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51화 (151/325)

151화. 라인 교체 (1)

조폭하면 의리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조폭에게 의리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정말 그 정도의 인성이 되어 있으면, 조폭 같은 건 하지 않고 다른 걸 했을 것이다. 즉, 조폭하면 의리라는 말만큼 개소리가 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무라이의 도를 중시하는 야쿠자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놈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찾았습니다, 사장님.”

간부들을 고문해서 얻은 타가와 요루이치의 위치.

약 15명의 간부들이 모진 고문을 받다 죽어버렸다. 이들이 타가와 요루이치를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정말 몰라서 죽은 것이다.

“그럼, 서둘러 그쪽으로 가죠. 곧 있으면 경찰들이 몰려올 겁니다.”

전광석화 같은 타격으로 순식간에 나카노 카이의 본거지를 박살 내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빠르게 공격을 감행했다고 해도 경찰들이 출동할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와타나베가 미리 손을 써둔 것인가, 아니면 지금 현 정부가 야쿠자들끼리의 싸움을 방관하고 있는 것인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로서는 아주 잘된 일이다.

어떤 나라에서든, 공권력과 부딪히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어도 경찰과 부딪히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 * *

“정말 잡았다고?”

“아, 오셨군요.”

와타나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내가 말해준 창고에 나타났다.

나는 그를 안으로 들여 조직원들이 이룬 성과를 보여주었다.

“익숙한 얼굴이지 않습니까?”

“정말이군……. 정말 요루이치, 저놈을 잡을 줄이야.”

피를 철철 흐리며 의자에 묶여 있는 타가와 요루이치를 와타나베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저 새끼를 잡으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 줄 아나? 그런데 자네는 고작 며칠 만에 잡았다니…….”

“하하, 좀 사기적인 방법을 쓰긴 했죠. 연합에서 파견된 조직원들이지 않습니까. 대부분이 전직 특수 부대 출신입니다.”

은근슬쩍 연합의 질이 이토록 높다는 것을 어필해 주었다.

와타나베는 부러움 가득한 눈길로 나를 보며 말했다.

“부럽군.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인재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만 있다면 무서울 게 없을 텐데.”

“이제 쿠미쵸도 우리 연합의 일원이지 않습니까? 언제든 도움을 청하시면, 도와드릴 겁니다.”

“허허, 아주 든든하구먼. 그런데… 그 연합이란 것에 이름이 있나?”

이름이라.

사실, 연합 이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로이는 메데인 연합으로 하자고 고집을 피웠으며, 다니엘 로페즈는 그래도 어감상 골든 연합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렇다고 리턴 연합을 하기에는 딱히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 결론을 낸 것은 바로…….

“골든 연합. 꽤 괜찮은 이름이지 않습니까?”

“골든 연합……. 어감상 그게 제일 낫군.”

와타나베는 그래도 작명 센스가 별로라며 내게 핀잔을 준 다음, 타가와 요루이치에게 다가갔다.

“쯧쯧. 타가와, 이게 무슨 꼴인가?”

짧게 혀를 차고 있는 와타나베에게 고개를 올린 타가와 요루이치가 이를 갈며 말했다.

“비겁한 새끼,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니까 외부의 힘을 빌린 거냐?”

“허허, 원래 이쪽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나. 정 그럴 거 같았으면 자네도 진작 이러지 그랬어? 솔직히 피차 질질 끌어온 건 마찬가지 아닌가? 먼저 찌르는 놈이 이기는 거지, 뭐.”

“입 닥쳐, 이 더러운 새끼!”

“허허, 여전하네. 그 성질머리는.”

와타나베는 내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제 이놈은 내가 알아서 해도 되겠지?”

“예, 물론입니다.”

“그래. 이놈을 죽이든 말든 이제 내 소관이다, 이거지.”

말하는 어투를 보니, 냉기가 느껴진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고맙네.”

와타나베는 몸을 구부려 타가와 요루이치와 눈을 마주쳤다.

“타가와, 내가 버릇이 좀 못된 건 알고 있지?”

타가와는 잠깐 눈을 껌뻑이다 이윽고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서, 설마……. 너 이 새끼!”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요루이치가 질겁을 하는 걸까.

난 그 호기심을 금방 풀 수 있었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사람을 좀 보냈어. 자네 가족들을 정중히 모셔오라고 말이야.”

“뭐, 뭐야!?”

“하하, 자네 딸이 벌써 10살 정도 되었던데……. 세월 참 빠르지 않나?”

“그, 그만해! 내 딸을 털끝만큼이라도 건드린다면 내가 반드시 네놈을…….”

와타나베는 발악하고 있는 요루이치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런 다음 목소리를 착 내려앉히고 말했다.

“네가 뭘 어쩌려고? 감히 나한테 반기를 들었을 땐,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잘 구경하고 있어. 그리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후회하라고. 너의 그 오만함 때문에 네 사랑스러운 딸이 죽을 테니까.”

“이… 이 악마 같은 새끼!!”

“하하, 꽤 재밌는 광경이 될 거야. 그러니까 기대하라고.”

역시, 야쿠자가 잔인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서 가족을 죽이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만큼 와타나베가 요루이치에게 품은 원한이 크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꼴사나운 거 보기 싫으면 자네는 먼저 돌아가도 좋아.”

배려라도 해주는 건가.

웃음이 다 나오는 놈이다.

솔직히 나도 그런 흉측한 장면을 보고 싶진 않다.

“쿠미쵸,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여기서 볼일은 다 끝났다.

와타나베는 내가 건넨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고맙네.”

“예, 골든 연합원으로서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이제 내가 평가를 받는 건가?”

