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65화 (165/325)

165화. 차가운 바람 (1)

사고 공화국 혹은 악재 공화국.

이것이 김강산 대통령의 씻을 수 없는 오명으로 남게 되는 별명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지지율이 90%를 넘나들었지만, 이제 그 지지율은 곧 20% 떨어지게 될 것이다.

“서해 페리호가 침몰하면서 사망자만 292명으로 집계되었으며…….”

OZ7233편 항공기 추락 사건이 있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또 한 번 대형 사고가 터졌다.

위도로 출항하던 왕복 1회 출항선 서해 페리호는 최근 들어 낚시 명소로 인기가 많아지면서 이용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해 페리포가 하루에 딱 한 번만 왕복을 한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서 관광객들은 왕복 횟수를 늘려달라 요청했지만, 탁상행정으로 국가에서는 제대로 처리조차 해주지 않았고 페리호를 운항하는 회사도 정부에서 지원을 안 해주니, 그럴 필요를 못 느껴 그냥 방관만 했다.

그 결과, 원래는 150명만 탈 수 있는 출항선에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타게 되었으며 거기다가 몇 톤짜리 새우젓까지 실으면서 사고를 더욱 유발하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사고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얼른 출항을 하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

하필이면 사고가 난 날이 일요일이라 휴가를 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육지로 가야 했고,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관광객들의 항의에 의해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배를 출항시킨 게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난리네, 아주.”

권용일은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러다가 저 양반 훅 가게 생겼네.”

가끔 보면 권용일은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걸까.

“이건 다 인재야. 절대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거지.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너도 알다시피 무리한 성장 뒤에는 그만큼 부작용이 있는 거잖냐.”

신기인지, 아니면 통찰력인지.

정말 볼 때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양반이다.

저 말대로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리는 6.25전쟁 이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세밀한 부분은 놓치고 오로지 성장이라는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폭풍을 하필이면 김강산이 모두 뒤집어쓰게 됐다.

독재와 독재가 낳은 무리한 성장이라는 고름.

그 고름을 김강산 때에 이르러 짜게 되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김강산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

늑장 대응으로 일을 망친 건 결국 김강산이기 때문이다.

“에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보상은 해줘야지. 저러면 나라 팔아먹고 독재한 새끼들이랑 뭐가 달라.”

김강산은 페리호 사고로 사망한 유족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기 위해 버텼다.

페리호에 탑승한 승객들도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출항을 강요한 건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왕복 횟수를 늘려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곳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해결을 해줘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방관만 하며 쉬쉬했다.

그리고 저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모른 척하고 있다.

유족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큰 형님 말씀대로 이제 시작인 거 같습니다.”

“3공화국에서 5공화국에 걸치기까지 얼마나 많이들 해먹었냐.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겪게 되는 거지. 하여튼, 우리도 나쁜 놈이긴 하지만 저 새끼들은 더 나쁘다니까? 그런데도 잡는 건 우리 같은 깡패들만 잡아요.”

권용일은 끌끌 웃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이 걸쳐 만든 인재가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경제 성장이란 이유로 부실 공사를 이어가며 오직 성과만을 위해 달려온 세월들.

그 값을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참. 근데 너 졸업한다며?”

“예? 아, 예.”

“새끼. 뭔 학교를 그렇게 오래 다니고 있어?”

“하하. 제가 불량 학생이지 않습니까.”

졸업이 2년이나 늦어졌다.

아무리 교수들이 힘을 써준다고 해도 수업을 손에 꼽을 정도밖에 나오지 않은 학생을 그냥 졸업시킬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충 졸업 시험이라도 보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간신히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이 녀석아, 얼른 졸업하고 딸내미나 데려가. 안 그래도 그 기지배가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던데.”

결혼이라.

조금은 이른 결정이 아닐까.

하지만 권윤아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충분히 이해해 주고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지독하게 나쁜 놈이라도 끝까지 응원해 줄 사람이다.

내 어머니처럼 항상 내 편이라는 뜻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큰 형님.”

“그놈의 큰 형님, 큰 형님.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거야. 이제 아버님이라고 불러. 나 조직에서도 손 떼고 회사에서도 손 뗀 몸이야.”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불같이 달려오는 양반이 손을 떼기는.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님.”

기분이 좋았는지 권용일은 웃으며 내게 잔을 건넸다.

“흐흐. 그래. 우리 사위, 술이라도 한잔 받을 테냐?”

“예, 감사합니다.”

나는 기분 좋게 그날 하루 권용일과 옛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웠다.

내일 졸업식인데, 너무 무리했나.

* * *

“축하드립니다, 부회장님.”

말이 졸업식이지, 이건 무슨 대감댁 개새끼 장례식인 것처럼 모두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정계 인사들부터 시작해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의 대표들까지.

졸업식이 아니라 선물 잔치다.

“이렇게 오실 필요 없었는데…….”

“아닙니다. 누구 졸업식인데 당연히 와야죠.”

이런 전개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히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졸업식에 참여한 건데,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일까?

교수들과 눈을 하나씩 맞춰보니 저들은 손사래를 치며 강력하게 부정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허허. 다들 모였구먼. 내 생일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까지 말이야.”

