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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16화 (116/325)

116화. 큰일에는 희생양이 필요한 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명령으로 사살된 사람만 무려 400명. 하지만 알게 모르게 죽인 사람을 전부 합치면 1천은 넘길 거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사설 군대, 동물원, 개인 비행장과 호텔 등등.

그는 마약왕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메데인 카르텔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으로 사실상 공중분해 되었다.

1993년 12월 2일.

잘 나가던 파블로는 마침내 콜롬비아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생각 외로 그는 콜롬비아 내에서 인기가 꽤 있었다.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풀어 준 덕분인데, 그것을 빌미로 그는 콜롬비아 정계에 진출한다.

물론, 그가 저지른 범죄 행위와 악행이 폭로되면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분노한 파블로는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법무부 장관을 죽여 버리고, 콜롬비아 대통령 궁 근처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한다.

파블로가 갈 데까지 가면서, 콜롬비아 정부가 홍역을 앓으며 결국 미국이 개입하는데….

이때 파블로는 스스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말이 감옥이지, 실상은 휴가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지은 호텔에 들어가 옥 생활을 대신하는 거였는데, 나이트클럽과 바까지 있는 곳이라 감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만큼 콜롬비아에서 발휘하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

결국, 콜롬비아 정부는 다시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본격적인 파블로 죽이기에 나선다.

미국이 나선다는 것을 알고 파블로는 탈옥을 감행하고, 자신의 연고지에서 숨어 지내다가 DEA에게 세 발의 총알을 맞고 최후를 맞이한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마약왕의 최후다.

하지만 나는 그의 최후를 앞당기고 싶었다.

이미 그는 한 차례 내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거래가 원활하게 끝나긴 했지만, 이놈은 분명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파블로가 내게 어떤 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건데….

내가 먼저 당하기 전에, 그의 목숨 줄을 잘라버려야겠다.

“진심이야, 워커?”

“제가 언제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진심입니다. 물론, 당장 파블로를 죽이자는 게 아닙니다. 대선이 끝나는 대로 일을 거행할 겁니다.”

로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는 내 계획을 알고 있지 않은가.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제거되는 대로, 로이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모르겠다. 난 워커만 믿을 게.”

“저도 로이만 믿겠습니다.”

로이는 피식 웃으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강철중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나의 히어로!”

로이가 격한 반응을 보이며 몸을 껴안자, 강철중은 적잖게 당황한 얼굴빛을 띠었다.

“미스터 김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쯤 납덩이가 되었을 거야.”

“납… 덩이요?”

“하하. 몰라? 돈이 아니면 납! 이게 우리 메데인 카르텔의 정책이잖아.”

돈이 아니면 납 정책은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고안한 것으로, 돈을 받던가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으라는 지독한 협박이다.

그는 콜롬비아에 있는 경찰과 군부에 돈을 뿌려대며, 혹시라도 돈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총알을 퍼부어 목숨을 빼앗는다.

로이는 그걸 비꼬아 말하는 것이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철중 씨.”

“아닙니다, 사장님. 사실, 파블로 그놈이 총을 쐈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맞지 않았네요, 하하.”

나는 강철중 뒤로 서 있는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뵙는군요. 워커 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들 과묵한 사람들인지, 그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Yes, sir.”

말이 많은 사람보다, 차라리 저렇게 과묵한 사람들이 낫지 않겠는가?

“입이 무거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돈만 주면 다른 사람이 더블을 준다고 해도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로 추렸습니다.”

“역시, 같은 특수 부대 출신이라는 겁니까? 이런 쪽에는 빠삭하시네요.”

돈만 주면 무슨 명령이든 해내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강철중은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들을 데려왔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협상을 마쳤습니다.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코카인을 전부 처분할 거예요. 그러니까 잘 협조해 주세요.”

“예,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그 약들을 지키고 있느라 좀 불안하긴 했는데, 다행이군요.”

“하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거, 오래 가지고 있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죠.”

어차피 약이라는 건 오래 들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다. 그래서 내가 기회를 잡아 빨리 처분을 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번 기회로 나는 조만간 30억 달러를 가진 자산가가 될 것이다.

고맙다, 파블로. 그리고 네놈은 반드시 내가 죽여주마.

* * *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급하게 스케줄을 조정했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 붙잡혀 있을 순 없을 것 같군.”

부시는 조금 언짢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나도 공손하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부대통령님. 하지만 꼭 상의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그래. 그게 뭔가?”

“부통령님께서 당선이 되고 나서 말입니다.”

부시는 손을 들어내 말을 끊었다.

“잠깐만. 당선이 되고 나서의 일을 상의하자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자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어떻게 하면 대선에서 승리할지 고민해야 하는 때에, 한가롭게 당선된 후의 일을 논의하자?”

단단히 화가 났는지, 부시의 인상이 점점 험악하게 변해 갔다.

“난 지금 하루하루가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기분이야! 그런데 자네는 한가롭게 그런 이야기나 꺼내고 있다니!”

하지만 난 이 노친네의 칭얼거림을 계속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건 부대통령님이 아닙니까?”

“…뭐야?”

“저번 날에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리턴 컴퍼니는 100% 승리를 장담하지 않는 도박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낮고 어두워진 내 목소리에 부시는 움찔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 보였다.