“쿠미쵸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일본에서의 입지가 무너지신다면 연합원의 자격이 사라지는 거겠죠.”

내 말에 와타나베는 살짝 안색을 굳혔다.

“연합원의 자격이 사라진다라. 그게 뭘 뜻하는 건가?”

“글쎄요, 단순히 자격 박탈이라는 통보만 날아오진 않을 겁니다.”

“나카노 카이를 박살 낸 저 히트맨들이 같이 올 수도 있다, 이건가?”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나의 대답을 들은 와타나베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줄곧 좋은 말만 해줬다가 갑자기 현실적인 부분을 말해주니 저런 반응을 보인다.

와타나베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의 눈앞에서 나카노 카이가 철저히 박살 났다. 이것이 곧 세계의 힘이라는 걸 와타나베는 깨달았을 터. 만일 그가 연합에 대항하거나, 혹은 영향력이 작아진다면 언제라도 우리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명령 불복종이다. 와타나베는 앞으로 내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으리라.

“하하, 뭘 그렇게 당황하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쇼. 지금처럼만 세력을 유지하고, 배신만 하지 않으면 큰 문제없을 겁니다.”

나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와타나베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다음, 창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사장님.”

나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철중에게 웃으며 말했다.

“공항으로 가죠.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 *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구 국회 의사당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동서독의 통일을 기뻐하고 있었다.

약 45년 동안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씻고 다시 하나가 된 것이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동독 사회주의당 대변인 귄터 샤보스키는 자신에게 내려온 공문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동독과 서독 사이에 있는 베를린 검문소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발표해 버렸다.

당연히 기자들은 동서독 간의 통행 자유화나 다름없는 이 발표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샤보스키는 이 공문이 즉시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내뱉어 버렸다.

“설마 독일이 저렇게 통일이 될 줄은 몰랐네.”

“뭐,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빨리 진전을 보인 건 맞지만 어차피 될 일이었습니다.”

나는 짧게 혀를 차고 있는 권용일 옆에 앉아 말을 거들었다.

“그래도 참 무섭지 않냐? 언론의 힘이란 것이 tv라는 게 발전하고 나서부터는 그 힘이 너무 강해졌어. 그런데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더욱더 언론의 힘은 강해질 거야. 기존의 방식은 모두 벗어던지고 언론과 여론에만 의지해서 일을 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거지.”

참 나이가 들어도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해야 하나.

권용일의 말이 맞지 않은가.

시대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언론도 같이 발전을 거듭한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발전은 기폭제 역할을 하며 언론의 무시무시한 성장을 이루게 했고, 언론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사업적 성공과 정치적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언론 플레이를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고, SNS를 통해 효과적인 광고를 한 사람이 사업적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쯤 통일을 할지…….”

“언제쯤 할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다, 독일처럼 저렇게 순식간에 되진 못할 거다.”

샤보스키가 잘못 발표를 하는 바람에 수많은 시민들이 곡괭이를 들고 베를린 장벽으로 그 벽을 허물어 버렸다.

그 일로 인해 동독은 경찰과 군에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으며 거의 반 강제로 서독과 통일을 하게 되었다.

오보로 인한 통일.

이것이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북한은 이에 기준을 잡을 수가 없다.

“아마 100년이 걸릴지도 몰라. 둘 중 하나가 망해야 되거든. 저 독재자 배불뚝이는 국민들이 다 굶어 죽어도 통일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는 놈이야.”

이것도 참 권용일답다고 해야 하나.

정당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면서 국민들은 통일의 열망을 품었다. 그러나 권용일은 아마 저 생각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저 독재자 김 씨 일가가 모든 권력을 버릴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슨 일로 온 거냐? 한가롭게 통일 이야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새롭게 라인을 잡아야 할 것 같아서요.”

“새로운 라인?”

“이제 보수 정당이 숨 쉬고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권용일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버릇이 있다. 그는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태산아, 너도 잘 알다시피 지금 보수 정당이 저렇게 기세등등한 건 단순히 지금 대통령이 노일영이어서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단결회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래, 잘 알고 있네. 뭐, 차기 대권은 진보가 가져가긴 하겠지만 군부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이 새끼들은 언제라도 쿠데타 일으켜서 다시 나라를 뒤집을 수 있어.”

권용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은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분명 단결회를 처리할 방법을 구상하고 있을 겁니다.”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 그게 누군데?”

“김강산이죠. 확실합니다.”

아마 권용일도 대충 생각해 놓은 게 있을 것이다. 과연 그도 차기 대통령은 김강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변수가 없는 이상, 그 양반이 되겠지.”

“예, 그리고 그 양반 스타일이 원래 팡 터뜨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초반에는 숨죽여 살고 있다가 제대로 터뜨릴 겁니다.”

“그게 단결회 척결이다? 그게 말처럼 쉽겠냐?”

권용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결회가 허술한 곳도 아니고, 김강산이 맘먹는다고 해서 쉽게 해체시킬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김강산이 기어코 해낸다. 하지만 김강산이 혼자 밥상 차리고 먹는 걸 지켜만 볼 순 없지 않은가?

“쉽진 않겠죠. 대신, 제가 끼어들면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뭐, 뭐야?”

“이제 슬슬 라인을 새로 갈아탈 차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에 개처럼 따를 만한 사람을 구해놓겠습니다. 단결회가 너무 오래 활개를 치고 다녔어요. 우리도 이제 군부의 목줄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용일은 살짝 벙찐 얼굴로 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단결회를 없애겠다고 선포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오성파를 없애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이루어질 일, 나는 살짝 숟가락만 올려서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즐길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