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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88화 (188/325)
  • 188화. 대변화 (5)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의 손을 잡고 움직인 간부들의 숫자는 총 17명.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숫자다. 그만큼 야마구치 구미의 규모가 상당하니까. 하지만 이 17명 중에는 수뇌부의 간부들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배신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런데 요즘 와타나베가 좀 간당간당하긴 했어.”

    “어떤 것 때문예요?”

    “슬슬 후계자 작업에 들어간 거지. 자기 아들을 쿠미쵸로 세우려고 했던 거야. 그러면서 아들의 권력에 방해가 될 만한 사람들을 추리며 천천히 제거를 하다 보니 저놈들도 위기를 느낀 거지.”

    결국 빈틈을 보이게 된 건 와타나베라는 것인가.

    쿠미쵸 승계를 한다라…….

    와타나베의 아들은 이제 고작 20살이 되었다. 그런 놈이 뭘 안다고 야쿠자들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놈이 야무지고 똑똑한 인물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너, 와타나베 아들 얼굴 본적 있냐?”

    “들어는 봤죠. 망나니처럼 살고 있다던데요.”

    “그래. 그런 놈한테 야마구치 구미가 넘어가 봐. 아주 가관일 거다.”

    “그래서 배신을 했다는 겁니까?”

    “조직의 미래를 걱정해서 그런 놈들도 있고, 자기 목이 먼저 잘려 나갈까 두려워서 그런 놈들도 있을 거라는 거지.”

    와타나베의 오른팔이었던 이타치도 솥에 넣어지는 사냥개 신세가 될 거 같아 스미요시 카이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일본에 없는 사이, 와타나베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벌여 이런 사달을 나게 할 줄이야.

    “내가 옆에서 잘 봤어야 하는 건데……. 와타나베가 나도 슬슬 견제하는 게 느껴져서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했거든.”

    황규혁까지 견제를 할 정도면 말 다했다.

    그만큼 자신의 자리를 새끼한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일단 이것부터 해결을 해야겠군요.”

    “그래, 먼저 해결을 하고 다음 단계로 가야지.”

    나는 황규혁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널찍한 사무실 안은 이미 조직원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누가 누구 편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셨습니까.”

    이타치가 와타나베의 오른팔이었던 것처럼 가이후 소스케도 그와 마찬가지로 와타나베의 핵심 행동대장이었다. 그는 저번 날 나를 도와 일본 언론사 대표들을 붙잡은 적이 있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쿠미쵸를 위한 일이니까요.”

    이타치와는 다르게 묵묵한 소스케는 사냥개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와타나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와타나베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놈들입니까?”

    “예, 주신 명단을 보고 이쪽 건물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야마구치 구미 수뇌부에 속한 간부들입니다.”

    소스케는 굉장한 싸움꾼이다. 그를 존경하는 조직원들이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 상당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그가 앞으로 가겠다면 따라올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일전에 들은 얘기지만, 이타치보다 한 수 위인 소스케가 더 많은 신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으읍…….”

    간부 다섯 명을 제외한 다른 조직원들은 전부 죽은 것인가.

    소스케의 몸에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을 보아 아주 난도질을 해댄 것 같다. 와타나베의 죽음을 자초했던 놈들이니, 소스케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리라.

    나는 간부의 입에 붙여져 있던 테이프를 뜯어주었다.

    “푸하-!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리야!!”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것인지.

    상대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다른 간부들의 입에 붙여져 있는 테이프도 뜯어주었다.

    “여러분이 왜 여기에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직접 여기까지 온 이유도 모르시고요?”

    그래도 찔리는 건 있는지 다들 흠칫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우리한테 이런 짓을 벌여! 가뜩이나 쿠미쵸가 살해당해서 조직이 혼란스러운데. 이때를 노려 우리를 다 죽이고 새로운 쿠미쵸가 되어보겠다는 건가?”

    뻔뻔한 새끼.

    말을 안 하면 반이라도 갈 텐데. 스스로 명줄을 재촉하고 있다.

    “안 되겠군요. 아무래도 기억을 못하시는 것 같으니까, 제가 도움을 조금 드리겠습니다.”

    난 차가운 눈빛으로 소스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소스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간부들에게 다가갔다.

    저 남자가 다가오는 것은 무서운지, 그들은 바들바들 떨며 몸부림을 쳤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가, 가까이 오지 마! 으, 으아아악-!!”

    나는 잠시 거리를 벌리고 소스케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간부들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칼로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계속해서 내는 등, 아주 능숙한 솜씨를 뽐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간부들의 비명 소리는 날로 커져만 갔다.

    그렇게 저들에게는 지옥 같은 30분이 흐르고…….

    “이제 대화를 하실 맘이 생겼나요?”

    “으으……. 사, 살려줘…….”

    “아아, 그렇게 목숨이 아까우셨으면 줄을 잘 잡으셨어야죠.”

    “크으읍-”

    원통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간부들.

    나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이번에도 협조를 하지 않으시면 소스케 씨가 아까보다 더 지독한 고문을 하실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쉽게 죽으실 순 없을 거예요.”

    “나, 나는 잘못이 없어. 와타나베 그 새끼가 먼저 시작한 일이야. 그놈이 아들 녀석을 쿠미쵸로 세운다고 설치면서 우리 간부들의 목숨까지 위협했다고! 우린 정당하게 방어를 한 것뿐이야!!”

