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독재자와 독재자 (6)
북한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흥분감에 가득 차 있었다.
생각해 보라.
다른 곳도 아니고 북한이다.
이 특별한 땅을 내가 밟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김정일과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전세기를 타고 상공에서 북한을 내려다보니 감흥이 떨어졌다. 그래봐야 국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늙은 꼰대 한 명을 만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기대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그리고 북한이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하나, 세상에는 그 외에도 볼거리가 아주 넘친다. 단지, 내가 그런 걸 즐기지 못하는 것뿐이다.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나를 수행하기 위해 따라온 강철중.
그 외에도 몇몇의 경호원들이 나를 따라 북한으로 넘어왔다.
북한으로 넘어가기 전에 중국 정부와 합의를 본 것인데, 신변의 안전을 위해 최고의 정예만 데려온 것이다. 물론, 북한이나 중국 정부가 맘먹고 나를 죽이려 든다면 솔직히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질 보복이 어떨지는 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위원이, 그것도 중앙 위원 10명이 개죽음을 당했는데도 누구 하나 그거에 대해 반발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중국에서 떨치는 내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조선 인민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예쁘게 생긴 여자들이 한껏 모여 일행을 반겼다.
나는 그들의 인도에 따라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갔다.
어느 호텔 부럽지 않게 잘 만들어진 곳이었다. 대가족이 살아도 문제없을 정도의 평수를 자랑한다. 이런 곳을 나 혼자 쓰라고 툭 던져주다니.
인심도 좋다.
“피곤하시면 마사지라도 해드릴까요?”
여성들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마사지만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습니다.”
“아, 예. 그럼, 편안히 쉬십시오.”
북한 말을 쓸 줄 알았더니, 남한 말을 쓰고 있다.
일부러 나를 배려하기 위해 조치한 걸까.
“강철중 씨도 숙소로 돌아가서 푹 쉬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예, 사장님. 편히 쉬십시오.”
“저는 안 받지만, 강철중 씨는 마사지를 충분히 받아도 괜찮습니다.”
내 말에 강철중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싶지만, 사장님을 지켜야 하니 그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아는 남자다.
강철중도 밖을 나가면서 이제야 혼자 남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하루라…….
기분이 참 묘하다.
* * *
주석궁.
한국으로 치면 북한의 청와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김정일과 그의 가족이 머문다. 그리고 여기서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경제, 정치, 군사 등.
최고 수장인 김정일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실행에 옮길 수가 없다.
오늘 여기서 외교관들을 환영하는 만찬이 열렸다.
“여기까지 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생각 외로 김정일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라 통역관을 끼고 그의 말을 들어야 했다.
“북한과 중국은 형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그 끈끈한 관계를 절대 놓지 않도록 노력, 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형식적인 말들로 축사를 끝낸 김정일은 리오차오를 옆에 앉혀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만찬을 즐겼다.
예상은 했지만, 대단히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이건 만찬인지, 아니면 배불려서 죽이려는 건지 모를 정도로 산해진미가 줄을 이어 나왔다. 괜히 앞선 음식들을 많이 먹은 것 같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리오차오가 나를 가리키며 김정일에게 무슨 말을 속삭이는 걸 보았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관 하나가 다가와 김정일 쪽으로 인도해 주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내가 다가오자 김정일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나를 껴안기까지 했다.
솔직히 이 정도로 반겨줄 줄은 몰라서 나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위원장님.”
“자자, 그러지 말고 여기 앉으십시오.”
계속해서 의외라고 해야 하나.
나는 김정일의 권유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여기 있는 리오차오 위원에게 들었습니다. 그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그렇지 않아도 김태산 사장님을 한 번 만나 보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가야 하나 고민했었습니다.”
난 슬쩍 리오차오를 쳐다보았고,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나타냈다.
그렇다는 건 김정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첩보원들을 이용해 나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는 것이 된다. 그럼, 나야 훨씬 얘기하기도 편하지 않겠는가.
상대가 나에 대해 알고 있으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저를 만나보려 하셨다고요?”
“예. 한국,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눈이 밝으실 테니, 제가 도움을 청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북한의 독재자라고 해서 굉장히 거만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런 분위기는 풍기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관들 앞이라서 그런 건가?
아무리 북한의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중국 앞에서는 엎드려야 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고 싶군요.”
“하하. 역시, 말이 잘 통해서 좋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묻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끝내려는지 그는 딴청을 부렸다.
대충 김정일이 무슨 의도인지 알 것 같다.
나를 따로 불러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여기 중국 외교관들의 눈을 피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주도해서 말을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도 이 만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만찬을 즐기면 된다.
저 독재자와의 본격적인 대화는 그 후에 이어질 테니까.
* * *
“만찬은 즐거우셨습니까?”
