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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11화 (211/325)

211화. 뒤바뀐 명운 (1)

“개성 공단 설립은 차질 없이 진행해 주십시오. 그리고 숙소를 마련해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머물게 하고 그 주변에는 상가를 지어 작은 마트나 식당을 마련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좋은 의견입니다. 그런데 화진 그룹은 언제쯤 들어올 예정입니까?”

“빠른 시일 내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먼저 대마 그룹이 첫 스타트를 끊으면 화진 그룹이 후발 주자로 나서게 될 겁니다.”

나와 김정일의 대화를 김일중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아, 죄송합니다. 너무 제 얘기만 한 것 같군요. 대통령님께서도 좋은 의견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배려가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졌는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제가 말해서 뭐 합니까? 어차피 듣지도 않으실 분이.”

김일중의 대답에 나는 차츰 싸늘하게 식어가는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았다.

“대통령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뭘 말입니까?”

“지금 대통령님께서는 역사적인 순간에 서 계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삐딱한 자세로 나오시면 위원장님이 많이 곤란해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김일중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듯,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적극적인 참여를 해주십시오. 이게 다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나 대통령님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그런 자세로 나오신다면 여야당 의원들과 언론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내가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탓인지, 김일중은 참고 있던 화를 드디어 터뜨렸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치려 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대통령님!”

하지만 그런 그의 말을 내가 중간에 잘라 버렸다.

“잘 생각해서 다음 말을 내뱉으십시오. 말이라는 건 주워 담을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뱉는 말이 대통령님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만일 여기서 내게 계속 언성을 높인다면 김일중은 레임덕의 끝을 보게 될 것이고, 유하게 넘어간다면 나도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김일중은 과연 대정치인답게 숨을 크게 한번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뒤 태연하게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말했다.

“제가 언제 삐딱하게 나왔다고 그러십니까? 항상 그랬듯이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을 뿐입니다. 배우려는 습관이 언제나 좋은 길을 열어준다고들 하지요.”

나도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저도 그런 대통령님의 자세를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김정일은 나와 김일중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으로 그는 누가 확실하게 위를 점하고 있는지 알게 됐을 터.

지금의 나는 여당과 야당 의원들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즉, 원한다면 김일중 정권을 식물 정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언론까지 움직인다면 김일중을 천하의 역적으로 만들어놓는 건 내게 일도 아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두 분이서 편하게 말씀 나누도록 하십시오.”

나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다음, 태양궁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마 저 둘은 딱히 나눌 말이 없을 것이다.

김정일도 중요한 사안은 내가 아니면 나눌 수 없다는 걸 이제 명확하게 알게 됐을 테니까.

* * *

“어서 오십시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수님.”

인민군 원수, 리을설과 악수를 나눈 다음 그 뒤에 있던 사람들과도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북한 인민군 중에서, 그것도 직업 군인 중에서는 최고의 직위라 불리는 인민군 원수. 그 밑으로는 9명의 차수가 존재한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북한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라 볼 수 있다.

1며으이 인민군 원수, 그리고 3명의 차수가 나를 만나러 왔다.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차수 김영춘입니다.”

“차수 최룡해입니다.”

“차수 김일철입니다.”

북한 계급 체계에서는 대원수가 가장 높은데, 대원수의 자리에 앉은 건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바로 전 단계 직책인 공화국 원수는 현재 김정은이 앉아 있다.

김정일이 죽으면 저절로 공화국 원수인 김정은이 대원수에 앉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왕이 대원수고 태자는 공화국 원수가 된다.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시가 제법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 탈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리을설의 대답이다.

무려 18년 동안 인민군 원수의 자리를 지키게 되는 리을설.

그는 국방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이 양반이 죽게 되면 인민군 원수 자리가 공석으로 남게 되는데, 김정은이 나중에 그 자리를 꿀꺽하면서 절대 권력을 자랑하게 된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감시를 당해서 괜한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누가 감히 천하의 김태산 님을 건드린단 말입니까?”

“과찬이십니다, 원수님.”

김정일의 감시가 없는 만남이다.

즉, 김정일은 내가 군 핵심 간부들과 만난다는 것을 모른 채 김일중과 태양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를 이곳까지 부르신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실, 이 만남은 내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언젠가는 이들을 만나 북한 내부를 천천히 장악하려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먼저 내게 손을 건넬 줄은 몰랐다.

“알다시피… 요즘 군 간부들 사이에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수령님께서는 공화국 원수 김정은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기 위한 승계 절차를 밟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군 내부를 청소하는 일로 이어지는 중입니다.”

