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최고의 독재자 (2)
“레드 마피아에 대해서 좀 아는 게 있나?”
레드 마피아.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피아들을 뜻한다.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지 레드 마피아의 종류도 상당하다.
당장 우리나라도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조직이 있지 않던가.
러시아도 수천 개가 넘는 조직들이 존재하며 그들 중에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자본력을 키우고 있다.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어떤 레드 마피아 조직이 러시아에서 크게 세력을 넓혔는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체첸, 아르메니아, 그리고 카간 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레드 마피아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공권력이 쇠약해져 있던 때를 노려 이들을 러시아의 절반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한때 러시아 GDP 40%가 레드 마피아를 통해서 나올 정도였으니,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굉장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권을 잡고 나서부터 FSB의 활발한 소탕 작전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조만간 러시아에 존재하는 레드 마피아의 절반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몇몇 거대 조직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내가 말한 체첸, 아르메니아, 그리고 카간이 러시아에 끝까지 살아남는 조직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세력이 꽤 크기 때문이다.
“잘 아는군. 이 세 개의 조직이 현재 러시아에서 꼽을 수 있는 거대 조직이지.”
“예, 총리님께서 레드 마피아를 소탕하기 위해 FSB를 움직이고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셋을 건드리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크긴 하겠죠.”
푸틴도 이 셋 조직을 건드리긴 했어도, 완전히 박살 낼 정도로 피해를 주진 않았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끼치는 영향도 컸고, 세력 분포도 너무 넓게 되어 있어 소탕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틴은 차라리 이 셋과 공존하는 방법을 택해 정권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꾸게 된다.
물론, 지금은 아직 계획을 바꾸는 때가 아니다. 현재 푸틴은 레드 마피아 죽이기에 빠져 있다.
“그놈들이 무서울 건 없지만, 소탕하기가 까다롭다는 건 맞아. 레드 마피아는 다른 해외 마피아들과는 달리 점조직으로 되어 있거든. 그래서 고위급 보스를 잡는다고 해도 그 아랫것들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아.”
레드 마피아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세력 구조다.
점조직으로 되어 있는 곳이라 소탕하기가 까다롭고, 조직을 운영하는 보스가 붙잡혀도 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다.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그냥 자기가 알아서 운영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조직 장악력이 높지가 않는 편이다.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그로 인해 러시아도 이들을 소탕하려고 갖은 고생을 하는 중이다.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푸틴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들을 전부 잡아줘야겠어.”
“…예?”
그들을 모두 잡아달라고?
이게 과연 무슨 소리일까.
“자네도 듣는 귀가 있겠지. 나는 앞으로 쭉 이 나라를 통치할 생각이야. 무너진 러시아를 그 어떤 나라보다 강대하게 만들 생각이지. 하지만 레드 마피아들이 판을 치며 우리나라를 좀먹기 시작하면 이 대업을 온전히 이룰 수 없어.”
“그 말씀은 저더러 FSB가 할 일을 대신하라는 겁니까?”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골든 연합도 언젠가 러시아로 진출할 생각이었지 않나? 그게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하면 돼.”
잠깐. 그렇다는 건 레드 마피아의 자리를 우리 골든 연합이 대신 꿰차게 해주겠다는 건가?
내 눈빛을 읽은 모양인지, 푸틴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어차피 마피아는 죽여도 죽여도 계속 생기게 마련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들을 다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국익을 위해 통제하는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들을 통제하는 방법이 바로 이겁니까? 하나로 그들을 모으는 것.”
“그래. 누군가가, 그것도 나와 협력이 가능한 조직이 그들을 하나로 모아준다면 더없이 편하겠지.”
레드 마피아를 하나로 모은다라.
참 매혹적인 제안이다. 이렇게 푸틴이 나의 길을 열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횡재가.
“총리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이들을 하나로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해주기만 한다면 자네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레드 마피아를 하나로 모은 다음 전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는 거야.”
결국 푸틴이 원하는 것은 뒤의 세계를 청소하는 것이고, 그 세계의 힘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다. 난 그의 소원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레드 마피아를 정리한 다음, 푸틴과 협력해 이익을 창출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니 총리님도 저희를 잘 도와주십시오. 그것이 곧 찬란한 러시아를 위한 일이니까요.”
“기대하지.”
푸틴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건넸다.
우리 두 사람이 나눈 악수로 결정이 된 것이다.
골든 연합은 이제 러시아를 목표로 움직이게 된다.
* * *
“사장님!”
푸틴은 다시 우리를 그대로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얻은 게 참 많은 만남이었다.
내가 도착하기 무섭게 강철중이 달려와 나의 신변부터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아, 예. 그나저나 로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핫라인을 통해 연락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로이가 푸틴을 협박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덕분에 거래가 좀 더 수월하게 돌아갔다. 거기다가 위기의 순간에 잊지 않고 로이에게 도움을 청한 강철중의 순발력도 높이 살 만하다.
“그랬군요. 강철중 씨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갑자기 왜 FSB가 사장님을…….”
“할 얘기가 길어요. 일단 들어가서 로이와 같이 찬찬히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아, 예. 알겠습니다.”
