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새로운 연합체 (5)
“미스터 김.”
“미스터 로페즈.”
항상 24시간 광란의 빛이 꺼지지 않는 아레나에서만 보다가 오늘은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거리에서 다니엘 로페즈와 만남을 가졌다.
그의 뒤로는 수십 명의 골든 마피아 조직원들이 각자 총을 들고 대기하는 중이었다.
“앙드레 루이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조직원들을 전부 불러 모았습니다.”
“생각보다 숫자가 그리 많진 않군요.”
“아무래도 은밀히 움직이다 보니……. 그래도 이 정도 숫자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골든 마피아의 왕이 정부의 손에 붙잡혔다. 이제 남은 건 그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뿐. 내가 아는 미래대로라면 로페즈는 승리를 하게 되고, 골든 마피아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숟가락만 살짝 얹어보도록 할까?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왠지 그러실 것 같아서 따로 준비해 둔 게 있으니까요.”
나의 신호에 따라 거리 곳곳에 숨어 있던 조직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그들을 통솔하는 강철중도 있었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강철중 씨.”
로페즈와 더불어 그의 조직원들은 누군가가 매복해 있다는 낌새조차 눈치채지 못했는지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분은…….”
“예. 저를 위해 일하시는 분 중 하나입니다.”
“허허. 대단합니다. 언뜻 봐도 최정예라는 느낌을 흠씬 풍기는군요.”
로페즈는 조금 부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를 급하게 호출을 하셨다는 건, 미카엘 로드릭을 노리기 위함입니까?”
“예. 그런 이유도 있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게 뭡니까?”
다니엘 로페즈는 조용히 속삭이듯 내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요?”
“어떻게 미 정부를 움직여서 앙드레 루이스를 잡았느냐, 이 말입니다.”
아, 그 얘기인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사실을 말해줄 순 없지 않은가.
어차피 내가 한 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미 정부에서 앙드레 루이스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으니까.
“뭐,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전화 몇 번 돌렸을 뿐입니다.”
로페즈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허- 겨우 전화 몇 통으로 백악관을 움직일 정도면 도대체…….”
괜히 이런 쪽으로 얘기가 깊어지면 나만 곤란하다. 난 얼른 다른 쪽으로 화제를 옮겼다.
“미카엘 로드릭의 위치는 알고 계시겠죠?”
“예, 뻔합니다. 오늘도 자기 집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을 겁니다. 앙드레가 잡혀갔으니, 골든 마피아와 왕은 이제 자신이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미카엘 로드릭이란 놈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놈은 진짜 죽어도 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앙드레 루이스가 잡혀갔다. 그렇다는 건 곧 골든 마피아에서 치열한 내전이 일어난다는 것을 바보라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가롭게 파티를 열고 있다?
이건 다른 간부들의 힘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아니, 어쩌면 이건 미카엘 로드릭이 그렇게 행동을 하도록 다니엘 로페즈가 유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롭게 파티라……. 혹시 이거, 전부 미스터 로페즈의 그림입니까?”
로페즈는 싱긋 웃으며 내 물음에 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저도 전화 몇 통 돌린 것밖에 없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나도 그를 따라 웃으며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깔끔하게 끝내고, 오늘은 정말 비싼 술을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로페즈는 껄껄 웃으면서도 손에서 권총을 놓지 않고 있었다.
나처럼 멀리서 지켜보지 않고 직접 싸움에 참가라도 하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지.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미카엘 로드릭을 처리하려 들 것이다.
원래 여기가 다 그렇고 그런 패턴으로 흘러가는…….
끼이익-!
갑자기 차가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정차했다.
나는 몸이 옆으로 기울진 채로 무슨 상황인지 몰라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니엘 로페즈는 이날만 기다렸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뒷좌석 문을 활짝 열었다.
타타탕-!!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전부 죽여!”
생각 외로 로페즈는 아주 저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놔두고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 궁전처럼 크게 지어진 집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총을 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조직원들도 전부 하차해, 마구잡이로 총을 갈겨댔다.
우리나라와는 정말 차원이 다른 화력이 아닐 수 없다.
“전부 진입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다니엘 로페즈가 데려온 조직원들도 그냥 흔한 갱스터는 아닌 것 같았다.
나도 강철중에게 눈짓을 보내, 저들의 뒤를 받쳐주게 했다.
타타탕-! 두두두-!
아주 거하게들 쏘는 걸 보니, 저 궁전 같은 집안 구석구석에 총알을 박아놓으려는 것 같았다.
여기서 뻘쭘하게 기다리기는 애매한데…….
차라리 나도 같이 들어가 볼까?
타타탕-!
“크아악-!”
“엄폐해서 쏴!”
음…….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몸을 사리는 게 나을 것 같군.
마음 같아서는 같이 안에 들어가 구경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렇기에는 빗발치고 있는 총알을 피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헤쳐왔던 세계와는 완전히 딴판인 곳이 아닌가.
나는 각목이나 파이프를 들고 적들과 싸웠지만, 이들은 권총과 중화기로 적을 말살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 저들과 칼도 아니고 총을 섞는다?
자칫 잘못하면 괜히 명줄을 앞당길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겸손하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 * *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배우들이 살고 있는 개인 주택을 몇 번인가 tv에서 본 적이 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벌일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고, 거기다가 큰 수영장까지 있어 보는 이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곳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궁전 같이 넓은 풀하우스 안에 시체들만 가득히 쌓여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묻어 있는 핏자국과 총알 자국은 전투의 치열함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아주 끔찍하네요.”
