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86화 (186/325)
  • 186화. 대변화 (3)

    “현재 온 국민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스타 검사 장연욱이 여당 대표 임화용 의원의 뇌물수수 정황을 포착하면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임화용 대표의 사무실은 압수 수색을 당했고, 임화용 대표에 대한 구속 영장이 심사 단계에 들어가 오늘 밤 결정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저녁 뉴스에 깔린 헤드라인은 임화용 대표에 관한 내용이 전부였다.

    임화용 스캔들이 터진 이상, 그와 함께 줄줄이 엮여 나오게 될 사람은 아마 꽤 될 것이다.

    대표라는 사람이 혼자 해먹진 않았을 테고. 분명 이 사람 저 사람 챙겨 줬을 게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표를 따라 잡혀 들어갈지는 굳이 뉴스를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부회장님, 임화용 의원이 뵙기를 청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처럼 알아서 내 앞에 달려와 무릎을 꿇게 될 테니까.

    “지금 급한 회의가 있으니, 기다리시라고 해.”

    “예, 부회장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임화용 따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난 회사 밖을 나와 자주 가던 일식집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회장님.”

    “하하. 그러네요, 총장님. 그간 잘 찾아뵙질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검찰 총장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리며 자리에 앉을 것을 청했다.

    총장이 된 지 이제 1년. 이 양반은 내 입김으로 총장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저 자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보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을 터.

    우리는 쓸데없는 신변잡기를 몇 분 하다가 어느 정도 순배가 돌았을 때쯤 본론으로 들어갔다.

    “부회장님, 이번에 당 대표가 구속될 수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것 때문에 뉴스에서도 시끄럽던데요?”

    “예, 그런데 아무리 정의를 위해서라고 해도 여당 대표를 마구 잡아넣는 건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게 마련이거든요.”

    이 양반이 왜 찾아왔는지는 여기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생색을 한 번 내기 위해서다. 생색을 낸다는 건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대충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렇죠.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시겠죠.”

    “솔직히 부담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당 대표이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위에서 칼부림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닌지…….”

    난 휴지로 입을 닦은 다음, 총장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수사를 포기할 생각이십니까?”

    깜짝 놀란 총장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검사가, 그것도 총장이나 되는 사람이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되죠.”

    “역시, 총장님이십니다. 그런 열정 넘치는 정의감 때문에 제가 총장님께 힘을 살짝 실어드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하하하.”

    그 자리를 내가 던져 줬으니, 뺏는 것도 내 맘이라는 걸 말해준 것이었다. 총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이렇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슬슬 달래줄 때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총장님 피곤해하지 마시라고 보양식 담은 박스를 미리 트렁크에 넣어드렸습니다. 잘 드시고 힘내서 이 나라의 정의를 지켜주십시오.”

    그제야 이 양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하! 역시, 이 나라를 걱정해 주시는 건 부회장님밖에 없습니다. 아무렴요. 당연히 이 한 몸 바쳐서 국가에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자. 한 잔 더 받으시지요.”

    나는 총장이 정중하게 따라 준 술잔을 들이켜며 미소를 지었다.

    검찰 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 *

    “부회장님…….”

    나는 밤 11시가 돼서야 회사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화용 대표는 조심스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급한 회의가 있어서 좀 늦었네요.”

    말은 급한 회의라고 하지만, 대표는 내 몸에서 풍겨 나는 술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게 화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부회장님, 제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나는 임화용 대표를 따라 굴비처럼 엮여 들어온 의원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모두 내게 최소 한 번씩은 돈을 받아 챙긴 놈들이다.

    정진구를 대했을 때와는 다르게 나는 저돌적으로 이들을 대했다.

    “그게 죄송하다는 사람의 자세입니까?”

    임화용 대표는 주변 눈치를 보다 어영부영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으려 했다. 자존심 때문에 쉽게 무릎이 접혀지지 않는 건가. 아직 이놈은 정신을 덜 차렸다.

    “나가세요. 그따위 자세로 오셨다면 더는 볼 필요가 없군요.”

    그제야 임화용은 얼른 무릎을 꿇고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서둘러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들도 털썩 무릎을 꿇은 다음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어서도 갚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건 잘 아시네요. 그걸 아시는 분이 제 뒤통수를 치려 할 때는 무슨 각오로 그랬을까요?”

    “그, 그것이…….”

    임화용 대표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달싹였다.

    나는 더욱 거칠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이런 놈에게 말을 높여줄 필요도 없다.

    “대답을 해봐.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나?”

    “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랬어?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자각은 있었냐?”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정말 죄…….”

    “입 닥쳐. 가식적인 사과 따위를 받으려고 내가 아까운 시간 쪼갠 줄 알아?”

    임화용 대표를 비롯해 그를 따라온 의원들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머리를 숙였다.

    나는 크게 숨을 뱉은 다음, 임화용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딱 5명만 정하세요.”

    “…예?”

    “여기 숫자를 보니까 17명인데, 여기서 다섯 명만 정해서 오시라고요.”

    “어떤 걸…….”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여기 다섯 명만 옷 벗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17명 중에서 다섯 명을 살려주는 것도 아주 큰 선처라고 볼 수 있다.

    “혹시라도 다른 개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그땐 이렇게 말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여기 계신 몇 분은 사고사. 또 몇 분은 실종. 또 몇 분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거예요. 제 방식, 잘 아시죠?”

