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96화 (196/325)

196화. 독재자와 독재자 (3)

“순전히 뻥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네.”

황규혁은 새롭게 단장한 63빌딩을 쳐다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내가 63빌딩을 사들여 어머니에게 드렸다는 걸 듣고도 믿지 않았던 양반이다.

“그나저나 저놈은 어딜 가든 슈퍼스타구먼.”

“태혁이는 대한민국의 얼굴이잖아요. 저놈은 어딜 가도 저런 대접을 받아요.”

나와 황규혁은 자랑스럽다는 듯 몰려든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는 태혁이를 바라보았다. 내 말대로 태혁이는 어느 나라를 가도 항상 사람들이 몰려든다. 녀석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아시아인 최초로 세 개의 체급을 제패한 챔피언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쇼맨십도 뛰어나 하는 경기마다 파이트머니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도전했던 일본 선수를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놓은 덕분에 더욱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중국은 언제 갈 생각이냐?”

“현재 상하이와 베이징 쪽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우팽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예전에 화자두에서 간부 노릇을 하던 사람입니다.”

“믿을 만해?”

“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 믿을 만합니다. 하지만 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도 능력은 있습니다.”

황규혁은 나를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뽑았다면 확실한 사람이겠지. 그래도 허튼 짓 하는 게 보인다 싶으면 알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런 거에는 철저하지 않습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래서 언제쯤 간다고?”

“태혁이 휴가가 끝나면 바로 갈 생각입니다. 형님은요? 원래 오늘 바로 가신다고 하지 않았아요?”

“아, 그게 어머니 오랜만에 보니까 며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괜찮으시겠어요? 지금 일본에서 할 일이 굉장히 많으실 텐데.”

“몰라. 이러라고 내가 밑에 있는 애들 두고 온 거야. 알아서들 하겠지.”

황규혁이 없으면 니치카야 카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황규혁이 조직 내부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넓다. 또 그가 관리하고 있는 일도 많아 실제로 저 양반이 없으면 뭐 하나 하기 힘들 정도다.

내 귀에는 벌써 니치카야 카이의 간부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황규혁은 다시 화제를 돌렸다.

“중국가면 뭐 하려고?”

“일단 정부 사람들부터 만나야죠. 제가 미는 사람의 이름이 리오차오인데, 그 사람을 먼저 만나 볼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영향력을 넓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도움은 될 겁니다.”

“북한으로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는 거구먼.”

“예, 확실한 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중국을 가야 명확해질 거 같습니다.”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무턱대로 북한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리오차오가 얼마나 중국 정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 그리고 여러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두지 않으면 더더욱 북한으로 갈 순 없다.

아무리 호기심이 있고 북한을 내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고 해도 목숨을 걸면서까지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보내기가 싫네.”

“저도 겁이 많아서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요. 조금 그렇다 싶으면 아예 안 갈 생각입니다.”

“뭐? 네가 겁이 많아?”

황규혁은 껄껄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야, 인마. 내가 이번 해에 들어서 들은 지랄 중에 제일이었다. 너야말로 겁 없는 미친개잖아.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나랑 성일환 형님, 그리고 큰 형님까지 너는 겁 없는 미친개라고 했었어.”

“아니……. 제가 언제 미친개처럼 굴었다고…….”

“말이라고 하냐. 뜬금없이 나타나서 어떤 파를 치겠다고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대한민국 삼대 조직 하나를 조져 버리겠다고 하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심장이 철렁였는지 아냐고.”

듣고 보니 내가 겁대가리 없이 산 것 같긴 하다.

젊은 혈기를 못 이기고 막 나간 건 분명히 있으니까.

“아무튼, 넌 아직 젊잖아. 물론, 나도 아직 젊고. 우린 아직 살아갈 날도 많고 할 것도 많지 않냐. 너무 급하게만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형은.”

아직 우리 둘 다 젊다. 그렇기에 살날도 많다.

