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통수에 통수 (3)
“아주 군사 기지를 만드셨구먼. 그냥 아예 군바리를 하지 그랬어. 지랄 같은 영감 같으니라고.”
성일환은 부산항 근처에 있는 이창호의 은신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양반 말대로 이창호가 만든 은신처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다섯 개의 별장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군사 시설을 방불케 하는 경계소 비슷한 것이 있었다. 또한 배치되어 있는 조직원의 수도 상당했다.
보고는 받아 봤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생각보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걸 못 넘겠다는 건 아니다.
난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냥 내가 먼저 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성일환은 벌써 양손에 총 하나씩 끼고 있었다.
이 양반, 또 못된 버릇이….
“아닙니다, 형님. 그냥 뒤에 계시는 게….”
“시끄러! 나는 저기 정문이나 박살 내고 있을 테니까, 너는 저쪽 옆문이나 가서 뚫어. 그냥 쪽수로 밀어붙이면 알아서 문 열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만, 정말 여기서 또 총질을 할 셈인가.
어차피 경찰은 이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긴 했다. 그래도 총기를 남발했다는 걸 정부가 알기라도 한다면 난리가 날 텐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총, 함부로 쓰면 안….”
“안 가? 확 쏴버린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성일환은 지금 예민해져 있었다.
결국 나는 그의 앞에서 쫓겨나 옆문 쪽으로 가야 했다. 그럼, 슬슬 시작을 해 볼까.
“동욱아.”
나는 무전기를 틀어 동욱이를 불렀다. 그러자 무전기 너머로 동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형님.”
“애들 다 하차시켜. 우린 동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간다.”
“예, 형님. 알겠습니다.”
오성파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조직원들을 배치해 놓았다. 물론, 오성파도 지금쯤이면 우리가 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대비하게 놔둘 바에는 빠른 진입이 낫지 않겠는가?
“우와아아-!!”
우리 애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싸움이 시작된 건 성일환 쪽이었다.
평소에는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던 성일환이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180도 돌변한다. 저렇게 맹수처럼 상대를 뜯기 위해 몸소 전투에 뛰어 들다니.
이럴 때 보면 왜 저 양반이 이진용한테 밀려 토사구팽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콰직-!
“죽어, 이 새끼들아!!”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둔탁한 소리와 험한 욕설들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듯이, 화진파가 압도적으로 오성파를 밀고 있다.
“가자-!!”
“다 죽여!!”
성일환의 뒤를 따라 다른 간부들의 무리도 이창호 은신처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 이어 서쪽과 북쪽에서도 무리가 줄지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나만 들어가면 되는 건가.
“형님!!”
동욱이가 애들을 잔뜩 끌고 와 나를 불렀다. 이미 동쪽에 있는 오성파 조직원은 허둥지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이 딱 적기라는 신호다.
“모두 엎어 버려!!”
“예, 형님!!”
자그마치 120명의 조직원이 내 명령에 따라 동쪽 경계소를 덮쳤다.
열 명도 안 되는 오성파 조직원들이 경계소를 지킬 수 있겠는가?
그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냥 짓밟혀 버렸고, 우리는 그들의 몸을 밟으며 안으로 진입했다.
“이런 개새끼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입구는 쉬웠지만, 그 이후부터는 만만치 않다.
우리의 습격에 대비를 했는지, 손도끼와 칼을 든 조직원들이 쏟아져 나오며 우리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연장이라면 우리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죽어, 이 새끼야!”
“크악-!”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차 두 대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에서 백 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서로 엉켜 싸우고 있었다. 가까이 근접하면 그대로 칼로 찌르고, 조금 거리가 있으면 손도끼를 던지거나 리치가 긴 파이프를 휘두른다.
오성파 조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나갔고, 내 조직원들도 꽤 피해를 입고 있었다.
역시, 오성파가 괜히 오성파가 아니라는 것인가.
예상했던 200명의 인원보다 더 많은 것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이놈들 싸움도 잘하고 있었다.
배수진을 쳐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실력이 좋은 것인가.