    이 중에서 다섯 명은 살 수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살려고 다른 수작을 부리는 낌새가 보인다면 난 주저 없이 움직일 것이다. 내가 맘먹고 움직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어차피 대통령도 이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의 명줄을 내가 쥐고 있으니까.

    “…잘 알겠습니다.”

    임화용 대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시 인사를 올렸다. 나는 사무실 밖을 나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대표님은 예외인 거 아시죠? 그래도 이렇게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어차피 너한테는 내밀 자비의 손길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물리적으로 일을 치르진 않았으니, 저 양반은 평생 그걸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임화용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힘없는 어깨로 사무실 밖을 나섰다.

    * * *

    “증거 인멸 우려가 있어 임화용 대표에 대한 구속 영장이 승인되었습니다. 검찰은 임화용 대표 외에도 여당 내에 혐의가 있는 의원들이 있다고 밝혀 그 여파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태로 여당은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이미 선거가 끝난 상태라는 것 정도? 하지만 차기 대선을 생각한다면 이번 스캔들은 악영향을 끼치게 될 터.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물꼬를 틀지 않는 이상, 누구도 여당을 밀어낼 순 없으니까.

    “총리님, 보내주신 리스트는 잘 받았습니다.”

    “예……. 그 정도로 끝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마음 같아서는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 면전에서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번 일을 정말 여당 대표 혼자 했겠는가? 이건 분명히 대통령도 관련이 있는 일이다. 단지 오리발을 내밀며 모른 척을 할 뿐.

    당 대표 따위는 대통령의 허가 없이 감히 날 건드릴 생각을 할 계제가 못 된다. 총리도 그걸 알고 있기에 함부로 내게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통령님께 전해주십시오. 이번 일로 제가 많이 섭섭하다고 말입니다. 햇볕 정책으로 요즘 바쁘실 텐데, 자꾸 다른 쪽에 신경을 쓰신다면 북한에서 그 빈틈을 보고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김일중 대통령은 오랜 숙원이었던 햇볕 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주기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의 평화를 바라고 있지 않는 중국으로 인해 계속 어긋나고 있는 상황. 거기다가 북핵 문제로 국제 사회가 시끄러운 이때에, 내가 중국 정치인들을 이용해 북한에 입김이라도 불어 넣는다면 현 정부는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물론, 지금은 현재 중국에 힘을 뻗치고 있는 중이라 내가 북한을 좌지우지하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압력은 넣을 수 있는 수준이다.

    “거기다가 외환 위기도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이 시기에 제가 휘청거리게 되면 외화벌이도 상당히 힘들지 않겠습니까. 대통령님께 꼭 전해주십시오.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받쳐주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참는 데에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을 터.

    총리는 정중히 대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총리님께 무슨 잘못이 있다고요. 단지,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달라는 뜻입니다.”

    “…예.”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끌끌 혀를 찼다.

    아무래도 조만간 총리를 한번 바꿔놔야 할 것 같다.

    임화용 대표처럼 검찰 조사로 파면을 시키던지, 아니면 스스로 내려오게 하던지 둘 중 하나로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대통령과 함께 짝짜꿍을 한 놈이다. 이런 놈을 정부에 놔둬서는 안 된다. 언젠가 또 내 뒤통수를 치려 할 테니까. 그러기 전에 싹을 잘라 내가 주는 돈이라면 발가락이라도 핥을 놈을 세워놔야 한다.

    “연욱아, 내가 보낸 리스트 봤지?”

    “봤지. 그런데 여기 몇 명은 더 있을 것 같던데. 다른 놈들은 왜 안 넣고 뺏어? 네 입맛대로 결정한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 사람들은 내가 나중에 잘 포장해서 보내줄 테니까, 지금은 일단 넘어가 줘.”

    “약속했다. 잘 포장해서 배달해.”

    “걱정 마.”

    17명의 의원들이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며 정했을 5명의 생존자.

    내가 딱 5명만 정해서 오라는 건 그들이 치열하게 서로 싸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문명인답게 대화로 끝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5명을 그냥 놔둘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언젠가 그놈들도 내 뒤통수를 치려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아무튼, 고생 좀 해라. 나쁜 놈들은 다 잡아넣어야지.”

    “그래야지. 근데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을 뽑으라면 당연히 너 아니냐?”

    “끊는다. 수고하고.”

    나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놈한테 휘말리면 아무리 나라도 답이 없다.

    아침 일찍 회사에 나왔지만, 오늘은 딱히 이렇다 할 스케줄이 없어 다시 집에 들어가려 했다. 오랜만에 가서 와이프와 데이트나 할까, 생각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그것도 해외에서만 오는 전화기가 울렸다.

    누구지?

    로이인가? 아니면…….

    “태산아!”

    전화를 받으니, 로이가 아니라 황규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형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드리려 했…….”

    “너 지금 당장 일본으로 와! 빨리!”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황규혁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세요, 형님. 왜 그렇게 갑자기…….”

    “와타나베가 공격을 받고 죽었다. 그러니까 빨리 와! 오면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해줄 테니까. 알겠지?”

    와타나베가 죽었다고? 그것도 공격을 받고?

    뭔가를 더 물어보려 했지만, 황규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이 터져도 제대로 터진 모양이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공항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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