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63화 (163/325)
  • 163화. 정권 교체 (1)

    중도동계라는 모임이 있다.

    김강산 계파를 칭하는 뜻인데, 정부의 탄압과 감시가 극심하던 시절 김강산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은밀히 만날 곳이 필요했다. 그곳이 바로 중도동에 있는 김강산의 거처였다.

    중도동계가 있다면 김일중의 서교동계도 빠뜨릴 수 없다.

    김강산과 마찬가지로 김일중도 자신의 사람들을 은밀히 만날 장소를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 그로 인해 김강산과 김일중을 따르는 원로들을 중도동계와 서교동계로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말씀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이다.

    김강산은 총력전을 벌이며 자신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김일중을 따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이후부터 김강산은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내게서 받아 가고 있다.

    그렇기에 기업인이라면 일단 눈살부터 찌푸린다는 중도동계의 사람들이 내게 이처럼 호의를 보이는 것이리라.

    “아닙니다. 민주화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오신 분들이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앞으로도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원로들과의 인사를 대충 마무리 짓고 김강산과 단둘이 시간을 가졌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곧 수확이 있겠군요.”

    “하하. 아직 대선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바람을 잡으시면 곤란합니다. 그랬다가 저번 대선 때 제가 된통 당했던 거, 모르십니까?”

    역시, 적절하게 유머로 받아칠 줄 아는 양반이다.

    김일중과는 다르게 김강산은 부유한 집에 자라서 그런지 추진력도 빠르고 항상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김강산도 아픈 부분은 있다.

    6.25 전쟁 때 어머니를 무장 공비에게 잃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김강산은 진보 정당이기는 했으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아주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강산은 당선된 후, 북한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대화의 창구를 열어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려고 한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김일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무리하게 북한과 교류를 쌓는 것을 보고 김일중의 정권은 공산주의라며 강력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는 누가 뭐래도 대표님의 승리입니다.”

    “허허, 이미 라인이 있으신가 보군요.”

    “언론 조사라는 게 믿을 게 못 된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하면 그것만큼 정확한 게 또 없거든요. 김일중 후보가 추격을 하고 있긴 해도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내 말을 들은 김강산은 조금 더 표정이 밝아졌다. 바로 이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제가 대표님을 도와드린 건, 딱히 무언가를 바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하. 그거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군요.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돈을 내놓는 장사꾼은 없습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하지만 정말입니다. 저는 그저 대표님이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원하는 것이 없다?”

    “예, 그저 대표님 옆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있고 싶군요.”

    김강산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었다는 얼굴이다.

    “이런, 생각보다 욕심이 아주 많으신 분이군요. 그렇게 큰 걸 바라시다니.”

    내가 원하는 건 당장 뭔가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김강산 옆에 은밀히 붙어 있으면서 조언을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재임 기간 동안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얻을 건 다 얻겠다는 것이다.

    “큰 기업을 하는 사람일수록 욕심은 큰 법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대로 이루는 사람은 아주 비상한 머리를 가지기 마련이죠. 그런 사람을 옆에 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김강산은 나를 힐끗 바라보다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김태산 씨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화진파 말단으로 시작해 단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곳을 대한민국의 최고의 조직으로 만들어놓았지요. 거기다가 지금은 화진파를 유일한 대한민국의 대조직으로 승화시켰고요. 그것뿐입니까? 지금은 화진 그룹이란 것을 만들어 다른 기업들을 차근차근 흡수하고 있더군요.”

    이 양반도 나에 대한 조사를 오래전부터 해온 모양이다. 하지만 저 사람이 알고 있는 건 반의반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연합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면 아마 거품을 물고 쓰러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실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그 많은 걸 이룰 수가 있는지……. 하지만 원래 세상에는 특출 난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옆에 둘수록 나도 좋은 법일 테고. 화진파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내가 아직 김태산 씨의 정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세요. 김태산 씨가 화진파의 실질적인 권력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또 군부와 노일영 라인을 움직이는 그 정체불명의 회사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요. 그러나 내가 세우는 정권에서 함부로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김강산은 예전부터 저런 것을 경계했다. 그래서 자신을 오랫동안 따른 중도동계파의 사람들을 경계하며 함부로 권력을 나눠주지 않았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글쎄.

    그게 가능할까?

    곧 있으면 이 나라에, 아니, 아시아 전역에 엄청난 폭풍이 몰아치게 된다. 그땐 모두가 내 앞에 달려와 고개를 조아리게 될 터. 그건 대통령 김강산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그는 남은 권력마저도 내게 전부 내놓아야 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허허. 이거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괜히 무거운 이야기만 꺼냈습니다. 내가 일전에 듣기로는 소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신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제가 아주 맛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요.”

    이런, 별 쓸데없는 정보까지 갖고 있는 김강산이었다.

