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93화 (193/325)
  • 193화. 새로운 황제 (5)

    “엄청난 참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보시는 대로 신주쿠 거리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어제 오후 11시경. 야마구치 구미에서 내분이 일어나 수백 명의 조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였습니다. 칼은 물론 총까지 동원되어 시민들은 엄청난 불안에 휩싸였는데, 경찰들의 늑장 대응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뉴스에는 온통 야마구치 구미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황규혁이 히나다를 제거하고 나서 취한 행동은 니치카야 카이에 협조할 사람들을 찾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 아군을 만들어놓았던 황규혁이지만, 그들만 끌어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로 인해 내가 직접 나서서 입김을 발휘했다.

    와타나베를 따르듯이,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 꽤 있었다. 그들은 황규혁과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행동에 나섰는데, 그건 바로 내전이었다.

    나는 니치카야 카이를 움직여 야마구치 구미 전체를 직접 무너뜨릴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피해도 커지게 되니, 차라리 내분을 일으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너무 극단적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군요. 총리님께서도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계십니다.”

    자유 민주당의 핵심 인물이자 현 총리의 오른팔이라고 볼 수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 사람은 앞으로 2년 후에 일본 총리가 되어 무려 5년 반 동안 일본을 다스리게 된다.

    지금은 84대 총리 오부치 게이조의 그늘 아래 머물러 있다.

    “야마구치 구미와 자유 민주당의 관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상부상조하며 지내던 사이이니까요. 더군다나 와타나베 쿠미쵸가 현 총리님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지요.”

    “잘 아시는군요. 김 사장님도 저희와 여러 번 만나지 않았습니까?”

    와타나베가 쿠미쵸로 있었을 당시, 그는 일본 자유 민주당을 적극 지원하여 인맥을 쌓았다. 그로 인해 나도 여러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게이조가 총리로 임명되기 전에도 몇 번 만나 보았다.

    “총리님이 와타나베 쿠미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많이 슬퍼했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와타나베 쿠미쵸는 자유 민주당의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서로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의원님이 그러하듯, 저도 그렇습니다. 와타나베 쿠미쵸와는 형제처럼 지냈지요.”

    “그걸 저희들도 알기에 제가 대표로 나와 사장님을 만나 뵙는 겁니다.”

    이들은 와타나베와 사이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만큼 야마구치 구미가 커져 버린 덕분에 일부러 각별한 사이로 남은 것도 있다.

    일본은 야쿠자의 나라다. 세월이 지나면서 정부가 야쿠자를 탄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본은 야쿠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이들이 더욱 조심을 하는 것이다.

    자칫 야쿠자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와타나베에게 반항하며 야쿠자를 탄압하려 했던 의원 몇 명이 의문의 사고사를 당해 죽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야마구치 구미가 골든 연합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야마구치 구미를 잘못 건드리게 되면 미국에게 어떤 압박을 받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의원님, 총리님께서 뭘 걱정하시는지는 잘 압니다. 현재 야마구치 구미는 주인을 잃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와타나베 쿠미쵸의 사망으로 아직 제정신을 찾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 싸움을 조장하신 겁니까?”

    “하하, 아닙니다. 야마구치 구미는 단순히 내분에 휩싸인 것뿐입니다. 서로 쿠미쵸가 되고 싶어 발악을 하는 것이지요.”

    나는 한가롭게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고, 고이즈미는 반대로 입술이 바싹 말라갔다.

    “지금까지 와타나베 쿠미쵸가 자유 민주당을 위해 힘을 써주신 것을 의리로 삼아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간다면 정부에서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모두 나 때문이다.

    야마구치 구미가 공격을 받았다는 빌미로 골든 연합의 영향력을 이용해 미 정부를 움직인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내게 나름의 경고를 주고 협력을 얻기 위해 고이즈미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의원님, 총리님께서 뭘 원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사장님. 우리 모두가 그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에게 조금만 협력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떤 것이든 말씀해 보십시오.”

    나는 준비했던 서류 하나를 고이즈미에게 건넸다.

    “이건…….”

    “공권력을 투입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여기 있는 사람들을 체포해 주신다면 이번 사태가 아주 원만하게 해결될 거라 봅니다.”

    고이즈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류를 펼쳐 보았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고이즈미의 안색이 달라졌다.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들 명단이군요.”

    “거기에서 아시는 분들이 좀 있나 봅니다.”

    “예, 아무래도…….”

    자유 민주당 자체가 야마구치 구미와의 협력으로 세력을 키웠으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내전을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체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하십시오. 정부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려 야마구치 구미를 소탕했다고 말입니다.”

    고이즈미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말씀은 야마구치 구미를 강제 해산시킨다는…….”

    “하하, 야마구치 구미를 완전히 없앤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는 턱없이 약해지겠지만 일본의 평화와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고이즈미는 대충 알아들은 눈치였다.

    이미 내부적으로 붕괴해 버린 야마구치 구미를 버리고 새로운 조직을 일본의 최고 야쿠자 집단으로 만들겠다는 내 의지를 읽은 것이다.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군요.”

