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히트맨 (3)
시부야는 도쿄 최대의 부도심이라 불리는 구역으로 훗날 필수 관광 코스가 될 만큼 발전한다. 1932년부터 도쿄에 편입되어 발전을 거듭한 시부야는 메이지 신궁과 NHK 방송국 본사를 구경할 수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프렌차이즈 음식점을 한번에 모아놓고 볼 수 있다.
90년대 초반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굉장히 많고, 길이 복잡하게 연결되면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낮에는 출퇴근하는 회사원들과 시부야를 구경하며 쇼핑을 하려는 인파들로 몰리지만, 밤에는 광란의 파티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많다.
유흥과 쾌락을 앞세우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지 않은가.
시부야는 그런 쪽으로 특화된 곳이라고 보면 된다.
“진입까지 하실 생각입니까?”
“예, 어떻게 생겨먹은 곳인지 구경도 할 겸.”
“아시겠지만, 지금 저희는 도심 한복판에서 총질을 하려고 가는 겁니다. 경찰과 부딪힐 수도 있어요.”
“그렇게 일을 크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제가 가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다가 어제 일도 있었고요.”
말을 해도 강철중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번 작전은 그 어떤 때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타깃이 있는 곳을 습격해도, 은밀하게 행하거나 혹은 그곳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 타격을 해도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았다.
물론 어제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건물을 타격해 그 난리를 피우긴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어느 언론도 어제 두 건물 안의 사람들이 전부 몰살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일본 정부가 이 일을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며, 죽어봤자 야쿠자들이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 일을 벌이고 나서도 저들이 침묵할 수 있을까?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합니다. 경찰들이 오기 전에요.”
“예, 사장님.”
나는 중무장한 30명의 조직원을 몇 조로 나눠서, 시부야 거리 한복판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총격이 시작되면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당연히 경찰들도 소란을 듣고 찾아오게 될 터.
속전속결로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경찰과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수도 있다.
“도착했습니다, 사장님.”
강철중의 말에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강철중 씨.”
“예, 사장님.”
“항상 고맙습니다.”
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언제 전화를 해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주는 부하는 아주 드물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충성을 담아 행동하는 사람은 말이다.
강철중은 씨익 웃으며 재치 있게 내 말을 받았다.
“어차피 비싼 돈 받으면서 하는 건데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나는 강철중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다른 조직원들도 탑승하고 있던 차에서 내려 목적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의 첫 타깃은 시부야 중심에 있는 유흥업소에 있다.
고전풍으로 꾸며놓고, 그 안에 게이샤들을 채워 넣어 중년 남성들을 끌어모으는 곳.
돈을 갚지 않은 여성이나, 혹은 다른 곳에서 납치해 강제로 화류계에 넣어버리는 건 일본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건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은데……. 훗날 시간이 흘러도, 여성 전용 대출 서비스라고 해서 일부러 여성 고객들을 끌어모은 다음, 돈을 갚지 않을 시 유흥업소에 강제로 집어넣어 몸을 팔아 돈을 갚게 할 것이다.
이런 악독한 방법을 쓰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다는 것이다.
“정말 사람이 많네요.”
“이런 번화가에서 일을 치르는 건 처음이라 솔직히 걱정이 되긴 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최대한 빠르게 일을 끝내고 철수해야 한다고.”
우리는 게이샤의 거리라고 쓰여 있는 업소 입구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 시부야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전풍 성인 업소라고 한다. 그리고 나카노 카이의 가장 큰 운영 업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는 건 우리가 오늘 제거해야 할 사람들이 이곳에 꽤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갑시다.”
난 대충 감상을 끝내고 조직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야쿠자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당신들 뭐야!”
나와 강철중을 빼면 나머지는 전부 북미 쪽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다들 큰 총을 하나씩 들고 있으니, 경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터.
하지만 저렇게 소리를 치기보다는 도망을 먼저 쳤어야지.
