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호랑이 사냥 (3)
지금쯤이면 오성파의 이창호도 화진파가 칼을 뽑았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창호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창호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 영감이 제집에 가만히 눌러앉아 있을 것 같진 않고 그렇다면 다른 은신처에 몸을 맡겼을 텐데, 그곳이 어딘지를 알아내야 했다.
“정말 몰라?”
“저, 정말입니다. 제발 목숨만은….”
이름 모를 오성파의 조직원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다른 조직원을 바라보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망치로 손을 찍어 내리고 발톱을 뽑는 등, 갖은 고문을 했으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미칠 지경일 것이다.
콰직-!
내가 손짓하자, 동욱이가 무릎을 꿇고 있던 오성파 똘마니의 머리를 망치로 날려버렸다.
와그작 부서진 머리를 바라보며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이 마지막이었지?”
“예, 형님. 더 나올 것도 없습니다.”
여의도에서 붙잡은 오성파 조직원들을 전부 족쳐봤지만 나오는 정보는 없었다.
제일 먼저 정식이 손에 죽은 선형이란 놈도 이창호의 위치를 몰라 고통스럽게 고문을 당하다 숨이 끊어졌다.
당장 간부라는 놈도 모르는 걸 이런 하급 조직원들이 알고 있을 리 없지.
“일어나자. 볼 장 다 본 거 같으니까.”
“예, 형님.”
여의도는 큰 힘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여의도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다음 타깃은 영등포다.
오성파의 핵심 세력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영등포이지 않던가.
여의도가 준비 운동이었다면, 본 게임은 영등포부터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 오성파의 본진이 있는 부산 쪽.
그쪽은 이진용이 맡고 있는 곳이다.
설마 이진용이 허튼짓하는 것은 아니겠지?
* * *
“좀 늦었다?”
“오성파쪽 애들을 좀 터느라 늦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도 황규혁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는 내 앞에 잔을 놓으며 말했다.
“한잔할까?”
“이제 곧 출발인 거 아시죠?”
“미리 축배를 드는 거지, 흐흐.”
황규혁이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며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안 마시면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가 건네는 잔을 받았다.
“수확은 있고?”
“없어요. 이놈들,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괜히 시간만 버렸어요.”
“이창호가 간이 콩알만 한 놈이잖아. 그놈도 뭔가를 느꼈으니까 미리미리 몸을 뺀 거겠지.”
타이밍 절묘하게 이창호가 피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가 조심성이 많아서 아무도 그의 위치를 모르게 한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계속 털다 보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영등포에서는 뭔가 성과가 좀 있겠죠, 뭐.”
“그러길 바라야지.”
나는 황규혁과 동시에 잔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기 무섭게 동욱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이제 출진만 하면 되는 건가.
“가시죠, 형님.”
“그래. 가야지. 드디어 그 새끼들 나와바리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황규혁은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오성파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핍박을 당하며 살아왔던가. 이제 그 빚을 모두 갚아 줄 때가 온 것이다. 그는 손도끼와 칼을 여러 개 챙기며 단단히 준비를 했다.
왠지 영등포에 있는 오성파 조직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저 양반이 저렇게 도끼를 갈았으면 그냥 몇 대 때리는 거로 끝나진 않을 텐데….
“오늘 일 다 끝나면 진득하게 술이나 하자.”
“영등포 일 끝나면 명동도 가야 하는 거 아시죠?”
“야. 명동에는 일환이 형님이 있잖아. 어련히 알아서 다 잡으시겠지. 일환이 형님 한두 번 보냐?”
여의도에도 오성파 조직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명동은 더 적다.
명동이야 사채업자들의 천국이긴 하나, 우리 화진파가 주름 잡고 있는 곳이었다. 오성파가 쉽사리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자금력에서도 우리가 몇 배는 더 앞서고 있으니, 오성파로써는 그곳에 세력을 넓히기가 어려웠을 터.
