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얼굴 마담
“새로운 안보법은 우리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9.11 같은 끔찍한 테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 미국은 다시금 위대한 국가가 될 겁니다.”
새 안보법을 놓고 찬반이 오고 갔다.
당연히 종교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며 나섰지만, 거기서도 반반으로 갈리고 있는 추세.
한쪽은 음모론을 들고 나와 미 정부가 국민을 노예화시키려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메리카 케어라고 불리는 이번 법안은 인류를 노예화하겠다는 미 정부의 야망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예화라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미 정부는 오직 시민 하나하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이와 같은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우린 시범 운영을 하기 위해 먼저 애완견에게 RFID 칩을 삽입할 예정입니다.”
대변인이 알아서 잘 대답을 해주고 있다.
내가 회귀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RFID 칩에 대한 찬반이 뜨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의 실종을 막기 위해 생체에 RFID 칩을 삽입하여 실종 사고를 막고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것인데, 워낙 반대가 심하다보니 정부는 시민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것이 뭐겠는가?
바로 그들이 키우는 애완견에게 먼저 삽입을 하는 것이다.
키우는 애완견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RFID 칩을 삽입하게 하여 도난이나 실종 사고를 막고자 했는데, 이건 정부가 훗날 인간의 몸에 칩을 삽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언젠가 인류는 RFID 칩을 자신의 몸에 넣고 다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북하게 생각하며 끝끝내 맞지 않는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친숙한 방법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다.
나도 똑같이 그러한 방법을 택했다.
먼저 애완견에게 삽입을 한 후, 차근차근 인체 삽입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베리칩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도 아무런 해가 없는지 실험을 하기 위해 푼돈이라도 쥐여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멕시코 국민들에게 뿌릴 생각이다.
나는 TV를 끄고 김아름에게 몸을 돌렸다.
“베리칩에 신용카드 기능과 위치추적 기능이 들어간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렇다면 원격 조종으로 베리칩을 터뜨리는 일도 가능합니까?”
“그건… 연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예, 꼭 일러두세요. 미국 전 국민이 베리칩을 맞게 되면 그중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놈들이 꼭 나올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그들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요.”
“예, 회장님.”
사실 범죄를 우려해서 꺼낸 말이 아니었다.
만약 내 뜻에 반하는 놈이 나오거나 골든 연합을 몰아내기 위해 시위라도 일어나면 그땐 최선의 방법을 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자리에서 베리칩을 폭파시켜 그들을 전부 몰살시키는 것이다.
물론, 언론이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나는 다시 TV를 켜고 대변인과 질의응답을 하는 언론인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도 진보하고 있는 인류가 보인다.
* * *
“러시아 쪽 일도 만만치 않을 텐데, 괜한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요. 로이.”
“아니야. 러시아는 강철중이 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내가 미쳤다고 아랍 국가에 넘어갈 줄 알고?”
“그럼…….”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회장님.”
러시아에 있던 김민재를 불러들인 건가.
“괜찮겠어? 미친 광신도들이 득실대는 곳이야.”
“각오는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최선의 결과를 내놓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포부다.
하지만 김민재만 보내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로이, 제 친구 중에 아주 유능한 칼잡이가 하나 있는데. 같이 보내면 어떨까요?”
“칼잡이? 거기서 칼 쓸 일이 뭐 있다고.”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행동해 오던 친구입니다. 센스도 있고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 그렇다면야… 근데 그 친구가 싫어하면?”
“괜찮을 겁니다. 거기에 새로운 조직을 여는 일인데, 아마 마다치 않을 겁니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결정은 우리 보스 몫이지. 보스가 원하는 대로 해.”
나는 씨익 웃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이윽고 핸드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산?”
“어, 정식아. 나야. 혹시 오늘 바로 비행기 탈 수 있냐?”
“비행기? 갑자기 왜?”
“심심하면 미국으로 와서 일 하나 받아 가라고.”
나는 정식이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최정식은 전혀 거부감 없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테러 조직을 하나로 묶어 우리가 다스린다라……. 장난 아닌데? 할 게.”
역시, 이런 일에는 피가 끓는 녀석이지 않던가.
화진파 시절이 그립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놈이니까.
“비행기표 쏠 테니까 바로 넘어와.”
“알겠어.”
정식이는 룰루 콧노래까지 불렀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척박한 아랍 국가로 넘어가는 것인데, 그렇게 좋은가.
막상 넘어가면 우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자자, 일단 이건 나중에 다시 상의하는 걸로 하자. 그리고 워커는 나랑 따로 얘기 좀 할까?”
조직원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내고 로이는 나와 단둘이 자리를 잡았다.
표정이 굳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시죠?”
로이는 대낮부터 독한 술을 꺼내 잔을 채우더니 한동안 말없이 술만 마셨다.
“로이?”
내가 재차 부르니, 그제야 그의 말문이 열렸다.
“일본에 히트맨들을 뿌렸다는 게 사실이야?”
조직원들을 움직이면 로이가 대충 눈치를 챌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나도 갑자기 목이 타서 잔에 술을 채웠다.
