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비대칭 전력 무기 (1)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내다 갑니다.”
“저도 사장님과의 다음 만남이 기대되는군요.”
북한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전세기 앞까지 마중을 나온 김정일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말씀하신 기술자 문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대로 된 기술자들을 불러올 테니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원하는 걸 얻었다는 얼굴이다.
그렇다면 나도 원하는 걸 얻어야겠다.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을 일제히 멈춰주시고 당분간 한국 정부에서 움직이는 대로 보조를 맞춰주십시오.”
“아무렴요. 무슨 일이 있으시면 연락하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나는 중국 외교관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그동안 김정일과 더불어 북한 측 사람들이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떠셨습니까?”
“김정일이요?”
“예, 별도로 만남을 가지셨다고 들었는데…….”
역시, 아무리 철저하게 은밀함을 유지한다고 했지만 중국의 눈을 함부로 피할 순 없는 모양이다. 난 리오차오에게 힐끗 미소를 보였다.
“거래를 했습니다. 제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대신, 북한 쪽에서도 저에게 요구를 하더군요.”
“어떤 요구를 했는지, 제가 들어도 되겠습니까?”
난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위한 기술자들을 파견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도 중국과 똑같이 하나의 나라로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군요. 생각보다 중국에 대한 불만이 커 보였습니다.”
누가 보면 내가 중국에 고자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나는 고자질 따위를 하는 게 아니다. 일시적인 경고를 날리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나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리오차오는 눈치가 꽤 빠른 사람이다. 그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잘 알겠습니다. 핵무기 기술자라……. 아시겠지만 중국 정부에서 그걸 도와줄 순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러시아 정부에서 뭐라고 할지…….”
“괜찮습니다. 기술자는 제가 알아서 파견할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중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대국의 자존심이다, 이건가?
하기사.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기어오르는 게 마땅치 않을 것이다.
평생을 노예처럼 부려온 나라다. 상대가 갑자기 신분 상승을 요구하면 주인 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게 마련이다.
“그것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당장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위원님이 중국 주석이 되었을 때, 조금만 변화를 주시면 됩니다. 그냥 상대가 더 이상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만 움직여 주시면 된다는 겁니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북한을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그들은 영원히 중국의 노리개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중국 정부 위에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다스릴 것이다.
북한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라다.
그런 걸 불안해하며 살 바에는 내 통제권 안에 두는 것이 맞다.
“사장님, 전화가 왔습니다.”
리오차오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던 중, 강철중이 조심스레 다가와 핸드폰을 건넸다.
2000년도 이후부터 급속도로 전국에 보급이 되는 핸드폰.
해외에 있는 사람과도 휴대폰을 통해 연락이 가능할 정도로 시대가 발전을 이루었다.
“미스터 김.”
“미스터 로페즈.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 시간에……?”
다니엘 로페즈가 살짝 심각해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미 정보국에 한 가지 흥미로운 정보가 들어와서요.”
“미 정보국이요? CIA입니까?”
“예, 맞습니다.”
“하하, 그곳에도 미스터 로페즈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군요.”
“서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그런 사이일 뿐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로페즈는 짧게 헛기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미 정보국에 지금 미스터 김이 북한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중국도 중국이지만, 미국도 참 빠르다.
거기다가 그 정보를 로페즈가 받고 있다니.
다시 한번 골든 마피아가 미국 내에서 떨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맞습니다. 사흘 동안 북한에 머물렀고, 지금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로페즈는 조금 난감하다는 목소리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솔직히 미스터 김이 북한으로 갔다고 해도 미국 쪽에서 이를 문제 삼을 사람은 없습니다. 새롭게 들어선 부시 정부도 우리에게는 아주 호의적이니까요.”
아버지를 따라 대통령이 된 조지 워커 부시는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골든 연합에 우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미스터 김을 경계하기 시작할 겁니다. 북한에 미스터 김이 넘어간 것은 사실이고, 거기서 김정일과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미국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혹시라도 이것에 대해 문제를 삼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리 말씀을 해주십시오. 괜히 공론화가 되면 일이 시끄럽게 될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고 보니 로페즈에게는 아무런 언질도 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골든 연합의 핵심 멤버인 다니엘 로페즈가 모르면 서운해하지 않겠는가?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많은 일이 수월해질 것 같아서요.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과는 북한이 밀접한 곳이지 않습니까?”
“북한을 친구로 만들고 한국을 압박하는 용도로 쓴다… 이겁니까?”
“잘 아시는군요. 지금쯤 미국도 대충 각이 나왔을 겁니다. 제가 무슨 의도로 북한에 갔는지 말이죠.”
“알겠습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군요.”
로페즈는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며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런 그를 내가 붙잡았다.
“미스터 로페즈.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 예. 말씀하십시오.”
“사람 하나를 찾아야 하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 있고, 로이도 부리는 사람이 많지만 로페즈는 미국 정보국을 이용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나와 로이로서는 따라갈 수가 없는 수준의 퀄리티라는 것이다. 그가 만일 미 정보국과 협력한다면 내가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터.
