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오랑캐는 오랑캐로 (7)
나는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이마에 구멍이 뚫린 샤오쯔이의 시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옆으로 스나이퍼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쓰러진 조직원들과 두목들이 있었다.
“방식이 꽤 거치시군요.”
“하하, 라우팽 씨보다는 약한 거 같은데요?”
웃으며 옛 동료를 썰어버린 라우팽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래도 총으로 한 방에 보내 버렸으니까.
“그나저나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려나 봅니다. 참 많이도 데려오셨네요.”
“중국 최고의 삼합회를 몰아내는 일이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천지회도 있고요. 적은 숫자로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공안이군요. 분명 누군가가 이 난리를 눈치채고 신고를 했을 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미리 공안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의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라우팽과 말을 끝내고 아래층을 통해 들어가는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한번 구경이나 가볼까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상황이 어떤지 지켜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천지회가 화자두 본진을 급습하긴 했지만, 화자두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천지회를 막아내는 듯 보였으나, 메데인 카르텔과 내가 상하이에 뿌려놓은 히트맨들이 합류를 하면서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니. 역전이란 말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메데인 카르텔의 목표는 천지회와 화자두, 둘 다였으니까.
“크아아악-!”
“뭐, 뭐야! 으아악-!”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눈에 보이는 생명을 모조리 말살해 버린다.
자비심이라고는 제비 눈물만큼도 없는 것이 바로 메데인 카르텔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새롭게 합류한 히트맨들은 메데인보다 더 뛰어난 살상력을 보여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높은 빌딩 전체가 피바다로 변해 모든 곳이 시체 더미로 쌓일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진격, 또 진격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들은 최고층까지 다다랐다.
“이거 놔! 너희들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기나 해!”
“감히 누구를 건드리는 거야!”
그 난리 속에서도 죽지 않고 생포된 두목 두 명이 있었다.
스나이퍼의 저격을 피해 달아난 놈들인데, 아래층에 있던 우리 조직원들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천지회의 두목, 샤오챵이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눈치가 좀 없으시네요.”
내 눈짓에 조직원 하나가 무릎을 꿇고 발악을 하고 있는 두목 하나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제야 샤오챵은 상황이 파악된 모양이다.
“서, 설마…….”
“덕분에 쉽게 화자두와 천지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쉽게 넘어오실 줄은 몰랐어요.”
머리로 이해를 하니, 버럭 화를 내기 시작하는 샤오챵이었다.
“이 개새끼! 감히 나를 속여!”
“하하,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돈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제가 그 정도의 돈을 왜 천지회한테 뿌리려고 했겠습니까. 다 이렇게 써먹으려고 그런 거죠.”
“이익-!”
“가만히 있어!”
샤오챵이 억지로 일어나 내게 달려들려 하자 조직원들이 그를 구타하며 바닥에 눕혔다.
나는 어느새 얼굴이 피떡으로 변한 샤오챵 앞에 쭈그려 앉으며 짧게 혀를 찼다.
“쯧쯧, 그러게 생각을 잘하지 그러셨어요. 제가 정말 아무 이유 없이 그쪽에다 돈을 뿌리겠습니까? 조심을 하셨어야지.”
“죽여 버린다, 이 개자식! 내가 반드시 네놈을 죽일 거라고!!”
아직 소리 지를 힘은 남아 있는지, 그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솔직히 그의 입장으로서는 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샤오챵은 기어코 화자두까지 점령해 새로운 중국 삼합회의 일인자가 되었을 터. 그러나 그의 꿈과 미래는 내가 짓밟아놓았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눈을 뜬 이상, 누구도 내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 전에 내가 짓이겨 놓을 테니까.
“악의는 없었습니다. 그냥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죠. 아무튼,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게 천지회의 조직원들도 전부 동행시켜 드리죠.”
“이 개새끼야!! 내가 반드시 네놈을 찢어 죽일 거다!!”
“예, 그러셔야죠.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샤오챵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날 제 목에 칼을 들이대셨을 때, 그때 당신의 운명은 정해진 겁니다. 사람을 가려 가면서 칼을 들이댔어야죠.”
“뭐, 뭐야? 컥-!”
샤오챵은 조직원이 뒤에서 찌른 칼에 맞아 한 움큼 피를 토하며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정확하게 급소를 찔러, 그래도 다른 놈들에 비해 아주 빠르고 깔끔하게 죽었다.
“자, 이제 여기도 해결을 해야겠네요.”
나는 여유롭게 피 묻은 소파에 앉아 붙잡혀 온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그들도 샤오챵처럼 아등바등했지만, 지금은 잠잠하다.
“살고 싶은 사람?”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가 손을 들고 소리쳤다.
나는 살고 싶다고.
난 뒤에 있는 강철중을 보여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강철중이 중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다르게 보인다.
“강철중 씨.”
“예, 사장님.”
“오랜만에 그거나 해볼까요?”
강철중도 나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악마 같은 놈이지만, 강철중도 그에 못지않은 악마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옆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뭐라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들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각자 칼을 한 자루씩 꺼내 바닥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고 있는 열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총을 겨눴다.
무대는 준비가 되었고, 이제 룰을 설명할 때가 온 것이다.
