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33화 (133/325)

133화. 통수에 통수 (1).

“경찰은 거리를 어지럽히고 시민을 위협했던 오성파 조직원 120명과 핵심 간부 25명을 체포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발본색원하여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경찰청장이 나와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했다.

오성파 조직원 120명과 핵심 간부 25명.

여의도, 영등포, 마포, 포항 그리고 부산까지 이르는 오성파 조직을 화진파가 쓸어버리면서 얻어낸 공짜 성과다.

솔직히 120명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오성파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내린 조직인데, 겨우 120명만 있겠는가?

하지만 화진파 손에 죽은 오성파의 조직원만 해도 그 수가 200명을 넘었고, 우리가 기습하는 과정에서 도망‧잠적 등의 사유로 공중분해 된 녀석들도 무시 못 할 숫자였다. 결국, 최종적으로 경찰에 넘긴 것은 120명.

아무튼, 오성파는 이제 대부분 세력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나 머리가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재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부산이라고?”

“예, 큰 형님.”

권용일을 큰 형님이라 부르는 게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화진파가 기업으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권용일의 호칭도 회장님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예전의 큰 형님으로 돌아왔다.

저 호랑이 같은 인상을 보라.

익숙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든다.

“진용아.”

“예, 큰 형님.”

“부산은 네가 관리하고 있는 곳이잖아. 그런데 이창호 그 새끼가 어디로 기어들어 갔는지도 몰랐던 거냐?”

권용일의 날카로운 눈빛에 이진용은 고개를 가만히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저건 좀 억지이긴 하다.

아무리 이진용이라고 해도, 당장 오성파 조직원들도 모르는 이창호의 행방을 저 남자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권용일이 저렇게 이진용을 쪼는 이유가 다 있다.

“이진용뿐만이 아니야! 오성파 조지고 다닌 지가 벌써 사흘이 넘었어요. 그런데 대가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직도 이 지랄을 하고 있잖아. 이 새끼들아.”

이진용을 꾸짖으면서 동시에 다른 간부들까지 싸잡아 혼을 내는 것이다.

그래도 이창호를 잡지 못한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만큼 이창호가 잘 숨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 아니겠는가

“태산이가 애들 다 털어서, 결국 이창호가 어디 숨어 있는지 깠다. 내가 하루만 더 지체됐으면 직접 나서서 너희들부터 다 조지려고 했어. 태산이 덕분에 목숨 건진 줄 알아.”

“예, 큰 형님.”

여전히 간부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여전하다.

권용일은 짧게 헛기침을 뱉은 다음 내게 시선을 옮겼다.

“얼마쯤 끌고 가야 되는 거냐?”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이창호를 지키고 있는 오성파 조직원들 수가 꽤 된다고 합니다. 도망치지 못하게 사방으로 포위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전부 다 데리고 가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오성파와의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길게 끌 필요 없이 순식간에 정리해 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이미 오성파는 팔다리가 잘린 상태다. 우리가 각 지역구를 장악하면서 이제 심장부만 남아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태.

이 많은 숫자로 몰아치게 되면, 이창호는 숨도 쉬어 보지 못하고 압사당할 것이다.

“좋아. 모두 태산이 말 들었지? 다 들이부어야 한다고 하는데, 태산이 앞으로 있는 애들 전부 데려와.”

몇몇 간부들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들은 불편한 눈빛을 띠며 나를 노려보기까지 했다.

권용일의 발언이 무엇이겠는가?

이번 일도 내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것이며, 방금 전 풍긴 뉘앙스는 이제 내가 권용일의 대신인 것처럼 확정지었다.

나를 후계자인 양 앞으로 내세우니, 간부들이 매우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왜 대답들이 없어?”

권용일도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한층 날카로운 목소리로 좌우에 말했다. 그러자 간부들도 다시 꼬리를 내렸다.

“예, 큰 형님.”

간부들의 대답을 들은 권용일은 인상을 풀며 손을 휘저었다.

“다들 바쁠 텐데, 어서 들어가 봐.”

간부들과 함께 나도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권용일이 그런 나를 붙잡았다.

“넌 어디 가려고 그래?”