“예전 러시아 핵개발 책임 연구원인데, 이름은 도예코프 베샤스트. 나이는… 아마 50대 초반 정도 될 겁니다.”
“러시아 핵개발 책임 연구원이라고요?”
“예, 예전에 그쪽 일을 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련이 붕괴되면서 행적이 분명치 않다고 들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음- 일단 알아는 보겠습니다. 하지만 예전 핵개발 책임 연구원이었다면 러시아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겁니다. 크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로페즈와의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강철중에게 건넸다.
도예코프 베샤스트.
나중에 인터폴 수배를 받을 정도로 유명해지는 인물이다.
이놈은 러시아 레드 마피아들과 거래를 해서 핵개발에 필요한 연구 자료들과 부품을 넘기다 인터폴에 수배를 받는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이라고 규정된 후부터 그는 세계 정부의 추격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바로 북한이다.
어떤 방식으로 북한에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북한 정부의 협력을 약속받고 추격을 피해 달아난 게 틀림없다.
언론에서도 도예코프 베샤스트가 북한에 넘어간 것 같다는 기사를 냈지만, 해외에서만 논란이 되었을 뿐. 국내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도예코프 베샤스트가 북한으로 넘어가면서부터 ICBM 미사일 체계가 완성되고 지속적인 북한의 핵도발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면서 잠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지금은 도예코프 베샤스트가 인터폴의 수배를 받을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의 견제도 없이 그를 가로챌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 * *
핵이라고 하면 군사적으로 비대칭 전략 무기라고 불린다.
그만큼 핵에 필적할 만한 무기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적화 통일.
그들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무기가 최첨단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UN에서 금지한 대량 살상 무기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대량 살상 무기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화학 무기다. 그것도 아주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주는.
방독면을 써도, 화생방 보호의를 입어도 막을 수 없는 게 북한의 화학 무기라는 것.
군대에 가면 방독면을 쓰는 훈련을 하긴 하지만, 그걸 써도 북한이 살포하는 화학 무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방독면을 써도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어떻게든 한국을 넘어서기 위해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태평한 마음가짐으로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아, 미안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말씀하셨죠?”
“예, 이번에 새로 투자를 할 뉴 상하이 호텔입니다. 상하이 최대 규모의 카지노 시설을 만들고 레스토랑부터 쇼핑 시설까지 모든 것을 갖추게 할 계획입니다.”
라우팽은 내게 서류 몇 가지를 건네며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갔다.
상하이 최대 규모의 카지노라.
솔직히 말해서 카지노만큼 돈이 되는 사업이 또 없다. 그래서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같은 곳을 가보면 고급스러운 호텔이 아주 싼값에 나와 있다.
그만큼 카지노에서 버는 돈이 많으니, 호텔을 싼값에 내놓아 손님을 유치하겠다는 의도다. 이들 호텔에 가면 일층부터 카지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카지노를 지나지 않고서는 호텔 방에 들어갈 수가 없다.
즉, 누구라도 호기심에 적어도 1~10달러는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10달러가 100달러가 되고, 100달러가 1,000달러가 되는 건 아주 금방이다. 그것이 바로 카지노의 유혹이라는 것이다.
“예상 금액은 어느 정도 됩니까?”
“최대 규모인 만큼, 돈이 많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적어도 180억 위안은 필요할 겁니다.”
180억 위안?
진짜 돈을 다 쏟아부어 보겠다는 건가.
180억 위안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3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큰돈을 쓰기 위해 라우팽은 서류 결재를 받으려고 내게 온 것이고.
솔직히 이 정도면 더 이상 삼합회가 아니라 하나의 대기업이라고 불려도 괜찮지 않은가.
삼합회와 기업의 차이점은 하나밖에 없다.
삼합회는 인신매매부터 흉악 죄에 들어가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지만, 그나마 기업은 최소한의 양심은 갖추고 합법적으로 불법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180억 위안이면 아주 작품이 나오겠군요. 잡음이 생기지 않게, 라우팽 씨가 잘해보세요. 혹시라도 누군가가 우리 돈을 빼어먹으려 한다면 머리통을 날리셔도 괜찮습니다.”
“하하, 지금 아시아 전역을 먹어 치우고 있는 골든 연합입니다. 우리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간 큰 놈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건설사 놈들이 토끼처럼 간을 밖으로 내놓고 다닌다는 건 내가 많이 겪어봐서 안다.
라우팽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건설사의 현실이 어떤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라우팽은 결재를 받은 서류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다음에 뉴 상하이 호텔이 완공되면 어머니를 한번 모시고 와야겠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로페즈 쪽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사장님,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때마침 사무실 전화가 울리면서 소식을 알렸다.
미국이면 로페즈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난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이쪽으로 연결해.”
과연 도예코프의 꼬리가 잡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