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독재자와 독재자 (7)
“이번에 중국을 어떻게 요리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인상 깊더군요.”
김정일은 계속해서 내 칭찬을 해댔다.
“자세한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한순간에 중국 거대 삼합회 두 개가 사라지게 하시다니. 실로 대단한 업적이 아닙니까?”
“너무 띄워주시는 것 같아 슬슬 부담이 되는군요.”
“하하,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되십니다.”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던 김정일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일본 야쿠자이자 야마구치 구미의 수장이었던 와타나베는… 혹시 사장님이 죽이신 겁니까?”
난 그런 김정일의 표정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갑자기 저런 걸 묻는 의도가 무엇일까.
“아닙니다. 제 든든한 아군인 와타나베를 왜 죽인단 말입니까?”
“황규혁이라는 사람과 오랫동안 활동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를 밀어주기 위해 다른 조직을 이용해서 와타나베를 죽인 것은 아닌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상대가 저를 먼저 배신하지 않는 한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게 제 철학입니다.”
그제야 김정일은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믿음이 갑니다.”
나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인이라도 했다는 건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위원장님, 저는 위원장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전 누구보다도 남북한의 평화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만의 평화를 이뤄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이렇게나 사장님과 제 마음이 같을 줄이야. 역시, 우리 둘은 뭔가 통하는 게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습니다.”
참 주거나 받거니를 잘하는 양반이다.
그렇게도 급했단 말인가.
한 나라의 수령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스스로를 낮추고 있을 줄이야.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데, 나한테는 아주 잘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위원장님께 이렇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위원장님과 긴밀한 연락을 이어가며 서로 큰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말이라고요. 저 또한 그걸 바라는 겁니다. 김태산 사장님이 지속적인 투자를 북한에 이어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얘기가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인 딜을 할 차례다.
“제가 골든 연합의 수장이라는 것은 잘 아실 테니… 그에 관해 한 가지 제안을 드릴 게 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내용인 것 같군요. 혹시 조직을 이용해 우리 북한과 거래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까?”
척하면 척이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북한은 절대적인 통치로 국민의 노동성을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다.
그러한 인적 자원을 마약 제조나 무기 제조. 혹은 그 외의 것으로 돌린다면?
가히 대단한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인건비도 굉장히 싸고 강제적인 노동답게 인권을 생각해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선 북한은 아주 완벽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중국도 그런 북한의 장점을 이용하여 마구잡이로 철광석을 캐고 있지 않은가.
“제 회사들을 하나씩 북한으로 들여오겠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물건들을 전부 해외에 나가서 팔아 그 수익금을 분배하도록 하죠. 한국에서 지원해 주는 돈은 푼돈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위원장님과 저는 엄청난 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도 인건비가 싸긴 하지만, 북한처럼 강제 노동을 시킬 순 없다. 이들도 최소한의 인권은 갖추어져 있어 국가에 제재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작은 자유라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받아 정말로 김정일을 신처럼 떠받든다.
김정일의 수발을 드는 그 유명한 기쁨조의 인원들도 신을 맞이한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릴 정도라고 한다.
TV를 보면 간혹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을 보자 눈물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가식적인 것이 아니고 정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김정일은 신이며 그 너머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김정일 수령 동지를 위해서라는 말 한마디면 불길이라도 맨몸으로 던져 버리는 충성심이 있다.
거짓말일 것 같은가?
조금이라도 북한에 대해 공부를 하고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거짓말 같은 일이 현실로 와닿을 것이다.
그만큼 무서운 게 바로 세뇌 교육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히틀러도 나치당을 이끌어 가기 위해 3년 정도를 바라보고 세뇌 방송을 계속해서 뿌려댔다. 하지만 고작 3개월도 안 돼서 군중들은 완전히 세뇌가 되어 유대인을 증오하고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 바쳤다.
아이를 출산하면 히틀러를 위해 바쳐야 한다는 신념이 모든 여자들에게 강하게 박혀 있던 만큼 세뇌 작업은 굉장히 위험하고 효과적인 통치 방법이다.
“조만간 한국 정부에서 대마 그룹을 통해 위원장님께 일정한 금액을 송금할 겁니다. 아마 이건 알고 계시겠군요.”
“예, 이미 예전에 한국 정부와 협의가 끝난 일입니다. 돈을 받는 대신, 남북 정상 회담을 열어달라고 하더군요.”
한국 정부가 너무 구차하게 매달리는 것 같아 좀 기분이 상하긴 한다.
“열어주실 겁니까?”
“못 열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금 한 톨의 자금이라도 모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돈이 급하긴 할 것이다.
어떻게든 핵무기 개발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니까.