황규혁 말대로 서두르기 보다는 천천히 가는 게 인생이 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갈 생각이 없다. 첫 번째 삶에서 나름 빠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때의 나는 너무 여유를 부렸던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예정이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이니까.

난 이 세계를 군림하는 어둠의 독재자가 될 것이다.

* * *

“이야, 이게 누구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허허, 이 자식. 한국 들어온 지 이틀 되었다면서 이제 찾아오는 건 무슨 심보야?”

“죄송합니다, 형님. 어머니를 먼저 뵈어야 해서…….”

“하하, 인마. 농담이야, 농담.”

성일환은 나와 황규혁을 유쾌하게 받아주며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황규혁도 그렇고 나도 성일환을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워낙 외국에만 쏘다녔으니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들었다. 일본 최고의 오야붕이 되었다는 거.”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나요?”

“야, 아직 나 안 죽었어. 정보는 내가 제일 빨리 받는다고.”

성일환은 기분 좋게 술을 넘기며 탄성을 내질렀다.

“크- 쪽바리 새끼들 위에 우리 황규혁이가 있다니. 아마 큰 형님도 널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계실 거다.”

“그렇겠죠. 하하.”

“그런데 여기 있어도 되는 거냐? 일본 쪽이 많이 시끄럽다고 하던데.”

역시, 성일환은 아는 게 많다.

워낙 예전에 권용일 옆에서 화진파를 이끌던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정보 수집 능력은 참 뛰어나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큰 문제는 다 해결을 했으니까요.”

“허허, 그럼 다행이지. 그나저나 네놈은 왜 회사에 안 오고 자꾸 다른 곳에서 놀고 있는 거야? 퍼뜩 안 들어와?!”

성일환은 다짜고짜 내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 일을 거의 등한시하고 있으니 보이는 반응일 것이다.

“하하, 죄송합니다, 형님. 조금만 더 힘을 써주세요.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는 형님이 회사를 잘 컨트롤해 주셔야죠.”

“쯧, 내가 네놈 시다바리야? 옛날 화진파 때도 나한테 다 짬을 때리더니, 이번에는 회사 일까지?”

“제가 믿을 사람은 형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끄응.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네. 나쁜 새끼.”

말은 저렇게 해도 성일환은 웃으며 내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한다는 건 아직 회사에 돌아올 여력이 안 된다는 거지?”

“예, 중국에 가봐야 할 일이 생겨서요. 그동안 형님께서 좀만 더 회사를 이끌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회사를 이끄나? 회사는 권오준 회장이 이끄는 거지.”

“그래 봐야 실상은 그냥 허수아비이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리드를 해주지 않으면 힘듭니다.”

권오준은 명패만 회장이지, 실제로 회사 내부에서 힘이 거의 없다.

회장으로서의 명예과 권력이 있긴 하나, 뭔가 일을 해도 성일환이 반대를 하면 다 끝이라는 것이다. 성일환은 내 대리인으로서의 일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오래는 못 해줘. 나도 사람이잖냐. 나이가 들만큼 들었어.”

성일환이 웬일로 약한 소리를 다 한다.

“아직 정정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더 부려먹겠다는 거냐?”

“섭섭지 않게 잘 챙겨 드리겠습니다, 형님.”

“인마. 내가 지금 돈이 아쉽겠냐. 그렇지 않아도 네 덕분에 쌓은 돈이 아주 썩어날 정도야. 늙어 죽더라도 그건 다 쓰고 죽어야지. 억울해서 내가 죽을 수 있겠어?”

나는 그런 성일환을 살살 달래며 그의 잔에도 술을 채워주었다.

“그러니까 더욱 오래 사셔야죠. 돈 다 쓰시려면.”

“젠장. 알겠으니까, 그 말 꼭 지켜라.”

“물론입니다, 형님. 아예 돈으로 산을 쌓아 드릴게요.”

