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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07화 (207/325)

207화. 자비 없는 전쟁 (2)

사방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그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즐기는 식사라.

내가 이 바닥을 오랫동안 굴러왔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다.

“셰프, 안심 스테이크 하나랑 연어 스테이크 하나야. 크림 파스타도 하나 해주고, 리소토도 부탁해. 와인도 좋은 걸로 가져다주고. 어렵지 않지? 혹시 혼자 살아남아서 부담이 되는 거라면 그냥 너도 같이 죽이고 다른 곳으로 가서 밥 먹을게.”

“아, 아닙니다. 추, 충분히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맛이 없거나 좀 이상하다 싶으면… 알지?”

“예! 무, 물론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다른 놈들은 다 죽여도 음식 만드는 셰프는 죽이지 않는 법이라고 했어. 맛있게만 해 오면 돼. 맛있게만. 알겠지?”

“예, 잘 알겠습니다.”

공포에 질려 버린 셰프는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가 음식 조리를 시작했다. 양옆으로 총을 든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으니, 허튼짓은 못 할 것이다.

목숨이 걸린 요리라.

그런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음식을 잘할 수 있을까?

“음식 나왔습니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셰프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음, 일단 플레이팅은 합격이었다. 로이도 플레이팅이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시식.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되어 있는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잘라보았다. 칼이 부드럽게 들어가는 것을 보니, 먹기 좋게 익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붉은 육즙이 새어 나오면서 한가득 풍미를 더했다.

이건 먹어보기도 전에 맛을 알 것 같았다.

아마 저 주방장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맛일 터.

한입 베어 먹고 나는 기분 좋게 또 한 번 칼질에 들어갔다.

로이도 흡족한 표정으로 말없이 연어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리소토와 파스타도 훌륭했으며, 주방장이 추천한 와인도 이 음식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셰프.”

“아, 예!”

두 다리를 벌벌 떨며 서 있던 주방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로이는 싱긋 웃으며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뭘 그렇게 벌벌 떨고 있어. 내가 이 칼로 셰프를 죽이기라도 하겠어?”

이미 레스토랑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린 로이다. 저런 셰프 하나 죽이는 걸 망설일까? 농담으로 던진 말 같은데, 오히려 상대를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맛이 아주 훌륭해. 이 정도 실력이면 죽이기가 너무 아까운데? 내가 조만간 러시아에 레스토랑을 하나 열 예정이야. 그때 우리 레스토랑에서 일해보는 게 어때?”

“여, 영광입니다.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딱 이 정도의 실력만 보여준다면 손님들이 바글바글 모일 거야. 알겠지?”

“예!”

“좋아, 오늘은 그만 퇴근해. 저기 친구들이 잘 데려다줄 거야. 괜히 허튼짓하다 개죽음당하지 말고. 조용히 내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방장이 조직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자 로이는 입을 닦으며 내게 물었다.

“워커도 음식이 마음에 들지?”

“예,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수십 명의 시체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와중에 나는 스테이크를 맛있게 잘라 먹었다. 내가 너무 이쪽 세상에 물이 들어 있는 건가.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도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색다른 풍미가 느껴질 정도다.

“피 냄새가 나서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잖아. 언제 이런 걸 경험해 보겠어.”

로이는 아마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는 것 같다.

그는 와인 잔을 깨끗하게 비운 다음,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급한 대로 1,500명 정도를 들여왔어. 비행기 값만 진짜 만만치 않게 들었다고.”

급한 대로 모은 것치고는 상당히 많은 숫자다.

1,500명이 어디 동네 이름도 아니지 않은가.

“1,500명이 쓸 만한 무기는요?”

“뭐, 푸틴이 지원을 해준다고 했다며. 근데 그쪽한테 받고 싶진 않아. 구린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내가 미리 루트를 파서 무기를 대량 들여왔어. 차라리 내가 검증을 끝낸 무기를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틀린 말은 아니다.

저런 철저함이 있으니까 로이가 아직도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까?”

“뭘요?”

“슬슬 레드 마피아들을 잡아야지.”

“이미 로이가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체젠 마피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그것도 그와 관련된 관계자들을 오늘 여기서 싹 다 죽여놓았으니까요.”

“음, 체첸이랑 먼저 한바탕해야 하나.”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체첸 마피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TOP3에 드는 조직이다. 그만큼 러시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들이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TOP3에 들어 있는 레드 마피아 조직은 그나마 체계적으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회사 숫자만 해도 수백 개가 넘기 때문에 결코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로이, 체첸 마피아 조직원 수가 수천 명이 넘어요. 운영하는 회사들도 많고요. 일단 경제적으로 그들을 박살 내기 위해 저는 화진 그룹과 리턴 컴퍼니를 차례로 들여올 생각입니다. 푸틴이 도움을 준다고 했으니, 천천히 그들을 조여 나갈 생각이에요.”

“빨리 엎어버릴 생각이 아니었구나.”

