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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37화 (137/325)

137화. 통수에 통수 (5).

미국과 멕시코에 있는 내 조직원을 데려와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눈에 띈다. 그리고 그들을 데려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로이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 중인 메데인 카르텔을 데려온다면 확실히 눈에 덜 띄고,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도 빠르다.

메데인 카르텔 조직원이라고 해서 모두 콜롬비아인은 아니지 않은가?

그 나라 국민으로 새롭게 조직원을 뽑는 건 당연한 일. 그래야 그쪽 사람들에게 약을 팔 수 있을 테니까.

“아직 안 끝났어, 이 새끼들아.”

나는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있던 무전기를 꺼냈다.

이진용은 가소롭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발악을 하려고? 네가 데리고 있는 조직원 수는 이미 파악해 뒀어. 더 데려올 애들도 없잖아? 설마, 옛날 그 핏덩이 연합원이라도 데려오려고?”

김동욱이 나를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가 동욱이를 완전히 믿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김동욱도 모르는 것이 있지 않던가.

그건 바로 내가 세계 최고의 조직과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진용의 비웃음 섞인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무전기에 천천히 입을 댔다.

“전부 들어와!”

드라마틱하게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뭔가가 나타나진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이진용은 팔짱을 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욱이를 쳐다보며 거드름을 피웠다.

“아까운 인재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젠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진용은 살짝 경계하는 얼굴빛을 띠었으나,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긴. 나라도 그럴 것이다. 이진용이라면 분명 철저하게 준비를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걸?

부우웅-!!

끼이이익-!!

순간, 발생하는 큰 소음.

대형 트럭들이 강한 엔진 소리를 내며 나타나 순식간에 이진용의 조직원들을 덮쳤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미처 반응하지 못한 조직원들은 그대로 바퀴 아래에 깔려야 했다.

“뭐, 뭐야?!”

트럭들이 신나게 조직원들 사이를 휘저으며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당황한 이진용은 허튼수작을 부린다며 나를 노려보았다.

설마, 내가 저걸로 끝을 내겠는가?

“일환 형님.”

“태산아. 몸은 괜찮….”

“지금 제 몸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곧 있으면 저 트럭에서 구원군들이 내리게 될 겁니다. 그때를 맞춰서 우리도 한꺼번에 몰아쳐야 해요.”

로이가 보내 준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 수가 30명이다.

이 상황을 뒤집기에는 조금 모자란 숫자이긴 하나, 방금 저 트럭들의 퍼포먼스로 그 차이를 메우고 있다. 또한 로이가 실력 좋은 조직원들을 보내 주겠노라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어떤 힘을 보여 줄지, 지금부터 지켜볼 때다.

“뭣들 하고 있어! 저런 것들에 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저지해!!”

이진용은 트럭들이 날뛰는 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고 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조직원들을 몰아붙여 트럭들을 멈추게 할 생각인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

트럭들은 알아서 멈출 테니까.

“다 죽여 버려!!”

어떤 트럭은 건물에, 또 어떤 트럭은 몇몇 사람을 받고 정차했다. 그리고 뒷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연장을 든 채로 대기 중이던 메데인 카르텔의 조직원들이 내렸다.

노성을 지르며 하차하는 카르텔 조직원들은 무서운 기세로 이진용의 조직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건 또 뭐야!”

“얼른 막아!!”

그 흔한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이 몸통 길이만 한 칼을 들고 매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서른 명의 조직원들이 전부!

나라도 저런 광경을 마주하게 되면 공포심이 들 것이다. 저걸 정면으로 막아야 하는 이진용의 조직원들은 어떻겠는가?

“크아악-!”

“으헉-!”

고개가 절로 돌려질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일환은 내가 말한 대로 조직원들을 투입하려 했지만, 차마 그런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저건 무쌍이지 않은가.

30명에 달하는 메데인 조직원들이 각각 신들린 듯 칼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이진용의 조직원들을 썰어내고 있었다.

여기서 메데인과 화진파의 기세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화진파가 대한민국에서는 최강의 조직일지 몰라도, 메데인은 세계 최강의 조직이다.

미국에서 그 많은 돈을 움직인다는 골든 마피아조차 메데인 카르텔이라면 한 수 접어들고 가지 않던가.

그 대단한 차이를 모두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으리라.

“태, 태산아.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뭐냐? 우리 쪽 애들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특별히 고용한 용병들입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요.”

“하하. 너란 놈은 정말이지….”

“그런데 여기 계속 계실 겁니까? 언제까지 저 사람들만 날뛰게 놔둘 순 없잖아요.”

“뭐….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가오가 있는데 쳐다만 볼 순 없지.”

성일환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메데인 카르텔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멍청하게 뭘 보고 있어!! 우리도 저 새끼들 조지러 가야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직원들이 함께 소리쳤다.

“예, 형님!!”

완전히 수세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역전의 기회가 나오자, 조직원들은 힘차게 함성을 지르며 뛰어갔다.

그 모습을 정식이가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가.”

“그래도 널 놔두고 그냥 가기에는 좀….”

“괜찮아. 반쯤 병신 된 놈이 무슨 쓸모가 있다고. 그러니까 가서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와.”

내가 얼른 가라고 손을 젓자 정식이는 활짝 미소를 보이며 조직원들의 뒤를 따랐다.

난 아수라장이 된 싸움터를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게 됐다.

* * *

이젠 벼랑 끝이라고 생각한 싸움이 메데인 카르텔의 난입으로 역전이 되었다. 물론, 이진용의 조직원들도 쉽게 물러서진 않았으나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은 다름 아닌 황규혁이었다.

“내가 좀만 늦었으면 우리 동생, 뒤질 뻔했네.”

