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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71화 (171/325)

171화. 풍성한 수확 (3)

천성 그룹은 천성 그룹이다.

대한민국을 정복하기 시작한 천성 그룹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이강혁은 그곳의 회장이지 않은가.

가만히 내게 맞고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검찰을 움직여?”

“예, 부회장님. 아무래도 천성이 검찰을 움직여 부회장님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재욱의 보고를 듣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돈으로 안 되니, 공권력의 힘을 빌려보겠다는 건가.

지금쯤 내가 총리를 구워삶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검찰을 움직였다는 건 마지막 발악을 해보겠다는 건가?

“영장이 나온 건 아니지?”

“예, 부회장님. 영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소환장을 받으실지도 모릅니다.”

소환장이라.

포토존에 서긴 싫은데. 그곳에 서지 않는다고 해도 검찰청 냄새를 맡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부른다면 나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알겠어. 그리고 전화 좀 연결해.”

“어디로 연결해 드릴까요?”

“총리한테.”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진흙탕 싸움을 하겠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나한테는 절대 밀리지 않는 화력이 있지 않던가.

줄곧 이날만을 위해 난 칼을 뽑지 않고 있었다. 이제 그 칼을 뽑을 때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총리님.”

“아이고, 부회장님.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선금으로 먼저 4억 달러를 지원했는데, 조금 힘이 되셨나요?”

“하하. 물론입니다.”

“나머지 3억 달러도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총리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돈을 조달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달러 한 장도 아쉬울 때다. 그런데 7억 달러라는 거금을 내놓는 사람이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총리로서는 당황하게 마련이다.

“글쎄요. 그렇다고 봐야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게… 검찰에서 저를 조사하고 있다는군요. 총리님은 혹시 들은 게 있으십니까?”

“검찰에서요?! 아니, 나라를 살리고 계신 분을 왜 검찰에서…….”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저는 이 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가며 봉사하고 있는데 말이죠. 참… 억울할 따름입니다.”

“이런, 어떻게 그런 일이.”

총리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며 부산하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여유 있게 기다렸다. 곧 있으면 총리가 좋은 소식을 물어다 줄 것이다.

“부회장님, 검찰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대한 힘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레임덕이라고 해도 나라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을 검찰이 마음대로 봉을 휘두르게 둘 수는 없죠.”

“하하. 총리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그럼…….”

나는 총리와의 통화를 끝내고 검찰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 전화를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검찰총장이었다.

“총장님, 저 김태산 부회장입니다.”

“아! 부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정말 모르셔서 그런 건가요?”

총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건 총장의 재가 없이 날 털고 있다는 건데.

이강혁이 어지간히 돈을 쓴 것 같다.

“무슨 말씀이신지…….”

“총장님, 아무래도 고삐 풀린 망아지 한 마리가 날뛰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지금 나라를 위해 이 돈 저 돈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검찰청에서 저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예?! 아니, 어떤 후레자식이 감히 그런 짓을!”

“뭐, 저야 양심에 가책을 느낄 만한 건 없습니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예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목도 없이 다짜고짜 조사를 한다는 건 월권행위가 아닐지…….”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총장인 제가 모르게 누군가가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알아보고 연락드리죠. 그리고 부회장님처럼 청렴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회장님을 모함하는 놈들을 발본색원해 놓겠습니다.”

천성에서 받은 돈보다 내게 받은 돈이 더 많은 총장이다. 거기다가 그는 내 입김이 정부에 강하게 작용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미 나는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려 그들과 인연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김강산 다음으로 대통령이 될 김일중과도 벌써 연줄을 만들어놓았다. 곧 대선을 치르고 나면 김일중은 가장 먼저 나를 찾아 IMF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될 터.

그때 나는 내가 가질 건 가지고, 정부에게 던져 줄 건 던져 주어 이득을 챙기면 된다.

* * *

“뭐야? 지금 뭐라고 했어,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무래도 김태산 부회장의 소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천성 그룹 회장 이강혁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치를 떨었다.

애써 돈을 들여 검찰청에 사람들을 박아 두었더니, 하는 소리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야 인마! 내가 너 그러라고 돈을 입에 쑤셔 넣어준 줄 알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윗선에서 벌써 잘랐어요. 그리고 저… 강제 전출도 당하게 생겼습니다.”

“윗선? 도대체 어떤 새끼가!”

“검사장을 단번에 자를 만큼의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강혁은 아차 싶었다.

검사장의 모가지를 단숨에 날릴 정도의 사람이라. 그렇다면 한 명밖에 없지 않은가.

“신 총장이 그랬다는 거야, 지금?”

“회장님, 정부는 이미 화진 그룹 편이고, 검찰총장도 그쪽으로 돌아선 지 오래 됐습니다.”

“개 같은 새끼. 내가 준 돈은 꿀꺽하고 뒤에서는 호박씨를 깠다는 거야?”

이강혁 회장은 당장에라도 검찰총장의 집에 쳐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윽고 들려오는 비보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회장님,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검찰에서 회장님을 조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어요. 벌써부터 구속영장이 곧 발부될 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뭐, 뭐야? 구속영장? 누가 그딴 걸 승인이나 시켜준다고! 나 천성 그룹 회장이야! 천성한테 돈 안 받아먹은 판사가 있는 줄 알아?”

이강혁 회장과 통화를 하고 있던 검사장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천성 그룹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없을 줄이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회장님, 요즘 뉴스는 보고 계시는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언론에서 연이어 이번 외환 위기 사태에 대한 책임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간이 천성 그룹의 이름이 오르고 있어요.”

