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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60화 (160/325)

160화. 지배자 (1)

“갑자기 그 많은 돈을 투자하신다기에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SH 창립자 이수환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직 대형 기획사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어깨에 힘도 들어가 있지 않다.

“그렇게 놀랄 숫자였나요?”

“기본 투자금이 10억. 추후에 필요하면 요청하는 대로 투자를 하겠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제가 그걸 물어보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놀랄 만한 숫자입니까?”

이수환은 바싹 마른 입을 우물거리며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 이 사람에게는 1억도 엄청난 거액일 것이다. 거기다가 요청하는 대로 투자를 하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아. 예. 말씀하십시오.”

“혹시 이전에 투자를 받은 게 있습니까?”

“예. 조금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난 슬쩍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럼, 그 투자금은 전부 돌려주고 저한테만 받도록 하세요. 그럼, 첫 투자금을 10억에서 20억으로 바꾸겠습니다.”

이수환은 눈을 크게 뜨며 입까지 떡 벌렸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이성을 되찾으며 되물었다.

“그,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거기다가 다른 투자금은 전부 돌려주라니요. 그렇게 하기에는 좀…….”

내가 사기라도 칠까 걱정하는 것인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런 건 계약서를 작성해서 의심을 풀어주면 되니까.

난 좀 더 베팅을 세게 불렀다.

“25억.”

“예?!”

“이래도 싫습니까?”

“자, 잠시만요!”

“30억.”

이수환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넋이 나가 있었다.

난 씨익 웃으며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건넸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30억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고 내가 써놓은 것이었다.

“찬찬히 읽어 보세요. 그런데 전 인내심이 그렇게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요. 적어도 사흘 안에는 답을 들어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수환은 멍한 얼굴로 계약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히 그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 * *

“몇 번을 봐도 이 계약서에 서명을 안 하면 미친놈이란 소리를 듣겠더군요.”

이수환은 바로 다음 날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계약서를 내 앞에 내놓았다.

“투자금은 전부 돌려보내셨습니까?”

“예. 여기 보니까 이미 사장님의 인장이 찍혀 있더라고요. 그건 제가 언제 도장을 찍어도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거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아주 잘하셨네요.”

나는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조직원 하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똘마니 하나가 달려와 내게 몸을 숙였다.

“재욱이한테 연락해. 여기 다 30억 송금하라고.”

“예, 형님.”

이수환은 겁먹은 얼굴로 험악하게 생긴 조직원을 힐끔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내 출신이 어딘지 대충 알고 있을 것이다.

“이수환 대표님.”

“아, 예. 사장님.”

“제 출신이 깡패이긴 하지만, 그리 험한 일을 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요즘 깡패 짓도 안 하고요. 거기다가…….”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여의도에서나 명동에서 사장님 존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거기 좀 굴러보면 어딜 가도 사장님의 존함이 나오더라고요. 하하하.”

이수환은 멋쩍게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 마냥 겁을 먹은 것 같진 않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이 있으면 이쪽 사무실이 아니라 여기 반대편에 있는 건물 있죠? 거기로 오세요.”

“아. 이번에 새로 짓는다는 건물이…….”

“예. 제가 소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완공이 며칠 안 남았거든요.”

“그, 그렇군요. 안 그래도 아주 세련되게 빌딩을 짓는 것 같아 어느 회사의 것인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돈이 아주 썩어날 정도로 넘쳐나지만 막상 쓸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의도에 있는 건물들을 매입하는 것에 모자라 아예 새로 짓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빌딩 한 채는 내가 사무실로 쓰면서 동시에 고급 오피스텔처럼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루프탑에서 수영을 즐기며 위스키 한잔하는 것이 나름 로망이었던지라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곧 있으면 권윤아와 결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혼집으로도 아주 적격일 것이다.

“근데 혹시 저희 회사 아이들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뇨. 제대로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투자를 결정하셨다니… 무모한 투자가 되실까 봐 걱정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만 해주세요. 그 돈 다 잃어도 아깝지 않아요. 필요하면 더 쏟아부으면 될 일입니다.”

이수환은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로 연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꼭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놓겠습니다.”

“예.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조만간 회사에도 들러 앞으로 데뷔할 사람들을 쭉 보고 싶네요.”

“예. 언제 시간 한번 잡도록 하겠습니다. 편한 시간만 따로 언질을 주십시오. 무조건 그때는 시간을 비워놓겠습니다.”

사실 내가 아는 연예인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왕 보는 거 곧 있으면 한국을 휩쓸게 될 서우지와 아이들은 한번 만나보고 싶긴 하다.

* * *

나는 황규혁과 함께 일본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 사정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는 벌써부터 노숙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조간신문과 TV에서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을 강력히 비난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문제가 있다면 JK 금융 이름이 자꾸만 거론된다는 것이었다.

“JK 금융은 자진하여 비리를 밝혀라!!”