역사를 보면 대부분 왕조에서 일어나는 일이 북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태자에게 강력한 왕권을 넘겨주려는 왕은 항상 내부에 있는 권력자들을 쳐내고 새로운 사람들, 그러니까 태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이들을 채워 넣어 새 국면에 들어서게 한다. 지금 김정일이 아들을 위해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당장 저도 인민군 원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수령님께서는 제가 가진 권력을 경계하시어 이 자리를 단순한 명예직으로 바꾸려 하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여기 있는 차수들은 목이 날아가게 생겼고요.”

나도 알고 있다.

리을설은 제1대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로서 국가적으로 의미가 큰 인물이다. 그래서 김정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너무 힘이 크면 아들에게 영향이 갈까 두려워 김정일은 인민군 원수에 있는 권한을 하나씩 빼고 있는 중이다.

최대한 힘을 약하게 만들어 차기 대원수가 될 김정은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차수들은 김정은이 대원수가 되는 순간 목이 다 날아가는 비운의 인물들이다.

이들뿐인가?

김정은에게 협력했던 차수들도 죄다 목이 날아가고 새롭게 자리가 개편된다.

그야말로 칼바람이 북한에 분다는 것이다.

이들도 점점 목덜미가 서늘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나름 살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가장 좋은 동아줄이 될 거라고 판단한 모양인 것 같은데…….

이거,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이제 이놈들을 어떻게 요리해 줘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해볼 때다.

“불만이 많으시겠습니다. 피와 땀을 바쳐가며 조선 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노동당을 수호해 오신 여러분을 이리 박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가 운을 띄우니, 이들은 얼쑤 좋다고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역시, 저희들의 마음을 알아주시는 건 부회장님밖에 없군요. 그래서 이렇게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리을설은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미 5명의 차수들은 공화국 원수 김정은에게 충성 맹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놈들도 결국 대원수 자리가 바뀌면 저절로 목이 떨어져 나갈 놈들입니다.”

매번 누가 죽어 나가는 이런 치열한 정치판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리을설답다고 해야 하나.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다.

그의 말처럼 김정은을 따르던 차수들은 나중에 차례로 목이 날아가지 않던가.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저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어떻습니까. 군 내부를 미리 장악해 놓은 다음, 김정은이가 차기 대원수 자리에 올라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대충 예상한 로드맵이다.

이들은 김정일과 김정은보다 빨리 군 내부를 장악해 김 씨 일가가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다.

“괜찮은 아이디어군요. 그런데 저한테 부탁하실 일이라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알고 있다.

일부러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절절하게 내게 구걸할 때까지 말이다.

“아시다시피 남쪽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중공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지요. 지금 중국 정부는 김정일 정부와 사이가 안 좋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면서 중국과는 관계가 점점 틀어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이걸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래서요?”

“부회장님이 중국에서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신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리오차오 위원을 지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를 차기 주석으로 세우기 위해서요. 그뿐입니까? 중국에 있는 군 간부들도 부회장님 말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서로 친분이 있는 것뿐이지요.”

은근 겸양을 떨어 보았지만, 이들은 오히려 그것이 확실한 대답으로 들린 모양이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중국이 간섭을 하면 저희가 아무리 발악을 한다고 해도 군을 움직일 수 없어요.”

“중국 정부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예, 그리고 북한 내부에 있는 중공군들은 전부 특수 훈련을 받은 정예 부대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그들을 움직여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북한 군 간부들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는 중공군을 움직여 달라는 건가.

중국 정부를 설득해서 북한 내부에 있는 중공군들로 북한군을 장악한다라.

아무리 높은 직책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도 중공군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 북한의 실정이니 리을설의 아이디어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가 된 건가.

“좋습니다. 여러분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이들의 안색이 밝게 펴졌다. 하지만 나도 가져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도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군요.”

“말씀하십시오.”

“제가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북한에서 부리고 있는 요원들을 파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조건 제 말에는 절대 복종 해야 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리을설이 대표로 내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렴 어떻습니까? 설마 저희들에게 총구를 돌리지는 않으시겠지요.”

“하하, 살벌한 농담이시군요. 제가 정말 그럴 작정이었으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조차 하기 싫으실 겁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는지 리을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담겨 있는 게 지독한 협박이라는 것을 내심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중국 정부에는 제가 잘 말을 해놓겠습니다. 부디 북한에 큰 변혁을 일으켜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나 할까요?”

나는 이들과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군 간부들의 완벽한 지배를 받게 될 북한.

이 술잔으로 이 나라의 명운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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