“예, 알고 계셨네요.”
“그냥저냥 한 히트맨들을 보냈다면 내가 몰랐겠지. 그런데 우리 조직에서 톱클래스로 관리하는 히트맨들을 보냈더라고. 당연히 알 수밖에.”
러시아에서 히트맨들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로이는 그쪽을 중점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혹시 일본 정부에 쓸 생각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야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 악감정이 많잖아. 보복을 하려고 그러는 거면…….”
“아직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보복할 생각도 없고요. 나중에 제 친구 녀석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생각이긴 합니다.”
일본 정부를 건드리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자 로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럼… 황규혁?”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잔만 들었다. 그러자 로이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뒤바뀐다.
“정말이야? 정말 황규혁 때문이야?”
“만일을 위한 겁니다. 너무 호들갑 떨지 않아도 좋아요, 로이.”
“도, 도대체 왜? 둘은 형제 같은 사이잖아.”
“맞습니다.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고요.”
나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은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동시에 골든 연합의 수장이 아닙니까? 조직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라도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황규혁이다?”
“황규혁 형님은 이미 한번 저의 뜻에 반대를 했어요. 그때 로이도 같이 자리를 하고 있지 않았나요? 물론, 다시 뜻을 돌리긴 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태를 대비하는 겁니다. 황규혁 형님이 우리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럴 리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저는 100% 확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끝까지 의심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보험을 들어놓는 것에 불과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 황규혁 형님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잠깐 보험을 들어놓은 것뿐이다.
“정말이지?”
“예, 정말입니다. 그리고 황규혁 형님이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할게.”
무거워지는 분위기 때문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러시아는 요즘 어떻습니까?”
“뭐, 어떻긴. 완전히 초긴장 상태지. 갑자기 미국이 저렇게 나오는 바람에 지금 온 세계가 난리잖아. 지금쯤 제일 안도하고 있는 건 한국일 걸?”
9.11 테러가 터졌을 때 가장 놀랐던 곳이 바로 한국이다.
만약 이번 테러 주동자가 북한이라고 밝혀진다면 한반도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장소가 될 테니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알카에다에서 영상을 뿌려 9.11 테러는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혀준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러시아가 워낙 땅덩이가 넓다 보니 전부 다 장악을 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언제라도 지원요청을 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걱정 마. 워커가 이미 러시아 정부랑 그쪽 경제를 파탄 내준 덕분에 일이 아주 수월해. 이것보다 더 좋을 순 없지.”
러시아는 이제 걱정을 안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주목을 해야 할 곳은 오직 한곳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본격적으로 세력을 펼치려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정식이와 김민재를 선두로 그곳을 장악하려면 히트맨들도 대거 필요할 거고요.”
“오사마 빈 라덴, 그 새끼는 어쩌고?”
“잡아야죠. 일단 우리 손으로 먼저 잡은 다음에 미 정부에 슬쩍 언질을 줄 겁니다.”
“미국에 넘기려고?”
“아뇨, 왜 넘깁니까? 그 아까운 얼굴을.”
로이는 눈을 껌뻑거리며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미국에 넘기려는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아주 훌륭한 얼굴 마담이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부터 오사마 빈 라덴 쪽으로 사람을 붙여놓지 않았습니까. 신호가 떨어지면 바로 그놈을 붙잡을 수 있게요.”
“그렇지. 그런데 그놈이 얼굴 마담이 된다는 건 무슨 소리야?”
“테러의 상징이라는 거죠. 오사마 빈 라덴은 앞으로도 자주 언론을 타게 될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대사를 쳐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을 보여주게 되겠죠. 그놈 뒤에서 우리가 모든 걸 조종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멍청한 테러리스트들은 그에 열광하며 모여들 거고요.”
로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무릎을 탁 쳤다.
“강제로 모으기는 힘드니까 얼굴 마담을 내세워 동조하게 하자?”
“맞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우리가 뒤에서 테러리스트틀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못하겠죠. 사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계속해서 모여들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이용해 목적을 성취하면 됩니다.”
“목적이라면 베리칩?”
“그렇습니다. 지금도 시민 단체가 베리칩 반대를 외치고 있잖아요. 만약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폭탄이 터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또 반대를 외칠 수 있을까요?”
나의 음흉한 미소에 따라 로이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맞네, 반대만 외치다가 자신들이 죽을 위기에 놓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서겠지.”
“맞습니다. 그리고 베리칩이 미국에 시행되면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베리칩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들도 언제 어디서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게 만든 다음에 말이죠.”
“그때도 오사마 빈 라덴이 얼굴 마담을 하고?”
“예, 아주 쓸모가 있지 않겠습니까?”
로이는 감탄에 감탄을 이어가며 술잔을 들이켰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훌륭한 계획이 아닌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허수아비를 내세워 테러 조직을 모으고 그들로 하여금 전 세계적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표본으로 베리칩 덕분에 테러가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광고해 온 세계가 베리칩을 이어받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다.
난 이것이 결코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곧 현실로 다가올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