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18화 (218/325)

218화. 밑져야 본전

체첸 마피아의 수장 라노프 샤이에르는 체첸 2대 수장으로 그의 아버지가 이뤄놓은 조직을 지금의 규모까지 키워놓았다.

소련 시절 때부터 활동을 이어가다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부터 급성장을 하게 된 레드 마피아는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어 러시아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레드 마피아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다.

천하의 푸틴도 오랫동안 러시아를 독재하게 되지만, 자잘한 레드 마피아들만 잡아넣을 뿐. 체첸 마피아 같은 큰 조직은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즉, 레드 마피아들이 모두 활동을 멈추면 러시아 경제도 순식간에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푸틴은 레드 마피아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작은 조직들은 소탕해 언론용으로 쓰고 큰 조직들과는 손을 잡아 용병으로 활용하며 독재 체제를 굳건히 하게 된다.

“꼭대기 층으로 그냥 올라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지금 올라가고 있잖아.”

“그러니까 제 말은……. 아닙니다.”

엉겁결에 로이를 따라 나도 헬기에 올라탔다.

로이의 발상은 간단했다.

꼭대기 층에 있는 놈만 잡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헬기를 끌고 가 꼭대기 층만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게 로이의 계획이었다.

“푸틴 그놈이 분명히 말했지. 공권력 투입 안 할 거라고.”

“적정선만 지킨다면야…….”

“그 적정선이 뭔데?”

“헬기 타고 설치는 건 선을 넘은 게 아닐까요?”

“그래? 그럼 핵이라도 떨어뜨리는 건 괜찮으려나?”

로이는 낄낄 웃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조종사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다.

로이는 고풍스럽게 지어진 호텔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갈겨 버려. 꼭대기 층만.”

“예, 카포.”

그냥 싸구려 헬기가 아닌, 실제로 미국에서 군용으로 쓰고 있는 아파치 헬기였다.

이 굉장한 걸 어떻게 러시아까지 가져왔는지가 의문이지만, 로이는 거칠 것 없이 총을 난사시켰다.

두두두두-!

“총만 쏘지 말고 미사일도 쏴! 아예 박살을 내 버리게.”

“예, 카포.”

감히 자신을 기습한 체첸 마피아를 향해 복수 혈전을 벌이는 듯, 로이는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미사일이라.

푸틴이 말한 적정선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거 정말 괜찮을지…….

“로이, 무식하게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타격 팀이라도 보내서…….”

“발사-!!”

로이는 조종사의 손을 쳐서 발사 버튼을 강제로 누르게 했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미사일 하나가 반짝이는 야경을 자랑하던 호텔 꼭대기 층으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아…….”

난 그 광경을 보며 짧게 탄성을 질렀다.

만약 이 장면이 영화로 나왔다면 슬로우 모션과 함께 행진곡이 배경으로 깔리지 않았을까.

콰콰쾅-!!

폭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시커먼 연기를 쏟아냈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식간에 몸이 녹아버렸을 것이다.

로이는 폭죽놀이를 보듯,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해서 좋네. 이렇게 끝내니까 얼마나 좋아.”

“…너무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을 해봐. 체첸 마피아 새끼들이 우리가 머물던 호텔에 쳐들어와서 한 짓이 저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걸?”

그렇긴 하다만.

나도 이젠 모르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이왕 한 발 쏜 거 하나 더 쏩시다. 한쪽만 부셔놨으니까요.”

“하하, 이래야 우리 보스답지.”

로이는 조종사를 시켜 그 옆에도 미사일을 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기관총을 쏴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벌집으로 만들어놓았다.

“이제야 속이 후련하네.”

할 만큼 했다고 여긴 로이는 손을 돌려 헬기를 돌리게 했다.

“나머지는 애들한테 맡기고, 우리는 가서 고기나 썰자.”

이미 헬기 밑에는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대기 중에 있다. 그들은 신호가 떨어지는 대로 호텔 안에 진입해 현장 상황을 파악할 예정이다.

라노프 샤이에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체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해산물이나 먹으러 갈까?”

그동안 나와 로이는 한가롭게 식사를 하며 기다리면 된다.

* * *

“랍스터부터 연어 스테이크까지. 전부 다 해산물인데?”

“립아이 스테이크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응, 그렇게 해줘.”

저 셰프의 얼굴이 낯이 익다 싶었는데, 저번 날 로이가 학살을 벌여놓은 그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그는 로이의 전담 요리사가 된 모양이다.

“화진 그룹은 언제쯤 러시아로 들어와?”

“일단 북한 쪽에 먼저 들어간 다음, 차차 들어오게 될 겁니다.”

“음, 꽤 걸리겠네, 시간이.”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빨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워낙 땅덩이도 크고 쓸어버려야 하는 세력도 많으니까요.”

러시아가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

중국은 삼합회가 대부분 통합이 되어 있어 처리하기가 쉬웠지만, 러시아는 점조직 형태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바람에 하나씩 처리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독재자 푸틴은 우리를 도울 생각이 없다. 그는 지금도 간을 보면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테스트만 해보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한꺼번에 다 죽이고 싶어. 너도 알잖아. 메데인 카르텔이 어떻게 컸는지.”

잘 알고 있다.

메데인 카르텔은 파상 공세를 이어가며 적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몰아넣는다. 그리고 속전속결을 할 줄도 알아 언제나 빠르게 원하는 구역을 점령해 나갔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그와 같은 강점을 잘 활용하질 못하고 있다.

