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25화 (225/325)

225화. 나라의 주인 (1)

[외환위기에 따른 푸틴의 적절한 조치가 무너져 가는 러시아를 살렸다.]

내가 지원하는 러시아 대형 언론사가 신호탄을 터뜨리면서 규모를 가리지 않고 각 언론사들이 푸틴을 찬양하는 기사들로 신문을 도배했다.

푸틴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경제 관련 인사들과 담판을 지은 결과 다시 한번 수백억에 달하는 달러가 들어온다는 말에 러시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푸틴 OUT을 외치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푸틴의 용감함을 칭찬했고, 이 상황을 한 발자국 멀리서 방관만 하던 대통령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지 않은가.

언론은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는 본능적인 착각이 무지를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의 장단에 춤을 추게 만든다.

“말씀하신 대로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하던 기업들을 가려내 그들이 쥐고 있는 지분을 전부 사들였습니다.”

외환위기로 인해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하던 기업의 지분은 휴지 쪼가리가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막대한 양의 부채 때문에 그들도 손을 놓아버린 상태.

나는 그것들을 거저먹기로 쓸어 담는 중이었다.

경제 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상태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걸 장악할 순 없다. 천천히 파고들어 붕괴한 기업들을 내가 삼켜야 하지 않겠는가?

급하게 먹었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다.

“국채부터 채권. 전부 들고 있으세요. 우리가 접수하지 못한 기업들이 선을 넘으려 하면 그걸 이용해서라도 길을 막으라는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어느 정도 보험도 들어놨다.

기업들이 의기투합해 내게 대항하려 할 때, 적절히 써먹을 수 있는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러시아 문제 때문에 급히 모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일괄적으로 각 투자사들이 청구한 돈을 전부 세탁해 보내놨습니다. 이미 정부와도 얘기를 끝낸 일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표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이 만연했다.

러시아 투기로 돈도 벌고 수고비까지 챙겼다. 꼭두각시처럼 내게 조종당했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지워졌을 것이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나와 파트너십을 맺은 거라고 착각할 터. 지금은 그런 착각 속에 살게 해주는 게 좋다.

그래야 더욱 열심히 일을 할 테니까.

“로이, 다 들었죠?”

대표들이 전부 밖을 나가고 나서 나는 스피커폰을 향해 물었다.

조용히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로이가 대답했다.

“그래. 무대가 완벽하게 세워졌네.”

“예, 푸틴도 이제 로이를 쫓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진 않을 겁니다. 당당하게 밖으로 나오세요. 그리고 레드 마피아들을 쓸어버리는 겁니다.”

“흐흐, 그 말만 내가 기다렸다고. 그렇지 않아도 여기가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

“마음껏 날뛰세요. 푸틴도 협조를 할 겁니다.”

푸틴은 메데인 카르텔이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해도 그걸 제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쏘라고 총알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됐다.

“푸틴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로이가 조직원들로 깨끗이 정리해 주세요.”

“걱정 붙들어 매셔. 그런데 넌 언제쯤 여기로 오려고?”

“지금 가는 건 좀 시기상 좋지가 않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그때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여기 레드 마피아 놈들이 너 잡으려고 눈에 불을 크기 있으니까. 항상 몸조심하고.”

레드 마피아들도 바보가 아니다.

소련 때부터 지금까지 세력을 키워온 놈들이 아닌가. 이들은 지금 러시아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주동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당하는 자신들이 참 한심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은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무기다. 그리고 난 그 무기가 많을 뿐이고.

* * *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국민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지 않은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세계에 폭풍이 불수도 있고 꽃바람이 불수도 있다.

그로 인해 우방국과 적대국 모두 초미의 관심사가 미국에 쏠려 있으며 이들도 미국 대선에 깊이 참여를 한다.

유령 회사를 이용해 선거 자금을 대서 미리 우호적인 관계를 만든다거나, 뜻이 맞지 않는 후보를 밀어내기도 한다. 그만큼 미국 대선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한판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로 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이 성서를 두고 맹세합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나는 성서에 손을 올린 채 선언을 하고 있는 부시를 TV로 보고 있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순간.

바로 미국 최악의 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저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선이 된 지금 이 순간도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불순 세력들이 저를 공격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약속드리겠습니다. 전 그 어떠한 것에도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부시는 임기 초기부터 잡음이 참 많았다.