“게임 하나를 하겠습니다. 룰은 아주 간단해요. 앞뒤로 보시면 칼이 여러 개 놓여 있죠? 그중 어떤 걸 써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것들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찌르고 죽이세요. 여기서 살아남는 사람은 오직 하나. 그 한 명은 살 수 있습니다.”
내 말을 통역해 주던 진대섭은 화들짝 놀라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내 눈동자를 본 탓인지, 그는 군말 없이 저들에게 말을 전달했다.
“미, 미친놈!”
“우리가 그런 짓을 할 거 같으냐?!”
몇 명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화를 냈지만, 몇 명의 행동은 달랐다.
푸욱-!
“컥-!”
오직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예전 동료들을 망설임 없이 찌르고 벤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지 않겠는가.
목숨이 걸린 일에는 친구 목숨도, 가족 목숨도 모두 하찮게 보인다.
“그, 그만해! 크아악-!”
“다 죽어! 난 살아남을 거니까!”
처절한 배틀로얄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가끔 했던 일이고, 미국에서도 가끔 행했던 대회다. 하지만 중국에서, 그것도 이런 고층 빌딩에서 배틀로얄을 펼치니, 나름 신선하다.
난 결코 지루하지 않은 싸움을 즐겁게 관전하며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이 상황을 즐겼다.
* * *
천지회와 화자두가 공멸을 당하면서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 전역에 남아 있던 이 두 조직의 잔존 세력들은 당연히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선 것이 바로 라우팽이었다.
그는 서로 맺었던 거래대로 착실하게 일을 해주었는데, 상하이에 있는 화자두 조직원들을 재결집시켜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큰 반발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그들을 통솔할 수 있는 두목들은 전부 죽은 상태였고 라우팽은 조직 내에서 입김이 강한 사람이라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연합에서 파견한 히트맨들이 미리 방해가 될 만한 요소들을 전부 없애 버린 통에,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중앙 위원회의 일원인 리오차오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로 날 만나러 왔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위원님께서 힘을 써주신 덕분에 경찰의 제재 없이 일을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고층 빌딩에서 난사를 했으니, 당연히 경찰이 신고를 받고 움직였을 터. 하지만 나는 그 전에 리오차오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돈을 끌어다 써서 공권력과의 충돌을 막아냈다.
돈이면 다 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지 않은가.
매관매직은 물론이요, 노예도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사람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
이건 시대가 발전해도 크게 달라지지가 않는 고질병 같은 일이다.
물론, 리오차오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도 사실이다.
화자두는 특히 정권 유착이 심한 곳이지 않았던가. 라우팽이 힘을 써서 안정을 시키고 있긴 하지만, 가만히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순 없다.
“위원님의 입장은 잘 알고 있습니다.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러우시겠죠. 더군다나 위원회에서도 화자두와 연관된 곳이 많으니 혼란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대신 전달해 주십시오. 그저 주인이 달라진 것일 뿐. 본래 화자두가 하던 일은 계속할 겁니다.”
리오차오는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화자두에서 공안으로 흘러가는 돈이 꽤 됩니다만…….”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항상 가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가게 될 겁니다.”
그제야 리오차오의 얼굴이 펴졌다.
“그렇다면 설득하기가 쉽겠군요. 당분간 돈을 좀 많이 쓰시겠습니다.”
“하하, 그래야죠. 위원님을 최고의 자리까지 인도해 드리는 일에 어찌 돈을 아낄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리오차오는 깜짝 놀라 했다.
“최, 최고의 자리라니요.”
“뭘 그리 놀라십니까. 설마, 단순히 위원으로 끝내실 건 아니겠죠? 새롭게 기틀을 마련한 리턴 컴퍼니와 산하 조직에서 열심히 밀어드린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하지만 막대한 돈과 인맥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리고 내게는 막대한 돈이 있고, 앞으로 폭 넓은 인맥을 쌓을 예정이다.
본래대로라면 장쩌민 다음으로 후진타오, 그다음은 시진핑이 되겠지만 나는 중국의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을 예정이다.
생각해 보라.
중국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북한도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국익과 개인의 이익은 상상을 초월할 터.
점점 내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느낌이 든다.
“위원님께서 각오를 다지신다면 저도 미리 각오를 해놓겠습니다.”
“만약 제가 거부를 한다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차갑게 돌아서거나 하진 않습니다. 다만, 차기 최고 권력자가 되실 분을 찾아 제 돈을 아낌없이 뿌려 드리겠죠.”
리오차오는 잠시 침음을 흘리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보였다.
설마, 이놈은 큰 배포도 없이 위원으로 선출되었단 말인가.
중앙 위원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꿈꿀 텐데 말이다. 아니면 덥석 물기는 부끄러우니, 잠시 시간을 끄는 걸 수도 있다.
“사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오래전부터 무엇을 꿈꾸고 있었는지 깨달은 것 같습니다.”
말은 아주 청산유수다.
“그 말씀은 저와 손을 잡고 정상으로 올라가시겠다는 겁니까?”
“예, 도와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나도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
“응원하겠습니다, 위원님.”
내가 건네는 손을 리오차오가 맞잡았다.
이 사람은 곧 내가 세우는 중국 공안 최고의 권력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