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31화 (231/325)

231화. 신세계 (2)

“베리칩이라는 회사는 플로리다주에 있습니다. 나중에 같이 가서 탐방을…….”

“미스터 로페즈.”

“아, 예. 미스터 김.”

“그전에 한 가지 알아봐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힘을 합쳐서 말이죠.”

어쩌면 이 악마 같은 생각으로 인해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최대한 이용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들의 희생을 인류의 번영으로 쓰는 것이다.

“알카에다라는 조직을 알아봐 주십시오. 아마 아프가니스탄에 자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곳의 수장 이름은 오사마 빈 라덴으로 그에 대한 행방도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미스터 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알카에다는 또 뭐고 오사마 빈 라덴이요?”

“예,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다니엘 로페즈를 비롯해 집무실에 모인 모두의 표정이 비슷했다.

생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9월 11일이 되면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하게 될 그 이름이다.

“뭐, 보스의 명령인데 저희는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고맙습니다, 미스터 로페즈. 그리고 로이, 메데인 카르텔을 아랍 쪽에 투입시켜서 한번 알아봐 주세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조사를 하게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최대한 그 조직에 대해 긴밀히 조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뭘 꾸미고 있고 또 어디까지 영향력을 뻗쳤는지도요.”

“음… 알겠어.”

9.11 테러.

나는 아직도 그날의 뉴스가 잊히지 않는다.

4개의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하는 초거대 테러가 아니었던가.

처음에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이걸 막아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차피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내가 한번 막는다고 해서 그놈들이 포기하겠는가? 몇 번이고 시도해서 기어코 해낼 터. 차라리 지금 터뜨리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면 되지 않을까?

미 정부는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것을 빌미로 이라크까지 침공하게 되는데, 내가 원하는 건 이 두 나라의 침공이 아니다. 9.11 테러 이후 바뀐 시민 의식에 대한 것이다.

안보 불안으로 국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베리칩을 상용화시켜 미국 국민이라면 모두 베리칩을 강제로 손목에 박아야 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언론을 이용해 베리칩에 대한 좋은 점만 말하고 안보 의식을 통해 국민들을 세뇌시킨다면?

가히 무시무시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정녕 나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골든 연합이 진정으로 세계를 관장하려 한다면 이 기회를 백번 활용해야 한다. 그 어떤 비난과 욕을 듣게 된다 해도 말이다.

* * *

“오랜만에 보니까 좋네.”

“그러게요, 형님.”

황규혁은 담배를 하나 물며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얼굴을 보니, 아마 궁금한 게 많은가 보다.

“일본은 요즘 어떻습니까?”

“거기는 뭐 항상 똑같지. 병신 같은 놈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죄다 이상한 애니메이션이나 여자 코스프레에 빠져 살고 있어. 덕분에 우리 같은 놈들이 더욱 어깨 펴고 사는 거고.”

일본 국민들은 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없는 나라다. 그래서 국가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냥 조용히 따르기만 한다. 황규혁이 이끄는 마피아 조직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데도 저들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나라라는 건 결국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은 주권 의식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알카에다는 뭐고 빈 라덴은 또 뭐냐?”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일입니다. 일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에 강력하게 경고를 한 적이 있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조직을 경계하라고요.”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뇨. 알카에다 조직은 꾸준히 테러를 일으키고 있어요. 전 세계를 목표로 말이죠. 미국 대사관에다 폭탄을 터뜨린 적도 있고요. 그런데도 미국이 미지근하게 반응을 하니, 더욱 큰 걸 준비하려 할 겁니다. 원래 테러리스트 놈들이 관심 받으려고 무모한 짓을 많이 벌이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

아직은 먼 이야기로 들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가 커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런데 정말 할 생각이야?”

“어떤 걸요?”

“그 베리칩이라는 거 있잖아. 그거 정말 사람 몸에 다 심어놓을 작정인 거야?”

“지금 당장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어렵겠죠. 국민들이 전부 반대를 할 테니까요. 하지만 큰 사건 하나만 터져준다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까?”

“큰 사건?”

“예, 누구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수긍하게 될 겁니다.”

황규혁은 거의 다 핀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물었다.

“그게 알카에다랑 관련이 있는 거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죠.”

“하여튼, 몇 년을 봤는데도 넌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

“하하, 그래서 여기까지 올라온 게 아니겠어요?”

그 말에 황규혁은 씨익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뭘 하든 난 무조건 지지한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쭉 해봐.”

“예, 형님. 덕분에 항상 든든합니다.”

나는 황규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내가 어떤 짓을 벌이든 100% 지지하는 든든한 아군.

하지만 과연 이번 일도 황규혁이 지지를 해줄까?

* * *

“이건 미쳤어, 워커! 이 새끼들 완전히 미쳤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이는 정보를 물어다왔다. 김아름도 비슷한 걸 건진 모양인지 벌써부터 안색이 좋지 않다.

