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91화 (191/325)
  • 191화. 새로운 황제 (3)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의 수장이 사라진 지금, 일본의 어두운 거리는 큰 혼란에 젖어 들려하고 있다.

    도쿄, 나고야, 오사카, 홋카이도 등 16개의 지역에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던 두 대조직이 사라졌으니, 그 혼란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혼란은 누군가에게 큰 기회가 된다.

    나는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했고, 황규혁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것은 기회다.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

    “안녕하십니까, 쿠미쵸!”

    전쟁이 끝나고, 황규혁은 니치카야 카이의 조직원들을 전부 도쿄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왕좌로 걸어갔다.

    황규혁이 자리에 앉자 바닥에 머리를 닿은 채 절을 올리고 있던 이들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사뭇 황제의 등장을 보는 듯하다.

    “바쁜데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쿠미쵸!”

    신생이기도 하고, 단기간에 조직이 성장을 해서 내부적으로 많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나. 모두 황규혁을 진심으로 따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을 카리스마로 압도하고 있는 황규혁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잠시 연합을 맺었다가 우리에게 소탕당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와타나베 쿠미쵸가 죽은 것도.”

    “…….”

    황규혁은 조직원들을 스윽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거리는 완전히 비어 있다. 통치자가 없어 혼란스러운 거지.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내가 어떻게 니치카야 카이의 쿠미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정했다. 오늘부로 나는 일본 전역을 니치카야 카이의 산하로 흡수할 것이다.”

    나는 가만히 조직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예상 외로 그들은 모두 덤덤한 얼굴빛을 띠고 있었다. 오히려 이 날이 언젠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막 두 조직과의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이제 일본을 우리 니치카야 카이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는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할 터. 절대 뒤처지지 말고, 절대 쓰러지지 마라.”

    “예, 쿠미쵸!”

    조직원들의 각오는 비장했다. 누구 하나 황규혁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얼마나 니치카야 카이를 잘 다스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흡사 권용일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알려주겠다. 신주쿠과 시부야에 있는 두 조직의 잔존 세력들은 이미 다 처리를 했다. 그러나 오사카와 나고야, 교토 지역에는 아직 그 두 조직의 세력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먼저 그놈들을 엎어버린 다음 그쪽 지역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든다.”

    “예, 쿠미쵸!”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다.”

    오사카와 나고야, 교토를 얻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난 듣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두 조직을 완전히 쓸어버리기 전에, 야마구치 구미를 니치카야 카이의 산하에 두어야 한다.”

    그제야 조직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민감한 주제가 나온 것이다.

    일본 전체를 산하에 넣겠다는 포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조직원들이 야마구치 구미라는 이름에 얼굴이 굳었다. 그만큼 거대한 조직이고, 니치카야 카이는 그들과 형제의 연을 맺은 조직이지 않던가.

    황규혁도 이들의 흔들림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껄끄럽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야마구치 구미는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고 있어. 분명히 내부에서 큰 싸움이 일어나겠지. 그들이 붕괴하기 시작하면 와타나베 쿠미쵸가 애써 키워놓은 일본 전체의 영향력이 사라지게 돼.”

    갑작스러운 두목의 죽음으로, 그 밑에 있는 간부들이 서로 싸우다 공멸한 조직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했고, 세계 어디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굳이 깡패로 비유하지 않아도 된다.

    작은 그룹이라도 리더가 급작스럽게 사라지면 누군가는 차기 리더가 되기 위해 억지로 밑의 사람들을 밟아 오르게 마련이니까.

    지금 황규혁이 걱정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와타나베가 왕성하게 키워놓은 야마구치 구미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을 말이다.

    나도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잠시… 말을 해도 될까요?”

    나는 앞으로 나서며 황규혁에게 허락을 구했다.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고, 니치카야 카이에서 날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다들 내 말에 집중했다.

    “황규혁 쿠미쵸가 말한 게 무엇인지 다들 아실 거라 봅니다. 와타나베 쿠미쵸의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야마구치 구미는 우리와 손을 잡고 스미요시와 이나가와 카이를 무너뜨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영원한 아군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저기… 그 말씀은 야마구치 구미 쪽에서 우릴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조직원들 중 하나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주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서 분명히 저와 황규혁 쿠미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를 배척하는 이들도 당연히 있다는 것이겠지요. 저로서도 둘 중 어떤 세력이 더 강한지는 확답을 드리지 못할 것 같군요. 중요한 건,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난 처음부터 스미요시와 이나가와 카이를 정리하는 데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았다. 어차피 그놈들은 야마구치 구미와 니치카야 카이가 손을 잡으면 알아서 해결이 될 놈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다음 일을 줄곧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야마구치 구미를 붕괴시키지 않고 황규혁을 그들의 통치차로 세울 수 있는가.

    줄곧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다 솎아내야 한다는 건가.

    굉장히 피곤하고 섬세한 작업이다. 어쩌면 이것으로 인해 야마구치 구미가 붕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야마구치 구미의 이름을 지워 버리고 니치카야 카이의 산하에 둔다면…….

    그 일을 하려면 일단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들을 전부 제거하고 잔당들까지 깡그리 없애 버려야 한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흡수를 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아마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고민이군.