다른 건물을 점령하던 중 이진용 측 간부들과 싸움이 벌어진 황규혁은 빠르게 그들을 정리하고 우리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 결과 이진용은 힘없이 무너지며 결국 우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많이 다쳤냐? 이러다 뒤지는 거 아녀?”

“아픕니다. 그만 만지세요.”

“싸가지 없이 목소리 까는 것을 보니까 죽진 않겠네. 그리고 응급 처치도 이만하면 잘 된 거고.”

황규혁은 낄낄 웃으며 내 머리를 짧게 두드렸다.

그래도 이 양반 덕분에 길어질 뻔한 싸움이 빨리 끝났다. 그 덕분에 나도 응급 처치를 받아 목숨을 건진 것이고.

“나 좀 일으켜줘.”

난 정식이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번쩍 정신을 차리며 내게 다가왔다.

“아. 응.”

이놈, 아까부터 동욱이 시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아직도 저놈이 우릴 배신한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이건 배신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가.

처음부터 이진용이 보낸 쁘락지였으니까.

“동욱이 일은 잊어.”

“그래. 좀 괜찮냐, 이제?”

난 정식이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뒤질 거 같다.”

“얼른 병원에 가 보자니까?”

“안 돼. 저 새끼 속은 긁어 놓고 가야, 내 속이 풀릴 거 같다.”

난 이진용, 그와 결탁했던 간부들이 붙잡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성일환이 알아서 뒤로 물러나 주었다.

“내가 할 얘기는 끝났다. 이제 네가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형님.”

“아니야. 그리고 길게 하지 마. 너 상처도 치료하러 가야 되니까. 짧게 끊어.”

“예.”

난 조직원이 가져다준 의자에 앉아 이진용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다른 간부들과 달리 아주 덤덤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하셨습니까?”

내 첫 물음에 이진용은 갑자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너 같은 핏덩이한테 내가 밀릴 줄이야.”

“이런 걸 세대교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릇의 차이라고도 하죠.”

“그런가? 우리 김 사장의 실력을 무시한 덕분에, 내가 그 대가를 이렇게 톡톡히 치르네. 도대체 저런 용병들은 어디서 데려온 거야? 저놈들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내가 김 사장 목을 손수 따고 있을 텐데.”

끝에 다다랐음에도 여전히 이진용은 간사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역시, 이런 순간에도 끝까지 소름 끼치는 양반이다.

만일 내가 미래를 알지 못하고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면, 나는 이진용을 이길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허세는 그만 부리시죠. 형님이 처음부터 저와 협력을 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협력이라-.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어차피 두 호랑이가 같은 구역에서 놀 순 없는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진용이 내게 협력을 했어도, 난 그를 반드시 제거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 뒤통수를 칠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표정에서 다 읽었다는 듯 이진용이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내 말이 맞지? 김 사장이랑 나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내가 오랫동안 물밑 작업을 한 거지.”

물밑 작업을 했다고?

조금 기가 찼다.

“그게 동욱이었습니까?”

“뭐, 동욱이 그놈이 능력은 좋잖아. 그리고 솔직히 다른 거로 장난질을 쳐 보려고 해도 뭔 틈을 보여야 말이지. 그래서 동욱이 하나만 밀고 간 거지.”

동욱이로 조직을 흔들려고 했다면 내가 진작 눈치를 챘을 것이다.

조직 내 사정은 속속히 내가 항상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진용도 내 눈을 피해 다른 짓을 꾸밀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동욱이가 이진용이 심어 놓은 쁘락지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뼈아픈 점이다.

“질긴 인연이었습니다, 형님. 끝까지 형님답게 가시네요.”

“허허. 안타깝지. 우리 김 사장만 잘 담가놨으면 만사가 형통했을 텐데 말이야. 이제 나도 없으니 화진파는 김 사장이 꿀꺽하겠구먼.”

“어차피 형님이 계셨어도 그렇게 될 일이었습니다.”

이진용과도 이렇게 악연이 끝나는구나.

권총에 남아 있는 총알 한 발.

이건 이진용의 머리를 날려 버리기 위해 계속 아껴 두었던 것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이진용의 이마에 총구를 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진용은 이런 순간에도 음흉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내게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무슨 뜻입니까, 그건.”

이진용의 입가가 더욱 섬뜩하게 그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머리가 안 돌아가나 보네, 김 사장. 내가 김 사장이랑 저기 성일환, 그리고 황규혁을 치워 버리려고 누굴 배신했는데?”

총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설마 이 새끼가….

“내가 이번 일 벌이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누구인 거 같아? 김 사장 너? 아니야. 화진파를 주름 잡고 있는 우리 큰 형님이지. 그런 분을 내가 가만 놔뒀을 거 같나?”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진용은 화진파를 완전히 엎어 버리고자 작정을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의 타깃은 나, 성일환, 황규혁 뿐만이 아니다.

화진파의 정점에 앉아 있는 사람.

그것이 누구겠는가?

바로 권용일이다.

내가 아무리 화진파를 장악하고 있어도 권용일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그가 강제로 모든 걸 엎으려고 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이진용도 알고 있기에 선수를 친 것인가.

“끝까지… 더럽게 가는구나, 이 개새끼야.”

드디어 터진 나의 욕설에 이진용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냥 죽을 순 없잖아. 큰 형님이라도 길동무로 데려가야지. 안 그래?”

탕-!

난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이진용의 뒤통수를 날려 버렸다.

독사의 최후다.

하지만 아직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형님!”

내가 큰 목소리로 부르기도 전에 성일환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들 어서 천안으로 돌아갈 준비해! 얼른!!”

이진용이 저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천안에 있는 권용일을 죽이기 위해 적잖은 숫자를 보냈을 것이다.

여기는 부산이지 않은가.

과연 제시간에 가서 권용일을 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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