그쪽은 성일환이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물론, 그 양반이 흥분해서 총만 안 쓰면 다행이겠지만.
“다 왔네.”
여러 대의 차량이 오성파가 운영하고 있는 나이트 앞에 멈춰 섰다.
아직 오픈 전인 나이트.
뒤집어 놓기에 딱 좋은 시간대다.
황규혁은 감상에 젖은 얼굴로 나이트 입구 앞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말이야. 여기 입구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이만 갈고 있었지. 언젠간 꼭 여기 들어가서 안에 있는 새끼들 다 조져 버리겠다고. 그리고 오늘 그 날이 왔네. 다 우리 동생 덕분이다.”
황규혁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그런 다음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던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길게 말 안 한다. 가서 다 족쳐!”
“예, 형님!!”
조직원들도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황규혁을 따라 오성파의 나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피가 팔팔 끓고 있는 황규혁과는 달리, 나는 여의도에서 이미 한바탕 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함성을 따라 나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뛰어 들어가지 않은 탓인지, 동욱이와 정식이는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너희들도 같이 가도 돼.”
“아닙니다, 형님. 굳이 제가 가지 않아도 이미 저 안에 있는 놈들은 끝난 거 아니겠습니까?”
황규혁이 들어갔으니, 이미 게임은 끝난 게 아니냐는 뜻이다.
그 말에 정식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규혁이 형님이면 뭐…. 괜히 갔다가 욕만 먹어. 혼자 다 해 먹는 거 좋아하시는 분이잖아.”
정식이가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황규혁 실력을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젊은 나이에 영등포를 관리하게 된 사람이지 않은가.
실력이 안 좋을 수가 없겠지. 더군다나 머리도 꽤 좋은 사람이다.
“으아악-!”
“이 새끼들이!!”
“다 죽여!”
나이트 안으로 몇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벌써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갑작스레 습격을 받기도 했고,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를 쉽게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차라리 도망을 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일지도….
“동욱아.”
“예, 형님.”
“우리는 애들 싸우는 거 참견하지 말고, 머리통 큰 새끼들만 노리자. 정식이 너도 따라와.”
동욱이와 정식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통 큰놈만 노린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영등포를 관리하고 있는 오성파 쪽 간부를 붙잡자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재밌겠네. 그런데 오늘은 연장 막 써도 되는 건가?”
“괜찮아. 오늘은 너 하고 싶은 대로 막 써.”
정식이는 환해진 얼굴로 허리춤에 있는 칼을 두드렸다.
요즘 들어 딱히 칼 쓸 일이 없어 몸이 근질거린다며 아우성을 치던 놈이 아니던가.
오늘만큼은 실컷 써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나는 동욱이와 정식이만 데리고 나이트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뻐억-!
콰직-!
“크악!”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난장판이 된 나이트 내부 모습이 드러났다.
테이블부터 스테이지까지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고, 그 위에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오성파 조직원들이 보였다. 그들 중 대다수의 몸에 칼이 한 자루씩 박혀 있었다.
“간부 놈들이 아직 있겠지?”
“뒷문도 전부 점거한 상태입니다. 도망칠 구멍이 없으니, 여기서 끝까지 싸우려고 하겠죠.”
우리의 포위망에 갇힌 오성파 간부들이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지 별로 되지 않았으니, 아직 그놈들 목숨이 붙어 있을 것이다.
나는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조직원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 나이트 2층으로 올라갔다.
과연 그곳에는 사무실처럼 생긴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입구를 덩치 큰 조직원 몇 명이 지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여기인 거 같지?”
나는 동욱이와 정식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것을 사인으로, 둘은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곧, 입구를 막고 있던 덩치들의 몸에 마구잡이로 칼을 쑤셔 넣는다.
“크악-!”
“이 개새끼들이!”
여섯 명의 거구들이 두 사람을 막기 위해 열심히 주먹을 휘둘러 봤지만, 털끝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만큼 녀석들의 몸놀림이 재빨랐다.
