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뒤바뀐 명운 (2)
김정은이 집권을 하면서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하게 된다.
오른팔인 최룡해와 리영호 등의 군부 라인을 이용한 군사적 권력을 꾀했는데, 김정은이 권력을 잡자마자 대대적인 숙청을 벌이고 만다.
그로 인해 장성택은 자신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을 잃고 말았고 오른팔인 최룡해까지 장성택을 배신하는 바람에 그는 결국 모독죄로 처형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김정은은 북한 최고 권력자가 되어 적어도 북한에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의 힘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역사가 바뀌려 하고 있다.
북한 최고 군사 지위를 갖고 있는 리을설이 내게 손을 내밀었고, 장성택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진 최룡해까지 거기에 포함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무슨 뜻이겠는가?
“이렇게 단둘이 자리를 또 잡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저 약소한 선물이라도 드릴까 싶어서요.”
나는 수백억 원의 가치를 가진 상자를 하나 건넸다.
그 안에는 수십 개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다.
내용물을 확인한 리을설의 게슴츠레한 눈이 희번덕 떠졌다.
“그 어느 나라를 가서도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겁니다.”
“허허… 이거야 원……. 이런 정성이 담긴 선물을 사양할 수도 없고.”
“작은 선물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이런 건 자주 보게 되실 겁니다.”
단발성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백억 원쯤은 내게 껌값도 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나의 재력을 리을설도 대충은 알고 있다.
“역시, 전 아시아를 주무르고 계시는 분답군요.”
“과찬이십니다.”
“저도 뭔가를 드리고 싶지만, 당장 준비된 게 없습니다. 다음에는 꼭 저도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제 궁금증을 하나만 풀어주시면 됩니다.”
“말씀하십시오.”
리을설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푸근한 표정을 보였다.
어떤 놈이나 이런 고액의 선물에는 경계심이 풀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작전에 장성택 대의원도 관련이 있는 겁니까?”
전혀 경계를 하고 있지 않다가 내 말을 들은 리을설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알고 계셨습니까?”
생각 외로 순순히 실토를 한다.
“최룡해 차수가 있을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최룡해 차수가 있다면 리영호 차수도 이번 일을 도모하고 있겠군요. 둘 다 장성택 대의원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목이 타는지 리을설은 앞에 있던 물 잔을 벌컥 들이켰다.
리영호는 방금 전 가졌던 만남에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예, 저도 마냥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김정일이 언제 죽는지 알려주면 이 양반, 아마 까무러칠 거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수령님께서는 장성택 대의원을 못마땅하게 보고 계십니다.”
나도 알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 파에 서서 쾌속 승진을 거듭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집단 지도 체제라는 것을 건의하는 바람에 김정일의 미움을 샀다.
집단 지도 체제는 김 씨 일가의 독재를 막는 정책이나 다름없다.
김정일이 미쳤다고 그걸 받아들이겠는가?
거기서 김정일은 눈치를 챈 것일 수도 있다.
장성택에게 야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장성택은 북한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야망이 있다. 그래서 김정은이 그를 숙청시켜 버리는 것이다.
“장성택 대의원이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불호령을 맞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마냥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고요.”
내 대답에 리을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말하신 것과 같이 수령님께서는 장성택 대의원에게 불호령을 내리셨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크게 벌을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사상 교육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가택에 연금시키는 것일 수도 있지요.”
“둘 다 일수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장성택 대의원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이 말입니까?”
“예, 이러다가 목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아닌지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차츰 자리를 위협받고 있던 장성택. 하지만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그는 김정은의 지원자로 나서게 되며 2인자 구도를 걷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다 보니 갑자기 일이 그렇게 풀려 버린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감사하게 여기면 다행인데, 장성택은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북한의 김 씨 일가가 아닌 장 씨 일가의 대업을 꿈꿨다는 것.
그 헛된 욕망 때문에 그는 김정은에게 목이 달아나 버린다.
하지만 지금의 장성택은 밑바닥에서 기고 있을 때다. 언제 김정일 손에 죽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장성택 대의원이 김 씨 일가를 갈아 치우고 장 씨 일가를 세우려는 것은 아니겠죠?”
“그랬다가는 민심이 흔들립니다. 김 씨 일가를 신처럼 받들고 있는 인민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장성택이 지도자가 된다? 반발이 있을 수밖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TV를 보면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본 북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곤 하는데, 우리 쪽 사람들은 그게 전부 연기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김 씨 일가가 태양신이라고 배운다.
축지법부터 염력, 공간 이동 등 현대인이라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라고 치부할 내용을 북한 주민들은 진짜라고 믿고 있다.
생각해 보라.