“이건 아랍 쪽에 있는 정보국과 협력해서 알아낸 정보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김아름이 건넨 서류에는 알카에다의 조직 정보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신상. 그리고 그들이 지금 무슨 훈련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나와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네요.”

“예, 준비 기간은 거의 2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의 덤덤한 반응에 옆에 있던 로이가 소리쳤다.

“워커, 놀라지도 않아? 이것들이 지금 뭘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야.”

딱히 놀랄 만한 건 없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살짝 놀라긴 했습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비행기 납치라…….”

“미스터 김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막으실 겁니까?”

다니엘 로페즈의 말에 황규혁이 거들었다.

“막아야지. 이런 인재를 그냥 두고만 본다는 건…….”

“우린 두고 봅니다.”

“…뭐?”

“여기 계신 몇 분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우리의 계획에 이보다 더 좋은 무대는 없습니다.”

다니엘 로페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만약 이들이 정말 테러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것도 미국 한복판에서 비행기들을 추락시켜 테러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준다면? 이거야말로 우리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되겠지요.”

“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게 기회라고?”

“그렇습니다, 형님.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큰 충격에 빠질 겁니다. 단 한 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지 못한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대형 공격을 받았으니 그 공포와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겠지요. 바로 그때를 노리는 겁니다.”

황규혁은 나와 다니엘 로페즈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걸 가만히 두고 보는 것에 모자라 기회로 이용하다니?‘

“저번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베리칩. 이걸로 우린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겁니다. 완벽한 통제로 누구도 골든 연합에 대항할 수 없도록 말이죠. 만약 이들의 테러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베리칩을 강제 합법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김태산!”

황규혁은 참다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제정신이야? 이 일로 몇 명이 죽을지 생각이나 해봤어? 이것들이 만약 테러에 성공한다면 수백 명이 죽을 거야. 그런데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보겠다고?”

나는 그런 황규혁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이미 저와 형님은 양손에 수많은 피를 묻혔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르잖아!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을 죽이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골든 연합이 생기면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수천은 넘어요. 이제 와서 그런 걸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시는 겁니까? 그리고 제가 죽이는 게 아닙니다. 여기 테러리스트들이 죽이는 거죠.”

“뭐, 뭐야?”

“앉으십시오. 제가 존경하는 형님이시지만, 골든 연합에서는 엄연히 제가 위입니다.”

황규혁은 집무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살펴봤다. 저들 모두 나와 비슷한 눈동자를 하고 있다.

“젠장.”

질렸다는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황규혁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런 그를 로이가 위로하며 나섰다.

“워커 말대로 우리가 죽이는 게 아니잖아. 그 나쁜 테러리스트가 그러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막는다고 설쳐봤자, 어차피 언젠간 일어날 일이야. 그게 좀 앞당겨졌다고 생각하면 돼.”

황규혁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우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계획이 뭐야?”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된 건가.

“말씀드렸듯이, 테러가 일어나면 미국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동안 우리는 상원 의원들을 움직여 보안법을 새로 발행해 미국 국민이라면 모두 베리칩을 맞게 하는 법안을 내놓을 겁니다. 또한 미국으로 입국하는 사람이라도 베리칩을 맞지 않으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할 것이고요.”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텐데?”

“물론 그렇겠죠. 일단 종교 단체에서 말이 많을 겁니다. 바코드와 신용카드가 처음 생겼을 때 어땠는지 기억하시죠? 종말이 다가왔다고, 짐승의 숫자라고 절대 받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지금 보세요. 그때 밖에서 시위하던 양반들이 지금 카드를 잘만 긁고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각 종교계에서는 666을 상징하는 악마의 숫자, 혹은 짐승의 숫자라며 절대 써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신용카드의 유행을 그들이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종교보다 우선인 건 편리성이지 않던가.

베리칩도 그렇게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거듭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던 사람들도 결국 신용카드의 유혹에 빠진 것처럼 거센 반대가 있을 것이나 결국 모두 베리칩을 간편하게 쓰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번 테러가 일어나고 나면 법안을 제출합니다. 만일 생각보다 반대가 심하면 그땐 또 다른 테러를 일으켜 공포 분위기를 더욱 조장할 예정입니다.”

“테, 테러를 또 일으킨다고?”

“예, 그땐 우리가 다른 조직을 지원해서 테러를 일으킬 생각입니다.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공포에 빠질 수 있게 말이죠.”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 모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왜들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우리는 세계를 컨트롤하기 위한 계획까지 수립해 놓았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전 어떤 짓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황규혁을 제외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망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일을 드디어 실현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골든 연합.

그것을 위해서라면 난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것이 곧 신세계를 위한 일임을 난 믿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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