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새로운 연합체 (1)
“대한민국 삼대 조직 중 하나라고 불리던 오성파가 정부의 손에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오성파의 두목이던 이창호는, 검경의 체포 과정에서 거센 저항을 하다 사망했다고 알렸습니다. 그 외에….”
오성파가 완전히 해체되었음을 알리는 조간신문이 먼저 포문을 열면서 각 방송국에서도 그 일로 온종일 시끄럽게 떠들었다.
오랜만에 정부가 제대로 된 일을 했다며 시민들은 기뻐했고, 야당에서도 이 일을 반박할 순 없었는지 정부의 활약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불법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공권력을 강력히 규탄했다.
시민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렸음을.
“안녕하십니까, 형님!!”
나는 길게 도열한 채 인사를 올리고 있는 조직원들 사이를 걸어가 예전 오성파의 본거지였던 건물 안에 들어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바로 부산.
오성파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가장 세력을 넓힌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건물은 이창호가 핵심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우리가 부산을 칠 때 제일 먼저 친 곳이기도 하다.
“여긴 정리가 다 끝난 건가?”
황규혁은 건물 내부를 구석구석 살피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저번에 여기 엎었을 때 사방이 핏자국으로 가득했는데, 깨끗이 닦아 놓았네.”
“돈이 꽤 나갔습니다. 이 건물 하나 청소하려고 동원된 사람이 몇 명인 줄 아십니까? 누가 하도 시체를 갈아놔 가지고 아주 그냥 고생을….”
“야. 시끄러워. 그런 거 따지고 엎는 사람이 어디 있냐. 일단 다 죽이고 보는 거지.”
황규혁은 낄낄 웃으며 새롭게 단장된 사무실을 구경했다.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잘 꾸며 놓은 거야?”
“이제부터 이 건물은 화진파 소유 아닙니까. 그리고 앞으로 부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본거지를 확실하게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내 말을 들은 황규혁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진용 그 새끼 때문에 우리 세력이 생각보다 더 약해졌어.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당장 부산을 신경 쓰는 것도 쉽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는지도 몰라요. 화진파가 화진 그룹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시기이지 않습니까. 쓸데없이 식구가 너무 많았죠. 그리고… 이제 슬슬 깡패 같은 외형은 버려야죠.”
화진 그룹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화진파에 대한 역사를 천천히 지워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인원 감축이기도 한데, 문제는 화진파가 대한민국 곳곳을 관리하고 있어서 그 막대한 영향력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는 시큐리티를 따로 만들어 화진파 식구들을 이곳에 몰아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이대로 화진파의 구역들을 전부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애써 점령해 놓고 다른 놈에게 밥그릇을 넘겨줄 순 없으니, 나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태산아. 우리가 이렇게 나와바리들을 포기하게 된다면….”
황규혁도 그 일이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수많은 피를 흘려 여기까지 왔는데, 그동안 쌓아 놓은 탑들을 전부 부수고 기업인 흉내나 내자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도 황규혁의 염려처럼 일을 그따위로 진행할 생각은 없다.
“형님.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에 대해 상의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어? 다들 와 있었냐?”
황규혁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던 중에 성일환이 불쑥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성일환도 따로 부른 터라 그런 것이다.
“오셨습니까, 형님.”
“아. 그래. 그런데 여기까지는 왜 모이라고 한 거야?”
“그렇지 않아도 황규혁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어떤 걸?”
“그게….”
나는 대충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성일환도 황규혁과 마찬가지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음. 확실히 요즘 우리가 기업이다 뭐다 하면서 갑자기 변화를 주고 있잖아. 아무래도 조직 일에 대한 걸 신경 쓰기가 힘들었던 건 사실이야. 그러니까 이진용 그 새끼가 배신을 때리는 것도 멍청하게 쳐다만 봤지.”
이진용의 배신은 참 뼈아픈 결말이었지만, 우리가 조직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조직 전체를 감시했다면 진작 이진용의 계획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이 뭐야? 정말 그룹에 시큐리티를 만들고, 나머지 인원은 방범이다 뭐다 보안 사업으로 뺄 거야? 그런 뒤 다 이쪽에 몰아넣고?”
“아뇨. 그건 그냥 명목상 그렇게 만드는 거고, 화진파를 좀 더 조직적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진용의 반란으로 인해 인원이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물론, 인원이야 구하면 되지만 차라리 이 멤버들을 핵심으로 기용해 치밀하게 조직을 구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성일환과 황규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직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화진파는 이미 한국에 존재하는 조직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묻히기에는 아쉽죠.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요.”
“그러니까 너는 화진파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하자는 거냐? 네 말대로 힘들게 쌓아왔는데?”
“다시 구축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효율적으로 연동을 해 보자는 거죠.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도록 말입니다.”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자꾸 말을 어렵게 하는 건가.
하긴. 정확하게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자꾸 말을 빙빙 돌리고 있으니 성일환과 황규혁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제대로 된 답을 줄 때였다.
“연합체를 구성할 생각입니다. 해외에 있는 조직들과 말이죠.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까지 함께 엮어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 다른 나라 정부에서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는, 그런 막강한 조직을 재구성할 겁니다.”
자국에서만 일으키는 연합체가 아니라, 해외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체 결성이다.
화진파는 대한민국 안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게 현실이다. 또한 화진 그룹으로 탈피를 하게 되면 화진파의 존재가 겉돌게 된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더욱 세력을 키우는 게 낫지 않겠는가?
