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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20화 (220/325)

220화. 월가의 신 (2)

월가에 내로라하는 두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월가의 큰손은 곧 세계의 큰손이다.

이들은 그 큰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각 투자 은행의 대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곧게 서 있는 샴페인 잔을 들고 각자 무리를 지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교 파티 광경이다.

그러나 오늘은 사교성이나 늘리자고 모인 게 아니다.

“대표님께서 별로 경각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직접 오시지 않고 심부름꾼을 보내다니.”

부시의 명령으로 파티에 참석한 것은 훗날 미국 재무부 장관이 될 스티브 렌델이었다.

나의 따가운 언사에 내 곁으로 모여든 사람들도 렌델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회장님. 대표님께서는 파티에 꼭 참석하고 싶어 하셨지만 언론의 눈도 있고 대선 유세 때문에 바쁘셔서 그런 겁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렇다는 건 당신이 그만한 권한이 있다는 건가?”

“그, 그게…….”

“잘 말해야 할 겁니다. 권한도 없는 사람이 파티에 참석해서 내 아까운 시간을 뺏었다는 게 알려진다면 과연 유권자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까요? 어차피 그 사람들 눈 감고 투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미 부시를 밀겠다고 천명한 재벌들이다.

아무리 아니라 말해도 어쩔 수 없이 선거는 자본에 의해 좌우된다. 선거 운동 일체 모든 게 다 돈이니까.

특히 직선제도 아닌 미국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전체 유권자의 지지에서 밀려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만이다. 전략만 잘 짜면 자본으로 좌지우지하긴 더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겐 무소불위의 ‘총’이 있다. 그 어떤 정적이라도 찍어 누를 수 있는.

미국이 워낙 재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도 재벌 나름이다.

정치계를 주무르고 있는 상위 재벌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

“11월에 있는 대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시도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선거라는 게 원래 알 수 없게 바뀌지 않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회장님.”

“내가 알기로 당신은 재무부 장관 자리를 약속 받은 것 같던데……. 그 정도면 나름 권한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것이…….”

렌델은 눈알을 굴리며 변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난 그런 그의 얼굴에 샴페인을 뿌렸다.

깜짝 놀란 렌델은 움찔거리며 입만 벙긋거렸다.

주변 사람들도 놀라 나와 렌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아, 아닙니다.”

“어떻게 봐도 나랑 장난하는 거 같은데.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라도 했나?”

“저, 절대 아닙니다. 오해를 풀어주십시오.”

“그래? 그런데 왜 아까부터 말을 끌고 있지? 난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야. 근데 너 같은 새끼가 내 시간을 축내려고 들어?!”

내 높아진 언성에 렌델은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반드시 관철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나는 노기를 거두고 손수건 하나를 꺼내 렌델에게 건넸다.

“진작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그랬습니까? 괜한 오해를 했군요. 자, 이걸로 닦으십시오.”

“…예. 가, 감사합니다.”

난 그가 얼굴에 묻은 샴페인을 다 닦기도 전에 본론을 꺼냈다.

“대표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현재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판하라고 말입니다. 취임을 하고 나서도 러시아에 대한 날을 세워 압박을 펼치라고.”

“…예?”

“제 말, 못 알아들으셨습니까?”

내 눈빛에 렌델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갑자기 왜…….”

“곧 월가를 주름잡는 모든 투자사들이 러시아에 집중 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서, 설마 러시아 경제를 흔들 작정이십니까?”

과연 미래의 재무부 장관답다.

우리가 결코 좋은 의도로 러시아에 자본을 투입하려는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예, 맞습니다.”

“하, 하지만 러시아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볼지…….”

“그들이 지켜본다고 한들 어쩌겠습니까? 리턴 쉐어즈에서 운용 중인 자금 중 30%만 이용해도 아시아 전체가 휘청거립니다. 제2의 IMF 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러시아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그들이 어떤 규제를 한다고 해도 한번 흐르기 시작한 돈을 막진 못합니다.”

해외 자본을 철저히 금하다가 소련이 멸망하면서부터 유입을 시작한 러시아다.

한번 개방된 시장은 닫을 수 없다.

이미 해외 자본에 때가 낀 시장이지 않은가?

갑자기 쇄국 정책을 펼쳐 버리면 내수 시장은 그대로 멸망이다.

제2의 소련이 되고 싶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어쩔 수 없이 해외 자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설령 투기 자본이라고 해도 말이다.

“대립각을 세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경제와 정치를 동시에 흔들게 되면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표님께는 제가 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이 정 말을 듣지 않으시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주변 사람들도 의원님께 힘을 실어줄 거니까.”

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이미 부시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부리는 놈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렌델은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 확실히 감이 왔을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할 일도 많으신데 제가 너무 시간을 빼앗았군요. 제 사람들을 시켜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여기서 시간 끌지 말고 얼른 꺼지라는 뜻이었다.

렌델은 곧장 내 말을 알아듣고는 다시 한번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린 다음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저 친구 섭섭하지 않게 뭐라도 줘서 보내세요.”