금세 의문이 풀렸다.

권용일이 등장하자 모두 경직된 얼굴로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축하한다.”

“아… 감사합니다, 큰-”

“쓰읍!”

“아니죠. 아버님.”

“허허. 그래그래. 다들 알고 있나 모르겠네. 우리 태산이가 이제 곧 내 사위가 될 사람이거든.”

그제야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이면서 권용일에게 모여들었다.

“아이고. 왜 이렇게 오랜만에 나오셨습니까. 자주 모습 좀 보이시지.”

“그러는 강 대표는 뭐가 그리 바쁜데 이리저리 몸을 빼고 다녔어?”

“하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땐 피치 못할 사정이…….”

화진 그룹이 내 손에 전부 넘어갔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돈 좀 꽤나 만지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권용일을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무시해 온 것이리라.

그런데 그 원한을 이렇게, 그것도 내 졸업장에서 풀어버리다니.

역시, 무서운 양반이다.

어제 졸업식 얘기 나왔을 때 뭔가 좀 쎄 하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어이쿠. 이게 누구십니까?”

가뜩이나 거물들이 잔뜩 모여 있어서 졸업식장에 모인 학생, 교수,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전부 표정이 굳어 있는데 더 큰 거물이 나타나 버렸다.

“허허. 이게 누구야. 우리 이 회장 아닌가?”

천성 그룹 회장 이강혁은 권용일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절대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이게 너와 나의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권용일의 안면 근육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그래도 내 졸업식이니 참아주는 듯 보였다.

“인사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이 회장.”

“하하. 누구 성격보다야 더 하겠습니까?”

권용일과 이강혁 사이에 불꽃 튀는 신경전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금방 서로의 손을 놓고 각자 다른 길로 가버렸다.

“축하한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네가 이제 졸업을 했다고?”

“감사합니다, 회장님. 제가 좀 더 빨리했어야 했는데 2년 꿇었습니다.”

“으허허. 너 졸업시켜 준다고 우리 교수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내가 손으로 입을 슬쩍 가리니 이강혁도 그제야 말을 얼버무렸다.

“아무튼, 고생했다. 이게 다 네 복이지. 앞으로도 자주 보자.”

이강혁은 한창 해외 사업이 잘되고 있으니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 있다.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가는지 한번 보자.

“태산아. 우리 아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분이 오셨다.

어머니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시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셨다.

“우리 아들이 드디어 대학에 졸업했네. 다 컸네, 우리 아들.”

가게 일 때문에 조금 늦으셨지만, 어머니는 감격에 겨운 모습을 보니 나도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려고 했다.

“졸업이 좀 늦었죠?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니다. 이렇게라도 했으면 됐지.”

원래 같았으면 어머니는 내 졸업을 보지 못하셨어야 했다. 그러나 고생스러운 날이 끝나면서 어머니의 운명도 바뀌었다.

이렇게 정정한 모습으로 나의 졸업식을 보고 계시지 않은가.

그 때문인지 자꾸만 나도 눈물이 흐르려고 했다.

“어머니. 태산 씨.”

권윤아도 시간에 맞춰 졸업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워낙 쟁쟁한 거물들이 찾아오다 보니 인사가 늦었다.

“아. 윤아야, 고마워.”

“우리 며느리 왔어?”

윤아와 어머니는 여전히 사이가 좋았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모녀지간인 줄 알 것이다.

내가 어머니 복도 있지만, 아내 복도 있는 모양이다.

아. 물론,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

“오. 태산 씨 어머니 되십니까?”

권용일에게 쏠려 있던 눈빛들이 이제 어머니에게 집중되었다.

“예? 아, 예. 제가 태산이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어허허. 아주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정말 부럽습니다. 자식 농사를 어찌 그리 잘 지으셨는지…….”

“아이고. 김 부회장 어머니 되시는 분이 여기 계셨군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는 갑자기 받게 된 스포트라이트에 당황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저런 어머니의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연하듯 저렇게 사셔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듯, 어머니를 우러러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비켜봐, 이 사람들아.”

그때 권용일이 힘으로 인파를 물리치고 어머니에게 다가오셨다.

워낙 드센 양반이라 좀 걱정이 됐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게 어머니께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윤아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그제야 어머니도 권용일을 알아보고 얼른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태산이 어미입니다.”

“예. 어머님의 훌륭한 아들 덕분에 제 딸이 호강을 다 하게 생겼습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윤아가 저희 집의 복이죠, 복. 제가 더 감사한 걸요?”

훈훈하게 두 분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상견례 할 때 서로 으르렁거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재산으로도 문제될 게 없지 않은가.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감히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 사람은 없다.

노일영한테도 대놓고 협박을 했던 사람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나는 내 앞에 꼬리를 흔들며 쫄래쫄래 따라오는 사람들을 쭈욱 바라보았다.

내가 회귀 전 검사였다면 진작 한 번씩 털고 갔을 놈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들은 내게 아주 좋은 말들이 되어줄 것이다.

나 김태산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들은 충성스럽게 나를 보필할 터.

난 이들 위에 군림하며 천천히 이 나라와 이 세계를 지배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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