“이놈들 너무 분산되어 있어. 3개의 큰 조직이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자잘한 놈들이 너무 많고 당장 저 큰 조직들도 점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흡수하는 게 쉽지가 않네.”

“로이와 제 성격상으로 보자면 짜증나는 상황이긴 하죠.”

“그래, 그 푸틴 그 새끼도 크게 우리한테 협조를 하는 것 같지 않고. 정부의 협조만 잘 받으면 금방 끝낼 수 있기도 한데…….”

푸틴이 너무 관여를 하게 되면 우리한테 불리할 수도 있다.

그가 우리 조직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되면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 숙청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체첸 마피아의 공격에서 한번 죽을 뻔했다. 이게 만일 체첸 마피아가 아니라 푸틴이 움직이는 특공 부대였다면?

백이면 백.

우리 둘은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우리 힘으로 이들을 강제 흡수시키고 푸틴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나아가 푸틴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만 러시아에서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아직 푸틴이 본격적인 집권을 하는 시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마피아들이 저렇게 학살을 저지르며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몇 년만 지나면 푸틴이 특공대를 전부 풀어 마피아와 대전쟁을 벌인 다음 몇몇 가치가 있는 조직을 살려주게 된다.

“곧 있으면 미국도 대통령이 바뀌잖아. 그것 때문에 요즘 다니엘 로페즈가 좀 바쁜가 봐. 소식은 들었어?”

조만간 미국 대선이 있다.

2001년 1월 20일에 조지 워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뇨. 아직 못 들었습니다.”

“이번 일만 끝나면 한번 연락이라도 해봐. 다니엘이 그러는데, 300인 회의에서 공화당을 밀자는 걸로 결론이 났다고 해.”

300인 회의는 전 세계의 재벌들이 모이는 자리로 유명하다.

말이 300인이지, 500명도 될 수 있고 1,000명도 될 수 있으며 낮을 때는 100명도 될 수가 있다.

유동성이 많은 회의이기는 하나, 여기서 결정되는 사안은 굉장히 중요하다.

당장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기도 하며 UN을 비롯한 각 세계의 중요 안건들이 결정되기도 한다. 워낙 입김이 강한 사람들도 많아 각 재벌들끼리 단합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이곳이 모티브가 되어 음모론에도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워낙 말도 안 되는 무성한 이야기가 많긴 하나 결정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는 굉장한 자리라는 건 부정 못할 사실이다.

나도 골든 연합이 생기고 나서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화당을 밀자고 했다면 보나 마나 부시겠네요.”

“그렇지. 그 사람 부모도 백악관에서 살다 왔잖아. 대를 잇는 거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에 이어 조지 워커 부시까지 대통령을 잇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조지 워커 부시가 미국 최악의 대통령이 되면서 명예로웠던 가문에 영원한 수치가 씌어진다.

그러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구나.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9.11테러가 말이다.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로이. 아랍 쪽에는 메데인 카르텔의 활동 반경이 어느 정도 됩니까?”

“아랍? 거기야 기름 파는 곳이잖아. 거기 주민들은 못 살지만 돈 많은 놈들은 끝장나게 많지. 그런데 워낙 민감한 곳이라서 아직 크게 활동을 하진 못해.”

산유국은 강대국의 비호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기름이 없으면 어떤 나라도 제대로 돌아가질 못하니까.

그래서 로이도 아직 그곳에는 진출을 하지 못한 것인가.

“러시아 먹으면 아랍으로 진출하려고?”

“뭐…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막상 진출을 하려고 해도 2001년 이후나 될 거예요.”

“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슬슬 결과가 나올 텐데…….”

로이가 말하기 무섭게 김민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카포, 그리고 회장님. 라노프 샤이에르를 잡았습니다.”

“잡았다고? 죽은 게 아니라?”

“예, 카포.”

그 난리를 쳐놨는데 죽지 않았다는 건가.

하지만 생포를 했다는 게 더 대단하다.

“그놈이 어떻게 살았지?”

“차라리 잘된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라노프 샤이에르라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체첸 마피아의 수장인데 아는 건 많겠죠.”

로이는 턱을 긁적이더니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가볼까? 면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봐야지.”

“예, 미사일 두 방에 수백 발의 기관총을 쐈는데도 죽지 않은 걸 보면 불사신이나 운이 좋거나 둘 중 하나겠죠.”

“흐흐, 글쎄. 정말 운이 좋은 걸까. 우리한테 산 채로 잡혔잖아.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생각보다 큰 수확이다.

내가 처음에 조직원들을 보내 모스크바 펠리스 호텔을 습격하려 했던 건 라노프 샤이에르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무려 체첸 마피아의 수장이지 않은가.

우리보다 아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중요한 자원을 그냥 죽이기는 너무 아깝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려 한 건데 로이가 흥분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하늘은 나의 편이란 말인가.

라노프 샤이에르라면 체첸 마피아의 세부적인 사항도 전부 알고 있을 터.

운이 좋다면 체첸 마피아가 소련 시절 빼와 지금까지 은밀하게 숨기고 있는 무기들을 압수할 수도 있다.

그를 잘 이용한다면 러시아를 청소하는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다.

만약 쓸모가 없다면 그때 가서 죽여도 늦진 않다.

밑져야 본전이지 않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