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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24화 (224/325)

224화. 거부할 수 없는 거래 (2)

“아주 귀한 발걸음을 하셨군요.”

시작부터 나는 푸틴의 속을 긁었다.

“어떻습니까? 총리님과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특공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사뭇 다른 풍경이군요.”

“유치한 복수라도 하고 싶었던 겁니까?”

“하하, 고작 이런 게 복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나를 아랫사람 취급하더니, 지금은 정중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야 나와 푸틴이 동등한 선상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니, 내가 좀 더 위이려나?

러시아의 목숨 줄을 붙잡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니까.

“앞뒤 자르고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 멈춰주십시오.”

나는 향을 음미하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상대가 진심을 보이는데, 구태여 내 속마음을 숨길 필요는 없다.

“이제 협력할 마음이 생기신 겁니까?”

“협력이라. 정확히 어떤 것을?”

“예전에 합의를 보지 않았던가요? 마피아들을 하나로 모아달라. 그것이 총리님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총리님이 저의 편인 줄 알았지요. 그러나 막상 카드를 까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 방식대로 일을 하는 중입니다. 먼저 그 나라에 있는 마피아들을 쳐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기업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것이든 자금이 없으면 운영되기가 힘드니까요.”

“고작 그걸 위해 러시아 전체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겁니까?”

앙다문 이빨 사이로 분노 서린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유롭게 잔을 들이켜며 커피로 목을 축였다.

“제 방식은 항상 그렇습니다. 주변이 어떻게 되든 제가 알게 뭡니까? 전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듯, 안타깝게도 러시아 국민들이 그 피해를 감당하게 된 것이지요. 어느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말입니다.”

“이보시오, 미스터 블랙!”

“목소리 낮추십시오. 소리나 빽빽 지르려고 이 먼 길을 오신 게 아님을 믿겠습니다. 저는 제안을 다 한 것 같은데, 이제 총리님께서 가지고 계신 패를 까 보십시오.”

푸틴은 미세하게 몸을 떨며 심호흡을 이어가다 내게 말했다.

“내가 지금 전화 한 통화만 걸어도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당신의 조직은 전부 다 끝장이오.”

“어이쿠, 무서워라.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몇 명이나 굴복시켜봤습니까?”

“뭐요?”

“제가 똑같이 되돌려 드리죠. 전 지금 제 전화 한 통화면 러시아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핵만 터지는 게 아니에요.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잘못된 정부의 정책으로 돈을 잃은 국민들이 당신을 끌어내리려 하겠죠. 그걸 원하십니까?”

“지금 그게 무슨……!”

“아시겠습니까? 협박이라는 건 이렇게 하는 겁니다.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십시오. 러시아에 있는 조직원들을 당신이 다 죽인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짝하는지.”

나의 노골적인 협박에 푸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천하의 푸틴이 당황하는 얼굴을 다 보다니. 나름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내놓을 패는 그게 다 입니까? 정말 그러시다면 저도 다음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행동? 구체적으로 어떤 걸?”

“뻔하지 않습니까? 이미 러시아 경제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결정타를 날려야죠. 국민들이 분노할 수 있게 적절한 언론 플레이도 해주면서 동시에 똥값이 된 주식들을 사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돈지랄을 하는 거죠. 한동안 러시아는 기쁨과 좌절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뒤바뀔 겁니다.”

“그럴 내가 가만두고 볼 거 같나?”

“지금 러시아 국민들이 원하는 게 뭡니까? 바로 달러 아닙니까? 달러가 넘쳐나다가 지금은 달러를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실정이니 아우성을 치는 거겠죠. 하루에도 수백 개의 회사가 무너지고 있다던데, 여기서 달러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악순환의 고리다.

당장 한국의 실정만 봐도 그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제 조국인 한국도 그런 식으로 당했어요. 외국인 투자자들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경제를 흔들어놓았죠.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은 장밋빛 미래만 바라봤고요. 그러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IMF 총재가 고작 20억 달러 던져 주고 대한민국 경제를 휘둘렀습니다.”

푸틴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방금처럼 날카롭게 말하진 않았다.

“그 IMF 총재의 전횡을 막은 것이 회장님이라고 들었는데요?”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우리나라는 IMF 총재의 말에 휘둘리며 휘청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막대한 양의 달러를 들고 오지 않았던가?

팩트를 체크하자면 내가 IMF 총재보다 더한 놈이긴 하다.

그놈은 우리나라를 흔들며 은행 몇 개를 인수해 가려 했지만, 나는 아예 대한민국 전체를 통째로 장악했으니까.

“총리님은 그런 제 전횡을 막을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러시아에서 구원자 역할을 자처할 사람이 있던가요?”

“…….”

“저는 제 패를 다 깠습니다. 이 길로 러시아에 돌아가셔서 방비를 하시든 뭘 하시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후…….”

푸틴은 결국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잔에 있던 블랙커피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뭘 원합니까?”

드디어 원하는 말이 나왔다.

위협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거래를 할 때다.