    * * *

    “여러분 감사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또 이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3년.

    김강산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알렸다. 그동안 보수 정당이 군사 독재 등으로 정권을 유지하긴 했으나,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군부 독재의 영광을 잊지 못한 장성들은 벌써부터 기 싸움에 들어갔다.

    “대표님께 당선을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십시오.”

    “대표님께서도 직접 만나 뵙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분이 함부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움직일 순 없죠. 저도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김강산의 오른팔, 양무진 의원이 반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김강산을 왕좌에 올려두는 일에 엄청난 액수를 쏟아부은 것이 바로 나라는 걸 알고 있기에 보이는 행동이다.

    “그런데 인사 말씀이나 전해 드리자고 온 건 아니실 테고……. 역시, 군부 쪽 때문인가요?”

    내 말에 양무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어떻게…….”

    “청와대, 군부, 그곳에 제 귀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 역시,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습니다.”

    양무진은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치며 말을 이었다.

    “군부에서 아주 막장 전횡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대표님께서 취임도 하지 않으셨는데 벌써부터 이런 게 날아왔어요.”

    나는 양무진이 건네는 게 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단결회는 김강산이 당선되자마자 국방부 장관부터 그 밑 말단들까지 누구를 앉혀야 하는지를 미리 리스트로 뽑아 보냈다.

    초장부터 기를 죽여놓겠다는 심산인데, 이놈들이 사람을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 이것을 빌미로 김강산은 단 일주일 만에 40개의 별을 떼어버린다.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오직 나만이 그 미래를 알고 있지 않은가.

    “고심이 많으시겠군요.”

    김강산의 오른팔 양무진이 여기까지 달려온 건, 내가 군부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제가 알고 있는 대표님이라면 지금쯤 어떻게 단결회를 척결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셨을 것 같은데…….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몇 명 날립니까?”

    양무진은 더 깜짝 놀란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한테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명 날릴 생각이십니까?”

    나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우물쭈물하는 양무진을 날카롭게 다그쳤다.

    “이보세요, 양 의원님. 지금 저랑 뭐 하자는 겁니까?”

    “예?”

    “지금 당신이 왜 여기에 왔는지 내가 모를 거 같아? 군부와 연관이 가장 많은 내 눈치를 보니까 여기 온 거잖아. 혹시라도 내가 딴맘 먹고 움직일까 그런 거지. 안 그래?”

    “그, 그게…….”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 몇 명 날리기로 했어?”

    “일단은 40명입니다.”

    양무진은 그제야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

    40명이라. 내가 알기로는 100명이 넘는 군 간부들이 김강산 손에 옷을 벗는다.

    그렇다는 건 이제 막 리스트를 뽑았다는 것인가.

    나는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렇군요. 군부 내에서 반발이 꽤 심하겠습니다.”

    “아, 예… 그렇지 않아도 대표님도 그것 때문에 고심을…….”

    옷 벗은 군 관계자들이 다시 단합해서 억지로 쿠데타라도 일으킨다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걱정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군부 관계자들을 진정시키는 건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뭐 하나 두려워하지 말고 뜻한 대로 일을 하시라고요. 제가 뒤에서 열심히 조력을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누구의 옷을 벗길 것인지에 대한 리스트는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뭐라도 조치를 취하죠. 설마, 그걸 숨기려고 한 건 아니겠죠?”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 봐라. 벌써부터 날 놔두고 지들이 알아서 다 하겠다, 이건가?

    그래 봐야 이미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예. 사장님.”

    양무진은 똥 씹은 표정으로 사무실 밖을 나갔다.

    날 슬쩍 떠보려다가 오히려 된통 당했으니, 저 양반은 오늘 김강산에게 대차게 까일 것이다. 어쩌면 김강산이 오늘 내게 전화 한 통 걸 수도 있고.

    “안녕하십니까, 한석우 대령님.”

    나는 오래전부터 키워놓은 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석우는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예, 사장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하하. 대령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뉴스는 보셨겠죠? 이제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예, 저도 봤습니다.”

    “슬슬 준비를 하셔야죠?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게 되면 대령님께 연락이 들어갈 겁니다.”

    한석우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라를 좀 먹는 단결회 같은 건 모두 척결해야죠. 그 일도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 단결회를 척결해요?”

    “자세한 건 나중에 청와대 가서 들으십시오. 저는 그저 미리 축하 인사나 전해 드리려고 한 거니까요.”

    “아……. 예, 사장님. 감사합니다.”

    한석우 대령은 지금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그는 김강산의 든든한 선봉장이 되어 순식간에 장성들을 쳐내게 될 터.

    나는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해 미리 돈을 좀 뿌려놔야겠다.

    그냥 꽁짜로 뿌리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수확의 때가 오지 않던가?

    그때 이자까지 쳐서 받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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