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헉-!”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명의 야쿠자들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건 끽해봐야 사시미 칼일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모두 들어가죠.”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철중을 필두로 한 조직원들이 빠르게 안쪽을 향해 들어갔다.
그리고 거친 총성과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두두두-!!
한껏 분장을 한 게이샤들부터 시작해, 유흥을 즐기고 있던 중년의 남성들이 연이어 입구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난 이런 공포와 혼란이 겹친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천천히 입구를 지나 안쪽을 거닐었다.
“뭐, 뭐야!”
“이 새끼들이!”
“다 죽여 버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야쿠자들이 긴 장검을 뽑아 조직원들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너무 안일한 대책이 아닌가?
칼로 총을 어떻게 상대해 보겠다고.
타타탕-!
“으아악!!”
더군다나 내가 오늘 데려온 조직원들은 전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히트맨들이다.
물론, 은밀하게 적을 사살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할 줄 안다. 즉, 칼로는 저들을 쓰러뜨릴 수가 없다.
아니, 총을 들지 않고 양쪽 다 칼을 든다고 해도 내 조직원들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뭐, 뭐야. 이 새끼들!”
“이, 일단 피해!”
내 조직원들은 처음에 신나게 총을 쏴서 야쿠자들을 무참히 쓰러뜨리더니, 지금은 지루하다는 듯 총을 내려놓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검을 든 야쿠자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의 몸을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마치 살인을 즐기는 듯했다.
아군이 봐도 소름이 끼치는데, 당하는 적군의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계속해서 밀어붙이세요. 그리고 꼭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는 아시죠?”
“예, 사장님.”
강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직원들과 함께 업소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때마다 희생되는 사람들은 단연 야쿠자만이 아니었다.
게이샤들도 있었고, 그들과 향락에 빠져 있던 고객들도 있었다.
무차별적인 난사로 저 방에 누가 있는지 보지도 않고 총을 갈겨댔으니, 다들 재수 없게 얻어걸려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처음에는 칼만 들고 설쳐대던 야쿠자들은 점점 총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고, 은엄폐를 하지 않은 채 적들을 휩쓸고 다닌 조직원들도 조금씩 엄폐물에 숨어 교전을 이어갔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놈들은 목소리만 크게 지르는 게 아무래도 종족 특성인 것 같았다.
“전부 다 죽여 주… 악-!”
그 시끄러운 목소리를 조직원들도 듣기 싫었는지 총을 쏴서 강제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솔직히 우리 머릿수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이곳 업소를 지키고 있는 야쿠자들 수만 200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겨우 30명이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가 아닌가?
그러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의 실력을 보면 누구라도 저런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끝으로 가면 있을 겁니다.”
나는 강철중에게 이곳 도면을 보여주며 건물 한 곳을 가리켰다.
말이 유흥업소지, 무슨 궁궐처럼 여러 건물들을 지어놓았다. 이곳이 유흥업소 겸, 나카노 카이의 본부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끝자리에 자리한 건물에는 분명…….
“그곳에 나카노 카이의 두목이 있을 거라 보십니까?”
“예, 거의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여기 눌러앉아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거죠.”
나카노 카이의 두목, 타카와 요루이치.
그는 이 거대 유흥업소를 지어놓은 다음, 아예 여기서 자리를 깔고 눌러앉았다.
음식, 술, 여자까지 있으니 왕 노릇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장소라고 여긴 것이 틀림없다. 온갖 쾌락을 즐기며 조직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게 아니겠는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런 야쿠자 세계에서 마음을 놓고 있다니. 거기다가 어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 보고를 들었을 터.
그런데 아직도 여기에 박혀 있다? 여기가 정말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하여튼, 속 편한 놈이다.
“그놈이 소란을 듣고 탈출하기 전에 빨리 잡아야 돼요. 놓치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서두르겠습니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각개격파하며 야쿠자들을 휩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속력을 높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 잡은 물고기가 그물망 밖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기다!!”