성일환은 잔에 담긴 술을 깨끗하게 비운 뒤, 입을 닦았다.

“중국은 왜 또 가는 거냐? 화자두인가 뭔가 하는 놈들은 이미 다 처리했잖아.”

“그게 중국이 요즘 어떤가 확인도 할 겸, 북한도 한 번 방문해 볼 겸, 겸사겸사요.”

“아, 그래? 일을 벌였으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북한도 한 번 가보는 것도… 엥?”

성일환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벼 팠다.

“어딜 간다고?”

“북한이요.”

“북한? 김 씨 일가 있는 곳?”

“예.”

과연 성일환의 반응은 어떨까.

나를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평소 그의 행실을 미루어 봤을 때, 아마 내 머리를 쥐어박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잔을 비우던 성일환에게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김 씨 그놈이랑 잘 어울리겠네.”

“…예?”

오히려 놀란 건 나였다.

김정일과 내가 잘 어울리겠다고?

“뭘 그렇게 놀라? 너도 알고 가는 거 아니야?”

“뭘 알고 가요?”

“김정일이 북한 독재잖아.”

“그렇죠.”

“너도 독재자고.”

“…제가요?”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성일환을 쳐다보았고, 황규혁은 그의 말뜻을 헤아렸는지 갑자기 박수를 치며 웃기 시작했다.

“어디서 이놈이 오리발이야. 너야말로 지독한 독재자지. 한국부터 시작해 일본이랑 미국, 거기다가 이젠 중국까지. 도대체 얼마나 해먹을 생각이야? 무슨 칭기즈 칸인 줄 알았네.”

“하하, 그래도 독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얼마나 관용과 포용력이 넓은 사람인데요.”

“지랄한다. 시끄럽고 술이나 마셔, 인마.”

성일환은 내게 잔을 건네며 쭉 들이켜라는 손짓을 보였다.

이 양반을 놀래주려다 오히려 역으로 당한 기분이다.

“독재자와 독재자의 만남. 재밌을 거 같지 않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성일환과 황규혁은 쿵짝이 잘 맞는다. 특히 나를 놀려먹을 때만 말이다. 그러다 성일환은 진지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태산아.”

“예, 형님.”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지금까지는 내가 농담으로 말하긴 했지만, 북한은 아주 위험한 나라야. 중국이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긴 해도 한 번 빡치면 어떻게 돌지 모르는 놈들이라는 거지. 최근 들어 그놈들도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

나도 알고 있다.

중국의 통치 아래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던 김정일은 말년에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고 얼마 못 가 김정일이 급사해 버리고 마는데, 은연중에 중국 정부가 김정일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그러다 김정은이 3대 독재자로 세습을 받게 되는데, 그는 평생 중국의 속박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중국을 혐오하는 지도자라 그런지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자주 보이게 된다.

“그래서 더욱 북한으로 가려는 겁니다. 그리고 형님께 부탁드릴 일도 있고요.”

“나한테?”

“예, 제가 일이 잘되면 조만간 화진 그룹이 대대적으로 북한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영향력을 확실하게 키운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저와 화진 그룹을 건드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성일환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북한으로 가겠다는 게 무기를 얻으려 가는 거였구먼.”

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사람이다.

“예, 한국 정부를 언제든지 흔들어놓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으려 하는 겁니다.”

내 대답을 들은 성일환은 아주 만족한다는 듯 음흉한 입가를 보였다.

“독재자와 독재자가 만나면 아주 볼 만하겠네. 통하는 것도 많겠어.”

글쎄.

과연 그럴까.

하지만 성일환의 말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부정은 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나는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독재자다.

그는 북한이라는 작은 나라 안에서만 독재자이지만, 나는 전 세계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독재자이지 않은가. 그것도 돈이라는 무기로 말이다.

둘의 차이점은 있어도 결국 본질은 똑같을 터.

이제 슬슬 독재자와의 만남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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