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28화 (228/325)
  • 228화. 회초리 (2)

    “화진 카드사가 본격적인 규제에 나서면서 카드 발급을 철저히 막고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카드와 그에 따라 늘어나는 카드빚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고 화진 카드사가 밝혔으며…….”

    “화진 카드사의 브레이크로 우려했던 폭탄이 터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전문가들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다.”

    “화진 카드사를 따라 다른 카드사들도 규제를 내놓을지,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화진 카드사의 발표에 언론이 흔들렸다. 물론, 이들은 감히 화진 그룹을 욕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간의 우려를 표하는 반응이 있긴 했다.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가 줄만 하다. 어차피 얼마 못 가 대대적인 카드 대란이 일어나게 될 테니까.

    그땐 화진 카드사의 선견지명을 언론이 찬양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이것 나름대로 해결이 되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언론사를 향해 칼을 뽑아든 정부.

    원래대로라면 정부는 가벼운 칼질로 대충 상처를 내는 것에 끝을 낸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예 언론사를 끝장내고 진보 정당에 맞춰진 언론사들을 앞세우겠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중이다.

    나를 옹호하는 언론사를 뒤엎고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가겠다는 거 같은데…….

    이건 김일중 정부가 나를 우습게 보았거나, 아니면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신호가 분명하다. 뭐, 그들의 의중이 어떻든 난 내 힘을 가볍게 보여줄 생각이다.

    “유선상으로 전화를 드려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위원장님.”

    “아닙니다. 저도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 섭섭하던 차였습니다.”

    멍청하게 청와대 인사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도 김일중과 한패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한의 지도자이신 분을 전화로 인사를 드리기에는 너무 염치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이거, 제가 해야 할 말을 하시는군요. 저야말로 전 아시아를 관장하고 계시는 분을 전화로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더 방문해 주십시오.”

    “조만간 날을 잡겠습니다, 위원장님.”

    말은 저렇게 해도 김정일은 내가 북한을 드나드는 것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을 것이다. 가끔은 갈 수 있어도 그 횟수가 늘어나면 부담감이 클 게 아닌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뒤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위원장님,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좀 급하신 모양이군요.”

    “하하. 예, 그렇긴 합니다.”

    “어떤 것이든 들어드려야죠. 말씀해 보십시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역시, 김정일은 흔들리는 자신의 권력을 붙잡기 위해 내게는 극도로 예의를 다한다.

    “대한민국 정부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예? 따끔한 회초리요?”

    “예. 뭐, 무력 도발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현재 한국 정부의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깐 멈춰 있던 핵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식으로 성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진심이십니까? 핵 개발. 그거, 정말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핵 기술진들을 보내 드리기까지 했는데요.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김정일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의 말문이 다시 열렸다.

    “저야 괜찮지만, 문제는 중국과 미국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유엔 결의안을 내놓아 경제제재를 하는 날에는…….”

    “그건 제가 막겠습니다. 미 정부에 미리 말을 해둬서 북한이 아닌 한국 정부를 압박하라는 사인을 보낼 겁니다.”

    “하하. 이거 참, 항상 느끼는 거지만 회장님의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말 한마디로 미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니… 거기다가 유엔까지. 실로 부럽기까지 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손해 볼 일도 없고 핵 개발도 진척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중국과 미국의 견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말에 김정일은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럼, 내일 아침 뉴스를 기대하겠습니다.”

    “예, 조만간 꼭 뵙도록 하죠.”

    김정일과의 연락을 끝내고 나는 곧바로 미국에 있는 다니엘 로페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하, 미스터 김. 미국에서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제가 그리운 겁니까?”

    특유의 웃음소리로 전화를 받은 다니엘 로페즈는 변함없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게요. 미스터 로페즈와 또 분위기 좋게 술을 마시고 싶군요.”

    “저런… 천하의 미스터 김이 그런 시답잖은 농담을 다 하는 것을 보니 꽤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군요.”

    나를 오랫동안 겪어와서 그런지, 나에 대해 잘 안다.

    그는 내가 괜한 일로 전화를 걸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안부 인사 하나 해준 적이 없다니.

    좀 미안하긴 하다. 하지만 이쪽에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니 별다른 불만은 없을 것이다.

    “미 정부를 움직일 일이 생겼습니다.”

    “흠, 정확히 어떤 것을요?”

    “곧 있으면 북한이 성명서를 발표할 겁니다.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미 정부가 거기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합니다.”

    “하하, 이런. 한국 정부가 미스터 김에게 반항하기라도 했습니까?”

    로페즈는 한국 정부와 나의 힘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예, 직접 나서기보다는 이런 방식으로 회초리를 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군요. 북한의 성명서가 발표되는 대로 검토 후에 바로 미 정부에서도 행동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로페즈. 다음에는 일 때문에 전화하는 게 아니라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하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이런 게 더 재밌는 걸요? 그럼, 필요한 게 있으면 또 연락 주십시오.”