“물론 빨리 엎을 수 있으면 좋죠. 하지만 이들은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급성장한 조직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운영하던 회사들도 그 규모가 매우 커졌죠. 단순히 조직을 솎아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조직원들을 죽여봤자 운영하는 회사를 없애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자금 지원을 받아 인원을 보충하게 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금줄부터 끊어야 한다. 알아서 말라 죽기를 기다리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네 말이 맞아, 워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여놓았잖아. 그놈들이 길길이 날뛰면서 싸우려 들 텐데.”

“그건… 어쩔 수가 없군요. 싸우는 수밖에.”

“그렇지?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 나라고 이놈들이 어떤 종류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이놈들은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직 전체가 모일 일은 절대 없어. 너도 잘 알잖아?”

하긴. 규모가 크긴 하지만 점조직 운영이라는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이들은 하나로 모여 싸우지 않는다. 즉, 우리가 1,500명이란 조직원들을 동원해 각개 격파를 한다면 체첸 마피아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어 나갈 거라는 것이다.

“나는 힘으로, 워커는 돈으로. 어때? 항상 그랬듯이 그 콤비로 가는 거야. 내가 총을 갈기는 동안, 워커는 돈으로 저놈들을 다 사버려. 그게 훨씬 편하겠지?”

로이에게 총질을 맡기는 것만큼 마음이 든든한 게 또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총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니까.

“알겠습니다. 로이의 말대로 해보죠.”

“그래, 이미 시작된 전쟁이잖아. 자비 없이 다 쓸어버려야지. 이쪽 세계가 원래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어?”

자비 없는 전쟁이라.

옳은 말이다.

여기 레스토랑만 봐도 이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금이라도 적과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그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 메데인 카르텔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골든 연합의 방식이기도 하다.

곧 있으면 체첸 마피아도 이곳 사정을 깨닫게 될 터.

과연 그들이 로이를 어떤 방식으로 상대할지 기대가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은 전적으로 로이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저들은 본거지가 있지만, 현재 로이에게는 러시아에 본거지가 없다.

즉, 이들은 상대가 공격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번 전투가 시작되면 무자비하게 상대를 짓밟아 버리는 메데인 카르텔이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서 있는 로이는 그중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

이 악질에게 걸린 체첸 마피아에게 간단한 위로의 말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 * *

“오셨습니까, 부회장님.”

나는 러시아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넘어왔다.

총은 로이가, 돈은 내가 쓰기로 했으니까.

일단 한국에 와서 화진 그룹을 어떻게 러시아로 진출시킬 것인지부터 논의를 해야 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호위하는 경호원들부터 화진 그룹의 임원들. 거기다가 내가 한 번만이라도 인터뷰에 나와줬으면 하는 각 언론사의 기자들까지.

그뿐인가?

입국장에 모여 있는 인파를 보고 몰려든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부회장님! 6월에 있을 남북 정상 회담에 부회장님의 공로가 매우 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IMF 구제 금융 195억 달러 중 95억 달러를 화진 그룹에서 책임지겠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건 모두 부회장님의 결정이라고 하던데, 이게 사실입니까?”

언론사에서 감히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공격하는 순간, 그 언론사는 그 날로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재력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언론사를 사들여 내 창고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상부에서 내려온 가이드라인에 따라 앵무새처럼 내 말을 전달만 하는 것이었다.

“남북 정상 회담을 위해 북한과 지속적인 조율에 들어간 건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대통령님이 힘을 쓰신 덕분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IMF 구제 금융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국민이 금을 모아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기업이 나서서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진 그룹의 명운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모든 빚을 갚아나가겠습니다.”

내 대답에 시민들이 열렬한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최고다!”

“앞으로도 쭉 그 마음 변치 말아주세요, 부회장님!”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고 있는 나 김태산의 이미지다.

세상 누구보다도 썩은 기업인이지만, 국민들은 내가 세상 제일 청렴한 기업인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IMF 구제 금융이 진짜로 우리 회사에서 돈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가?

실제로 파보면 그렇지 않다.

모두 국민들의 몸을 비틀어 빼낸 혈세로 나가는 것이다.

195억 달러 중, 화진 그룹이 부담하는 금액은 1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185억 달러는 국민의 혈세로 충당이 될 것이며, 사람들은 내가 모두 해결했다고 착각하게 될 터.

내가 언론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이상, 국민들은 언론에서 내놓는 기사에 속아 나를 칭찬하기에 바쁠 것이다. 이 기세를 이어간다면 대통령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겠지만, 글쎄.

이미 대통령을 내 발아래 두고 있거늘, 굳이 그 자리까지 올라갈 이유가 무에 있단 말인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모이는 전동련.

1년에 많으면 열 번도 모인다는 큰 행사다.

IMF 때에는 거의 열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살 만해지니 매달 한 번씩 모이고 있다. 물론, 나는 오랜만에 참석을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걸 참석하기 위해 내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급하게 돌아온 것도 있다.

처음에는 다들 IMF 외환 위기를 잘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자며 언론에 내보내기 좋은 말들만 해댔다.

나는 명목상으로 부회장이니, 모든 발언권은 권오준에게 넘겨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계속된 언론의 촬영이 끝났다.

“기자들은 모두 나가주십시오.”

이제 국민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진짜 회의가 시작될 시간이다.

“김태산 부회장님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그리고 왕께서 신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릴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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