예상했던 대로 거구들은 피를 토하며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동욱이와 정식이는 여유롭게 칼에 묻은 파를 닦아 냈다.
“들어가시죠, 형님.”
동욱이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 입구를 열었다. 그리고 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정식이가 몸을 던져 나를 옆으로 밀쳤다.
“조심해!!”
타앙-!
총?
설마, 저 안에 있는 새끼가 총을 가지고 있었나.
정식이가 아니었으면 몸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타탕탕-!
다행히 다친 곳은 없으나, 몇 발의 총성이 더 들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 거야, 이 새끼들아!!”
안에 몇 명이나 있는 건지 확인도 못 했다. 저렇게 연달아 총을 쏘고 있으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 수도 없었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동욱이는 창백한 얼굴로 내 몸을 살폈다. 그런 동욱이 머리를 정식이가 살짝 쳤다.
“다음부터 조심해. 이런 곳에 태산이부터 안으로 들이면 어떡해? 총은 얘가 맞으면 안 돼. 너나 내가 대신 맞아줘야지. 안 그래?”
정식이의 꾸중에 동욱이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왜 너희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는 거냐.
고개를 숙이려면 나한테 숙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안에 3명 정도 있는 거 같은데. 다들 총 하나씩 들고 있는 거 같고.”
내 몸을 옆으로 밀치는 그 짧은 순간에, 이미 사무실 내부에 있는 인원을 파악했다는 건가?
정식이는 왼쪽 허리춤에 있는 칼 하나를 더 꺼내 들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태산아.”
“…왜?”
“내가 저것들 족치면 보너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는 걸 보니, 역시 정식이답다.
“달라는 대로 줄게. 가서 다 처리하고 와. 대신, 죽이지는 말고. 물어볼 게 아주 많으니까.”
“오케이.”
정식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지 궁금하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지 않던가.
초근접전이 아니면 승산이 거의 없는 싸움. 그럼에도 정식이 얼굴에는 두려움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간다.”
정식이는 그대로 입구 쪽에 몸을 날리면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있던 칼이 허공을 가르며 상대에게 날아갔다.
“커헉-!”
“이, 이 새끼가!”
타타탕-!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제대로 맞춘 모양이다. 하지만 상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그냥 보이는 대로 총을 갈기는 거 같은데, 정식이가 벌집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나는 조금이라도 도와줄 요량으로 밖에 얼굴을 조금 내밀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악-!”
“뭐, 뭐야! 크악!”
셋 중 하나는 이미 이마에 칼이 꽂힌 채 바닥에 누워 있었고, 나머지 둘도 정식이가 빠른 속도로 달려와 휘두른 칼에 맥없이 무너졌다.
총만 믿고 버티다가 정식이의 역습에 제대로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식이 저놈이 쓰러진 상대의 목에 칼을 꽂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아아-!”
내가 손을 들어 소리치자, 그제야 정식이도 ‘아차’하며 조심스레 칼을 내려놓았다.
“아. 미안. 죽이지 말라고 했지.”
다 좋은데, 한번 흥분하면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저 습성이 문제다.
그래도 셋 중에 둘은 살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동욱아.”
“예, 형님.”
“문 잠가.”
“예.”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 얼음이 차갑게 담겨 있는 위스키 잔을 들어보았다.
태평하게 위스키나 마시고 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온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걸까.
덕분에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영등포를 장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크으으-. 이 개자식들.”
나는 동욱이와 정식이 손에 붙잡힌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본 뒤 물었다.
“둘이 오성파 간부야?”
“….”
어쭈. 이거 봐라.
아무 대답도 안 하겠다 이건가?
“동욱아.”
“예, 형님.”
“지금부터 이 새끼들, 내 말에 하나라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저 손가락 하나씩 잘라.”
“예, 알겠습니다.”
동욱이는 품 안에 있던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제야 저 두 놈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이제 이놈들을 통해서 제대로 호랑이 사냥을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