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비대칭 전력 무기 (2)
인터폴에도 수배 등급이라는 것이 있다.
블랙부터 옐로우까지.
총 네 등급의 색깔이 있는데, 이중 블랙은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한다.
등급이 높을수록 고위험군이란 뜻이며, 조속한 시일 내에 붙잡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 이 남자.
도예코프 베샤스트.
인터폴에서 블랙 등급을 받게 될 인물이다.
그런데 인터폴에서도 아직 잡지 못한 사람을 다니엘 로페즈가 데리고 왔다.
겉모습만 봐도 거친 방법을 쓴 것 같진 않다. 이건 마치 나와 거래를 하러 온 비즈니스맨처럼 보인다.
“미스터 베샤스트?”
“미스터 김?”
나는 중후하게 생긴 러시아 남성의 손을 맞잡았다.
아직은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지 않지만, 이미 미국 연방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핵 기술도 핵 기술이지만, 생화학 무기를 팔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추적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전 세계를 관장하고 있는 대부가 저를 보자고 하다니.”
“너무 띄워주시네요. 전 세계를 관장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하, 미국과 중국. 거기다가 유럽과 일본까지. 영향력을 넓힐 대로 넓히신 분이지 않나요? 강대국 모두를 아울렀으니, 세계를 관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메데인 카르텔의 세력이 유럽까지 뻗어져 있으니, 유럽도 내 세력 안에 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긴 하다.
“그런 분이 저를 만나러 이곳까지 오신 이유가 뭘까요?”
“사실, 못 만날 줄 알았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러시아의 추적을 받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사실입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거기와는 인연을 끊었으니까요. 지금은 소소하게 무기나 몇 개 팔며 생계를 유지 중인데, 이놈들이 그것도 가만두지 않더군요.”
소소한 무기는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다.
전 세계에서 금지한 생화학 무기이지 않은가. 그런 걸 겁대가리 없이 팔고 있으니 추격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심한 걸 요구할 것이다.
“음지에 숨어 다니며 정부의 눈을 피해왔습니다. 하지만 같은 음지에 있는 사람들의 눈까지 피할 순 없더군요. 골든 마피아의 수장이 저를 찾고자 마음먹으면 이틀도 걸리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로이 루스테와 다니엘 로페즈는 범죄자들의 왕이다. 그런 그들이 범죄자 찾는 일을 어려워하겠는가?
아무리 깊이 숨어 있다고 해도 이 둘의 눈을 피할 순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스터 베샤스트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의 힘이요?”
“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그게 필요합니다.”
도예코프 베샤스트는 순간 눈매를 꿈틀거렸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진중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혹시, 핵 기술에 관한 겁니까?”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나.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역시……!”
“예상을 하셨나 보군요.”
“뭐, 맞습니다. 예상은 했죠. 어둠의 세계 위에 있는 대부가 저를 찾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해야 할까요? 저 같은 놈과 무기를 거래하려는 건 아닐 테고. 그러면 남은 건 핵 기술밖에 없죠. 실제로 몇몇 조직에서 제게 핵무기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하긴 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제안이군요.”
“그 터무니없는 제안을 지금 미스터 김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난 슬쩍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터무니없는 제안이죠. 하지만 제가 마련한 무대는 그 어느 곳보다 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렇겠죠. 미스터 김 정도의 수준이라면야……. 내심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그 무대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북한입니다.”
내 말에 도예코프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진심이십니까?”
“제가 농담을 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아실 텐데요?”
도예코프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이윽고 앞에 있던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미스터 블랙이란 호칭을 아십니까?”
“미스터 블랙이요?”
“예, 이쪽 세계에서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이 자주 거론됩니다.”
미스터 블랙이라.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하지만 조금 거리를 벌린 채 떨어져 있는 다니엘 로페즈가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나만 모르고 있는 이름이라는 건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이쪽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며 경외의 상징이기도 한 그 이름을?”
두려움과 경외를 동시에 받는 이름이라고? 그걸 내가 모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저렇게 말을 하니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도예코프는 내 얼굴을 살피며, 정말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눈치챘다.
“이런, 당신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니. 미스터 블랙은 미스터 김, 당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
도예코프와 뒤에 있던 다니엘 로페즈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미스터 블랙이란 호칭은 미스터 김을 뜻하는 거라고요. 정말 모르셨습니까?”
“아… 예, 정말 몰랐습니다.”
조금 멍청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나저나 미스터 블랙이라.
모두의 두려움과 경외를 동시에 받는 이름?
이걸 웃어야 할지, 아니면 뿌듯해해야 할지.
“조금 큰물에서 몸을 담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미스터 블랙을 아냐고. 아마 다들 안다고 할 겁니다. 거의 매번 회자가 되는 이름이니까요.”