“예, 덕분에 아주 훌륭한 음식들을 맛봤습니다.”
내 생각대로 김정일은 만찬이 끝나고 외교관들을 보내기 무섭게 나를 따로 불렀다.
한 가지 특이한 건, 방 안에 비밀 통로 문이 있어 그곳을 따라 쭉 가다보면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내 반응을 읽은 것인지, 김정일이 말했다.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즐겨 씁니다. 서양 놈들이 미사일을 퍼부어도 이 지하실은 아무런 피해를 줄 수가 없죠.”
일전에 들은 적이 있다.
북한의 진짜 기지는 전부 지하에 있다고 말이다.
전쟁이 터지면 아무리 평지를 때려봤자 핵심 무기와 간부들은 전부 지하에 박혀 있으니,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특공대를 계속해서 파견해야 한다고.
북한이 이렇게 지하 벙커를 만들어낸 것은 베트콩들의 수법을 배워서다.
미국이 베트남을 쳤을 때, 베트콩들은 땅속에 숨어 한차례 미사일이 평지를 휩쓸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다음 밖으로 기어 나와 진군하고 있는 미군을 괴롭힌 것인데, 북한도 그와 똑같은 전법을 쓰는 것이다.
“이런 비밀스러운 곳을 저한테 보여주셨다는 건… 중국 정부가 몰랐으면 하는 내용이 있어서 입니까?”
김정일은 슬쩍 나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조선 인민 공화국은 중국의 그림자 아래 살아야 했습니다. 어떤 것을 해도 중국이 간섭을 하고 있죠. 그들은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기 원할 뿐, 결코 강대국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장 자신의 국민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양반이 저리 말하니, 이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은 항상 중국이라는 사슬에 묶여 속박되어 있었다.
김정일은 그것을 끊으려 노력하다 갑작스레 사망하는,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그 후에 최고 위원장이 되는 김정은은 핵무기를 앞장세워 중국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결국 김정일이 핵무기를 만들고자 한 것은 단순히 미국과 한국만을 겨냥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뿐입니까? 그들은 대국과 소국이라는 개념을 항상 들먹이며 소국은 당연히 대국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논리에 빠져 있어요.”
중국의 대국론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도 중국 외교관 하나가 소국이 당연히 대국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망언을 한국 정부에게 하는 바람에 엄청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나라 자체가 말을 던지고 나서 주워 담을 줄을 몰라 우리는 어떤 사과도 받을 수 없었다.
원래 나라가 저렇다.
땅덩이가 넓고 인구가 많으니, 자신들이 이 지구의 중심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중국이니 않은가. 거기다가 이놈들은 괴팍한 우월주의에 빠져 있어 언젠가 온 세상을 중국 이름 아래 두겠다는 야망까지 있다.
어쩌면 중국이 백인 우월주의보다, 히틀러의 나치즘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래서 저한테 도움을 청하시는 겁니까?”
“예, 김태산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장님이 미국에서 세력을 넓힐 때부터 정보를 받고 있었죠.”
오늘 계속 의외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나에 대한 소식을 주기적으로 받았다는 건가.
분명 누군가는 나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북한의 최고 위원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굉장하더군요. 처음에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받고 있다가 우연찮게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크게 관심은 없었지요. 그러나 미국 정부가 사장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김정일은 계속해서 혼자 떠들었다.
“미국에 이어 일본, 거기다가 이제는 중국까지. 메데인 카르텔이 중국으로 진출한다는 정보를 받고 나서부터 드디어 중국에도 영향력을 펼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이렇다 할 진전이 없어 포기했나 싶었죠.”
워낙 여러 일들이 겹쳐 중국에 오랫동안 신경을 못 쓰다 최근에 들어 그곳을 점령할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죠. 국가도 아닌, 개인이. 그것도 조직을 이용해 나라를 점령한다라…….”
“위원장님도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텐데요. 첩보원들을 보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암살하고, 누군가는 돈으로 매수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의 수령이라는 위치가 주는 부담감이 크더군요. 제가 그랬다가 누군가의 손에 죽기라도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많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돈이 없어요. 사장님은 결국 돈으로 저들을 통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나와 김정일의 차이다.
그는 매일 감시를 받는 위원장이고,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다.
나는 돈을 움직이는 사람이며, 그 돈으로 통치를 하는 사람이다.
김정일에게는 막대한 인적 자원이 있지만, 이들을 외국에 보내 활용할 시스템도 없고 돈도 없다. 그리고 김정일은 모두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실정이다.
내가 만약 김태산으로 깨어나지 않고 김정일이라는 사람으로 깨어났다면 절망했을 것 같다. 아니면 그냥 한량처럼 살았거나.
북한의 독재자로서 한량처럼 사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