부시의 동생이 플로리다에서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곳에서 무효표가 무더기로 나와 부시는 간발의 차로 당선이 되게 된다. 그로 인해 여론이 분열되어 부정선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다가 부드러운 진보성향으로 지지를 받았던 전 부통령 엘 고어는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 법원에 재검표를 요청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는 그 불을 끄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공화당의 승리라… 그동안 진보의 길을 걷던 미국이 이제 다시 보수로 돌아섰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권용일이 즐겨 피우던 시가를 길게 빨아들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엘 고어에게 연기를 뿌렸다.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부시는 스스로가 온전한 우익이라고 하지만, 그는 기독교 극우에서 배출한 인물이 아닙니까? 벌써부터 전 세계가 미국이라는 이름 앞에 얼어붙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회장님. 저를 여기까지 부르신 이유가 뭔지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난 피우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비비며 혀를 짧게 찼다.

“쯧쯧.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자존심 때문에 반항을 하는 거야?”

“…예?”

“저기서 시답잖은 맹세를 하고 있는 저 덜 떨어진 놈이 재주가 좋아서 저기까지 올라간 것처럼 보이나?”

“…….”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엘 고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난 그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저런 멍청한 놈이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나 같은 사람이 더 잘 휘두르지 않겠어? 예전에는 미국 대통령이 능력 좋은 지도자만 앉히는 자리였지만, 지금은 아니야. 재벌들 입맛에,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이 앉는 자리라는 거지.”

“회, 회장님.”

노골적인 내 표현에 엘 고어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세상이 변했어. 훌륭한 정치인이 저 자리에 앉는 시대는 끝났다는 거야. 당신이 아주 좋은 정치인이라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거기까지야. 끝에 가서 똥물 뒤집어쓰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하는 게 좋아.”

훌륭한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시대는 끝났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엘 고어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온갖 더러운 때를 끼고 나오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왜냐하면 그 뒤를 밀어주는 사람들은 깨끗함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그쪽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랑 소송장은 전부 회수해 두라고 했어.”

“회장님!”

“시끄럽게 소리치지 마. 귀 안 먹었으니까.”

엘 고어는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 말씀은… 정말 부정선거였단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하지만 이거 하나는 내가 확답을 줄 수 있어. 여기서 또 한 번 나댔다가는 내 칼이 당신 목을 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동안 청렴한 이미지로 여론 몰이 좀 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막상 파보면 결코 깨끗하지 않은 정치인이었다는 걸 국민들도 알게 될 거야.”

대선에서 패배한 이상, 엘 고어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끝물에 이르는 정치인일수록 뒤끝이 매운 법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단단히 협박을 해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그쪽이 뭐라고 떠들든 들어줄 언론은 없어. 어차피 언론들도 전부 다 내 개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미국이다.

언론, 기업, 국가 기관까지 전부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엘 고어가 그걸 모르겠는가?

그는 클린턴 정부가 반기를 들었다가 탈탈 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예전에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려고 점을 찍어둔 게 바로 나야.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발악하는 이유가 뭐지? 나랑 끝까지 가보자는 심산인가?”

“회장님. 저는 그, 그게 아니라……. 단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그리한 것뿐입니다.”

“하하, 우리 후보님. 나이가 들었는지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정의? 어떤 정의? 그쪽이 내 눈에 낙점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정의롭지 못한 건가?”

“…….”

“그렇게 대통령이 되고 싶었으면 하찮은 국민들 비위를 맞출 게 아니라 내 앞에 달려와서 빌었어야지. 제발 당선되게 해달라고. 부시와 너의 차이점이라면 바로 그거야. 한쪽은 내게 빌었고, 다른 한쪽은 엉뚱한 곳에 빌었고.”

모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지는 세상이다.

엘 고어는 출발선부터 잘못되었다. 그가 내게 매달렸다면 나는 생각을 다시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말년에 험한 꼴 보기 싫으면 이제 쥐 죽은 듯이 살아. 내가 당신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야. 또 한 번 이런 일로 내 귀를 시끄럽게 만든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쪽이랑, 그쪽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전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거야.”

할 말을 끝내고 나는 이제 그만 나가라는 손짓을 보였다.

엘 고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쥐 죽은 듯이 살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게 당신한테도 좋은 일이라는 걸 기억해. 나도 청렴한 정치인, 건드리고 싶지 않으니까.”

“…예.”

엘 고어는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집무실 밖을 나갔다.

만일 부시가 대통령이 되지 않고 저 양반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면 미국은 어떻게 됐을까? 희대의 삽질로 유명한 부시이지 않은가.

그로 인해 세계 전체가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놈을 기어코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엘 고어에게 말했듯이, 다루기가 쉽기 때문이다.

“회장님, 준비되었습니다.”

엘 고어 다음으로 날 찾아온 사람은 공화당 대표였다.

그는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리며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화당 대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따르는 수행원들만 50명이 넘는다.

철저하고 삼엄한 경호 속에 나는 포탄이 떨어져도 살 수 있는 차량에 앉아 목적지에 다다르기를 기다렸다.

이제부터 내가 만날 사람은 앞으로 4년간 이 나라를 운영할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 똑바로 알려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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