화진 그룹과는 상관이 없는 독립된 조직으로 키워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가능한 거냐? 화진파가 무슨 세계적으로 노는 마피아도 아니잖아? 그냥 해 봤자 외국에 있는 딜러들과 약 거래 하는 게 전부인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메데인 카르텔과 연동해서 조직을 구축한다면 어떻습니까? 충분히 세계로 뻗어 나가는 조직이 되지 않을까요?”
“메데인 카르텔?!”
성일환과 황규혁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아니. 무슨 수로 그놈들을 여기까지 끌어들여서 우리 시다바리 역할을 시키냐. 설마, 조직 전체를 그놈들한테 넘기려는 건 아니지?”
“설마요. 저번에 이진용과 싸울 때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 준 사람들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 모두 황천길 걷고 있었을 거야. 그게 왜?”
“그 사람들이 바로 메데인에서 보내 준 지원군이었어요.”
성일환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내게 되물었다.
“네가 고용했던 용병이라고 했잖아.”
“예. 그 용병이 메데인에게서 나온 거죠. 사실 그들은 중국과 일본 쪽 지부를 맡고 있는 메데인 카르텔 소속 조직원들이었습니다. 제가 실력이 상당한 사람들로 추려서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누구한테?”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한테요.”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라는 말에 두 사람은 이제 자지러질 표정으로 소리쳤다.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 그 뭐 오야지, 그러니까 두목 맞지? 그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냐? 네가 무슨 수로 그 양반을 알고 있어?”
“그냥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쪽은 제가 뭘 요구하든 다 들어 줄 정도의 사이죠.”
성일환은 많이 당황한 눈치였고, 황규혁은 여전히 궁금증이 많아 보이는 눈치였다.
“저번에 미국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잖아. 그때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였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미국 손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럼, 네가 알고 있는 건 새로운 카포라는 거야?”
“그런 셈이죠. 그리고 언론에서는 미국 정부 손에 죽었다고 떠드는데, 실상은 다릅니다. 메데인 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새로운 지도자가 파블로를 죽이고 다 삼켰습니다.”
“미 정부도 한패였다는 거야?”
“예. 그쪽도 희생양이 필요했던 시점이라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시체라도 넘겨받았던 거죠.”
조금 설명을 해 주니 황규혁은 짧게 감탄사를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황규은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새로운 카포를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제가 미국 쪽 일을 맡았을 때 인연이 닿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제가 메데인 카르텔 일에 끼어들게 되는 바람에….”
내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황규혁은 대충 눈치를 챘다는 얼굴이었다.
“너… 서,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메데인 카르텔 안에서 일어나는 쿠데타에 제가 참여를 했거든요. 그래서 현재 카포와 사이가 좋은 겁니다. 제가 일등 공신이니까요.”
잠시 말이 없던 성일환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게 정말이야?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진정하세요, 형님.”
“야. 지금 진정할 때냐. 네가 메데인 카르텔의 카포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데.”
“예.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같이 하고 할 거 다 하는 그런 사이죠.”
성일환은 실소를 터트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 참. 내가 살다 살다 메데인 카르텔과 엮이는 일이 있을 줄이야.”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메데인 카르텔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치 자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글로벌 기업을 멍하니 바라보는 수준이랄까.
“그런데 메데인과 연동을 하겠다는 건 뭐냐? 연합체를 만들겠다고 말은 했지만, 결국 우리가 메데인한테 종속 돼서 끌려가는 거 아냐?”
메데인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들이 한국에 들어와 설치는 건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성일환은 만일 연합체를 만들게 되면 결국 가장 큰 힘을 가진 조직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걸 상기시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주도적으로 컨트롤하게 되면 성일환의 우려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화진파는 결코 메데인 아래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종속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화진파는 오직 내 밑에만 있게 될 것이다. 그건 메데인도 마찬가지.
결국 연합체 결성은 세계적인 조직들을 전부 내 발아래 두고자 하는 계획이다.
물론, 그것까진 이 두 사람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어차피 화진파는 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조직입니다. 연합체를 구성하는 건, 지금 화진 그룹 때문에 겉돌고 있는 화진파를 독립적인 조직으로 만들기 위함이죠. 그리고 메데인이 간섭을 하려고 하면 그건 제가 알아서 중재를 하겠습니다.”
“그럼 이게 전부 화진파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성일환이었다.
“예, 형님. 화진파가 정부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물론, 정부의 압박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만 메데인을 비롯해 아시아에 있는 거대 조직과 연합을 결성한다면 쉽게 건드릴 순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조직이라면 언제든지 정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연결망이 있는 조직이라면 정부에서도 함부로 공격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조직일수록 정치권과 관련되어 있는 곳이 많지 않던가.
특히 중국 정치권이나 일본, 혹은 미국 정치권을 이용해 압박을 시도한다면 현 정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방에서 얻어맞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조직이 가지고 있는 로비의 힘이다.
결국 이 연합체 결성은 화진파의 힘을 굳건하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세계 정치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추기 위함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든지 각국의 정치권을 이용해 이 나라의 정부를 흔들 수 있지 않겠는가?
아직은 꿈만 같은 이야기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단순히 이 나라의 거리를 지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관장할 수 있는 제왕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그 큰 그림을 향한 제 일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