“저도 바쁜데요?”

“예끼! 앉아서 술이나 한잔 처마시고 가, 이놈아!”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었는데 권용일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그가 건네는 잔을 강제로 받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뒤야. 준비 단단히 해. 그땐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이창호 그 새끼 잡고, 이 싸움 끝내야 된다.”

권용일도 길게 끌수록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동감한다.

그렇지 않아도 무리하게 전쟁을 벌여 꽤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럼에도 정부가 조용히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해 준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언론에 돈을 뿌리고, 정부와 협력을 한다고 해도 길게 끌면 꼬리가 잡히기 마련.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눈도 무시할 수 없고, 장기전이 될수록 정부의 인내심도 바닥나게 된다.

그러기 전에 빨리 처리를 하라는 것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맘 같아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이창호의 목을 따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사전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압도적인 숫자를 자랑한다고 해도, 미리 정부의 양해를 구하고 언론사의 입을 막아 놓지 않으면 일이 크게 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준비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무식하게 주먹만 앞세울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권용일은 잔을 내려놓으며 무겁게 운을 뗐다.

“일환이한테 들었다. 이번 일 끝나면 진용이부터 걸러낸다며?”

성일환이 벌써 권용일에게 보고를 올린 것인가.

역시, 성일환은 아직 충성스러운 권용일의 사냥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권용일이 절대 그런 일로 내게 악감정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형님께서 반대하신다면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권용일은 물끄러미 나를 살펴봤다. 그리고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라. 내 말이라면 귓등으로 듣는 녀석이.”

“정말입니다. 큰 형님께서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전 절대 칼을 뽑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권용일은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예, 큰 형님.”

칼 같은 나의 대답에 그는 목이 탔는지 술을 병째로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씁쓸한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차피 너랑 진용이는 공존하지 못해. 한쪽이 죽어야 조직이 굴러갈 수 있다면야 어쩔 수 없지. 둘 다 나한테는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도 둘 중 하나가 쓰러져야 화진파가 살 수 있다면, 난 주저 없이 하나를 선택할 거다.”

“그 하나가 바로 접니까?”

“글쎄다. 네가 진용이를 정말로 꺾는다면 그렇겠지?”

나와 이진용이 싸울 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차라리 이런 게 나한테 더 이득이다.

이미 나는 이진용보다 훨씬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큰 형님 말씀, 잘 알겠습니다.”

“허허. 그려. 그러니까 시시하게 죽진 마라. 김새니까.”

“예, 큰 형님.”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권용일을 힐끗 쳐다보았다.

분명히 내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기울진 않는 상태다. 내가 이진용보다 훨씬 우세에 있어도 끝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치밀한 조심성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죠, 영감님.

곧 이진용의 목을 당신 앞에 던져 놓을 테니까.

* * *

권용일은 혼자 소파에 앉아 조용히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오성파와 결전을 앞두고 있는 때.

과연 이번 전쟁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권용일도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어떻게 되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나저나 지금쯤 이창호 그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아도 오성파의 사지가 다 잘린 상태이지 않던가.

그놈, 실컷 날뛰더니 아주 꼴좋게 되었다.

“아버지!!”

권용일이 홀로 껄껄 웃음을 터트리고 있던 찰나에 문이 발로 찬 듯이 세게 열렸다.

잔뜩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큰아들의 면상을 보니 기쁜 마음이 쏙 들어가고 짜증만 일었다.

“무슨 일이냐?”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온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오준은 연신 씩씩 숨을 몰아쉬며 화를 분출하고 있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권오준은 서류 뭉텅이를 권용일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곳에는 화진 기업의 지분율과 대양 그룹이 화진에 흡수될 경우 나타나게 될 지분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권용일이 슬쩍 보기에도 아주 꼼꼼하게 정리가 잘된 서류였다. 하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이게 다 웬 거냐?”

구역질 나는 제 아비의 연기에, 권오준은 서류를 활짝 펼치며 따지고 들었다.

“제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두 번, 세 번 체크한 겁니다. 여기 보면 김태산이 우리 지분을 40%나 갖게 되는 건데, 이게 말이 됩니까?”

