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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64화 (164/325)

164화. 정권 교체 (2)

밝은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쬐는 월요일.

월요일병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햇살이겠지만, 내게는 오랜만에 보는 산뜻한 풍경이었다. 간만에 커피가 한잔 땅기는 날인데, 이런 날 꼭 초를 치는 놈이 있다.

“여기까지 다 발걸음을 해주시고. 영광입니다.”

“지금 난 농담할 마음이 없네만.”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노일영은 불편한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는 꼬박꼬박 잘도 존대를 하더만, 이제는 아주 막 나가자는 식이다.

그래봐야 이제 왕좌에서 내려온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한데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와도 부드럽게 받아쳐야 하는 게 프로의 기본이지 않은가?

“무슨 일이십니까? 기분이 매우 언짢아 보이시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자네가 나를 아주 제대로 멕였다는 걸 모를 줄 알았어?”

“하하. 글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영…….”

“이봐, 자네!!”

노일영이 상을 강하게 내려치자 조용히 사무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아, 이제는 조직원들이 아니구나.

정식으로 화진 그룹에서 출범시킨 경호 회사의 직원들이다.

뭐, 겉모습은 영락없이 깡패들이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님.”

노일영이 데려온 경호원들도 꽤 되겠지만, 이미 쪽수에서 우리한테 밀린다.

그리고 웃긴 건, 노일영이 쓰고 있는 경호 업체가 화진 그룹에 흡수당한 곳이라는 것이다.

즉, 저놈들도 내 직원이라는 소리다.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전 대통령님께서 그저 화풀이를 좀 한 것뿐이니까, 다들 나가서 대기해.”

나는 일부러 ‘전’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예, 사장님.”

경호원들이 나가자 노일영은 주춤거리며 내 눈길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난 여유롭게 잔에 든 커피를 음미하며 천천히 물었다.

“제대로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그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시면 제가 뭘 알아듣겠습니까?”

내 말에 노일영은 크게 한숨을 뱉은 다음 대답했다.

“자네, 정권 바뀌었다고 이렇게 입을 싹 닫는 거야? 이미 다 듣고 왔어. 장성들한테 들어갈 돈이 최근 들어 모두 끊겼다는 걸. 아우성치는 놈들이 있으면 이렇게 말했다며? 돈은 줄 테니, 현 정권에 대항하지 말라고. 만약 허튼짓하는 놈이 있다면 전부 죽이겠다고.”

가만두지 않겠다도 아니고 전부 죽이겠다는 말을 썼다.

그만큼 내가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양반은 그걸 모른다.

내가 한다면 정말 한다는 놈이라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확 바뀔 수가 있나? 우리 정당에 지원하던 돈도 전부 끊고, 군부에도 대량의 돈을 투입해 아예 싹을 자르고 있다면서? 내 쪽 사람들을 아무리 건드린다고 해도 그게 쉬울 것 같아? 단결회가 그런 돈으로 해산될 곳이었다면…….”

“뭘 모르시네요, 전 대통령님.”

난 잔을 내려놓고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즉, 이익이 되지 않는 건 언제든지 끊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하물며 줄 바꾸는 걸 어려워하겠습니까? 그리고 단결회, 너무 믿지 마세요.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제가 물밑 작업 들어간 곳입니다. 거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다 제 명령만 따른다는 거예요.”

“뭐, 뭐야?”

“모르시겠습니까? 거기 있는 장성들의 아들, 딸이 외국 나가서 공부하는 게 전부 누구 돈으로 된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이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던 게 다 누구 돈이냐고요. 다 제 돈입니다. 그런데 그걸 갑자기 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노일영은 머뭇거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를 기회로 난 좀 더 그를 몰아붙였다.

“그 사람들은 이미 제가 뿌린 돈맛을 알고 있어요. 그것도 5년이나 돈맛을 봤으니, 지금 당장 끊기는, 아니, 영원히 끊기 어려울 겁니다. 장담하죠. 그 사람들은 제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여기까지 달려와서 제 발이라도 핥을 겁니다.”

“자, 자네 지금 무슨…….”

“그게 전 대통령님이라고 다를 것 같으세요? 이제 정권이 바뀌었어요. 김강산 그 사람이 그간 보수 정당에 쌓인 게 얼마나 많은데요. 군사 독재에 도움을 준 전 대통령들에게 철퇴를 휘두를 거예요. 그럼, 연금도 못 받으시고 평생 집안에 틀어박혀 썩으셔야 하는데, 그걸 감당하시겠다고요?”

노일영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내게 반박했다.

“김강산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이는 아니다, 뭐 이런 겁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그쪽이 김강산에게 접근해서 일부러 꼬리를 살랑거렸던 것처럼, 김강산도 똑같이 연기를 해준 것뿐입니다.”

노일영은 재임 시절, 김강산을 가까이 두고 항상 그의 말에 경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차기 대권이 유력해 보이는 김강산에 대한 밑 작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강산은 정치의 고단수이지 않던가.

그는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노일영을 감옥에 보내 버린다.

“그리고 아까부터 단결회를 너무 믿으시는 것 같던데, 조만간 두고 보십시오. 순식간에 수많은 별들이 아래로 떨어지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들 중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불만 없이 손 털고 나가게 될 겁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단결회에 돈을 뿌려왔다. 그들은 내 돈이라면 뭐든지 할 놈들로 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만큼 많은 돈을 뿌렸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김강산 손에 군복을 벗는다고 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가 돈을 또 뿌려줄 거니까.

“그러니까 허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전 대통령님이시니 최대한 예우는 차려 드릴 겁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셨다가는…….”

