아닌가.
내가 그놈을 쓰는 건 별다른 이유가 없다.
새 얼굴 마담을 세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걸 쓰려는 것뿐이다. 놈이 감히 내 위로 기어오르려는 낌새를 보인다면 주저 없이 머리를 날려 버릴 것이다.
“이 안에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환경이 워낙 열악해서 제대로 된 병동도 없다. 그래서 내가 임시로 천막을 쳐서 병동 시설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다.
이런 나라와 대판 싸우고 나서도 아무런 이득도 없이 미국이 물러난다는 게 믿겨지는가?
나는 안으로 들어가 병실에 누워 있는 빈 라덴을 바라보았다.
TV에서만 보았던 얼굴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이게 뭐지?”
“예?”
“왜 저 새끼가 내 앞에서 누워 있냐고. 미친 건가?”
“아…….”
김민재는 얼른 빈 라덴에게 달려가 놈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얼른 일어나서 바닥에 엎드려!”
마취에 깬 지 별로 안 되어 보이는데, 빈 라덴은 뺨을 맞고 어리둥절한 얼굴빛을 띠기만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직원들이 나서서 놈을 강제로 일으켜 내 앞에 패대기쳤다.
“얼른 무릎 꿇어!”
한 곳에서는 발길질이, 다른 한 곳에서는 험한 욕과 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옆에서 경과를 지켜보던 의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화, 환자는 최대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젊은 의사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할 일을 다 하신 것 같은데, 그만 나가십시오.”
“하, 하지만…….”
의사는 내 뒤로 있는 조직원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알겠습니다.”
의사를 따라 간호사들도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는지 빈 라덴은 엉겁결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영어는 할 줄 아나?”
내 물음에 빈 라덴은 몸을 벌벌 떨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뒤에 있던 민재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날렸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잖아!”
“모,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곳이다. 대대로 유학파인 가문이 영어 하나 쓸 줄 모르겠는가?
나는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는 빈 라덴의 오른팔을 발로 꾹 눌렀다.
“크아악-!”
“네가 영어 할 줄 안다는 건 이미 알고 왔어. 어디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 해?”
조직원들은 빈 라덴을 붙잡아 몸부림을 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난 더욱 세게 놈의 팔을 눌러 버렸다.
“그, 그만! 하, 할 수 있습니다!”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쉽게 갈 수 있는 걸 왜 어렵게 가려는 거지?”
조직원들이 손을 놓자 빈 라덴은 숨을 헐떡였다. 마취 기운이 한꺼번에 다 날아갔을 것이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테러리스트의 왕이라는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빌빌거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비루한 남자의 모습밖에 남지 않았다. 난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뭘 원할 거 같은데?”
“모, 모르겠습니다.”
“살고 싶지?”
“…예.”
“수천 명을 학살하고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알라인가 뭐시기를 핑계로 그 짓거리를 해놓고도 밥이 잘 넘어가?”
빈 라덴은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야.”
“그, 그게 뭡니까?”
“테러.”
내 말에 빈 라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알라를 위해 테러를 하는 게 아니야. 오직 나를 위해서 테러를 일으키는 거다. 그것이 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