“그렇지 않아도 수고비 정도는 챙겨줬습니다.”

역시,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김아름이었다.

“후하게 줘요. 우리야 남아도는 게 돈이니까.”

“예, 회장님.”

나는 아까부터 긴장감이 가득해진 연회장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 명씩 만나 잔을 나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연회가 무르익었을 때, 몇몇 주요 인사들이 연회장 밖에 있는 집무실로 들어와 같이 앉게 되었다.

“아까 제가 렌델에게 했던 말을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들었을 거라 믿습니다.”

“예, 회장님.”

골드만삭스, J.P 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월가를 책임지는 9개 투자사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골드만삭스 측에서는 러시아에 어느 정도의 금액을 투입할 수 있겠습니까?”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함부로 자금을 움직이게 되면 투자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 매우 조심스러운…….”

“나가.”

“…예?”

“그따위 소리 할 거면 나가라고.”

골드만삭스 대표 로저스 프리먼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그런 소리 들으려고 당신을 여기로 부른 거 같아? 방금 그 말은 앞으로 골드만삭스는 우리 골든 연합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걸로 간주하지.”

“회, 회장님!”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투자사들이 전부 골든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다.

이들은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를 기가 막히게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어디로 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아니까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방금 골드만삭스는 나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

골든 연합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건 골드만삭스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싶다는 뜻일 터. 나는 그런 놈들을 붙잡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다.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내일 아침부터 IRS와 법무부 직원들을 한 트럭 태워서 보낼 테니까. 골드만삭스가 부디 깨끗하고 모범적인 회사이기를 바랄 수밖에.”

투자사를 털면 먼지 묻은 돈 말고 또 뭐가 나오겠는가?

로저스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른 내게 빌었다.

“회장님, 오해이십니다.”

“뭘 오해한다는 거지? 내 말보다 고객의 뜻을 더 중요시한다고 하지 않았나?”

“절대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회장님의 말씀을 가벼이 듣겠습니까?”

나는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는 건 골드만삭스도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뜻을 함께한다는 것이군요.”

부드러운 내 목소리에 로저스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하하, 조금 힘이 드셔도 참아주십시오. 이게 다 영광스러운 미국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절대 개인의 이득 보고자 벌이는 일이 아닙니다. 강대국인 러시아를 견제해야 미국이 더욱 강성해져서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김아름에게 눈짓을 보내 준비했던 서류를 나눠 주었다.

그들은 건네받은 서류를 읽어보더니 차츰 눈동자가 커졌다.

“앞으로의 계획이 이렇습니까?”

“예, 누가 봐도 완벽한 투기 계획이 아닙니까? 적당한 선에서 치고 빠지게 될 겁니다.”

“이런 대대적인 작전을 벌인다면 러시아 정부가 굉장히 발끈하게 될 텐데요.”

“아마 여러분들에게 러시아에서 소환장이 떨어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 후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저들도 서류를 읽고 알았을 것이다.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전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월가의 자본이 러시아로 집중 투입된다면 아마 잠깐이나마 러시아는 대호황을 누리게 될 터. 하지만 주가를 올릴 대로 올린 다음 썰물 빠지듯이 빠져 버린다면? 주가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곤두박질치면서 러시아 경제는 한순간 파탄 지경에 이른다.

이 출렁이는 파도를 견디는 몫은 오롯이 푸틴의 일이 될 것이다.

* * *

“월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월가를 대표하는 9개의 투자사들은 러시아가 크게 발전하여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며 그에 따른 투자 상품을 만드는 데에 열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 뉴스에서는 러시아가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 신흥국이 될 것이라며 떠들었다.

뉴스에서 계속 러시아 이야기만 해대고 있으니, 미국의 개미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투자자들은 돈을 전부 회수해 러시아로 분산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각 투자사들은 앞다투어 투자 상품을 내놓았다.

그야말로 황금의 수요일.

언론사의 힘이 다시 한번 얼마나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광경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목돈을 들고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고, 무리하게 빚을 지면서까지 달려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마치 빛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러시아 쪽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쪽에서는 아직 체감을 못하는 모양입니다. 언론사도 조용하고요. 대신, 러시아 정부도 급작스러운 투자에 경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워낙 목이 말랐던 터라 그런지 별다른 제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러시아는 아직 우리의 계획을 모른다.

단순히 투자 열풍이 불어 러시아를 휩쓸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일 터.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이 신드롬을 반기고 있는 추세다.

러시아는 외국 자본이 잘 들어가지 않는 시장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도 더뎠다.

소련이 붕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때문에 시장이 위축된 건데, 이러한 영향 때문에 러시아 정부에서는 각 나라의 투자를 받기 위해 스스로 어필을 할 정도였다.

당연히 이런 열풍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물론, 경계는 좀 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불기 시작한 바람은 막을 수가 없다.

이 바람이 곧 태풍이 되어 러시아 전역을 휩쓸어도 이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바람이 과연 어디까지 러시아를 휩쓸고 지나갈지 나도 모른다.

확실한 건 푸틴의 심장이 철렁일 정도로 강력할 거라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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