나는 노일영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죽여 버릴 겁니다.”

노일영의 몸이 들썩였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어찌 죽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힘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히트맨들을 전부 데려와 노일영은 물론, 청와대에 있는 김강산까지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일영은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일까.

그는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음에도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의 앞에 잔을 밀어 주고 말했다.

“오늘 커피 맛이 아주 좋습니다. 한잔 쭉 드시고 살펴 들어가십시오.”

노일영은 손을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정말 사람을 써서 암살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일 것이다.

난 작아진 노일영의 뒷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감옥 문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처리해서 최대한 빠르게 나오실 수 있도록 조치할 테니까. 그리고 연금 대신 빠방하게 주머니도 채워 드리겠습니다.”

노일영은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사무실 밖을 나갔다.

정말이지 오늘은 뭔가 더 상쾌한 하루다.

* * *

“김강혁 선수! 섬광 같은 라이트!!”

“아!! 상대 선수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다운! 다운입니다!!”

요즘 다시 한번 뜨겁게 열풍 중인 스포츠, 복싱.

그 인기몰이의 비결은 전부 김태혁이게 있었다.

미들급에 이어 슈퍼 미들급 타이틀까지 획득하면서 현재 2차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

동양인 최초로 미들급 이상의 두 체급을 제패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태혁이는 아주 자랑스럽게 헤비급까지 타이틀을 따서 다섯 체급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포부까지 언론에 밝혔다.

그 발언으로 태혁이의 주가가 더욱 올라갔고, 전 세계의 눈이 지금 라스베이거스 아레나에서 홀로 빛을 발하고 있는 김태혁에게 쏠렸다.

“7, 8, 9, 10! 경기 끝입니다!! 김태혁 선수가 또 한 번 타이틀을 지켜냅니다!!”

드디어 경기가 끝나면서 나는 꽉 쥐고 있던 두 주먹을 풀 수 있었다.

태혁이가 이길 거라고 믿었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자, 모두 김태혁 선수를 위해 축배를 듭시다. 아, 혹시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봐 말씀을 드리겠는데, 김태혁 선수는 저기 계시는 화진 그룹 김태산 부회장님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김강산의 가벼운 축사에 모두들 샴페인 잔을 내 쪽으로 올렸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축하는 태혁이가 받아야 하는데, 공을 제가 다 가로챈 것 같네요.”

나도 가벼운 농담으로 축하를 받았다.

내가 초청을 받은 곳은 바로 청와대에서 주최하는 기업인들의 모임이다.

한국 재계 30위권에 들어야 초청받을 수 있는 곳으로 대기업 회장, 부회장, 그리고 대표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뭐, 쉽게 말해서 전경련에 속한 사람들 중 톱클래스만 모인 곳이라는 것이다.

“김 부회장, 직접 가서 동생 경기를 구경하지 그랬어.”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천성 그룹의 회장 이강혁이었다.

이철호의 건강 악화로 결국 이강혁은 천성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부회장에서 생을 마감했어야 하는 놈이지만, 뒤바뀐 미래 덕분에 잠시나마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영광인 줄 알아라, 이놈아.

“아닙니다, 청와대에서 주최한 모임이잖아요. 당연히 와야죠.”

“하하. 공과 사가 아주 철저하구먼.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리 김 부회장 덕분에 밝아지겠어.”

기업인들의 눈동자가 전부 나와 이강혁에게 쏠려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천성 그룹이지 않던가.

재계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금양 그룹은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에 반해 떠오르는 샛별과도 같은 화진 그룹에게는 거짓 섞인 호의가 계속되는 추세였다.

물론, 누구도 화진 그룹의 회장 권오준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권오준은 단순히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권력은 전부 내게 있다는 것을.

사실, 나는 부회장 자리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한사코 나를 부회장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권용일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오르게 되었다.

“내가 요즘 김 부회장 덕분에 살맛이 나. 미국에서 우리 회사가 아주 잘되고 있어. 공장 가동도 원활하고 말이야. 이 정도만 계속해 준다면 세계 시장에 천성 그룹의 이름이 떨치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지.”

나의 도움으로 이강혁은 천성 그룹을 미국에 진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성공적으로 보이겠으나, 차차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값은 싸지만 질은 좋지 않은 천성 그룹의 전자 제품이라는 오명 때문에 판매율은 바닥을 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전환이 생기지 않는 한 천성은 미국에서 망하게 될 터.

이건 원래 이강찬이 겪었어야 할 시행착오지만, 미래가 바뀐 덕분에 이강혁이 고스란히 겪게 생겼다. 그리고 곧 있으면 이 나라를 덮치게 될 외환 위기가 남지 않았던가.

그땐 이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자자. 여러분, 앞으로도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업을 운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대통령이 된 이상, 여러분과 협력해 힘을 다하겠습니다.”

김강산의 얼굴이 아주 폈다.

일주일 전에 단결회를 완전히 숙청함과 동시에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일을 대거 진행하면서 지지율이 무시무시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무려 90%에 달하는 무서운 지지율.

1993년 한국 100대 스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만큼 젊은이들과 심지어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김강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 어떤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지지율을 김강산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주 잠깐이다.

사망자만 78명에 부상자만 수백 명을 낳은 구포 무궁화호 대참사가 그 시작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정권 초기라 크게 말이 없긴 했지만, 진짜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 건 바로 오늘 7월부터였다.

“대통령님!!”

벌써 시간이 되었나.

나는 급하게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만찬을 즐기고 있던 회장들에게도 급히 소식이 전해져 왔다.

OZ7233편 항공기 추락 사건.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김강산의 악재 공화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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