“우리의 거래는 예전과 똑같습니다. 총리님은 마피아들이 사방에 뿌려져 있는 걸 원치 않으시죠. 그들을 하나로 모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골든 연합은 앞으로 총리님을 절대적으로 지지할 겁니다.”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예전에 총리님과 제가 대화를 나눴을 때 나왔던 부분 아닙니까? 저는 총리님과 척을 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러시아의 경제 위기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세요. 마피아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이 무너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쪽에서 다 먹을 거 아닙니까?”

“뭐, 그건 부수적인 겁니다. 중요한 건 총리님의 편을 들어줄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총리님은 더욱 거칠 것 없이 나아가시면 됩니다.”

푸틴의 표정이 미묘했다.

러시아 레드 마피아들의 세력이 약해지는 대신, 골든 연합의 세력이 왕성하게 커진다.

그리고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은 조만간 골든 연합 밑으로 들어가게 될 터. 이것이 과연 자신에게 독이 될지, 아니면 득이 될지 가늠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고 해서 나아질 게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총리님께 주어진 옵션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저와 손을 잡고 혼란을 종결시키거나, 아니면 러시아가 붕괴되기까지 지켜보시거나. 어떻게 하실 겁니까?”

푸틴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가에 잠겨 있었다.

난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중국, 미국, 일본, 한국을 보십시오. 저는 그곳에 있는 지도자들이 뭘 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간섭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강압적으로 명령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지도 않겠지.”

“하하, 그건 그 사람들이 하기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저도 정권 눈치를 보면서 움직이긴 합니다.”

“그걸 위로라고 하는 겁니까?”

“위로로 들리십니까? 아니면 앞으로의 계획으로 들리십니까?”

푸틴은 이번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 * *

“나중에 또 뵙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뒤에 물러나실 분을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군요.”

가는 순간까지도 뒤끝을 잊지 않는 푸틴이었다.

그 대답을 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안색이 붉어졌다.

푸틴은 클린턴 옆에 있던 내게도 손을 건넸다.

“우리의 앙금은 여기서 끝냈으면 하는데……?”

“물론입니다, 총리님. 서로 잘되자고 하는 일인데, 앙금이 남아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린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힘이 가득 들어가 있는 악수.

이것으로 우리의 거래가 체결된 것이다.

어차피 거절이란 처음부터 없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거래였으니까.

푸틴은 그 길로 비행기에 올라 미국 땅을 떠났다.

이미 백악관을 나서기 전부터 플래시 세례를 받은 터라 여기는 언론 기자들이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나는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내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 영감 하나가 서 있다.

“대통령님.”

“아, 예. 회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이 그리 명예롭지는 못했지만 이번 일을 잘 포장해서 명예를 회복하실 수 있게 도움을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대답이 좀 느리다.

아직 대통령 때의 자존심이 남아 있는 것일까.

하긴, 8년 동안 대통령 짓을 해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길로 새지 않게 조심하셨으면 합니다.”

“…예.”

마지막 경고도 잊지 않았다.

러시아와 푸틴 총리가 내게 무슨 수모를 겪었는지 클린턴은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그게 미국에, 미국의 대통령에게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만큼 돈의 힘이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푸틴을 보내고 나서 나는 집무실로 돌아와 회의에 돌입했다.

앞으로 러시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미 푸틴은 내게 한 수 접고 들어가며 사정을 구했다. 이제 그는 나와 협력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주야장천 러시아를 때리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여기 있는 회사들을 제외하고는 당장 회생 가능한 회사들부터 수혈을 해주세요.”

“이 회사들은…….”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곳들입니다. 망하기 직전까지 놔뒀다가 마지막에 전부 사들이십시오.”

“파산은 시키되, 흡수를 하는 건 우리 쪽이라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각 투자사 대표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내 말을 헤아렸다.

푸틴과 협정을 맺은 이상, 숨을 쉴 수 있는 틈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레드 마피아들의 돈줄을 전부 끊어놓겠다는 계획은 변하지 않았다.

이 기회에 아주 씨를 말려 버릴 예정이다.

“지금 달러가 투입된다면 러시아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한번 크게 데여봤으니 지금은 조심성을 기울이겠죠. 저번처럼 광기로 뒤덮이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이 정도의 충격을 겪고 나서 정신을 차리지 않을 리 없다.

이번에 들어오는 달러들을 무작정 쓰진 않을 거라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와 잘 조율해서 계획서를 만들어내세요. 제가 보고 직접 판단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전으로 인해 투자사들이 입은 피해는 제 앞으로 달아놓으십시오. 저번 날 말씀드렸듯이, 보상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숨통이 트입니다.”

엄살들 떨기는.

이들에게는 보상이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수고비다.

이들이 정말 크게 피해를 입었겠는가?

아니, 오히려 이들은 내 덕분에 큰 이득을 보았다.

대형 투자사들과 수천만의 개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 바로 러시아 작전주다.

물론, 돈을 번 건 대형 투자사들이고 돈은 다 잃어가며 저들의 배를 불려준 건 개미들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들에게 수고비를 줘야 하는 건 맞다.

적절한 포상이 내려져야 머슴들은 몸 아픈 줄 모르고 일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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