    이대로 야마구치 구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럼, 이렇게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선공을 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야마구치 구미에서 기습을 가한다면 우리의 피해는 상당할 겁니다.”

    황규혁이 니치카야 카이를 세울 때부터 함께했다는 기타노 켄이치.

    그는 실질적인 황규혁의 오른팔이자 두뇌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의 충성심은 의심할 게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저 사람의 뒷조사는 내가 철저하게 해놓았으니까.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하자고?”

    “예, 쿠미쵸.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단숨에 쓸어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지만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다.

    다짜고짜 야마구치 구미를 공격할 생각부터 하다니.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기타노 말대로 저기서 먼저 작심하고 덤비게 된다면 오히려 니치카야 카이가 일본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음…….”

    황규혁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대로 야마구치 구미를 치느냐, 아니면 대화를 통해 그들과 해결을 보느냐가 문제다.

    상대는 야쿠자다. 그것도 일본 최고의 야쿠자 조직이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쿠미쵸!”

    황규혁이 뭐라 말을 하려고 할 때, 조직원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야마구치 구미에서 사림이 왔습니다.”

    “응? 사람이 와?”

    “예, 그런데 인원이 좀 되는 것 같아…….”

    “인원이 좀 된다고?”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까지 야마구치 구미를 먼저 치네 마네를 따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저쪽이 언제 먼저 공격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야마구치 구미에서 사람이 왔다. 그것도 무리를 이끌고.

    “이 새끼들이 벌써 움직인 게 아닙니까!”

    “당장 나가서 죽이고 오시죠!”

    “쿠미쵸를 따르겠습니다!”

    흥분한 조직원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중재한 것은 기타노였다.

    “잠깐. 모두 기다리십시오. 만약 저들이 정말 우리를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보고가 올라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야마구치 구미의 방식을 모릅니까? 항상 떼거리로 달려들어서 쓸어버리는 조직입니다. 미리 경고장을 날리는 것도 없지요. 기습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곳이니까요.”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니 조직원들은 흥분하던 마음을 멋쩍게 가라앉혔다.

    “쿠미쵸, 일단 그들을 안으로 들여서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황규혁은 내게 슬쩍 시선을 옮겼다.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일단 얘기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예, 쿠미쵸.”

    조직원이 밖으로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서른 명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내가 모르는 얼굴이 없을 정도였다.

    황규혁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야마구치 구미의 수뇌부들이 왜 여기에…….”

    야마구치 구미의 영향력은 일본 전역에 뻗어 있다.

    즉,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야마구치 구미가 조금이라도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당연히 수뇌부의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간부 수만 수백 명에 달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뇌부도 50명이 넘는다.

    그중 30명이 이곳에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 나서서 물었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히나다 사장님.”

    히나다 구로이는 야마구치 구미가 운영하는 투자 회사의 사장직을 맡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지만 실질적으로는 야마구치 구미 수뇌부를 총지휘하는 인물이다.

    “역시, 사장님도 여기에 계셨군요. 잘됐습니다.”

    이 양반이 여기까지 뭘 하려고 온 걸까.

    그것도 저 많은 수뇌부의 사람들까지 이끌고.

    “자, 그것을 내와라.”

    “예.”

    히나다는 제자리에 앉은 다음, 부하를 시켜 뭔가를 가져오게 했다.

    우습게도 그건 사케가 든 병과 두 개의 잔이었다.

    황규혁은 히나다와 술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뭐 하자는…….”

    “황규혁 쿠미쵸.”

    황규혁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히나다가 끊어버렸다.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김태산 사장님도요.”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조직원들이 격하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감히 쿠미쵸께!”

    하지만 히나다의 얼굴은 아주 덤덤했다.

    “국적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유치한 걸로 따질 생각은 없어요. 단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제가 싫은 겁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지금은 두 분을 아주 존경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실력과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니까요. 특히 여기 계신 김태산 사장님이 없었더라면 야마구치 구미는 진작 붕괴했겠지요.”

    “그럼…….”

    “그래서 저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히나다는 부하에게 잔을 하나 건네 황규혁에게 주게 했다.

    “형제가 되겠다는 맹세의 의미입니다. 이 잔을 마시고 우리는 영원한 혈맹을 이어가는 겁니다.”

    “그 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요? 그 두 조직이 사라진 이상, 이제 남은 건 야마구치 구미와 니치카야 카이라는 걸. 언제 싸워도 이상할 게 없지요. 하지만 와타나베 쿠미쵸가 없는 지금의 야마구치 구미로는 니치카야 카이를 이길 수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리고 김태산 사장님이 여기서 눈을 부릅뜨고 계신 한, 우리가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겠죠.”

    히나다는 슬쩍 나를 바라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약속을 하자는 겁니다. 앞으로 니치카야 카이와 야마구치 구미는 형제가 되는 겁니다. 물론, 황규혁 쿠미쵸에 대한 충성도 약속하겠습니다. 또한 니치카야 카이가 야마구치 구미를 잘 통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드리지요.”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될 줄은 몰랐다.

    황규혁도 그건 마찬가지였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야마구치 구미의 자존심까지 굽히면서…….”

    히나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리켰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황규혁 쿠미쵸도 존경하지만 여기 계신 김태산 사장님도 존경을 한다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