“뭐?”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화진 그룹은 천성을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 언론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거, 당장 안 막으시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저도 더는 회장님과 통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 연락드리지 않을 테니, 회장님께서도 자제해 주십시오.”

“이, 이봐! 고 검장! 고 검장!!”

검사장은 재빨리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강혁은 허탈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있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분명 언론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임원들 싹 다 모아!! 비상사태야!”

“아, 예. 회장님.”

요즘 들어 정신이 멍해 보이는 정재원 비서실장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하 이사.”

“예, 회장님.”

“내가 이상한 말을 들어서 말이야. 요즘 언론에서 마녀사냥을 하려고 한창 작업 중이라던데, 그 대상이 우리라는 정보가 있어.”

갑작스러운 호출에 달려온 임원들은 회장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하 이사는 후다닥 임원실 밖으로 나갔다.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지 않은가.

“다른 임원들은 은행에다 계속 압박을 넣고 있나?”

“…….”

놀라움도 잠시.

회장의 물음에 임원들은 고개를 가만히 숙였다. 이미 은행에서도 돈줄을 전부 차단한 상태다. 당장 그들도 줄도산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천성 그룹을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없으니까.

“시발. 하여튼, 쓸모없는 새끼들만 모였구먼.”

모욕적인 언사에도 임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목이 잘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강혁 회장의 잘못이 가장 크지 않은가.

그가 해외 쪽으로 일만 벌리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천성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미 명동에는 소문이 쫙 퍼졌다.

천성 그룹이 곧 파산하게 될 거라는 소문. 그리고 정부에서도 천성을 외면했다는 것을.

“회장님!!”

긴 침묵에 빠진 임원실에 하 이사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래, 어떻게 됐어?”

“크, 큰일입니다. 각 언론사에서 지금 천성 그룹을 제물로 삼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대서 특보로 천성 그룹이 외환 위기에 주범이라며 언론 몰이에 들어갈 겁니다!”

“뭐야?!”

정부, 검찰에 이어 은행, 그리고 최종적으로 언론까지.

모두가 천성에게 등을 돌렸단 말인가.

“이런 미친 새끼들! 우리만큼 거대한 광고주가 또 어디 있다고 감히 그런 짓을 벌이는 거야!”

“그쪽에서는 조만간 천성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진 그룹에서 메이저 언론사에 전부 돈을 뿌려 천성 그룹 대신해 광고를 채워주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여기도 화진. 저기도 화진.

화진 그룹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아니, 김태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제기랄!”

이강혁 회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상 위에 있는 걸 전부 뒤집어버렸다. 그런데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이 개새끼들이 감히 천성에 도전을 해!?”

외환 위기 전의 천성이었다면 누구도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천성은 무너져 가고 있는 댐이다. 그것도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댐.

“다들 뭐 하고 있어! 각 언론사에 돌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정말 다 끝장을 내버리겠다고. 돈이든 협박이든 할 수 있는 건 다해보란 말이야!!”

“예, 회장님!”

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임원실 밖으로 나갔다.

이강혁은 짙게 신음을 뱉으며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모든 것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서슬 퍼런 칼날이 지금 이강혁에게 다가오는 중이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피하라는 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강혁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당도했다.

“마, 마음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임원실 밖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물밀듯이 들어오더니 그중 하나가 이강혁을 불렀다.

“이강혁 씨.”

“이강혁… 씨?”

“예, 이강혁 씨. 대검찰청 검사장 이한윤이라고 합니다. 이강혁 씨에게 뇌물공여 혐의와 임금 체불 및 공금 횡령 등 총 17개의 죄목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형사상 불리한 발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 하하. 뭐라고? 도대체 어떤 새끼가 감히 나한테 구속영장을 때린다는 거야?”

이강혁은 이한윤 검사장이 건네는 구속영장을 거칠게 빼앗았다. 그리고 구속영장 발부를 허락한 판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이 새끼는…….”

천성 장학생으로 판사까지 올라간 놈이 구속영장 발부를 허락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전부 받아먹은 건 생각하지 않고 등을 돌렸단 말인가.

“그나마 이강혁 씨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어서 검사장인 제가 온 겁니다. 그러니까 소란피우지 말고 얼른 나오시죠.”

“후회할 짓 하지 말고 꺼져. 감히 누가 누구를…….”

“이보세요, 이강혁 씨! 계속 그렇게 하면 수갑이라도 채워서 강제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어요. 정말 그렇게 하길 원하시는 겁니까?”

이강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검사장 따위에게 이런 수모를 겪다니.

하는 수 없이 이강혁은 조용히 검사장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갖은 수치심이 들었지만,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다다랐다. 다행히 포토존에 서진 않았지만, 진짜 시작은 취조실부터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에 대해서 좀 아실 수도 있겠네요.”

“음?”

서글서글 말을 걸어오는 상대의 얼굴을 이강혁이 가만히 살펴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하하. 소개가 늦었네요. 회장님 혐의 일체의 수사를 맡기 위해 구성된 특별수사본부의 장연욱 검사라고 합니다.”

“자, 장연욱? 거기다가 특별수사본부?”

장연욱이란 이름을 머릿속에 되새기던 이강혁의 눈동자가 잘게 떨려왔다.

“기, 김태산 친구?”

“어이쿠. 기억도 다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회장님.”

거기다가 평검사도 아니고 특별수사본부의 검사다. 얼굴만 보면 이제 막 평검사가 될 놈인데.

“이런 시발…….”

이강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함정에 완전히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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