    로페즈와도 통화를 끝냈다.

    대충 무대는 완성되었다.

    북한이 먼저 토스를 올리면 미국이 스파이크를 때릴 것이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리베로가 얼마나 잘 받아쳐 내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 * *

    청와대에 모인 김일중의 수족들은 긴밀한 회의를 이어가며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주도면밀하게 검찰까지 움직이고 있는 상황.

    여론이 현 정부와 함께하고 있다. 레임덕에 시달릴 시기이긴 하나, 여론의 힘을 입어 김일중은 더욱 힘차게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믿어도 되는 겁니까?”

    “이영학 말입니까?”

    “그래요, 그 사람은 지금 야당 사람 아닙니까?”

    “이번 일만 잘 풀리면 여당 쪽으로 들어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당에 와서 서울 시장부터 시작을 하겠다는군요.”

    당장 대통령부터 하겠다고 엄한 고집을 피우지 않아 다행이다.

    시장직을 통한 다음에 대통령 자리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 아니던가?

    “그래도 잘 주시하고 있어요. 사업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믿음이 안 가.”

    “명심하겠습니다, 대통령님.”

    김일중은 북한에서 겪었던 수모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인 자신은 완전히 등한시해 놓은 채 김태산과 김정일만 서로 짝짜꿍을 맞춰왔다. 물론, 그 덕분에 김일중의 지지율이 치솟긴 했지만 그때 입은 자존심의 상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칼을 갈아왔고, 이제 그 칼을 휘두를 때가 되었다.

    권력 재개편.

    김태산에 대한 모든 비리를 터뜨리고 검찰을 이용해 완전히 사장시켜 버릴 작정이다.

    “대, 대통령님-!!”

    그때 갑자기 여당 원내대표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부, 북한이… 아니, 일단 화면을 먼저 보십시오!”

    다급하게 움직이며 집무실에 있는 TV가 켜졌다.

    채널이 맞추어진 곳은 다름 아닌 평양이었다.

    “간악스러운 남조선 정부의 행동에 위대하신 수령님께서는 분노를 금치 못하셨고, 이에 따라 그간 맺어왔던 협정을 모두 물리며 남조선을 불바다로 만들 핵탄두 개발을 다시 시작하겠다.”

    여자 아나운서의 격분에 찬 목소리에 김일중은 망치에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주변으로 모인 수뇌부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가, 갑자기 김정일 저 양반이 왜 저러는 거야?”

    충격이 컸는지 김일중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러다 번쩍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이, 일단 얼른 언론 보도부터 막으세요! 이게 터지면 그동안 쌓아온 탑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대, 대통령님. 이게 다가 아닙니다.”

    “뭐가 또 있다는 겁니까?”

    “그게…….”

    원내대표는 설명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다고 여겼는지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간신히 만들어놓은 평화가 깨지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미 정부는 한국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그리고 북한과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북미 회담을 열어 문제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맞춰가길 원합니다.”

    김일중은 안면이 꿈틀거리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저, 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건 명백히 누군가의 설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TV 뉴스를 보고 있는 국민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함으로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다고 판단할 터.

    “이미 언론사들이 전부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대형 언론사들이 터뜨리면 그 밑에 있는 언론사들도 전부 터뜨리게 될 겁니다.”

    “이, 이영학 그 사람이 돈을 뿌리고 있잖아. 그럼, 어서 언론사들 기사부터 막게 해야지!”

    “대통령님, 이미 다른 언론사들도 눈치챘을 겁니다. 이게 터지면 아무리 다른 기사를 써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뉴스가 전국에 퍼지면 주가가 폭락하게 될 거고, 개미들의 원망은 고스란히 정부에게 돌아옵니다.”

    김일중은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왜 갑자기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뻔하지 않은가?

    이건 그 사람의 작품이다.

    수뇌부들도 이 사실을 금방 알아차린 모양인지, 그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 이렇게 가면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할 게 뻔합니다.”

    “맞습니다. 그전에 어떻게든 협상을 해야 합니다.”

    “협상? 누구와? 북한, 아니면 미국?”

    “당연히… 그 둘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죠.”

    수뇌부들의 얼굴에는 이미 패잔병의 안면이 담겨 있었다. 잠시나마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아니, 싸움을 걸려 했던 상대의 벽이 너무나도 높았다.

    “아니야. 좀만 더 하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어떻게든 후속 보도를 막고 정부에서도 성명서를 낸다면…….”

    “대통령님, 끝났습니다. 고작 며칠 만에 두 나라를 움직인 거물입니다. 이건 단순히 위협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더 하게 된다면 그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북한이 무력도발이라도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한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수뇌부들조차 백기를 들고 꼬리를 내렸다.

    이들이 함께해 주지 않는다면 김일중 혼자 날뛰어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전화 걸어.”

    “어디로…….”

    “어디긴. 그 대단하신 양반이 있는 곳이지.”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비서실장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김일중은 허망한 눈빛으로 수화음을 듣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