하지만 이 난잡해진 싸움에 활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뒤만 따라와, 새끼들아!”
“예, 형님!!”
정식이가 양손에 칼을 들고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는 겁도 없이 혼자 오성파 똘마니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그 용맹한 모습에 우리 쪽 조직원들이 힘을 얻었는지, 힘차게 그 뒤를 따랐다.
“형님! 조심하십시오!”
“괜한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정식이의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분명히 칼을 휘두르면서 적들을 상대하고 있긴 한데, 도저히 속도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녀석의 뒤를 따르기만 하고 있는 조직원들이 지쳐 보일 정도다.
“다 덤벼, 이 쓰레기 새끼들아!”
정말 무모할 정도로 막 나가는 파이팅 스타일이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일기당천이라는 말이 저럴 때 쓰는 걸까.
정식이는 쉴새 없이 쌍칼을 휘두르며 오성파 조직원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는데, 소름이 돋는 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떡대 좋은 놈들이 픽픽 쓰러지는 거겠지.
거기다가 협공을 가하는 상대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식이 형님을 지켜라!!”
“형님만 혼자 싸우게 두지 마라!”
한 명이 저렇게 혼자 날뛰기 시작하면 아군으로써는 당연히 사기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삼국지나 다른 고대 역사물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던가.
장수 하나가 선봉에 나서서 굉장한 무용을 보여 주면 아군의 사기가 저절로 올라, 승리를 이끌어 내는 것을.
그러나 정식이 혼자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 쪽 조직원들이 도움을 주러 가려고 했지만, 번번이 오성파 조직원들에게 막히고 있었다. 저러다가는 정식이가 위험할 것 같은데.
“한꺼번에 밀어! 저러다가 정식이 죽겠다!”
“예, 형님!!”
소리를 질러 보긴 했지만, 딱히 나아지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콰콱-!
나도 오랜만에 연장을 들고 전투에 가담했다. 이제까지 항상 부하들이 알아서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총력전인 만큼, 나도 가만히 사리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상대도 똑같은 마음인지, 쉽게 쓰러질 생각을 안 한다.
이창호가 그저 그런 놈들을 이곳에 배치해 두었겠는가?
분명히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신을 위해 싸울 놈들을 깔아 둔 것이리라.
정식이 저놈은 왜 흥분해서 혼자 돌진을 해 가지고.
“형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설 필요가 없었던 건가.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어느새 동욱이가 정식이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한 명은 쌍칼. 다른 한 명은 쌍도끼.
둘의 실력이 대등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긴. 동욱이도 정말 실력이 좋은 놈이지 않던가.
“너희들! 알아서 따라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저놈들, 우리를 기다릴 생각이 없는 건가.
겁도 없는 것들이 냅다 적진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 기다려!”
소리를 쳐봤지만, 이미 놈들은 사라진 뒤였다.
생각해 보니, 저놈들 날 지키기 위해 있는 놈들이잖아. 그런데 저렇게 막 가도 되는 거야?
“젠장.”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저러다가 괜히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된다. 나는 애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1분 안에 못 뚫으면 다 뒤질 줄 알아! 전부 밀어!”
“예, 형님!”
이렇게 된 이상, 조직원들과 함께 이곳을 뚫고 가는 수밖에 없겠다.
정식이와 동욱이가 그때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솔직히 알아서 잘할 놈들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두 놈만 안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다.
저것들이 괜히 개죽음당하기 전에, 내가 어서 가서 도움을 줘야 한다.
* * *
괜한 걱정이었나.
“이제 왔냐?”
“오셨습니까, 형님.”
나는 조직원들과 함께 허탈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앉아 있는 정식이와 동욱이를 쳐다보았다. 저 두 놈 주변에는 이미 목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오성파 조직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설마 이놈들, 여기까지 둘이서 올라온 건가.
왠지 우리 앞을 막는 놈들이 별로 없다 싶었는데….
“뭐 찾았냐?”
“여기에는 없는 거 같아. 저기 반대편 건물로 가 보려고.”