회사 밖 풍경을 보니 아주 가관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회사 주변에 진을 쳐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계란을 던지는 등 이러다가는 나중에 화염병도 던질 기세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타마키 히로 대표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와 내게 인사를 올렸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내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계속 해산을 시키려 했는데…….”

“괜찮습니다. 대충 이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빨리 해산을 시키긴 해야죠. 그리고 계란을 던지거나 회사 물건을 망가뜨린 사람이 있다면 강력 처벌하세요. 또 언론에서 우리 금융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그 언론사에게도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시고요.”

“웬만하면 언론과 부딪히지 않는 것이…….”

가뜩이나 여론과 언론이 둘 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싸움을 벌이기가 무서운 모양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자국민들은 진짜 우리가 비리를 저질렀다고 믿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강하게 나갈 참이니까.”

나는 가벼운 미소로 타마키 히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본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굳은 얼굴빛을 유지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예, 사장님.”

나는 JK 금융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전반적인 상황 보고를 받았다.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이미 여러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수십 개의 기관들이 문을 닫았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은 그 분노를 풀기 위한 대상을 찾고 있었다.

여기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JK 금융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여러 대기업들이 JK 금융을 몰아가는 것이다.

언론 플레이를 해보겠다, 이건가.

그렇다면 나도 조금 과격한 방법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어디 언론사가 가장 말이 많습니까?”

“후지큐사와 도쿄사가 제일 극성입니다. 워낙 메이저 언론사들이다보니 다른 언론사들도 전부 그 말 따라 기사를 찍어내고 있어요.”

도쿄사까지 관련이 있다는 건 TV 공영 방송에도 우리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이놈들은 아예 우리를 불에 태워 죽이기로 작정한 게 틀림없다.

그런 꼴을 내가 가만히 지켜볼 순 없지 않은가.

“일단 알겠습니다. 그쪽에는 먼저 고소장을 발부하시고, 나머지 언론들은 최대한 입막음을 해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뿌려도 좋습니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제가 알아서 해결을 해 보죠.”

“예, 사장님.”

“그리고 앞으로는 저한테 보고를 하지 마시고 여기 계시는 황 사장님한테 하십시오. 물론, 대표님이 모든 걸 잘하시겠지만, 뭔가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에는 꼭 황 사장님을 거치셔야 합니다.”

다들 통역사를 통해 말을 듣고 있는 황규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들 당분간 고생해 주십시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면 다들 만족하실 만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대표를 비롯해 임원들 전부 눈을 반짝였다.

만족할 만한 보상이 무엇이겠는가?

결국 돈이다. 그들은 내가 나가기 무섭게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나도 진지하게 움직일 때가 됐다.

* * *

“하하. 내 평생 언론사를 족칠 날이 올 줄은 몰랐네. 그놈들이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절대 우린 건드리지 않거든.”

“예. 그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앞뒤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 펜을 휘갈기고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죠.”

와타나베는 껄껄 웃으며 사케가 담긴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조직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인사해. 이번에 자네를 도와줄 사람들이야.”

“안녕하십니까. 카가와 이타치라고 합니다.”

“가이후 소스케라고 합니다.”

야쿠자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멀끔하게 생긴 두 사람은 차례로 내게 인사를 올렸다.

“언론사에 있는 고위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어. 몇 명은 이놈들 통해서 만나도 되고 몇 명은 그냥 잡아서… 알지?”

납치를 하거나 자택으로 들어가서 깽판 한번 치고 오라는 것이다. 아직은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일본이 아니던가?

아무리 메이저급 언론사라고 해도 야쿠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기자들도 야쿠자에 관한 기사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놈들이 알아서 잘 인도해 줄 거야.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너무 크게 일을 벌이진 말고.”

죽이진 말라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쿠미쵸.”

“아니야. 내가 볼 때 언론사들이 JK 금융과 야마구치 구미의 관계를 잘 모르는 거 같아. 그러니까 저렇게 파고드는 거지. 만약 알았으면 건드릴 생각도 안 했을 걸?”

이미 정계과 언론 고위급에서는 야마구치 구미의 세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고 있다.

이들이 연합에 들면서 세계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 않던가.

메데인 카르텔, 골든 마피아 등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조직들이 야마구치 구미의 뒤를 봐주고 있으니 경계하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인해 야마구치 구미는 일본의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했으며 점점 많은 조직들이 그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대로라면 3대 야쿠자 세력이라는 야마구치 구미, 스미요시 카이, 이나가와 카이 체제도 곧 붕괴되어 독주 체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야마구치 구미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

만일 언론인들도 JK 금융이 야마구치 구미로부터 파생된, 아니, 우리 연합의 소유라는 것을 알면 바로 입을 닫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놈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힘을 좀만 쓰면 되지 않겠는가?

최대한 크게 일을 만들지 말라고 와타나베가 당부를 했는데.

글쎄. 그게 내 마음대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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