히틀러도 고작 3달 만에 군중 심리를 이용해 독일인 전체를 유대인 혐오자로 만들었다.
그만큼 세뇌와 군중 심리라는 것이 무섭다.
북한은 철저한 세뇌 교육으로 김 씨 일가는 곧 신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을 영접하는 것이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굶어 죽는다고 해도 김 씨 일가에 대한 세뇌된 충성심은 바뀌지 않는다.
리을설은 지금 그걸 꼬집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적화 통일이라면 모를까. 남한이 외교적으로 우리와 통일을 한다고 해도 그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큰 격차가 벌어져 있는 시민의 의식 수준이었다. 웃긴 일이 아닌가?
경제 문제도 아니고 외교적 문제도 아닌 시민의 의식 수준이라니.
하지만 무려 수십 년 동안 세뇌 교육을 받은 북한 주민들이다. 이들이 민주주의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은 남쪽 군인을 보면 무조건 죽이라는 철저한 세뇌 교육과 더불어 군사적인 훈련까지 받았다. 15살 때부터 군 생활을 하며 죽기 직전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는 주민들이니, 이들에게는 남쪽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주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어차피 외교적 통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 내부에서 크게 쿠데타가 일어나 김 씨 일가가 몰살을 당하면 미군이 그때를 노려 움직일 겁니다. 그럼 남한과 미국에 의해 무력 통일이 이루어지겠지요.”
북한은 심리전으로 대한민국 내부에 혼란을 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종북’ 세력, 즉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 세력들이 한국에서 조직한 ‘주사파’로 민심을 흔들고 정부를 비난하는 데에 앞장선다.
실제로 향후 인터넷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간첩 세력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해지는데, 댓글 조작과 거짓 사실 유포로 시민들의 판단력을 완전히 흐리게 만든다.
고작 몇 명이 만들어낸 거짓 뉴스와 괴담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선동된다.
간첩 세력들은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결정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바로 시민을 선동해 미군을 철수시키는 일이다.
“한국에 파견되어 있는 간첩 세력들이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과 한미 동맹을 깨뜨리려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군이 있으면 북한도 껄끄러울 테니까요.”
“미군만 없으면 중공군과 함께 북한이 진작 남한을 쓸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군이 저렇게 딱 버티고 서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소강상태가 길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요.”
북한에게 중국이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에는 미군이 존재한다.
중국이 만일 북한을 움직여 남한을 적화통일 시켜 버린다면 미국은 아시아 통제권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한미 동맹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 파견되는 미군 때문에 미국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은 다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원수님께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북한이 남한에 보낸 간첩 세력들을 전부 철수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서 생성해 놓은 세력들도 전부 솎아내 주셨으면 합니다.”
리을설은 길게 침음을 흘리며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꽤 어려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려.”
“중국 정부를 움직이는 건 쉬울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그리고 원수님께서 제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저는 제 방법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지요?”
“간첩들을 전부 살해해 깨끗이 청소를 해놓는 겁니다. 하지만 원수님께서 잘 조치를 취해 주신다면 그런 참극은 아마 일어나지 않겠지요.”
지금 당장은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만, 내가 맘먹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한민국 내부에 있는 간첩 세력들을 전부 솎아낼 수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알아서 빼 가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꽤 강하게 나오시는군요.”
“아니요. 지금은 아주 친절하게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정말 강하게 나올 생각이었다면 원수님과 이런 방식으로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시험해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시험해 보십시오.”
노골적인 나의 발언에 리을설은 흠칫거렸다.
“하하, 아닙니다. 이 나이 먹고 그런 패기를 부릴 자신은 없군요.”
하지만 불편한 심기조차 드러내지 않으며 리을설은 유하게 넘겼다.
역시, 노련미가 있는 사람이다.
“부회장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부회장님이 저희와 좋은 관계를 항상 유지한다면 저희가 굳이 간첩을 남한까지 보낼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이 사람들의 속내를 모르겠는가?
겉으로는 알겠다고 하며 잠깐 간첩들을 철수시키는 모습을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있으면 또 다른 간첩들이 새로 들어오게 될 터.
그땐 내가 전부 잡아들여 죽인 다음 이들과 다시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때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볼 예정이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요.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원수님.”
“부회장님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바로 중국으로 떠나십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군요. 정확한 날짜를 어떻게 산출해 내야 할지부터 결정을 해야겠습니다.”
“예. 그럼,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리을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다음, 밖으로 나왔다.
이미 사람들은 나를 공항으로 데려가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가기 전에 김정일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김일중과 김정일의 시간이 아니던가.
물론, 저들이 나눌 말이 그리 많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전부 내 귀로 들어오게 될 터.
난 이제 북한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중국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