다섯 개의 건물이 있으니, 그중 하나에는 분명 이창호가 있을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제발 다 같이 좀 가자. 뭐가 그렇게 급해?”
“야. 저 새끼들 하는 꼬락서니 좀 봐라. 내가 안 답답하게 생겼냐?”
정식이의 짜증에 조직원들은 가만히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만큼 정식이가 보여 준 실력이 있으니, 다들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좀 천천히….”
탕-! 타타탕-!
그때 몸을 움찔거리게 만드는 총성이 들려왔다.
이런. 조마조마했던 게 결국 터진 건가.
총성이 저렇게 많이 들릴 정도면 혼자서 쏘는 게 아닐 터.
성일환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생각 없이 총을 쏠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총성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건 상대가 먼저 총을 꺼냈을 확률이 높다.
“어우. 저기는 이제 총까지 쏘네. 이러면 내가 겁나서 칼 쓰겠냐?”
“어차피 쓰지 말라고 해도 쓸 거잖아.”
“뭐…. 그렇긴 한데. 아무튼, 총은 좀 반칙이지.”
“네가 칼 쓰는 것도 솔직히 반칙이야.”
“…그런가.”
상대가 총을 쓰기 시작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총기를 소지한다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그렇다는 건 이창호를 바로 옆에서 지키고 있는 놈들과 충돌한 걸까?
그놈들 정도라면 총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하다.
“저쪽에서 들리는 거 같지?”
“저쪽으로 가려고?”
“가야지. 이창호가 거기 있을 것 같은데.”
정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가자.”
“괜찮겠어?”
“뭐가.”
“가면 총 맞을 수도 있는데?”
“졸병들만 잡아서 뭐해. 대장을 잡아서 목을 따야지.”
틀린 말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게 대장을 잡아야 끝나는 게임이지 않던가.
“근데 생각보다 우리 쪽 피해도 큰데?”
총성이 들려오는 건물을 향해 달려가던 중, 나의 물음에 동욱이가 대답했다.
“예. 방금 파악을 했는데, 120명 중 30명이 낙오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적은 피해지만, 또 다르게 보면 큰 피해이기도 하다.
많이 다쳐봐야 20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90명이면 충분하겠지?”
“저쪽 건물에도 우리 쪽 사람들로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겠다만 아무래도 계속 총성이 들리는 게 불안하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의 총이 발포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싸움이 커질 수가 있나?
이러다가는 정말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일이 꼬이기 전에 빨리 처리를 해야 할 것이다.
“여깁니다, 형님!”
“조심히 문 열어. 열자마자 바로 상대가 총을 난사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여기서 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난 품 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낸 뒤,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기 무섭게 조직원 하나가 거칠게 문을 발로 차 열었다.
타타탕-!
내 예상대로 건물 안쪽에서부터 총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한둘이 아닌데.
“으악-!!”
“뭐, 뭐야! 크헉!”
그런데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창문을 통해 안으로 진입한 정식이와 동욱이가 총을 든 조직원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놈들은 언제 또 저기까지….
그래도 이번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저 두 사람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들어가고 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 형님.”
동욱이가 심상찮은 얼굴로 나를 부르며 동욱이 칼에 목이 찔려 죽어 있는 시체 하나를 가리켰다.
“이놈 우리쪽 조직원인데요?”
“…뭐?”
문신의 모양을 보니, 정말 우리 쪽 사람이 맞았다.
“뭐야. 우리가 오성파인 줄 알고 총을 갈겼던 거야?”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랬으면 분명 저와 정식이 형님을 알아봤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말단이 총을 가지고 있을 리가….”
타타탕-!
위층에서 또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별장 안에 있는 오성파 조직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진파 쪽 조직원들의 시체 수가 꽤 많다. 거기다가 다수의 인원 몸에 총알 자국이 나 있었고, 흔적을 보면 이건 마치 화진파 조직원들끼리 싸운 것처럼 보였다.
“일단… 올라가 보자.”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천천히 위층을 향해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