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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10화 (210/325)

210화. 진정한 지배자 (3)

“야, 김태산.”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나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중, 언제 왔는지 연욱이가 내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응? 연욱아, 여긴 무슨 일이야? 오늘 많이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연욱이는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날 노려보더니, 이윽고 내 멱살을 잡은 채 주먹을 날렸다.

“이 개새끼!”

하지만 녀석의 주먹은 내 코앞에서 멈췄다. 내 곁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재빨리 연욱이를 붙잡은 탓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진정하지 않으시면 억지로라도 제압하겠습니다!”

경호원들도 나와 연욱이가 세상 제일 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대하진 못했다. 난 경호원들 손에 붙잡혀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욱이의 주먹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네 베프한테.”

“내 베프? 내가 네 베프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이 개새끼야.”

이놈이 갑자기 왜 이렇게 역정을 내는 건진 모르겠다만, 일단 녀석을 진정시켜야겠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 손, 놔줄 수가 없어.”

“내가 네놈 면상에 주먹 한 번은 날려야겠으니까, 이거 놔. 안 놔?!”

“부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강제로 기절을 시키기라도…….”

난 짧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저었다.

“연욱아, 들었지? 이 사람들 하는 말. 강제로 숙면 취하고 싶지 않으면 잘 생각해서 결정해.”

“…놔. 더는 난동 안 피울 테니까.”

연욱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조심스레 손을 놓았고, 그러기 무섭게 연욱이가 다시 한번 내게 달려들었다.

“야이 개새끼야!”

콰직-!

하지만 연욱이 저놈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가 그걸 예상하지 못했겠는가?

나는 그대로 연욱이에게 실린 힘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녀석을 들어 바닥에 넘어뜨렸다.

“이제 좀 진정이 됐냐?”

“크으… 개자식…….”

“싸움 실력으로는 나한테 안 되는 건 너도 잘 알잖냐. 덤빌 걸 덤벼야지. 아무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와라. 조용히 얘기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갈 거니까.”

나는 권윤아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시킨 뒤, 63빌딩에 있는 룸을 잡아 연욱이와 단둘이 안으로 들어갔다.

경호원들이 걱정하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다행히 연욱이는 제법 진정이 된 것처럼 보였다.

“이게 다 뭐 하자는 거냐? 왜 그래, 갑자기?”

연욱이는 위스키를 병째로 마신 다음 길게 탄성을 내질렀다.

“거참 드럽게 달고, 드럽게 쓰네.”

“비싼 술일수록 그렇지. 그거 한 병에 500만 원짜리야.”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어차피 다 네 거잖아.”

연욱이는 다시 한번 병째로 술을 들이켠 다음 서류 하나를 내 앞에 던져버렸다.

“읽어봐, 이 새끼야.”

나는 조용히 녀석의 말에 따라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정부를 상대로 벌인 로비와 여러 의원들에게 송금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그뿐인가? 화진파를 서른 개가 넘는 조직으로 나눠 골든 연합 아래에 두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못 본 사이에 꽤 많은 걸 파냈구나, 우리 연욱이.

난 태연한 표정으로 서류를 내려놓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이게 왜?”

“…이게 왜? 지금 그게 할 말이냐, 이 새끼야?”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나?”

“야 인마! 이거 다 네가 주도해서 저지른 일이야. 특히 의원들에게 돈을 보낸 건 아주 노골적이던데 의도한 거냐? 나보고 빡치라고?”

“노골적으로 보낸 건 맞아. 어차피 검찰청에서 그거 가지고 파헤쳐서 내 죄를 만천하에 까발릴 놈은 없으니까.”

“야, 김태산-!!”

연욱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그에 따라 나도 목청을 높여 연욱이를 불렀다.

“정신 차려, 장연욱!!”

“뭐, 뭐야?”

“네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아. 온갖 더러운 짓은 내가 다 하고 있다는 거, 틀린 말이 아니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너는 빛으로, 나는 어둠으로. 이게 우리가 걷기로 한 길이잖아!”

“그래, 그랬지. 네가 그 미친 계획을 처음 말해줬을 때만 하더라도 난 널 믿었어. 아무리 복수심에 불타오르긴 했어도 예전 검사 때의 마음이 남아 있을 거라고.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한 놈들을 내 앞에 던져놓겠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정의를 이루겠다고!”

난 짧게 탄성을 지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 정의? 그래. 네 말이 맞아. 그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거야. 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이게 정의라고?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해대는 게 정의?”

“그래,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정의야. 너도 알고 있잖아. 정의라는 것은 곧 승자를 위한 것이라는 걸. 정의에 대한 뜻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승자야. 난 승자가 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고.”

“그래, 그랬지. 네가 치열하게 달려온 거, 나도 잘 알아. 그런데 너무 멀리 나갔어. 이미 한참 전에 선을 넘었다고!”

연욱이는 나를 강하게 비난하며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계속해서 날 꾸짖었다.

“그게 어떻게 정의야. 사람 죽이고 또 죽인 다음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게 어떻게 정의냐고?!”

“…….”

난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앞에 있는 잔을 들어 천천히 입에 술을 채워 넣었다.

연욱이도 씩씩거리던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지금이라도 모두 그만둬.”