지금 같은 페이스로 가면 문제없이 타카와 요루이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숫자였다. 계속해서 바퀴벌레처럼 야쿠자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좀처럼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머릿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조직원들의 월등한 실력 덕분이었다.
“아무래도 쪼개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
강철중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일단, 소수의 인원만 가서 요루이치를 먼저 잡읍시다.”
“예, 알겠습니다.”
강철중은 믿을 만한 사람을 하나 뽑아 20명의 조직원들을 통솔하게 하고, 나머지 인원들을 인솔해 나카노 카이의 두목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항상 뒤에서만 상황을 지켜보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직접 앞장서서 목적지를 향해 발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리 상황을 빠르게 끝내야 하지 않던가.
곧 있으면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이곳에 몰려오게 될 터.
그런 최악의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멈춰라!!”
타타탕-!
나는 달리는 발을 멈추지 않은 채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리세요! 달라붙는 놈들은 알아서 처리하시고요!”
우리를 발견하고 덤벼드는 놈들이 있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냥 떼어놓는다는 생각으로 총을 쏴서 제지할 뿐이다.
“이 개새끼들이 어딜 감히 들어가려고!!”
이제부터 슬슬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가.
칼을 들고 쫓아오던 놈들은 사라지고, 이제 엄폐물에 숨어 총을 쏘는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리라.
“꺄아아악-!”
“으아악!”
그 덕분에 죄 없는 사람들의 새우등만 터져 나가고 있었다.
하얗게 분칠을 한 게이샤들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향락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회사원들은 홀딱 벗겨진 몸으로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억울한 비명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사장님! 왼쪽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총격전에 끼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강철중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곁에서 떠나질 않았고, 중요한 순간 때마다 귀신 같은 사격 솜씨로 적들을 쓰러뜨렸다.
거기다 내 조직원들 중 몇몇은 총알이 난무하는 곳을 가로질러 야쿠자들에게 돌격하는 용맹하고도 민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저 사람들, 단순히 멀리서 저격 총만 쏘는 히트맨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생 싸움꾼들이었다.
이런 긴박한 와중에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면.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최고 중의 최고만 데려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암살만 하는 건, 저 사람들 성미에 맞지 않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바로 나의 명령을 따르는 조직원들이란 말인가.
이런 말을 하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화진파에 있는 조직원 몇백 명보다 차라리 저 10명이 훨씬 더 나아 보인다.
“크으읍…….”
말은 좀 길었지만, 고작 3분 만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작 열 명의 히튼맨들에게 몰살을 당했다. 가히 무시무시한 전투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화력의 차이가 컸던 건 사실이다. 화력 면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강하니까.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막상 건물을 덮치고 보니, 우리가 원하는 타깃이 그 자리에 없던 것이었다.
시발, 이미 자리를 뜬 건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요루이치가 어디 있는지 아나?”
야쿠자들을 지휘하며 필사적으로 우리를 막으려 들던 사람이 있었다. 분명 간부라고 생각해 일부러 죽이진 않고 부상만 입혔는데, 예상대로 나카노 카이에서 직책이 좀 있는 사람 같았다.
“모, 모른다.”
“확실해? 여기 있는 거 아니야?”
난 도면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상대는 자꾸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강철중 씨.”
“예, 사장님.”
“특작 요원으로 훈련받으실 때, 어떤 고문법이 제일 잘 먹히던가요?”
나의 물음에 강철중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대답했다.
“그야 칼로 뭔가를 도려내는 게 가장…….”
“그런가요?”
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방의 손바닥에 칼을 찔러 넣었다.
“으아악-!!”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칼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온다.
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그 간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똑바로 답을 하지 않으면 그땐 손가락 하나씩이야. 손가락이 전부 없어지면 그땐 다른 곳을 도려낼 거고. 잘 알겠지?”
오늘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난 상대방의 고통을 즐기고 있다.
아니, 상대방이 내 앞에서 무력해지며 굴복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