    “아니요, 의원님이 각오를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누구에게도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의원님, 이번 일만 잘 끝난다면 와타나베 쿠미쵸가 그러했듯, 저도 자유 민주당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처럼 능력 있는 분이 차기 총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드리죠.”

    고이즈미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기, 김 사장님.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이 자식이 어울리지도 않는 쇼를 하기는.

    이놈은 이 대답을 받으려고 일부러 버틴 것이다.

    “의원님처럼 유능한 분이 총리를 하셔야지, 누가 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저만 믿으십시오. 의원님 앞에 방해가 될 만한 걸림돌은 알아서 다 치워 드릴 테니까요.”

    고이즈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다 서류를 챙겼다.

    “김 사장님이 도와주신다면야 그보다 더 큰 지원군은 없을 겁니다.”

    현 총리는 일본이 외환 위기를 직격탄으로 맞으면서 지지율이 굉장히 낮아진 상태다. 그래서 짧은 임기 기간을 마치게 되는데, 이때까지도 고이즈미는 확신한 지지층이 없어 허덕이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게 된다면 고이즈미는 단숨에 일본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을 터.

    처음부터 이놈이 날 찾아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떻게든 나와 손을 잡아 최고의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 야마구치 구미라는 미끼를 앞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차기 총리가 될 사람과 미리 손을 잡는 건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 * *

    [정부의 대대적인 진압 작전.]

    [야쿠자, 뿌리째 뽑아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겠다.]

    [일본 정부, 드디어 칼을 뽑았나?]

    [야마구치 구미 조직원 2천 명 체포. 그중 50명의 간부들도 함께 체포돼.]

    [드디어 터진 일본 정부의 분노.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소탕한다.]

    자유 민주당에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한 지 이틀이 지나서 일본 정부는 대대적인 진압 작전에 들어갔다. 나는 미리 야마구치 구미 간부들의 위치를 일본 정부에 넘겨주었는데, 그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간부들을 추적해 체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2천 명의 조직원들이 붙잡혀 시민들 눈에는 확실히 정부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약삭빠른 놈들. 처음부터 나설 생각도 없었던 놈들이.”

    황규혁은 신문을 내던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말대로 일본 정부는 원래 이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야마구치 구미와 스미요시 카이, 이나가와 카이가 싸울 때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건 은연중의 사회 쓰레기들이 알아서 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괜히 나섰다가 야마구치 구미와 사이가 틀어져 안 좋은 꼴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한 것도 있다.

    “그래도 이놈들 덕분에 수월하게 내부 정리를 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언론에서도 야마구치 구미가 다 소탕되었다는 것처럼 떠들고 있으니까.”

    정부의 입김으로 언론 플레이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리고 나도 여러 언론사에 돈을 뿌려 정부의 보조를 맞춰주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네가 넘겨준 리스트대로 일본 애들이 알아서 잡아들여 주고 있으니까. 그중 몇 명은 이미 우리가 알아서 처리를 했고.”

    “꽤 빨리 마무리가 되었네요.”

    “그렇지. 원래는 몇 년이 걸려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는데.”

    황규혁의 말대로 몇 년이 걸렸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을 하면서 공권력이 투입되자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더군다나 나와 황규혁이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 있는 간부들을 니치카야 카이로 편입시킨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끝난 것도 있다.

    내전을 빌미로 정부가 나서게 한다는 나와 황규혁의 작전이 통했으니까.

    “네 덕분이다. 예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너한테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형님.”

    내가 황규혁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사람은 어쩔 땐 나보다도 더 어머니를 챙겨 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황규혁을 친형 이상으로 대해주고 있다.

    “아, 한 달만 있으면 새해잖아. 그때 같이 어머니랑 식사라도 해야지?”

    “괜찮으시겠어요? 야마구치 구미를 갈무리하고 니치카야 카이도 새로 재편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괜찮아. 잠깐 다녀오는 건데. 그리고 어머니가 나 안 오면 또 뭐라고 하신다. 꼭 가야지.”

    어머니도 황규혁을 친아들처럼 대해주고 있다.

    그만큼 황규혁이 어머니께 참 잘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태혁이도 이번에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그러자.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이라도 먹어야 기운을 차릴 것 같다.”

    지금 보니 황규혁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도움을 받은 것도 있지만 황규혁은 기어코 일본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던가.

    산전수전 겪으며 마침내 이곳까지 왔다.

    일본의 새로운 황제라…….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이 그 자리에 올랐으니, 나도 모르게 뿌듯함이 들었다.

    “뭘 그렇게 보냐?”

    “오늘따라 왠지 더 인물이 잘 사시는 것 같아서요.”

    “흐흐. 이 황규혁, 아직 안 죽었지. 그리고 나 아직 팔팔한 총각이야, 인마.”

    서른 중반의 나이에 이 정도의 업적을 세웠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언제쯤 가족을 꾸리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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