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06화 (206/325)

206화. 자비 없는 전쟁 (1)

“미스터 베샤스트. 말씀하신 기술자들은 이들이 전부입니까?”

“예, 미스터 김. 이들이 전부입니다. 총 스물두 명으로, 이 정도 인원이면 충분히 핵무기 개발에 몰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 얼굴을 보니, 전부 겁에 질려 있다.

저돌적이라고 잘 알려진 푸틴이 갑자기 FSB를 움직여 저들을 전부 잡아들이지 않았던가?

만일 나와 푸틴의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면 저 기술자들은 전부 총살형을 당했을 것이다. 아니면 시베리아 같은 곳에 끌려가 평생 노예처럼 살았거나.

하지만 도예코프 베샤스트의 얼굴을 보자, 이들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정말 미스터 블랙이십니까?”

그중 하나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인사를 올리며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오오, 그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정말 미스터 블랙이었단 말입니까? 이럴 수가!”

이들에게도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이 잘 알려진 모양이다.

나는 어색하게 그들의 인사를 하나씩 받아주어야만 했다.

언제 들어도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이 적응되지가 않는다.

“이제 여러분은 북한으로 가시게 될 겁니다. 여기 계신 미스터 베샤스트의 말을 다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신 분은 언제든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북한으로 가시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받지 못한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립니다.”

이들은 소련 정부에게 갈취를 당하며 억지로 핵무기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줄 수가 있다.

여자면 여자. 돈이면 돈.

그 무엇을 부르든, 김씨 일가는 최대한 이들의 편의를 맞춰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북한으로 가려는 게 아닌가.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모두 얼른 북한으로 떠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럼, 출발할까요? 전세기를 타고 북한으로 바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나는 이들과 함께 공항으로 가서 미리 대기시켜 놓은 전세기에 몸을 맡겼다.

이 비행기는 곧장 평양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제 북한을 한국처럼 드나들 수가 있다니.

회귀하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지만, 지금은 한국으로 가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니 백두산 구경을 한 번도 못했구나.

이번에 가면 짬을 내서라도 백두산은 올라가 봐야겠다.

* * *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이렇게 직접 나와 주실줄이야. 영광입니다.”

“하하, 귀한 손님들이 오셨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귀빈을 맞이하는 듯, 북한은 열성적으로 우리를 반겼다.

저 멀리서부터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고, 어린아이들이 핵 개발자들에게 꽃다발을 넘겨주며 반갑다고 인사를 올렸다.

한 국가의 정상이 아니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김정일도 마중을 나와 성대한 환영식을 열었다.

도예코프 베샤스트를 포함한 핵 기술자들은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이쪽이…….”

“예, 이번에 북한에서 핵 개발을 맡아주실 미스터 베샤스트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지요.”

이 둘의 편의를 위해 통역을 붙여 주었다.

그러자 도예코프 베샤스트와 김정일은 서로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북한의 미래를 책임질 베샤스트이니, 김정일은 예의까지 갖추어주며 대접을 해주었다.

“자자, 이러지 말고 얼른 안으로 들어갑시다.”

태양궁 안에 마련된 성대한 연회가 기술자들을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술과 여자가 가득한 곳이니, 남자라면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아. 물론, 나는 그런 쪽에 눈도 돌리지 않고 천천히 술잔만 기울였다.

이상하게 여기 술은 다른 곳과 달리 조금 특이한 맛이 난다.

“술맛이 어떻습니까? 아주 좋지요?”

“아, 예. 좀 특이한 맛이 나긴 하네요. 이 알싸한 맛이 자꾸 입맛을 당기는 것 같습니다.”

꽤 중독성이 있는 맛이다.

북한 술이 맛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놀랐다.

“하하, 제 아버지가 워낙 술을 좋아하셔서요. 양조 업자들을 모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을 만들게 했지요.”

“그게 성공을 한 겁니까?”

“예, 입맛에 맞지 않는 술을 내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양조 업자들을 하나씩 죽이셨습니다. 그러자 그놈들이 깜짝 놀라 목숨을 걸고 만들더군요. 그렇게 수십 명이 죽고 나서야 만들어진 술입니다.”

일전에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 얘기다.

근데 그게 정말 사실이었다니.

사람 피를 흘려가며 만든 술이다, 이건가?

정말 목숨을 걸고 만들었으니, 이런 술맛이 나올 수밖에.

언제 봐도 참 대단한 집안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뭔가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김정일은 사람을 풀어 내 뒤를 밟은 게 틀림없다.

물론, 그거에 대해 책잡을 생각은 없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상대가 뭔지 알고 내가 무조건 신뢰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혹시 돌발 사태라고 벌어지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요. 누군가 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저와 만남을 가지려 해서요.”

“그게 누굴까요?”

내 뒤를 밟긴 했어도 내가 누굴 만났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대충 눈치는 채고 있을 것이다. 그 많은 FSB 인원을 동원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러시아에서 높은 사람이란 걸 뜻하니까.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총리입니다.”

“아아, 그 사람이었습니까?”

김정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아주 저돌적인 사람이지요. 실제로 예전에 한 번 북한으로 온 적이 있었어요. 얼마나 사람이 강압적이던지. 솔직히 마음에 들진 않더군요.”

당장 미국 대통령에게도 강압적인 양반인데, 김정일에게는 오죽하겠는가.

저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푸틴 총리와 저는 생각하는 바가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 기술자들이 북한으로 넘어오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이겠죠.”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다라.

당연하지 않은가.

한쪽은 러시아 독재자, 다른 한쪽은 북한의 독재자인데.