“그만두라고? 그런 다음에는 나더러 뭘 하라고? 법원에 출석해서 판사가 나한테 몇 년을 때리는지 보면 되는 거야?”

“여기서 멈추면 나도 눈 감고 있을게. 누구도 널 파헤치지 못할 거야.”

“날 파헤치지 않는다고?”

난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연욱아, 아직도 그렇게 이 세상을 모르는 거야?”

“뭐?”

“내가 모든 걸 멈추게 되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는 거냐고. 지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날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자리 때문이야. 돈과 권력을 동시에 쥐고 있는 내게 대통령도 고개를 조아리고 있어. 그런데 이걸 다 버리라고?”

“태산아, 그건…….”

“그래, 네 말대로 난 예전에 선을 넘었어.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 어차피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놈들이 하게 되어 있어. 다른 놈에게 이 자리를 넘겨주느니 차라리 내가 쟁취하는 게 나아. 그리고…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어. 내가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다 죽는 거야. 알아? 나도, 너도, 내가 이룬 모든 것과 사람들도 다 죽는다고.”

연욱이는 경멸 어린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멈추지 않겠다?”

난 그런 녀석의 눈을 마주치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연욱아, 이거 하나는 약속한다. 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그 어떤 대통령들보다 위대하게 만들어줄게. 감히 다른 나라에서 널 건드릴 수 없을 정도의 위세를 만들어준다는 거야. 그리고 이 나라는 세계 최강이 되는 거지. 넌 세계 최강의 나라를 일으킨 위대한 대통령이 되는 거고.”

“뭐 하자는 거야. 그런 사탕발림에 나를 꼬드기겠다는 거냐?”

“그래, 맞아. 꼬드기는 거야. 하지만 널 이 진흙탕에 끼어들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내가 너한테도 예전부터 말했잖아. 더러운 짓은 내가 하겠다고. 넌 끝까지 그 마음을 변치 말고 있으라고.”

우리가 처음 32년 전으로 회귀했을 때부터 약속했던 내용이다.

연욱이도 그걸 알고 있기에 뭐라 답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곧 있으면 내가 꿈꾸는 나라가 완성이 된다. 그게 완성이 되는 순간, 나도 더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게. 네가 세계 최강이 된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이 되는 순간, 약속했던 것처럼 모든 통제권을 너한테 넘겨줄게.”

연욱이는 내 말을 듣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그깟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난 그냥 예전의 김태산을 보고 싶은 것뿐이야.”

“…이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는 늦었어. 더 이상 나는 네가 알고 있던 그 김태산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잔혹하고 지독한 놈이지.”

돌이키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하지만 나의 결정에 단 한 번이라도 의구심을 품거나 후회를 한 적은 없다.

난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

이번에도 연욱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룸 밖으로 나갔다.

녀석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 보인다.

* * *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남북 정상들이 서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 장면. 모두 보고 계십니까?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김일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최고 위원장이 바닥에 깔린 레드 카펫 위에서 손을 맞잡고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6.15 남북 정상 회담이 사상 처음 열리게 된 것이다.

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을 두 남북 정상들의 만남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다.

내가 회귀 전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다 덜컥 통일을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굉장히 강했다. 당장 나도 이러다가는 북한과 통일을 하겠구나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던가.

북한은 핵 실험을 거듭했고,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연평 해전을 일으켜 무고한 목숨들을 앗아갔다. 그 외에도 북한은 수많은 도발을 일으켜 이 나라에 큰 혼란을 안겼다.

결국 한차례 쇼에 불과한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에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두 정상이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로 레드 카펫 위를 걷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여러분, 두 정상이 맞잡은 손처럼, 남북한의 평화가 그러할 것입니다.”

모든 TV 채널에서 두 정상의 만남을 생중계하는 중이고, 그 외 다른 외국 채널에서도 이 둘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난 저 둘이 손을 잡은 채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빼놓지 않고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저들은 같은 차를 타고 태양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난 TV를 끄고 소파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아직도 연욱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러나 내가 녀석에게 했던 말처럼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그리고 설사 돌이킬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승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일인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고한 피와 희생은 이 세상에 펼쳐질 정의를 위한 것이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난 잊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희생을 생각해서라도 난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신이 될 순 없지만, 신 놀음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은 방관자이지만, 나는 모든 일에 참견할 수 있는 신이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놓고 또 어떤 리스크를 요구한다고 해도 내게는 브레이크란 옵션이 없다. 그러므로 갈 때까지 간다.

내가 세상을 지배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말이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큼지막한 입구가 열리면서 김일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동시에 태양궁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부터는 언론의 통제가 있는 곳으로 나와 김일중, 그리고 김정일 셋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여, 여길 어떻게 부회장님이…….”

김일중은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난 태연하게 받아쳤다.

“우리나라와 북한을 위한 자리입니다. 그 역사적이고 사명감 높은 자리에 제가 없어서는 안 되죠. 그렇지 않습니까, 위원장님?”

“하하, 맞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까. 당연히 부회장님도 함께해야죠.”

김일중은 대충 눈치를 챘을 것이다.

자신은 그저 단순히 들러리에 선 것이라는 걸.

맞다. 김일중은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얼굴 마담이었고 실질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김일중이 아니라 바로 나다.

남북 정상 회담은 결국 나와 김정일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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