나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차기 대통령은 바로 부대통령이 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회사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뭐…. 그렇게 자신감을 보인다면야.”

부시는 머쓱한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사과하지.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구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만큼 부담감이 크시겠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면, 저희 쪽에서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할 겁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편안하게 자리에 등을 기대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아까 하려던 말이 뭔가?”

참 멀리도 돌아와서 본론을 꺼내게 되었다.

귀찮은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아직은 이럴 단계다.

“메데인 카르텔… 있지 않습니까?”

메데인 카르텔의 이름이 나오자, 부대통령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콘트라 게이트에서 한몫 단단히 챙기고, 그놈들이 마약을 미국에다 뿌려대는 통에 정부는 온몸으로 그 비난을 견뎌야 했다.

특히 미꾸라지처럼 잘만 빠져나가는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더욱 골칫거리였다.

“그것들은 왜?”

“아시겠지만, 당선이 된다고 해도 결코 여론은 부대통령님께 우호적이지 않을 겁니다.”

“그거야….”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신 후에, 콘트라 게이트 사건을 레이건 대통령에게 완전히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자, 자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또 나왔다.

부시의 모르쇠 전법.

순진한 척을 하면 내가 정말 그렇게 봐 줄 거로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부시의 장단에 조금 맞춰줘야 했다.

“솔직히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지 않겠습니까?”

콘트라 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여론은 굉장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건도 레이건이지만, 부시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한 명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을 천하의 역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대통령님에 대한 여론을 끌어 올릴 방법도 있지요.”

솔깃했는지, 부시는 내게 귀를 기울였다.

“흠흠. 뭔지 한번 들어는 봄세.”

여전히 역겨운 말투이지만, 난 속으로 비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메데인 카르텔을 치는 겁니다.”

“메데인 카르텔?”

“예. 당선이 되고 나서 곧바로 메데인 카르텔 토벌을 외치십시오. 이 아름다운 꿈의 나라, 미국에 해악을 끼치는 바퀴벌레들이지 않습니까?”

“잠깐만. 그런데 그게 어떻게 레이건 대통령과 연관을 지을 수가 있지?”

여기까지 들으면 권용일은 금방 알아들었을 텐데.

역시, 이놈은 구구절절 설명해 줘야 알아듣는 놈이다.

“메데인 카르텔을 소탕하는 작전을 발의하시면, 리턴 컴퍼니에서도 곧장 행동을 개시할 겁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붙잡는 것이지요.”

“파블로 에스코바르? 마약왕을?”

“예. 이미 물밑 작업은 끝냈습니다. 부대통령님이 당선되고 나서 수월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리고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붙잡아 고문한 뒤,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부시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거짓 자백이라면…?”

“콘트라 게이트를 시작한 건 레이건 대통령이고, 그는 마약을 팔아 막대한 양의 돈을 챙기려고 했다는 것까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그렇게 말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의심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이용해 여론몰이를 하자?”

“예. 없는 죄는 충분히 쉽게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직 CIA 국장님이시니까요.”

내 말을 들은 부시가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자네가 맡는 것이군. 나는 나대로 여론몰이를 시작하다 레이건을 감옥에 처넣으면 되는 것이고.”

역시, 부시는 레이건에 대한 충성심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듯 보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섬기던 주인마저도 가차 없이 내칠 수 있는 게 바로 정치이지 않던가.

“예. 레이건을 감옥에 처넣어 부대통령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동시에 메데인 카르텔이라는 거대 조직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시는 겁니다.”

부시는 다시 한번 놀란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자, 잠깐만. 메데인 카르텔을 다루다니?”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제거하게 되면, 메데인 카르텔은 반드시 분열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미국은 더욱 위기에 놓이는 것이지요.”

“그거야 그렇지. 메데인이라는 거대 조직이 사라지면, 너도나도 마약을 팔려고 이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 테니까.”

이젠 좀 말이 통하는 것 같다.

“예. 메데인이라는 강력한 지배자가 사라졌으니, 오히려 점조직처럼 미국 전역에 마약상들이 퍼져 나가, 소탕하기가 매우 까다로울 겁니다.”

“그렇다는 건…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죽이고, 그를 대신할 사람을 메데인에 넣어 리턴 컴퍼니와 내가 다룬다?”

“바로 그겁니다, 부대통령님. 메데인을 컨트롤 할 수만 있다면, 결코 부대통령님께 손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물론, 뒤탈이 나지 않게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부시는 흡족한 입가를 보였다.

거의 넘어온 건가?

“어떻습니까? 서로 합작을 하면,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요?”

“하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네는 역시 말이 잘 통해서 좋아. 또 매번 흥미로운 주제를 들고 오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럼, 허락하시는 겁니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면야 뭐든 허락하지 않을까? 거기다가 눈엣가시인 메데인 카르텔을 손아귀에 넣을 수만 있다면야… 더 바라는 게 없지.”

부시로서는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 제안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메데인 카르텔을 손아귀에 넣는다면, 음지와 양지에서 동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번 일이 성공하게 된다면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레이건 대통령이 감옥에 갇히게 될 터.

내가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부시는 꿈에 젖어 있지만, 나중에 때가 오면 메데인 카르텔이란 카드로 레이건을 날려 버린 것처럼….

부시도 그와 똑같이 날려 버릴 생각이다.

항상 큰일에는 희생양이 필요한 법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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