그만큼 내 명성이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것이다.
하긴. 둘째가라 하면 서러워할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마피아를 동시에 주무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퍼지지 않은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겠지.
“아무튼, 미스터 블랙. 당신이 제게 제안한 무대는 매력적이면서도 마치 백설공주가 쥔 독사과를 받은 기분입니다.”
독사과라는 표현이 어울리긴 하다.
도예코프 입장으로는 모 아니면 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렇겠죠.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자를 구한다는 것도요.”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미스터 베샤스트?”
도예코프 베샤스트는 고민하는 얼굴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차피 각 정부의 추격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북한에 들어가 저와 북한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신변을 보호하는 것이 더 이롭지 않을까요?”
“추격이라……. 제가 쉽게 잡히진 않을 겁니다.”
“그러시겠죠. 하지만 정부가 집요하게 추격을 이어간다면 언제까지 피할 순 없지 않습니까. 미스터 베샤스트도 이 사실을 잘 알 거라고 봅니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내게 물었다.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전혀요. 미스터 베샤스트는 제가 어떤 식으로 협박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물으시는 겁니다. 제가 협박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웃는 얼굴로 앉아 있지도 않았을 거고요. 이쪽 세계 방식이 어떤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중에서 제가 가장 지독한 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베샤스트는 그제야 흠칫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제가 무례한 질문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어요.”
“그럼, 정확히 북한에서 제안하는 것이 뭔지 듣고 싶군요.”
“안전한 신변 보장 및 미스터 베샤스트가 원하는 것이라면 북한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드릴 겁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김씨 가문의 통치를 받으며 국민 전체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떵떵거리며 살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는 거지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고위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왕처럼 살고 있다. 베샤스트가 북한으로 가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음…….”
도예코프는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도 당장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천천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일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겠죠. 혹시 제가 보복을 할까 두려우신 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쪼잔한 짓은 안 합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심사숙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안으로는 꼭 결정을 내리도록 하죠.”
내가 아는 도예코프라면 분명히 예스를 할 것이다.
나는 그가 건넨 손을 붙잡았다.
“예, 미스터 베샤스트.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난 기필코 이놈의 목숨을 빼앗아 버릴 작정이다.
돌아다니는 폭탄을 가만두고 볼 순 없지 않은가.
* * *
“좋은 만남이었습니까?”
“뭐, 나쁘진 않네요.”
“제가 볼 땐 다 넘어온 것처럼 보이던데요?”
로페즈는 시가를 천천히 피워대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만약 도예코프가 미스터 김의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요량입니까?”
“제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음… 사고사로 위장?”
“하하, 글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로페즈도 나에 대해 이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베샤스트가 정말 거절을 하면 그땐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해결을 해드리겠습니다, 미스터 김, 아니, 미스터 블랙이라고 해야겠군요.”
언제 들어도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은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냥 편하게 미스터 김이라고 불러주세요. 괜히 제가 다 부끄러워집니다.”
“하하, 뭐가 어때서요? 전 아주 괜찮은 이름 같던데. 미스터 블랙이란 이름이 결코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모두의 두려움과 공경을 동시에 받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요.”
맞는 말이다.
두려움과 공경을 동시에 받고자 하는 것은 모든 지배자들이 원하는 이상이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나는 아직 이 세계의 제왕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군요. 베샤스트가 미스터 김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그쪽에서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모릅니다. FSB라도 움직이게 된다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어요.”
FSB라고 하면 소련의 KGB가 해체되고 생긴 러시아의 정보국이라고 보면 된다.
그들이 핵 기술 유출을 염려해 도예코프를 수배 중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 만일 내가 그를 북한으로 빼돌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쪽에서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른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러시아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요. 러시아 총리라는 사람이 정권을 다 장악해서 러시아 전체를 통째로 삼키려 들고 있죠.”
그러고 보니 블라디미르 푸틴이 현재 러시아 총리를 맡고 있다. 몇 달 있으면 그는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는데, 그때부터 푸틴의 압도적인 독재가 시작된다.
“어쩌면 전대미문의 독재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그만큼 현 러시아 총리가 자국을 전부 다 컨트롤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KGB 출신 푸틴은,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부터 과거 KGB 사람들을 모아 러시아 정부를 점령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해서 푸틴은 현재 총리가 되어 대통령까지 바라보고 있는 상황.
이미 자국 내에서도 이미지메이킹에 성공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러시아 내부에 있는 정치인들도 푸틴을 열렬히 밀어주고 있는 중이다.
군사적으로도, 정보로도 모든 게 앞서고 있는 푸틴이 차근차근 러시아 독재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거에 대해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그건 북한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근처로는 웬만하면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이제 슬슬 러시아에도 세력을 넓힐 때가 되지 않았을까?
푸틴이 완전히 러시아를 통치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