대양 그룹의 지분까지 섞이면 화진 그룹이 가지고 있는 지분 100% 중 40%를 김태산이 가져가게 된다.

이미 계열사마다 김태산이 발을 다 디밀고 있는 터라 지분율이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아버지. 이놈의 행패를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십니까?”

“뭘 말이냐?”

“아버지!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이놈이 지금 우리 집을 홀라당 털어 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부드럽게 큰아들의 말을 받아 주던 권용일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래서?”

다른 간부들이었다면 몸을 떨었겠지만, 권오준은 아직 진정한 권용일의 모습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라니요? 그놈의 뒤통수를 갈겨서 없애 버리든가 해야죠!”

그 말을 끝으로 권오준에게 날아든 것은 두툼한 재떨이였다.

워낙 빠른 속도로 날아온 것이라 권오준은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재떨이에 맞았다.

“아, 아버지!”

이마에 피를 흘리던 권오준은 당혹감 어린 표정을 나타냈다. 그에 반해 권용일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였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권용일은 재떨이에서 멈추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전부 큰아들에게 던져 버렸다.

“야 이 새끼야. 뭐? 뒤통수를 갈겨서 없애? 이거 아주 오냐오냐 키웠더니, 정신머리를 어디에 처박은 거야! 지금 누가 누굴 없애, 인마!”

대노한 권용일의 모습에 권오준은 입을 싹 닫고 고개를 숙였다. 자칫 잘못하면 뼈도 못 추리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왜 가만히 지켜보고 있냐고 물었지? 오냐. 내가 깔끔하게 대답해 주마. 넌 솔직히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허구한 날 계집애나 끼고 다니는 새끼가 뭘 알겠냐?”

“아, 아버지.”

“입 닥치고 들어, 이 새끼야!”

권용일의 높아진 언성에 권오준은 더욱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네가 룸에서 계집년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을 때, 태산이는 고작 18살이란 나이에 여의도를 나한테 바쳤어. 그것뿐이냐? 삼대 조직이라던 대룡파도 무너뜨리고, 수십 톤이 넘는 마약까지 들고 와서 내 주머니에 넣어 준 게 바로 김태산이야.”

“하,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화진을 물려받는 건 당연히….”

애써 용기를 내어 봤지만, 괜한 호승심이었다.

권용일은 한심한 아들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이런 븅신아. 네가 내 아들인 게 뭐 잘난 거라고. 넌 화진을 받으면 일주일 만에 말아 먹을 놈이야. 그런데 태산이는? 그놈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화진을 탈바꿈시킬 수 있어. 그런 놈이야, 태산이가. 그런데 너 같은 돌머리 새끼가 뭐? 가업을 이어받아?”

권오준은 함부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번엔 정말 권용일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아서다.

“네가 한량 짓하고 돌아다니는 거 내가 그냥 놔둔 건, 이미 내가 널 포기해서야. 그래서 너도 이제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잖아. 그런 놈이 내가 기업을 세운다니까 얼씨구나 하면서 찾아오니 내가 널 자식새끼로 보겠어, 아니면 머저리로 보겠어?”

더는 꼴 보기도 싫다는 듯, 권용일은 다 피지도 못한 시가를 권오준에게 던지며 일침을 가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태산이가 널 라이벌이라고 생각도 안 한다는 거야. 그랬으면 너 같은 새끼는 진작 죽었어. 그러니까 그거 감사하면서 살아. 내가 넌 건드리지 말고 생활만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해 줄 테니까. 이제 썩 꺼져.”

권오준은 결국 이렇다 할 말도 꺼내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났다.

저번 날 김태산에게 지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설마 아버지가 자신도 모르게 지분을 옮겼을 리 없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하지만 조사를 해 보니, 김태산의 말이 전부 맞았다.

이대로만 계속 일이 진행되면 조만간 화진 그룹 전체가 김태산 손에 통째로 넘어간다.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건만.

얻은 거라고는 찢어진 이마뿐이었다.

“두고 보자, 노친네. 언제까지 그렇게 큰 소리 땅땅 치는지.”

권오준은 닫혀 있는 권용일의 서재 문을 노려보다가 쿵쾅거리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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