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대변화 (4)
일전에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서로 연합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일이라며 황규혁도, 와타나베도 일단 경계심을 낮추었다.
그런데 와타나베가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아직은 합치지 못할 거라 확신했던 그 연합에게.
“쿠미쵸 와타나베는 야마구치 구미가 운영 중인 전통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 연합원들이 불시에 기습을 가했고, 결국 와타나베는 거기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급하게 일본에 오긴 했지만 아직 황규혁을 만나지 못한 터라 이재욱을 시켜 먼저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내 예상대로 와타나베는 그 새로운 연합에게 당했다. 거기다가 와타나베가 자주 이용하는 전통 일식집을 상대로 공격을 펼칠 줄이야.
그곳은 겉모습만 전통 일식집이지, 실상은 조직원들이 깔려 있는 기지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곳을 골라 공격을 했다는 건 그 연합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뜻이고 전투력도 결코 야마구치 구미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와타나베가 어떤 식으로 죽었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칼에 찔려 죽었나? 아니면 총으로?”
“아, 그게…….”
이재욱은 잠시 말을 끌었다.
나는 그를 재촉했다.
“말해. 어떻게 죽었어?”
“굉장히… 끔찍하게 죽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전부 잘려 있었고 눈과 혀도 뽑혀 있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실컷 고문을 하다 죽인 것 같다는…….”
쾅-!
나는 순간 감정적으로 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이재욱은 흠칫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죽기 전까지 고문을 했다는 거야?”
“예, 부회장님. 그렇게 보입니다.”
참 더러운 방법으로 죽였다.
그만큼 와타나베에게 수치심을 주고 싶었던 건가.
이번 연합의 성격이 어떤지 대충 알 것 같다.
“알겠어. 황규혁 형님한테 계속 연락 넣어봐.”
“예, 부회장님.”
이재욱은 내 눈치를 슬슬 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와타나베와 친분이 있긴 했지만, 내가 그 사람을 아낀 것은 아니다.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랄까. 하지만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감히 누군가가 나의 소유물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구미는 골든 연합의 소속이다. 그리고 그 골든 연합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나다. 그렇다는 건 와타나베는 내가 다스리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건데, 누군가가 그를 내 허락도 없이 죽여 버렸다.
개인적인, 혹은 사사로운 감정이… 맞다.
그 연합은 감히 나의 것을 건드리고 파괴시켰다. 난 똑같이 갚아줄 예정이다.
와타나베가 처절하게 고문을 당하며 죽었다고 했던가.
그에 몇 배가 넘는 고통을 돌려줄 참이다.
은혜는 세 곱절. 원수는 열 곱절로 갚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 * *
새벽이 돼서야 나는 황규혁을 만날 수 있었다.
초췌하게 변한 얼굴을 보니, 정신없이 움직인 게 분명하다.
“형님.”
“그래, 급하게 불러서 미안하다.”
황규혁은 자리에 앉자마자 술잔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하소연하듯 내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가 네 힘은 빌리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와타나베가 죽은 날,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동시에 우리를 공격했어.”
“그 뜻은 야마구치 구미도 공격을 받았고, 니치카야도 공격을 받았다는 겁니까?”
“그래. 둘 다 당했지. 하지만 그리 큰 공격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와타나베를 죽이려고 그놈들이 연막작전을 쓴 거 같더라고.”
일부러 두 조직을 공격해 인원수를 분산시킨 다음, 와타나베를 암살했다는 건가.
현재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 연합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머리가 꽤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와타나베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들었지?”
“예, 끔찍하게 살해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서도 분노가 커. 와타나베가 오랫동안 쿠미쵸를 해왔잖아. 또 충성 간부들도 많고. 그런데 문제는 지금 단합이 안 된다는 거야.”
야마구치 구미는 거대한 조직이지만, 와타나베는 그 거대한 조직을 오랫동안 이끌고 온 사람이다. 즉, 후계자 선출도 없이 쿠미쵸가 죽어버린 바람에 내부에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맘 같아서는 애들 다 끌고 가서 그 연합 새끼들을 전부 조져 버리고 싶긴 한데, 그랬다가는 우리가 위험해. 니치카야 카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야마구치 구미를 이끄는 건 더욱 위험해.”
혼란스러운 야마구치 구미를 안정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소리인가.
전적으로 그 의견에 찬성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형님께서 나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야마구치 구미 내부에 프락치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리 없지.”
“프락치요?”
“그래, 누군가가 정보를 빼내서 건네주지 않는 한,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우리 뒤통수를 칠 순 없어. 그래서 늦은 거다. 그거 좀 알아보려고 설쳤다가.”
내부 스파이가 있다는 건가.
충분히 그렇게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뭔가 알아내긴 하셨습니까?”
“약간은. 조금만 더 파보면 나올 거 같아. 그리고…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화력 지원이 필요하다.”
솔직한 황규혁의 부탁에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사람들을 불러놓았습니다. 지금쯤 순차적으로 일본에 넘어오고 있을 거예요. 대신, 무기는 이쪽에서 지원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 그런데… 다들 실력은 확실하겠지?”
“무려 중국에 있는 삼합회를 쓸어버린 조직원들입니다.”
“강철중 실장이 오는 거야?”
“그건 아니고요. 메데인 카르텔에서 뽑은 용병들이 올 겁니다. 돈이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들이니, 괜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처음에는 야마구치 구미와 니치카야 카이에 있는 인원들로 해결을 보려 했다. 하지만 와타나베가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절대 연합하지 못할 거라던 두 조직의 움직임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총력전을 기하는 일이다.