나는 강철중과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워커! 괜찮아?”
“예, 무사합니다.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로이.”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런데 푸틴 그놈이 갑자기 왜 널 붙잡은 거야?”
“서로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었는데, 비밀리에 나누고 싶어 그런 서프라이즈 쇼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 변태 같은 놈이네, 그거.”
로이는 내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놈이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로이, 생각보다 일이 아주 잘 풀렸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모스크바로 올 수 있겠어요?”
“모스크바로?”
“예, 다니엘 로페즈에게도 연락을 넣어서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을 전부 러시아로 보내주세요. 이미 푸틴과는 얘기가 끝난 일입니다. 그는 우리가 몇 명을 동원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몇 명을 데려와도 푸틴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기를 원한다면 정당한 가격에 팔아넘길 수 있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푸틴과 나누었던 얘기를 로이에게 전해주었다.
“정말이야? 정말 그놈이 그렇게 말했어?”
“예, 점조직으로 늘어나 있는 레드 마피아를 소탕하고 싶은 건 러시아 정부가 오랫동안 바란 일이에요. 우리를 통해 그들의 분산성을 막고 차라리 하나로 뭉친 조직을 통제하고 싶다는 거죠.”
로이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음……. 일단 알겠어. 내가 빠른 시일 내로 넘어가도록 할게.”
아무래도 로이는 러시아 레드 마피아를 하나로 모은다고 해도 결국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결코 나쁜 기회는 아니지 않은가.
푸틴이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러시아 진출은 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예, 그동안 저도 할 일을 마무리 지어놓겠습니다.”
“아, 원래 푸틴을 만나는 게 목적이 아니었지?”
“예, 원래는 그냥 조용히 여행만 온 겁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여튼, 어딜 가도 일이 터진다니까. 알겠어. 잘 해결하고 와.”
인사를 하고 로이가 먼저 전화를 끊으려 했다.
준비해야 할 일이 꽤 많을 것이다.
이미 중국에 많은 인원을 파견해 놓아서 러시아로 또 인원을 파견시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세계 최대 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이 아닌가.
“그런데 로이.”
“응?”
“아까 푸틴을 협박했을 때요. 정말 핵무기를 발사하려 했어요?”
“응, 내 전화 한 번이면 모스크바에서 쾅 터졌을 거야. 볼 만했을 텐데, 아쉽지?”
“아뇨. 핵무기로 죽긴 싫은데요? 그리고 진짜 핵무기가 여러 개 있습니까? 핵잠수함도?”
예전에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궁금증이 쌓였다.
정말 그 정도의 힘이 메데인 카르텔에게 있단 말인가.
“흐흐. 물론, 블러핑이지. 핵잠수함 한 개 있고, 소형화 핵탄두도 딱 한 개밖에 없어. 그런데 무시해서는 안 돼. 히로시마 원폭에 쓰였던 것보다 몇 백배는 더 강한 핵무기니까.”
그래도 나라 하나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갖춘 핵무기인 건 맞다는 것인가.
하긴. 소련이 붕괴될 때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슬쩍 빼내온 거라고 했으니, 아마 위력은 검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예. 아무튼, 만에 하나라도 그게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오늘처럼 어디 가서 멍청하게 붙잡히지 말라고. 푸틴 그놈이 다른 마음먹고 널 잡았어봐. 넌 그날로 사망인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푸틴이 작정하고 날 붙잡아 사살하려 했으면 충분히 그리했을 터.
이건 내 부주의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로이가 핵무기로 푸틴을 협박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얘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잘 알겠습니다, 로이. 고마워요.”
“흐흐. 고맙지? 앞으로도 그 마음 변치 말고 잘 가지고 있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빨리 준비해서 갈게.”
로이와 전화를 끊고 나는 수화기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언제 봐도 활발함이 넘치는 사람이 아닌가.
메데인 카르텔 카포라고 누가 과연 믿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당당히 핵무기를 쏘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봤을 때 로이는 참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강철중 씨.”
“예, 사장님.”
“대충 들으셨죠?”
“예, 솔직히 걱정이 되긴 합니다. 아직 중국도 다 장악을 하지 못했는데, 러시아까지 무리하게 발을 넓히는 건 아닌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중국 최고의 삼합회를 처리하긴 했지만, 아직 중국 전체를 삼킨 것은 아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커서 통째로 삼키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중국보다 더 크다는 러시아에 진출하게 생겼으니, 강철중으로서는 걱정이 될 것이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죠.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러시아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아까 푸틴이 하는 짓을 봤잖아요. 우리가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작정하고 우리의 진출을 막을 사람이에요.”
푸틴의 성정으로 미뤄 봤을 때, 내가 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골든 연합이 영원히 러시아에 들어올 수 없도록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러시아에 진출하려는 이유도 있다.
“예, 사장님. 전 항상 그랬듯이 사장님의 뜻에 따를 겁니다.”
강철중이 함께해 준다면야 든든하기 그지없다.
“예. 그럼, 러시아의 독재자는 만나봤으니, 이제 북한의 독재자를 만나보러 갈까요?”
러시아에 온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던가.
이제 북한과 거래를 끝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