“예, 저도 이런 광경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이라.
그렇다는 건 이런 치열한 전투를 몇 번 벌여봤다는 것인가?
“그래요? 이런 적이 또 있었나요?”
“뭐, 이리저리 거칠게 살다보니 몇 번 있긴 했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사장님이 메데인 카르텔을 도왔을 때 총격전을 창고에서 벌이지 않았습니까?”
아. 그때.
그때도 이런 식으로 싸웠었지.
뭐, 그 당시에는 나도 살아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발버둥을 친 거라 빗발치는 총탄을 피하며 달리긴 했다. 하지만 그런 짓을 또 한 번 되풀이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일부러 뒤에서 가만히 지켜본 것뿐이다.
어차피 나는 용병들처럼 전투원이 아니다.
단지 그들을 부리며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일 뿐.
“아악-!”
나는 강철중과 함께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이윽고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물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수영장이 나타나면서 한 남자가 다니엘 로페즈 손에 무참히 구타당하고 있었다.
“그게 누군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네요, 미스터 로페즈.”
“아, 오셨습니까, 미스터 김.”
소름끼치도록 로페즈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을 보였다. 설마 웃으면서 사람을 때리는 게 취미인가.
저 큼지막한 주먹에 맞는 사람도 그렇고, 그걸 보고 있는 사람도 무섭겠다.
“예상하시다시피 이놈이 바로 미카엘 로드릭입니다.”
로페즈는 한술 더 떠서 태연하게 나를 로드릭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로드릭, 여기는 내가 일전에 말한 미스터 김이야. 아주 미남이지?”
“으으…….”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로드릭은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살려달라, 뭐 그런 종류의 말이었을 것 같다.
“죽이실 겁니까?”
“그래야죠. 오시면서, 아니, 지금 여길 봐도 온통 시체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놈이 아주 기특한 짓을 해줬어요. 사실, 이곳 3km 반경으로는 건물 하나 없거든요. 맘껏 총을 쏴도 누구 하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미카엘 로드릭이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이놈이 세이프 하우스를 이딴 곳에 지어놓은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총을 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금 로드릭이 톡톡히 치르고 있다.
“으으… 사, 살려줘. 다니엘.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웅얼거리기만 하던 미카엘 로드릭이 살려달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니엘 로페즈는 특유의 미소 짓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되물었다.
“하하. 뭘 말인가?”
“나는 그냥 보스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그리고 나는 절대 골든 마피아의 대부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어디서 뻔한 거짓말을.
다니엘이 저런 말에 넘어가겠는가?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로드릭. 대부가 널 다음 후계자로 지목을 했다는 게 문제지. 그리고 그 대부가 지금 잡혀가 있다는 것도 문제고. 결과적으로 너는 여기서 자빠져 있으면서 파티나 벌일 때가 아니었어.”
다니엘 로페즈의 말이 맞다.
미카엘 로드릭이 너무 안일했다.
골든 마피아라는 거대한 조직이 정부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이 조직을 통치하는 왕이 잡혀가기까지 했거늘, 이놈은 술이나 퍼마시고 있던 것이다.
로페즈가 무슨 짓을 꾸몄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카엘이 완전히 방심할 정도의 함정을 파 놓은 건 틀림없다.
“나야… 다니엘이 나를 지지할 줄로만 알고…….”
“그래서, 이제 대부가 될 생각에 들떠 있으셨나?”
“다, 다니엘. 이제 여기서 그만하자. 목숨만 살려준다면야 내가 개처럼 자네를 위해 일하겠네.”
미카엘은 구차하게 목숨을 빌어봤지만, 이미 로페즈의 마음은 떠나 있었다.
대부가 미카엘 로드릭을 후계자로 지명한 순간부터 로페즈는 이놈을 죽이기 위해 모든 걸 바쳐왔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포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
“로드릭, 나의 친구. 그동안 즐거웠네. 조만간 앙드레 그놈도 같이 보내줄 테니까, 너무 심심해하진 말게.”
“다, 다니엘. 자, 잠깐만 내 말을 좀 더…….”
탕-!
여지없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미카엘 로드릭의 뒤통수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잠시나마 골든 마피아의 대부를 꿈꿔왔던 망상가의 최후였다.
이제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건가.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축하합니다, 미스터 로페즈. 이제 이 골든 마피아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군요.”
“하하. 글쎄요. 이제 시작이 아닐까요? 미카엘 로드릭만 죽인다고 해서 골든 마피아를 소유하는 건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로이 루스테가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직접 죽이긴 했지만, 메데인 전체를 흡수할 순 없었다.
로이의 쿠데타 소식을 들은 몇몇 간부들은 그를 지지했으나, 몇몇은 반기를 들어 독립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물론, 그들 중 절반은 로이의 힘에 눌려 항복을 하긴 했지만, 현재 메데인 카르텔은 아직 완전체가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메데인은 메데인이지 않은가?
조만간 로이는 완벽하게 예전의 메데인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니엘 로페즈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이것이 다 미스터 김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딱히 제가 한 건 없습니다.”
“허허. 그래도 이 훌륭한 용병들을 지원해 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었어요.”
다니엘 로페즈는 계속해서 내게 공을 돌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그는 내가 백악관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런 영향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 것이리라.
이렇게 되면 골든 마피아는 자연스럽게 연합체에 들어오게 될 것이며, 나는 그 거대한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컥-
“그런데 말입니다, 미스터 김.”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려고 할 때,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니엘 로페즈가 내게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게 무슨…….”
“미스터 김. 우리도 이제 슬슬 본심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