여기서 먹히면 골든 연합의 일본 진출은 사실상 끝장이며 이 나라는 야마구치 구미의 소유가 아닌 스미요시와 이나가와 카이의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총력전으로 전쟁을 이끌어갈 생각이다.
예전에는 이대로 야마구치 구미가 천천히 주변 세력들을 흡수하며 일본을 장악하길 바랐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스미요시 카이, 이나가와 카이. 그 외에 야마구치 구미와 니치카야 카이, 그리고 나의 명령에 거부하는 야쿠자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참극이 벌어지지 않는다.
“일단 프락치부터 조사를 해보죠. 저도 성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네가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그리고 야마구치 구미에서 나보다는 너랑 친분이 있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조직 안정에도 힘을 써주면 고마울 거 같다.”
“예, 제가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와타나베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으면서 야마구치 구미 간부들은 나를 다 알고 있다. 그중에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있어 황규혁보다는 협력을 구하기 쉬울 것이다.
황규혁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내부 청소가 먼저다.
* * *
“이타치 씨,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카가와 이타치는 와타나베의 오른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다.
그는 예전에 나를 도와 일본 언론사들을 탈탈 털어버린 적이 있다.
행정적인 면보다는 좀 더 과격한 행동을 하는 쪽의 사람이라는 건데, 이 사람이 와타나베를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타나베 쿠미쵸가 당신을 굉장히 신뢰했다는 걸 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뢰의 대가가 바로 이겁니까?”
“입 닥쳐. 이 사태를 나게 한 건 결국 네놈이니까.”
황규혁에게 꼬리가 밟혀 도망을 치던 이타치는 사투 끝에 조직원들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살기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 사태를 나게 한 놈이 저라고요?”
“그래, 너희 같은 조선 놈들이 날뛰는 걸 도저히 못 보겠어서 말이지. 우리는 일본 최대의 야쿠자인 야마구치 구미야. 그런데 너 같은 조선인이 와서 우리 조직을 더럽히는 건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나선 거야.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
인종 차별… 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내게는 단순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조선인이라……. 그런 말은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그런데 이왕 말을 만들어내려면 좀 더 그럴싸한 걸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뭐야?”
“제가 바보인 줄 아시나 보네요, 이타치 씨는.”
한국은 일본을 당연히 싫어한다. 예전 식민지 역사의 아픔이 남아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또한 일본도 한국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양측 국민들도 때론 서로에게 발톱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곳은 인종을 따지는 곳이 아니다.
상대를 먼저 죽이고 나의 힘을 키우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
야쿠자, 마피아 등 다른 것은 없다.
모두가 똑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 더군다나 인종 차별적인 발언은 엄청난 화를 키우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이쪽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인종이란 이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누구의 힘이 가장 큰가.
오직 이것으로 결정된다.
야쿠자들도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야마구치 구미에 영향력을 넓혔을 때도 그다지 큰 반발이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충분히 인정을 받을 만한 능력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타치의 지금 발언은 단순히 민족 우월주의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에서 뭐라고 꼬드긴 겁니까? 뭐라고 했기에 와타나베를 적극적으로 따르던 당신이 배신을 한 건가요?”
“말했잖아! 이건 다 너… 크악-!”
아직 덜 맞은 건가.
내 신호에 조직원들이 이타치를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의 비명 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쯤, 나는 구타를 멈추게 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때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뭘 준다고 꼬드긴 겁니까? 쿠미쵸 자리라도 주겠다고 했나 보죠?”
“입 닥쳐. 이 개자식아.”
“이런, 아직 힘이 팔팔하신가 봅니다.”
이런 걸로 실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강한 자극을 주는 수밖에.
“으… 으아아악-!!”
나는 천천히 그의 살을 도려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워낙 이런 일에는 전문적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아주 능숙하게 이타치의 살갗을 벗겨내고 있었다.
“이래도 말씀 안 하실 겁니까?”
“이 개자식!! 크아아악-!!”
“하하, 할 수 있는 욕이 그것뿐인가요? 그나저나 와타나베 쿠미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시죠? 딱 그런 식으로 고문을 당하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분들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이실 수 있는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순순히 불으시는 게 나아요.”
“크… 크읍…….”
태연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곁에서 보고 있는 나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이다.
이런 고통을 이겨낼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시부야를 준다고 했어.”
“시부야? 단지 그뿐?”
“신주쿠도… 약속을 받았다.”
좀 우습기까지 한 제안이다.
“겨우 그런 거에 넘어간 겁니까?”
“이미 나는 오래전에 후계자에서 밀려난 사람이야. 쿠미쵸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삶아지는 사냥개 신세가 된다고!”
진짜 이유는 그것이었나.
개인적인 욕심도 있고, 토사구팽을 당하기 싫어 이런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렇군요. 근데 당신 혼자 우리를 배신한 건 아닐 테고. 또 누가 그랬습니까?”
“그건…….”
이타치는 입술을 잘게 깨물다 야마구치 구미를 배신한 간부들의 이름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스미요시 카이의 영업력이 좋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풀어줘.”
“안 됩니다. 하던 건 마저 다 해야죠.”
“뭐, 뭐야? 살려준다고 했잖아!”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언제요?”
그런 다음 나는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 창고에서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왔다.
내부 청소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