    나름 변명거리는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직을 배신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예, 물론 그러시겠죠. 그러나 조직을 배신했다는 것도 결국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건 아무리 정당화를 해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개소리는 그쯤하시고 협조나 하시죠. 제대로 협조만 하신다면 목숨은 살려 드리겠습니다.”

    내 협박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당신들 외에 12명의 간부들이 배신을 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또 있을까요?”

    나는 명단을 던져 주며 물어보았고, 그들은 다 같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이름들이 끝입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음 스미요시와 이나가와 카이의 계획이 뭡니까? 무슨 지령이라도 내려왔을 것 같은데.”

    “그건…….”

    한 놈이 말을 끌자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이제 그만 인생에서 하직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아, 아닙니다. 이틀 후에 두 조직이 시부야에 있는 야마구치 구미의 본거지를 친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 우리는 조직원들을 분산시켜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요.”

    야마구치 구미의 본거지인 시부야를 공격한다라…….

    심장부를 공격해서 아예 끝장을 내보겠다는 것이다.

    “연락책은?”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직접 가서 만나십니까?”

    “아니요. 위험할 수도 있어서 조직원들을 보내 연락을 취합니다.”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개인의 안전을 위해 직접 가지 않고 대리인을 보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걸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만들어낸 서류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직원들의 배치도라든지…….”

    “있습니다.”

    “있으면 주시죠.”

    간부는 불편한 몸을 천천히 일으켜 난장판이 된 책상을 뒤지다 서류 뭉치 하나를 가져왔다.

    그곳에는 조직원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이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를 속일 수 있을 것 같다.

    “소스케 씨.”

    “예, 사장님.”

    “오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다른 간부들을 잡아들일 때도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면 분명 스미요시 카이가 눈치를 챌 거예요. 은밀하게 잡아들이거나 죽이면 어떨까요?”

    소스케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서류가 넘어오긴 했지만, 스미요시 카이가 야마구치 구미의 변화를 눈치채면 분명 계획을 엎어버릴 터. 그렇게 되면 그들이 다음에는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게 된다. 차라리 우리의 행동을 노출시키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군요.”

    “그럼… 우린 이제 살려주시는 겁니까?”

    “하하, 아뇨.”

    간부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게 따져 물었다.

    “아까는 살려준다고 했잖습니까!”

    “뭐, 이런 걸 배신이라고 하죠. 이제 배신당한 상대의 기분이 조금은 이해가 되십니까?”

    “이, 이 개자식! 우릴 감히 속… 크악-!”

    내 눈짓에 따라 조직원들이 파이프를 휘두르며 이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죠. 쉽게 죽을 순 없다고.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게 여기 계신 소스케 씨가 잘 배웅해 드릴 겁니다.”

    “아, 안 돼! 사, 살려줘! 제발!!”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힐끗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혀 있는 사무실 안에서 지독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형님, 이 서류 한번 보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려주세요.”

    황규혁은 내가 준 서류를 살펴보며 굳은 표정이 점차 펴지고 있었다.

    “이놈들이 꽤 머리 썼네. 근데 우리가 이걸 역이용하면…….”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는 꼴이죠.”

    생각 이상으로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머리를 잘 썼다. 하지만 이런 고급 정보가 우리 손에 있는 이상, 그들의 꾀는 스스로의 함정을 파는 용도로 밖에 쓰지 못한다.

    “제 생각으로는 이렇습니다. 이놈들이 시부야를 공격하는 당일에 우리는 미리 그쪽 거리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럼?”

    “스미요시 카이의 본거지를 공격하는 거죠. 저는 제 조직원들을 데리고 매복을 하며 그놈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형님은 텅텅 비어 있는 상대 본거지를 박살 내서 거기 있는 쿠미쵸를 제거해 주십시오.”

    본진을 내어주는 척하며 상대의 본진을 공격해, 조직을 이끌고 있는 수장을 제거한다는 게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나는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급하게 철수를 하는 상대편 조직원들의 뒤를 공격하는 것이다.

    “좀 도박이 아닐까.”

    “위험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대박이지. 그러니까 도박이라는 거야.”

    황규혁은 턱을 긁적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위험성이 높은 작전인 만큼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 나는 그가 반대하면 새로 계획을 만들 작정이었다.

    “젠장. 그래, 한번 해보자.”

    “스미요시 카이의 대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멱을 따서 와주세요. 스미요시가 무너지면 이나가와 카이도 쉽게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둘이 함께라면 무섭지만, 협력이 무너지면 우리로서는 땡큐죠.”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 각자의 힘은 크지 않다. 둘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와타나베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따로 공략해 무너뜨린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알겠어. 준비하고 있을게. 너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매복해서 놈들의 뒤를 친다고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니까. 너도 알다시피 이놈들이 좀 많냐?”

    숫자면에서는 내가 밀린다. 하지만 화력면에서는 자신 있다.

    “전투는 숫자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손자병법에.”

    “읽지도 않은 새끼가 아는 척은.”

    황규혁은 낄낄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이틀 후의 일을 위해 오늘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참 많을 것이다.

    “난 가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너도 오늘은 들어가서 좀 쉬어.”

    “예, 형님. 들어가세요.”

    나는 먼저 황규혁을 보낸 다음 호텔로 이동했다.

    이틀 후인가.

    그때부터 이 일본에 대변화가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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