“그 기술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거래를 끝낸 일입니다. 앞으로 러시아가 그 일을 빌미로 문제를 삼진 않을 겁니다.”

“거래요?”

“예, 자세히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그쪽에서 원하는 것과 제가 원하는 게 서로 일치해서 손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부디 일이 잘 풀리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김 사장님과 푸틴의 사이가 틀어지면 그 사이에 있는 우리만 곤란해지니까요.”

“하하. 잘 알겠습니다, 위원장님.”

푸틴과 내가 서로 원하는 것이 있어 합이 맞았다면, 나와 김정일도 서로 원하는 것이 비슷했기 때문에 합이 맞는 것이다.

러시아의 독재자, 북한의 독재자. 그리고…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독재자가 되려는 나는 어렵지 않게 이 둘과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독재자는 독재자를 알아본다는 것인가.

언젠가부터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던 모든 가치관이 변해 버린 나는, 지금의 독재자들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미래의 위험성을 모두 무시한 채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 앞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때론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고찰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미 브레이크를 걸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처음 회귀를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악의 지배자가 되어 이들을 전부 잘라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들을 정녕 잘라낼 수 있겠는가?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 이제 그러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고, 또 너무 많이 타락해 버렸다.

그러므로 포기할 생각은 없다.

정말 갈 때까지 가볼 생각이다.

온 세계를 내 발밑에 두는 바로 그 순간까지.

* * *

백두산의 정기를 한 몸에 받고 내려와 나는 다시 러시아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미스터 김.”

“미스터 베샤스트도 힘을 내주십시오. 자주 들르겠습니다.”

“예, 미스터 김.”

베샤스트를 비롯해 여러 기술자들이 공항까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언제 또 오시렵니까?”

“부르시면 언제든 오겠습니다.”

김정일도 아쉽다는 듯 나를 배웅해 주며 빠른 시일 내로 꼭 다시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글쎄.

과연 여길 또 언제 오겠는지.

러시아에서의 일이 끝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리고 막상 일이 다 끝난다고 해도 중국으로 넘어가서 그곳의 일도 봐야 하고 그다음은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정세를 살피며 일을 해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이들과 고별식을 치르고 나는 비행기에서 휴식을 취했다.

마음 같아서는 러시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을 통째로 빌려 푹 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지 않은가.

사실, 지금까지 제대로 휴양 한 번 떠나지 않고 달려온 것 같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그땐 와이프와 한 달 내내 푹 쉬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와이프를 버려놓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쏘다닌다는 것을 권용일이 알았으면 날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권윤아도 권용일과 성격이 비슷한 구석이 있어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있다.

이따 도착해서 전화라도 걸어야겠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괜히 면박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오, 왔다.”

몇 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니, 이곳에서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무리가 있었다.

“워커! 나 여기 있어!”

뒤에는 우락부락한 사람들을 잔뜩 대동해 놓고 정작 자신은 방방 뛰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저럴 때보면 영락없는 꼬마다.

“얼른 가자.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밥도 안 드시고 뭐 했어요?”

“워커 오는 거 기다렸지. 내가 맛있는 곳 알아놨으니까, 얼른 거기로 가서 얘기나 나누자고.”

로이는 거의 나를 납치하듯이 끌고 차에 태운 뒤, 모스크바 시내 구석진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차를 세웠다.

“여기가 진짜 유명한 곳이야, 워커. 얼른 들어가자.”

“아, 예.”

“그전에 저 애들부터 먼저 보내고.”

“…예?”

로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러 대의 트럭이 우리 앞으로 멈춰 섰다.

그리고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하차를 하더니, 각자 무기를 들고 레스토랑 안으로 우르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영문을 몰라 그들과 로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로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덤덤한 표정이었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전부 다 죽여!”

두두두두-!

무차별적인 사격의 시작.

로이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레스토랑을 쳐다보았다.

널찍한 유리창으로 이따금씩 총에 맞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윽고 사람 하나가 내려와 로이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러자 그는 빙긋 웃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다 끝났다고 하네. 이제 가볼까?”

나는 해맑게 웃고 있는 로이를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안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전부 벌집이 된 채로 누워 있었다.

그러던 중 조직원들이 주방장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를 끌고 와 우리 앞에 무릎을 꿇렸다.

“말씀하신 대로 셰프는 살려두었습니다.”

“응, 잘했어.”

그리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하나를 잡고 앉아 내게 물었다.

“뭐 먹을래, 워커? 말만 하면 알아서 다 해줄 거야.”

난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채로 로이에게 되물었다.

“아니,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응? 어떻게 된 거긴. 여기가 어디냐면 체첸 마피아 놈들이 운영하는 곳이야. 외부 손님을 받는 게 아니라 체첸 조직과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만 초대장을 받고 올 수 있는 곳이다, 이거지. 그래서 보다시피 깨끗하게 쓸어버린 거고. 너무 하잖아. 이런 맛있는 곳을 지들끼리만 즐기려 들다니.”

그제야 로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행동이 어린애 같아 보일 때가 많지만, 한번 전쟁이 시작되면 일말의 자비심도 베풀지 않는다.

주변을 보니 아무래도 체첸 조직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초대장을 받고 왔거나, 혹은 비즈니스 모임을 갖는 것 같은데 전부 몰살을 당했다.

몇 군데는 일가족이 모여 있었는데도 로이는 남김없이 전부 다 죽여 버렸다.

어린아이가 끼어 있어도 그에게는 전부 없애야 할 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해? 얼른 고르라니깐. 나는 연어 스테이크로.”

그러면서 그는 피에 물든 와인 잔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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