중국과 러시아는 있는 힘껏 알아서 해보라는 식이고, 미국과 한국은 경제 제재로 핵개발을 견제하는 상황이니 김정일의 입장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라도 돈을 모으고 싶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원하는 걸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이미 전달을 드렸습니다. 제가 기업을 이끌고 들어오면 건들지만 말아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김정일은 앞에 있던 잔을 들어 목울 축인 다음 말을 이었다.
“리오차오를 밀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그리고 사장님의 방북을 제지하던 위원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회유가 안 되면 총을 쓰라는 게 저희 조직의 법칙이거든요.”
살벌한 발언이긴 하다. 북한의 수령 앞에서 꺼낼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의 원칙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안심이 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중국 정부가 저희를 간섭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이 양반. 어려운 걸 부탁하고 있군.
고작 이런 걸로 중국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해달라?
“위원장님, 참 어려운 걸 말씀하시는군요.”
“저도 어렵다는 건 잘 압니다.”
“잘 아시는 분이 그런 부탁을 할 줄은… 위원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북한이 중국과 연을 끊어버리면 진짜 고립이 되는 겁니다.”
“고립이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중국과 관계는 유지하되, 하인 부리듯이 부리는 중국의 태도를 고쳐 달라는 겁니다.”
난센스 같은 말이다.
솔직히 북한이 중국에게 주는 것은 많지만, 그만큼 북한도 중국에게 받는 것이 많다.
만약 중국이 북한을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진작 미국이 이 나라를 휩쓸어 버렸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동맹을 버리고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했다면 중국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까지 달려들어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을 터.
이 두 나라의 관계는 참 미묘하다. 그리고 이 두 나라에 아시아의 균형이 걸려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도 감히 선공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둘 중 하나가 미국이나 중국에게 버림을 받을 경우, 그 나라는 그날로 지옥도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끝까지 미군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미군을 버리고, 미국과 혈맹을 끊는 순간 북한이 그토록 외치던 적화 통일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태도를 고쳐 달라……. 그건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중국이 북한에게도 그러지만 우리나라에게도 그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리오차오가 중국 주석이 되는 날, 그건 꼭 말을 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앞으로 우리 북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입장에 서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소국 취급을 받으며 고개만 숙이고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동등한 입장에 서고 싶다라.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장 우리나라도 훗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도 미국에게는 쩔쩔매야 하는 신세에 놓인다.
미국 금융이 흔들리면 우리나라가 출렁이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더욱이 IMF사태로 인해 외국 시장 전면 개방으로 더욱 미국 자본이 침투해 있다.
미국인 투자자가 동시에 돈을 빼버리면 한국은 파산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 군사, 경제까지 우리나라도 미국에 압도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데, 북한이라고 다르겠는가? 이들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위치에 서 있다.
단지 미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자가 바뀐 것뿐이다.
이렇게 두고 생각을 해보면 중국보다는 미국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를 속박하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려 하진 않으니까.
“그것도 잘 얘기를 전달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저도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핵무기 개발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민감한 질문을 한 탓일까.
김정일은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당연히 저로서는 궁금하지요. 앞으로 그 핵무기가 북한의 미래를 바꿀 것이니까요. 그렇다는 건 파트너십을 맺은 제게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김정일은 이내 대답을 해주었다.
“어느 정도 완성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소형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정부 측에 요청을 했습니다만, 그들도 고민을 하는지 선뜻 답이 없군요.”
그 두 나라에서도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게 옳은 방법인지 저울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빼버리자니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중국도 핵이 있지만, 그걸 북한에 보내 준다면 국제적으로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될 터.
그래서 기술자를 몇 명 보내 도움을 주는 것인데, 북한이 핵 개발 최종 단계에 접어든 이상 중국과 러시아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럼, 그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중국이나 혹은 러시아에 있는 기술자들 몇 명을 알아봐서 보내 드리죠.”
실제로 북한이 기술자들을 납치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는 정보는 공공연하게 드러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납치할 생각이 없다. 할 수는 있지만, 괜히 트집을 잡히기보다는 정당한 대가를 줘서 데려올 생각이다.
“정말이십니까?”
“예, 진심입니다. 기술자들을 보내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핵무기를 완성시키고 싶군요.”
“그래 주신다면야…….”
김정일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라며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메데인 카르텔 정도만 되도 핵잠수함을 거래할 정도로 굉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러시아에 있는 레드 마피아가 핵무기 세 개를 가지고 있다가 러시아 정부에게 소탕당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메데인 카르텔이라고 해서 핵무기가 없을 것 같은가?
메데잍 카르텔의 시초가 된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핵잠수함 한 대와 핵무기 두 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건 원래 나중에 밝혀져야 하는 사실인데, 미래가 바뀌면서 그건 메데인 카르텔이 은밀하게 보관 중이다.
로이가 그걸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메데인 카르텔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연합에서 핵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마당에, 그깟 기술자들을 구하는 게 어렵겠는가?
나는 얼른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시켜줬으면 한다.
그건 나의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